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 4부 : 능력을 이해하기 시작하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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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 4부 : 능력을 이해하기 시작하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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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 4부 : 능력을 이해하기 시작하다 (4)
2022.09.24.
정말로 딱, 말 그대로 말문만 막혔다. 주먹이 입을 눌러서 소리를 막은 것이다.
단지 그것뿐. 아프지도, 몸이 휘청거리지도 - 하다못해 고개가 젖혀지지도 않았다.
윤철진이라는 놈에게 뺨을 맞았을 때는 나동그라졌는데 말이지.
아, 그러고 보니 그때는 1레벨이었지만 지금은 무려 8레벨이다.
지난 토요일에 5레벨로 올랐고, 그 후 나흘 동안 3레벨이 더 올랐다.
옛 상수동 카페 거리에서 숨어 있던 세눈박이 늑대들을 부지런히 잡은 덕이다.
그 결과, 현재 내 능력치는 이랬다.
[레벨 8 이정우]
-성향 : 중립
-직업 : 초월적인 매니저
-획득한 칭호
스캐빈저
리스타트 마스터
늑대 사냥꾼
-스테이터스
힘 : 40
속도 : 42
지능 : 36
행운 : 10
생명력 : 400
지구력 : 164
패시브 스킬인 금강불괴로 인해, 가뜩이나 내 몸은 불사신과 다름없다.
덤프트럭이 전속력으로 달려와서 치어도, 날아가기는 할망정 작은 멍 하나 들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훨씬 높은 능력치 덕에 근력도 송형근을 훨씬 상회한다. 그러니 기습적으로 날린 주먹 따위가 통할 리 없다.
가소로웠으나 한 가지 효과는 있었다.
바로, 내 기분을 더욱 더럽게 만들었다는 것.
송형근의 어깨 너머로, 경악하여 입을 틀어막는 하인영이 보였다. 가뜩이나 큰 눈이 겁먹어서 더 커졌다.
“어?”
정작 때린 송형근은 당황한 소리를 냈다.
왜소한 꼬맹이를 날려버리리라 작정하고 날린 주먹인데 꿈쩍도 안 하니 당황스럽겠지.
“하하.”
가볍게 웃은 나는,
<목표물이 정해져 전투에 돌입합니다.>
퍽!
송형근의 옆구리에 가볍게 주먹을 꽂았다.
증인도 있겠다, 대뜸 선빵 맞았으니 정당방위 확정이다.
“커헉!”
놈이 몸을 기역 자로 꺾으면서 나동그라졌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 쓰러진 채 버둥대는 송형근을 깔고 앉았다.
“네, 네가 이러고도…….”
이어, 뭐라 중얼거리는 그의 미간을 주먹 도끼로 내리쳤다. 물론 적당히 힘은 빼고.
“아악! 이 썅…….”
퍽!
“X발, 죽여…….”
퍼억!
“억, 자, 잠깐…….”
퍽! 퍽!
“사, 살려……. 살려 주십쇼…….”
송형근에게서 비로소 죽는소리가 나왔다.
힘을 조절했지만, 아마 머리가 깨지고 눈이 튀어나올 듯한 고통을 맛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왜 다짜고짜 사람을 때리나?”
“그, 저, 제가, 인영 씨를 좋아하는데, 동생이랑 특별한 사이처럼 보여서 그만…….”
“동생?”
“아, 아니! 형님, 형님이랑요.”
“후, 일단 인영 씨와 나는 그냥 지인일 뿐이네.”
화나고 흥분해서 원래 말투가 나왔다. 나는 그 사실을 자각하고 헛기침을 몇 번 했다.
“흠흠. 그리고 누나도 아저씨한테 아무 마음이 없다고 확실히 말했으니까 그만 찾아오시는 게 어떨까요?”
“그, 그러겠습니다.”
“확실하죠?”
“그럼요!”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나는 주먹을 들었다가, 송형근의 머리 바로 왼쪽 옆을 힘껏 내리쳤다. 이번에는 사심을 섞어서 힘을 조절하지 않았다.
콰앙!
“히익!”
단단한 타일이 깨지고, 콘크리트로 된 편의점 바닥에 내 주먹이 파묻혔다가 나왔다.
아, 이건 보상해야겠다.
“안 참아요.”
“명, 명, 명심하겠습니다!”
“이만 가 보세요.”
재킷을 챙길 생각도 못 하고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는 송형근의 뒷모습을 보면서.
