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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살인자-200화 (외전 완결) (200/200)

[외전] 종말전야. 50. 종말전야. [완결]

50. 종말전야.

무성한 갈대가 흔들리는 중랑천변이다. 이곳에 두 사람의 죽음이 남았다.

‘홍창기, 엄규철.‘

죽은 자들의 이름을 마음 속으로 부르며 백곰은 주먹을 가늘게 떨었다.

도봉구청을 불덩이로 만들고 튀어나온 자들, 이곳에서 최후를 맞았다. 이들을 죽인 자는 사라졌다. 정체를 특정할 수 없는 놈, 위험한 놈이다.

‘운석을……!‘

가져갔다. 이 자들에게서 강탈해 갔다.

역시 운석강탈자의 면모고 실력이다.

이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놈은 더 강해지고 위험해 질 것이다.

그 전에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계속해서 뒷북이다.

‘반드시 찾아서 죽여주마……!‘

주체하기 힘든 살의를 숨으로 뱉어내던 백곰은 경직했다. 지금 눈을 강타하고 들어온 빛이 그렇게 만들었다. 중랑천 건너편에 치솟은 화염이다.

‘폭발!‘

저건 누가 봐도 그것이다.

전장에서 미사일이나 포탄이 터진 것 같은 섬광과 불길이다.

그런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저곳은 주택가다.

‘도시가스!‘

바로 깨달아지는 건 그거다.

도심에서, 주택가에서 저런 폭발이 생길 가능성은 그것 뿐이다.

그런데 저절로 저렇게 될 일은 희박하다.

이 순간 드는 예감의 확신은 누군가의 의지로 인한 것이다. 운석소지자에 의한.

“팀장님!“

팀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아니어도 백곰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달려왔던 곳, 도봉구청 방향에서도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폭죽놀이를 하듯 연쇄적이다. 높이 서 있는 아파트 단지들이 화마에 휘감기는 게 보인다.

‘이!‘

패닉과도 같은 상태에서 백곰은 도시의 아우성을 들었다.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소리, 사람들의 아우성과 무수한 파괴의 소리, 소름이 돋는다.

* * *

상계동 아파트단지 속을 바람처럼 달려가던 한건은 움찔하며 멈췄다.

전신을 강타하는, 아니 영혼을 엄습하는 감각 때문이다.

이건 운석의 포효다.

‘뭐!‘

깨닫자마자 한건은 결과를 봤다.

아파트에서 폭발하며 퍼져 나오는 불길이다.

유리창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터지면서 화염이 뿜어져 나온다.

도시가스 폭발로 인한 것이란 걸 알겠다. 그런데 이건 누군가 터트린 거다.

‘운석 소지자!‘

아니 소지자들이다. 그들이 동시에 폭주하고 있는 거다. 보이지 않는 방아쇠가 당겨져 그런 것처럼, 운석소지자들이 일시에 파괴를 시작했다.

그거다, 분명히 그것이다.

그렇다는 걸 본능으로 안다.

처절한 비명에 한건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고층에서 불덩이가 된 사람이 떨어진다. 하나가 아니다. 여기저기 화마 속에서 동시다발이다.

부들거리는 숨과 시선을 다잡지 못한 채 한건은 대로를 향해 달려갔다.

도로를 튀어나온 차량이 가로수를 들이받고 불타고 있다.

유리창을 뚫고 나온 운전자는 피투성이로 늘어졌다.

도로엔 차들이 충돌하고 있다.

‘저 새끼!‘

본능적인 살의로 한건은 도로 안으로 내달렸다. 달려오는 승용차를 향해 손을 내밀며 터져라, 라고 소리치는 놈. 운석 소지자를 향해 몸을 던졌다.

* * *

맹렬하게 짖어대는 제트의 소리에 졸던 눈을 뜬 윤지희는 자신이 졸았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창밖은 짙은 어둠이 들이친 심야, 그런데 환하다.

‘뭐?‘

눈을 치뜨고 의자에서 일어난 윤지희는 상황을 파악했다.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저택 주변, 평창동 주택가에 화재가 난 거다. 그런데 그냥 화재가 아니다.

지금도 눈에 보인다.

도시가스가 폭발하고 있다.

‘운석!‘

본능적으로 깨달아지는 게 그거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이 밤에 보고 있는 이 현실이 그로 인한 것이란 걸 알겠다. 왜 그런지도 깨달아진다.

