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2. 프롤로그 (2) (2/303)


002. 프롤로그 (2)
2022.09.02.


기사가 찌른 검은 내 귓가를 스쳐, 계산대 뒤의 벽을 향했다.

찌이이익!

등 뒤에서 기이한 단말마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슬라임’이라 불리는 E급 인베이더 한 마리가 검에 꿰여 몸부림치고 있었다.

축구공만 한 크기에 반투명한 찹쌀떡처럼 생긴 놈이다. 특성에 따라 색이 다른데, 이놈은 검었다.

독!

“우왓!”

나는 화들짝 놀라 물러서다가 하마터면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은백의 기사가 의아하다는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어째서 던전 발생도 없이 실내에 인베이더가?”

그의 시선이 계산대에 매달리다시피 한 내게로 향했다.

“또, 당신은 왜 멀쩡한 겁니까?”

“네?”

“독 슬라임은 그리 강한 놈은 아니지만…….”

순간, 나도 모르게 오래전 공부했던 내용이 튀어나왔다.

“피부로 독기를 뿜어내는 ‘어둠의 오러’라는 스킬을 가진 인베이더여서, 일반인은 2미터 내로 접근하는 순간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쓰러집니다!”

혹시나 기사로서의 재능이 있을까 싶어 테스트를 준비하던 당시에 외운 것이다.

지금은 이런 꼴이 됐을망정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잘했다. 선천적으로 관찰력과 기억력이 좋은 덕이다.

“……잘 알고 있군요.”

고고한 기사는 비로소 내 가슴에 착용한 이름표를 확인했다.

“이정우 씨. 그럼, 어째서 당신에게 어둠의 오러가 안 먹히는지도 설명해줄 수 있습니까?”

“……?”

듣고 보니 그랬다.

저 기사야 아이템에다 마력 저항력까지 있을 테니 그렇다 치고.

난 왜 멀쩡한 걸까?

나는 양손을 펴서 내려다보았다.

호흡곤란은커녕, 어둠의 오러를 접했을 때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경증인 보라색 반점조차 없다.

결국, 얼빠진 것처럼 이런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글쎄요, 왜 그럴까요?”

“흐음.”

기사의 눈에 드리운 의혹이 짙어질 무렵.

드드드드드득!

갑자기 편의점 전체가 진동했다.

쿵! 콰직! 와장창!

진열해둔 상품들이 우르르 떨어지고 어딘가의 유리가 깨졌다.

“으악!”

나는 양팔로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계산대 너머로 기사의 당혹성이 들려왔다.

“이 기운은……. 설마, 여기에 던전이 생성되려는…….”

그 말에 나는 절망했다.

새로운 던전이 열리면 보통 반경 100미터 이내는 초토화한다.

물이 작은 구멍으로 더욱 세차게 쏟아지듯이.

억눌렸던 타 차원의 에너지가 초고밀도로 방사되며 건물, 사람 할 것 없이 재가 되어 흩어진다.

매번 이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인베이더들을 물리쳐봐야 남아나는 게 없을 터.

다행히 빅뱅 이후, 과학자들이 탐지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던전이 발생할 때 미약하게 새 나오는 파장을 알아내어 응용한 것이다.

화산이 폭발하기 전에 작은 지진이 발생하고 마그마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이제 던전이 발생하려 하면 관할 구역 기관에서 이를 몇 시간 전에 감지한다.

그리고 즉시 차폐 울타리를 치는 한편,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서번트와 기사들을 호출한다.

서번트는 차폐 울타리에 마력을 주입하여 폭발 범위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기사는 발생 직후 튀어나오는 인베이더를 처리한다.

이런 과정 모두 내가 오래전에 서번트 테스트를 준비하면서 공부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징후도 없었다. 재난 문자도, 차폐 울타리를 설치하는 서번트도, 기사의 출동도.

‘아무 조짐도 없었는데 던전이 열린다고?’

불행히도 기사의 말대로였다.

편의점 가운데의 허공이 세로로 갈라지며 그 사이에서 일그러진 묵빛 안개 같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뭔가가 그 균열을 비집고 나오려고 했다. 온몸의 털이 바짝 일어서고 한기가 들었다.

세 쌍의 손이 공간을 세로로 찢어냈다.

30센티미터는 될 법한 다섯 개의 날카로운 손톱. 그게 세 쌍이었다.

팔은 여섯 개지만, 손은 뚜렷하게 인간의 그것과 형태가 같다.

인간과 유사할수록 위계가 높으니 딱 봐도 최상위 인베이더다.

‘그, 그래도 바로 옆에 고위 기사가 있잖아. 저 사람이 나 살려주지 않을까?’

나의 기대는 이어진 기사의 말에 곧바로 허물어졌다.

“……마공작?”