“분명, 패거리를 데리고 또 찾아올 거야.”
하인영이 나직이 말했다.
“완전 겁 줘서 보냈는데, 설마?”
“무리에 섞이면 두려움은 사그라지는 법이니까. 대신 복수심이 그 자리를 채우겠지. 새파랗게 어린 고등학생한테 당했다는. 이걸 그냥 넘어가면 깡패짓 못 하거든.”
“음…….”
인영은 진지했다. 가볍게 잡담하던 평소의 모습이 아니다.
“됐어. 이참에 나도 때려치워야겠다. 내가 아무리 말해도 어차피 점장은 손도 못 쓰고.”
“경찰에 신고하는 건?”
“사실, 이미 신고해본 적도 있어. 그런데 직접적으로 피해준 게 없어서 아무것도 못 해준다더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좋은 의도에서 한 일이라도 늘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
“쩝. 괜히 내가 오바해서 누나 알바 자리만 잃게 생겼네.”
“아니야. 얼마나 후련했는데! 너, 보기보다 싸움 잘하더라? 곱상하게 생겨서는.”
“하하……. 운동을 열심히 해서.”
“손은 괜찮아?”
“응, 멀쩡해.”
“휴, 그런데 솔직히 이후가 걱정이기는 하다. 형편상 아르바이트를 안 할 수는 없고, 그놈 패거리가 못 찾아오게 해야 하니 이 근처는 안 되고…….”
고민하는 그녀를 보다가, 퍼뜩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하인영에게 물었다.
“누나. 신촌 쪽은 집에서 멀어?”
“아니. 가깝지. 여기랑 비슷해.”
“편의점에서 오래 일해서 청소랑 계산 이런 거 다 잘하지?”
“당근. 왜, 아는 곳이라도 있어?”
“내가 아까 말한 용화 상사에서 아르바이트해 보는 거 어때? 그런 잡다한 업무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던데.”
이는 두 번째 다크 스톤을 팔러 갔을 때, 김용화가 실제로 한 말이다.
지금은 세연 씨가 회계뿐만 아니라 청소나 손님 응대, 비품 구입 같은 일들까지 다 하고 있어서 일손이 부족하다고.
그렇다고 회사 특성상 아무나 채용하기에는 어려워서 고민이라고 했다.
“빠릿하고 착실하면서 믿을 만한, 그런 형이나 누나 있으면 소개 좀 해주세요. 장담하는데 시급은 무조건 만족할 테니까요.”
고용주로서 믿을 만한 사람인 데다, 보안이 철저해서 송형근 같은 양아치가 함부로 찾아오기도 어려울 테니 일석이조다.
“사실, 거기 사장님이 내 지인이거든. 미리 말해둘 테니까 면접 한번 봐봐. 손해 볼 거 없잖아.”
“음, 하긴. 위치도 가까우니까. 이제 편의점이나 호프집도 슬슬 질리고.”
“일하면서 직접 회사 돌아가는 거 본 뒤에, 확신이 생기면 그때 주식 사도 되고.”
“그렇네. 알았어. 이번 주말에 바로 가 봐야겠다.”
“그럼 난 오늘 바로 말해둘게.”
“고마워! 전부 다.”
“뭘. 잘됐으면 좋겠다.”
불쾌하게 시작된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인영에게 좋게 작용하길.
그 후 학원 수업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밤 10시다.
내가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너무 늦게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학교 수업만으로 따라잡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인정하기로 했다.
다크 스톤 판 돈으로 학원 수강료도 충분하니 시간만 내면 됐다.
“다녀왔……습니다.”
거실에 있던 엄마가 검지를 입술에 대 보여서 목소리를 줄였다. 나는 숨죽인 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주무셔?”
“응. 조금 전에 들어와서 바로 주무신다. 오전에 또 나가셔야 해서.”
빨리 목돈을 마련해서, 아버지가 차폐벽 관리 일을 그만하셨으면 좋겠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말씀드리고 싶지만, 아무 대안도 없이 무작정 그런다고 들으실 분이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가족의 생활과 생계에 관련된 문제에는 절대 타협을 안 하시니.
나는 마침내 마음을 굳혔다.
인영 씨 얘기하면서, 이번 주말에 다크 스톤을 많이 팔겠다고 미리 말해야겠다.
김용화 대표의 자금 여력이 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부모님께는 복권에 당첨됐다고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나…….