‘한건, 그의 운석이 내게도 작용한 결과.‘

등 뒤에서 들리는 울음에 윤지희는 돌아섰다. 인호가 놀라서 엄마를 안고 울고 있다. 그런 아들을 꼭 안은 안미령은 무슨 일인지 눈으로 묻는다.

“대피하셔야겠습니다!“

다급한 긴장의 목소리, 경호팀장의 눈을 돌아본 윤지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윤지희 자신이 졸던 때에 이미 상황을 파악한 경호팀, 기민하다.

“차로 가시죠.“

경호팀장의 권유를 따라 움직이며 안미령은 황망한 눈길을 던진다.

뭐라고 해줄 말이 없기에 윤지희는 뜨거운 숨만 삼켰다.

밖에선 폭발하는 소리와 더불어 온갖 파괴의 소리들이 들린다. 사람들의 비명이 처절하다.

“열어!“

경호팀장의 격한 지시에 맞춰 주차장 철문이 열렸다. 석 대의 차량은 용수철이 튕겨나가듯 달려 나갔고, 화마에 먹힌 평창동 속을 질주했다.

-저 새끼 뭐야!

리시버를 통해 들린 거친 욕설, 원인을 윤지희는 봤다.

선두의 경호차량 앞을 막아선 남자 때문이다. 남자는 손을 내밀고 있다.

이 순간 윤지희는 깨달았다.

기억의 한 장면을 꺼냈다.

터지라고 외치던 김철기를.

“피해!“

본능적인 반응으로 윤지희는 핸들을 돌렸다. 뒷자리에 안미령과 현인호가 타고 있기에 조수석에 탄 결과, 운전하는 경호원을 밀치며 꺾었다.

폭음이 터졌다.

충격 속에 차는 멈췄다. 90로 방향을 꺾어 담장을 들이받은 결과다.

성벽 같은 담장의 저택은 이미 불타고 있다.

혼몽한 충격 속에서 현실을 인지하는 순간 폭음이 또 덮쳤다.

뒤따라오던 경호차량이 폭발하며 치솟아 올랐다.

선두의 경호차량은 이미 불덩이로 타고 있다.

“나와요!“

차문을 열고 나온 윤지희는 뒷자리 안미령과 현인호를 내리게 했다. 권총을 쥐고 남자를 봤다. 강력한 적의와 살의를 발산하고 있는 운석소지자, 저자는 이곳 평창동을 목표로 왔다. 가진 자들에 대한 적개심이다.

“엄마……!“

두려움에 떠는 현인호를 꼭 끌어안는 안미령, 그녀의 눈에도 같은 두려움이 들어찬 것을 윤지희는 봤다.

왜 아니랴,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앞에 두고 멀쩡할까.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은 꿈에서나 일어날 일이다.

‘저!‘

차 옆에 붙어 웅크린 모습으로 윤지희는 새로운 광경에 눈을 치떴다.

경호차량을 공격한 운석소지자를 다른 그림자가 덮친 거다.

역시 본능적으로 알아지는 건 운석소지자라는 것, 저들은 한데 얽혀 싸우고 있다.

“여길 벗어나야 해요, 지금이 기회예요.“

안미령과 현인호에게 강한 눈빛을 던진 윤지희는 바로 움직였다. 운석소지자들이 서로를 죽이기 위해 싸우는 사이를 이용해 달렸다. 현인호의 손을 잡고 안미령을 독려하며 달렸다. 그런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 * *

장례식장이 발칵 뒤집혔다. y대학병원이 뒤집혔다. 아니 강남이 뒤집혔다.

‘이게 무슨 일이야?‘

황당한 충격 속에서 현인규는 어둠을 바라봤다.

화려한 강남의 아경을 물들이고 조화된 어둠이 아니라 화마가 먹어치우고 있는 어둠이다.

하늘 위로 어둠을 밀어 올리는 화마의 출렁거림은 더 크고 강력해지고 있다.

‘폭주……!‘

그것이다. 그것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는 상태다.

1도 예상 못한 일이다. 운석소지자들이 일시에 이렇게 폭주라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다.

이건 누군가 의도적으로 방아쇠를 당긴 것 같다.

설마, 정말 그런 건가?

“선천개벽의 시대는 가고 후천개벽의 시대가 열리노니……“

귀를 파고드는 중얼거림에 현인규는 휘뜩 고개를 돌렸다. 두루마기 차림에 긴 머리와 긴 수염을 늘어뜨린 초로인, 창밖을 보며 염주를 돌린다.