최고 등급 이상의 인베이더에게는 귀족의 칭호가 붙는다.

공작이라면 한국에 한 번도 나타난 적 없는 초고위 등급.

너무나 갑작스럽고 비현실적인 단어를 들으니, 지금의 상황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얼핏 뇌리를 스쳤다. 죽고 싶지 않다!

아이러니하다. 살아가는 의미가 없었는데, 정작 죽을 위기에 처하자 이토록 살고 싶다니.

“헉, 헉.”

나는 숨이 거칠어지고 있는 기사가 착각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 마공작이 나타난 건 위치토 사태, 상하이 사태, 파리 사태의 단 세 번뿐이다. 그 결과 세 도시는 지도에서 사라졌다.

저 사람도 직접 본 적은 없잖아?

가까이에 있다는 것만으로 기사인 자신이 숨이 찰 정도로 강하니까 마공작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게 아닐까?

‘어? 잠깐.’

그런데 나는 왜 여전히 멀쩡한 거지? 고위 기사조차 호흡이 가빠지고 있는데.

그때, 은백의 기사가 내게 힘겹게 말했다.

“후욱, 도망……치십시오.”

“네?”

“영문은 모르겠지만, 이 정도 어둠의 마력을 정면에서 받고도 괜찮으신 듯하니…… 놈이 완전히 빠져나오기 전에 어서 도망쳐요. 미안하지만…… 당신까지 보호할 여력이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마공작의 출현에 나도, 기사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세계 파멸 시뮬레이션 게임과 연동해둔 내 스마트폰 화면에 생소한 메시지가 떠올랐음을.

-조건을 충족하여 시뮬레이션을 종료합니다.

즉시 세계 파멸 메인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리스타트 마스터 이정우, 확인 완료.

충실한 시뮬레이션 이행에 따른 권능을 부여합니다.

‘어쨌든 도망치자. 내가 여기에 있어 봐야 방해만 될 테니까.’

나는 도주를 합리화하며, 두려움에 말 안 듣는 다리를 억지로 옮겨 계산대를 나왔다.

편의점 문으로 향하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검을 들고 게이트 앞을 막아선 기사의 등이 보였다.

저 사람의 나이는 얼마나 됐을까.

25살? 30살?

어쨌든 나보다는 훨씬 어려 보인다. 문득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상대가 마공작이라 해도, 저 기사는 충분히 제 몸 하나 빼낼 능력은 있으리라.

그런데도 죽음을 각오한 채 버티고 있다.

방금 알게 된, 아무것도 아닌 중년인을 살리기 위해서.

저 사람과 나의 가장 큰 차이는 기사로서의 각성 여부도, 장비도, 외모도 아니다.

바로 마음가짐.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느냐 하는 거였다.

어쩌면 내가 서번트 테스트에 매번 떨어진 이유는, 그 마음가짐 때문이 아닐까?

그때, 공간의 균열 사이에서 마침내 마공작이 빠져나왔다.

놈은 팔만 세 쌍이 아니라 눈도 세 쌍이었다. 기다란 세 개의 팔이 거의 무릎까지 내려왔다.

검푸른 몸뚱이를 피처럼 붉은 피막 같은 것으로 감싸고 있다.

그야말로 죽음이 현신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은 오싹한 형상이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다.

“크윽……. 태양의 검!”

기사의 검이 찬란한 광휘를 뿜어냈다. 기사들이 가진 고유의 능력 - 스킬을 발동한 것이다.

그가 검으로 마공작을 내리칠 때.

놈이 길게 찢어진 입을 쩍 벌리며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그 입에서 무시무시한 파괴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기사의 검이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고 마침내 육체마저 붕괴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피눈물이 흐르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 입만 움직여 소리 없이 말했다.

“미안합니다.”

순간, 뭔가가 울컥하고 치밀었다.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당신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잖아!

기사의 머리마저 흩어져 사라지고 뭔가가 내게 날아왔다. 나는 무심결에 그것을 잡아채었다.

손바닥 절반 정도 크기의, 얇고 네모진 검은색 철판.

기사의 인식표인 ‘나이트 태그’다.

직후, 무형의 거센 돌풍이 나를 휘감았다. 마공작의 파괴 에너지가 나까지 휩쓸어버린 것이다.

“아……으아아아!”

갈가리 찢기는 몸을 내려다보면서 죽음이 닥쳐왔음을 실감했다.

의외로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두려움보다는 허무함이 더 컸다.

대체 나는 뭘 위해 살아온 거지?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모든 것을 잃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런 식으로 삶을 끝내지 않을 텐데.

나는 어째서인지 마지막까지 남은 나이트 태그를 힘껏 움켜쥐었다.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 그렇다고 생각했다.

* * *

“으아아아아……. 우와악!”