옷을 갈아입은 뒤 씻고 들어가려 하는데, 엄마가 소파에서 뭔가 우물쭈물하신다.
“엄마, 뭐 하실 말씀 있어?”
“그게…….”
엄마는 그러고도 조금 머뭇거리다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원래 이런 건 네 아버지와 상의할 문제인데, 요즘은 들어오면 쓰러지듯 주무시기에 바쁘니……. 차마 깨울 수가 없네. 마찬가지로 아침에는 연신 하품하면서 후다닥 나가니 참…….”
“괜찮아. 저한테 얘기하세요.”
돈 얘기인가?
아니면 내 진로 문제?
이어진 엄마의 말은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이다.
“아무래도…… 정아한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갑자기 정아가?
정아는 네 살 터울인 여동생이다.
내게 좀 건방지게 굴긴 하지만, 그거야 오빠와 여동생 사이가 다 그런 거고.
내 기억에는 착하고 똑똑해서 부모님 속 한 번 썩인 적 없는 아이였다.
그런 정아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걸까?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진 엄마의 얘기를 듣고.
“누구한테…… 맞은 것 같더라. 내가 달래도 보고 화도 내 봤는데 절대로 말을 안 해. 계속 그냥 계단에서 구른 거라고만 하고.”
하마터면 폭발할 뻔했다.
오늘 무슨 날인가?
난 원래 화를 잘 내지 않는다.
정확히는 화내는 방법을 모른다.
이전 삶에서, 감히 내가 화를 낼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날 화나게 한 상대를 응징할 능력이 있다.
양정고나 편의점에서 그랬듯이.
“엄마가 보시기에 맞은 게 확실해? 혹시 진짜 부딪쳤거나, 학교에서 체벌 당했거나 그런 건 아니고?”
난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았다.
화가 나니까 내 목소리가 더 낮아지고 조용해진다는 것이다.
“난, 분명 맞았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절대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성품이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확실하다.
“고3이라 가뜩이나 정신없을 텐데 미안하구나. 아마, 정아 걔 성격에 우리 걱정 안 시키려고 그러는 것 같은데……. 혹시 너한테라면 좀 털어놓지 않을까 해서.”
엄마는 내가 공부 외의 일에 신경 쓰지 않게 하려고 늘 조심했다.
원래도 좀 그런 편이었지만, 고3이 된 뒤부터는 정아가 불평할 정도로 더 심해졌다.
그런 분이 오죽하면…….
딸이 너무나 걱정되는데 의논할 상대는 마땅치 않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게 말씀하셨으리라.
“걱정 마세요. 잘 얘기해 볼게.”
“화내지 말고.”
“정아한테 화낼 게 뭐 있어.”
“그래……. 아직 안 자는 것 같더라.”
나는 정아의 방 앞에 가서 심호흡하고 문을 두드렸다.
“나 자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기운이 없어서 속상하다.
“자는데 어떻게 대답하냐?”
“뭐야. 오빠냐? 왜?”
“나랑 얘기 좀 하자.”
“할 얘기 없는데.”
“내가 있어. 들어간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들어가서 불을 켜자, 침대에 누워 있던 정아가 일어나 앉았다.
“아, 뭐야. 여자 방에 막 들어오고.”
“여자는 개뿔.”
내 눈은, 앉으면서 잠옷 바지가 딸려 올라가 드러난 정아 종아리의 시퍼런 멍을 놓치지 않았다.
일부러 눈에 안 띄고 급소가 아닌 부위를 때린 건가?
시선을 눈치챈 정아가 얼른 이불을 당겨 와 다리를 덮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팔뚝의 멍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야?”
“……뭐가.”
“괜찮으니까 말해봐. 엄마 아빠 걱정 안 하시게 오빠가 해결할게.”
“…….”
“어떤 새끼가 때렸어?”
침묵하던 정아는, 갑자기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 눈물에 억장이 무너졌다.
“오빠아…….”
똑 부러진다고 해 봐야 15살짜리 여자애다.
한번 울기 시작하자 둑이 터진 것처럼 눈물이 흘러나왔다.
이제까지 쌓인 두려움과 서러움이 다 터져 나와서일 게다.
한동안 울던 정아가 띄엄띄엄 털어놓기 시작했다.
“돈을…… 못 내서…….”
“무슨 돈?”
“언니들한테…… 상납금…….”
이어진 얘기는 기가 막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