“때가 이르렀도다, 금강산 일만 이천봉의 정기를 받은 일만 이천명의 도통군자들이 거리를 활보할지니, 이 때엔 기울어진 세상의 축이 바로 서고……“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나 하며 미간을 일그러뜨리던 현인규는 다른 소리를 들었다. 어느 빈소를 찾은 건지 모를 종교인들이다. 기도를 올린다.

“주여! 저희를 버리지 마시고 구원하소서!“

대낮처럼 불타고 있는 강남거리, 그걸 보는 창 앞에 모인 이들은 두 손을 모아잡고 무릎을 꿇었다. 그런 이들을 보며 두루마기 차림의 도인인지 사기꾼인지 모를 자가 다시 중얼거린다. 말세를 아무도 막지 못한다고.

‘이게 무슨……!‘

부들거리는 시선을 다스리지 못한 채 현인규는 다시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 순간 처절한 비명이 귀를 파고들었다. 무엇인지도 봤다.

여자, 젊은 여자가 남자를 종이 인형처럼 찢어버렸다.

찢어진 자는 현인규 자신의 경호원이다.

장례식장의 공용공간이지 휴게실과 같은 장소인 이곳에서 저런 일이 생겨선 안 된다.

현인규 자신의 주변에선 안 된다.

그런데 생겼다.

왜 생겼는지 알겠다.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는 여자는 한 때 품었던 년이다.

아이를 가졌다길래 지워버리고 떼어낸 년이다.

저년이 지금 쌩뚱맞게 나타났다.

경호원을 찢어 죽이는 힘, 운석을 가졌다.

“현인규!“

처절한 원한으로 부르며 달려오는 여자, 현인규의 경호원들이 막아섰다. 하지만 가을바람의 낙엽들처럼 휘날린다. 여자는 현인규를 덮쳤다.

* * *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이 불덩이로 변한 모습을 바라보며 유한기는 소름을 삼켰다. 아수라장의 지옥도로 변한 거리를 눈에 담으며 입가를 비틀었다.

‘이런 건가? 이렇게 되는 거였어?‘

운석에 의한 결과, 지금 보는 건 그것이다.

운석을 가진 자들이 일제히 발동했다.

딱 그 표현이 맞다. 발동이 걸린 경운기처럼 날뛰기 시작한 거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유한기 자신은 왜 저들과 같지 않은 것인지.

“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 그런데 보기 좋네.“

흉악한 파괴의 의지를 흘려내는 지도 모른 체, 자신의 눈이 그렇다는 걸 모른 체 유한기는 걸음을 냈다.

* * *

불암산 정상에서 보는 도심은 온통 붉다.

마치 지옥을 보는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우연이 아니야, 우리가 만든 거야.‘

쇠기둥 난간을 잡고 서서 한건은 부르르 소름을 털어냈다. 지금 보고 있는 현실이 꿈이 아니란 것을, 저절로 생긴 게 아니란 것을 절감했다.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긴급대응에 나서……

폰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한건은 보지 않았다. 산 아래 도심을 바라보기만 했다.

-현재의 괴변사태는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과 중국과 유럽을 비롯한…… 뉴욕과 도쿄와 북경은 불바다로 변한 가운데 무자비한 살상이……

허, 하고 숨을 내쉰 한건은 문득 옆을 돌아봤다.

자신이 녹양역에서 벗어나 도주할 때에 거쳐간 곳, 이 산에 다시 올랐다.

그때처럼 산은 말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아우성이다.

종말의 비명을 지른다.

‘정말로 종말이라고?‘

예감이 아닌 본능의 확신이다. 운석들이 속에서 외치고 있다.

‘이렇게 끝난다고?‘

부르르 진저리를 친 한건은 격하게 고개를 흔들며 소리쳤다.

“아니야!“

불암산을 뒤흔든 의지, 그 힘을 전신에 일으킨 채 한건은 몸을 돌렸다.

“내가 그렇게 안 둔다. 절대로.“

산 정상을 박차고 한건은 도심을 향해 달려 내려갔다. 그 앞을 산을 차고 오른 운석소지자들이 막아섰다. 이끌리듯 찾아온 자들, 충돌한다. 한건이란 태풍에 휘말린다. 제가 가진 운석을 헌납하고 한건의 길을 연다.

지상에서 피어오르는 파멸의 불빛과 하늘의 별빛 속으로 한건은 달려갔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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