“꺄아악!”

내 최후의 비명에 여자의 새된 비명이 겹쳐졌다. 시야가 갑자기 확 밝아졌다.

“아, 오빠! 왜 갑자기 소리를 질러. 깜짝 놀랐잖아!”

나는 앞에 서 있는 소녀를 홀린 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빠라고요?”

“뭐야, 잠 덜 깼어?”

“누구……. 억, 정아?!”

“억은 무슨. 어제 또 늦게까지 기사 너튜브 봤지? 엄마한테 확 일러버릴까 보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소녀를 보았다. 분명 내 여동생 정아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아는 35년 전,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인베이더들의 대폭주에 휘말려 죽었다.

정아의 뒤쪽으로, 오래되었음에도 절대 잊을 수 없는 풍경이 보였다.

살짝 바랜 연한 청록색 벽지, 24인치 LED 모니터와 책꽂이가 놓인 책상, 옷걸이에 걸린 교복까지.

‘이건…….’

그랬다.

나는 오래전의 내 방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이건, 꿈인가?

아니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이는 주마등 같은 건가?

멍해진 내게 정아가 잔소리를 퍼부었다.

“고3이라는 자각은 있냐? 으휴, 기사 영상 같은 게 뭐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그러는지. 막 무서운 괴물 때려잡고 피 튀고. 나 같으면 그냥 잠을 몇 시간 더 자겠다.”

잔소리의 폭풍이 몰아치는 동안, 난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서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러자 정아는 제풀에 심드렁해져서 나가버렸다.

“아무튼, 난 분명 깨웠다? 얼른 나와서 아침 먹어!”

“…….”

나는 정아가 나간 뒤에도 한동안 혼란스러움에 어쩔 줄 몰랐다.

그러다 문득 움켜쥔 손안에 뭔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직사각형의 얇은 흑색 철판. 다름 아닌 나이트 태그였다.

죽기 전, 은의 기사가 남긴 마지막 흔적.

나이트 태그를 본 순간, 등골에 저릿한 전율이 일었다.

‘……설마!’

나는 나이트 태그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문정호라는 이름과 기사단 입단일로 보이는 날짜가 새겨져 있었다.

문정호. 처음 듣는 이름이다.

어지간한 기사라면 이름을 모를 리가 없는데.

일어서서 벽 한쪽에 놓인 전신거울을 홀린 듯 봤다.

거기에는 50대 중반의 삶에 지친 뚱뚱한 아저씨가 아니라, 10대 시절의 날렵한 내 모습이 비쳤다.

‘이럴 수가.’

서둘러 달력을 찾았다. 책상 위의 탁상 달력은 2025년 4월에 펼쳐져 있다.

설령 오차가 있다 해도 36년 전의 달력을 놓아둘 리 없다.

그때, 또 이상한 것이 보였다.

눈앞의 허공에 가로로 기다란 막대그래프 같은 것이 나타났다.

제일 왼쪽에는 0, 오른쪽 끝에는 100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다.

막대그래프 아래에는 이런 메시지가 함께 떠올랐다.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막대한 데이터로 인해 시간이 다소 걸립니다. 현재 진행량 : 5%.

-시뮬레이션 완수 보상을 적용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건 또 뭐야……. 무슨 보상?

손을 내밀어 만져보려 했으나 홀로그램처럼 그대로 통과했다.

그래프와 메시지는 잠시 후 저절로 사라졌다. 그사이 한 가지 가정을 세웠다.

그래, 어쩌면 그 마공작이 정신 조작 계열 인베이더일지도 모른다.

난 환상에 빠진 것이다!

방문의 동그란 구리 손잡이를 잡고 조심스레 돌렸다.

이 문을 열면 황량한 2060년대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리라 예상하면서.

그러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역시나 익숙하고도 그리운 거실.

흠집 난 낡은 강마루 바닥과 가운데가 꺼진 소파가 익숙하다.

꿈꾸는 것처럼 멍하니 주방 쪽으로 향했다.

갓 지은 밥과 된장찌개 냄새, 국 냄새가 코에 훅 끼쳤다.

“정우야, 뭐 하다 이제 나와? 얼른 세수하고 밥 먹자.”

어머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 시절의 모습 그대로 생생하게 살아서 나를 보고 있다.

아, 이건 너무 클리셰지!

머리는 이렇게 냉소적으로 생각하려는데, 몸이 멋대로 반응했다.

“엄마…….”

환각이든 클리셰든 뭐든.

이 순간 나는 50대 중반의 장한이 아니라 고등학생으로 돌아갔다.

쏟아지는 눈물을 도저히 참기 어려웠다.

“엄마!”

나는 그만 엄마를 안고 엉엉 울어버렸다.

16621289830722.png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