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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 7부 : 내 사람들을 모으다 (6) (54/303)


054. 7부 : 내 사람들을 모으다 (6)
2022.10.24.


남산타워가 폐쇄되면서 타워를 오가던 마을버스 운행도 당연히 멈췄다.

남산자락에 들어서자마자 인적이 싹 사라졌다.

우리는 걸어서 타워 앞까지 올라갔다. 제법 긴 오르막이라 보통 2~30분은 걸리는 거리지만 5분도 안 되어 주파했다.

각성 전이라 해도 정제된 마력이 쌓이면서 체력이 좋아진 까닭도 있고, 차윤성의 스킬이 위력을 발휘한 덕이기도 했다.

힘과 속도 강화가 걸리자 원래보다 세 배는 빨라졌다.

거기에, 타워 입구 근처에서는 피로회복 스킬까지 걸어주었다.

은은한 파란 빛이 일렁이나 했더니, 올라오느라 쌓인 피로가 바로 해소된다.

김태훈이 감탄하며 말했다.

“이야, 이거 대박이네. 이래서 힐러, 힐러 하는구나. 너도 꼭 우리 학교 와라.”

자신도 신기해하던 차윤성이 답했다.

“나는 대학 안 갈 거야.”

“응? 왜?”

“각성도 했으니 빨리 기사 되어서 돈 벌려고.”

“하긴,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그게 나을 수도 있지. 세상이 개판 나도 돈은 여전히 먹히니.”

아마 윤성은 돈 욕심에 그러는 게 아니라, 어머니의 병원비를 생각하는 것이리라.

“쉿.”

나는 입술에 검지를 대고 신호했다.

출입 금지 팻말을 세워둔 입구 근처에 하릴없이 앉아 있는 경찰이 보인다.

“어차피 들어가려는 사람도 없을 텐데 왜 굳이 지키고 있지?”

숨죽인 조설아의 말에 윤성이 대꾸했다.

“우리 같은 사람도 있잖아.”

“어, 그러네.”

김태훈이 둘에게 설명해주었다.

“다크 스톤이랑 아이템으로 한몫 잡으려는 놈들이 저기에 들어갔다가 여럿 죽어 나와서 경찰이 배치된 거야. 뉴스에는 보도되지 않았지만. 그랬다가는 오히려 부추기기에 십상이니까.”

“헐…….”

“물론 우리는 다르지. 걔들은 일반인이 무기만 믿고 들어간 거고, 우리는 기사까지 포함된 실력자 파티잖아?”

말하던 그의 시선이 내게 향하더니 찡긋 윙크했다.

“어마어마한 아이템을 여러 개 가진 갑부 파티원도 있고 말이야.”

……윽, 소름.

살육 전문 싸패는 왜 빼냐?

어쨌든 들어가려면 경찰을 해결해야 할 텐데.

문제는 예상외로 쉽게 해결됐다.

시계를 힐끗 본 경찰이, 차를 타고 어딘가로 내려가 버렸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후 한 시다.

우리는 조금 허탈하게 말했다.

“점심시간이네.”

“그렇지, 밥은 먹고 일해야지.”

식사하러 갔다면 앞으로 한 시간 정도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차가 완전히 사라진 뒤, 우리는 타워 문 앞으로 다가갔다. 당연하지만 입구는 안에서 잠겨 있었다.

“부술까?”

“그랬다간 경찰이 밥 먹고 와서 눈치챌 거야, 형. 인베이더가 밖으로 나올 우려도 있고.”

“그러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나섰다.

“비켜봐.”

“어쩌려고?”

“스킬 쓰려고.”

“뭐야, 너 기사 아니라며.”

“기사 라이센스가 없는 거지.”

김태훈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무허가 기사였어?”

이제껏 아이템 소환 외에 스킬을 제대로 보여준 적은 없다. 윤성이와 설아에게도 마찬가지다.

일행은 기대에 차서 나를 지켜보았다.

그래, 어차피 언젠가는 스킬을 써야 할 텐데. 이 기회에 드러내는 게 낫지.

그러면 내가 더더욱 기사로 보일 테고.

그런데 유리로 막힌 공간 건너편으로도 블링크로 이동할 수 있나?

일단, 게임에서는 되었다.

눈에 보이는 장소이긴 하니까.

블링크!

슉!

괜히 망신당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가뿐하게 성공했다. 타워 내부가 휙 가까워진다 싶더니, 나는 이미 안에 들어와 있었다.

문을 열어 일행을 들어오게 한 뒤, 안에서 다시 잠갔다.

세 사람 모두 블링크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차윤성과 조설아는 숭배에 가까운 눈길을 보냈다.

“와……. 역시 갓정우.”

“대박이네. 그건 무슨 스킬이야?”

“블링크라는 이동 스킬.”

“쩐다…….”

“자, 올라가기 전에 아이템 받고.”

나는 이전처럼 차윤성에게 발뭉을, 조설아에게는 스트랭글을 다시 빌려주었다.

이미 거인의 벨트와 뱀파이어릭 목걸이 같은 평소의 아이템은 다 장착한 상태.

힐러가 있다곤 해도, 괜히 아이템 아끼다가 애들 다치면 더 손해다.

가만히 보던 김태훈이 부러운 듯 말했다.

“와, 이 녀석 진짜 갑부였네. 난 뭐 없냐?”

그 눈이 꼭 간식 기다리는 대형견 같다.

사실은 미친개임을 알면서도 마음이 조금 약해진다.

……뭐, 어차피 썩어나는 레어 아이템 하나 정도는 상관없겠지.

딜러인 김태훈이 잘 싸워주면 공략이 쉬워지는 건 사실이니까.

“자.”

김태훈에게는 경량 가슴 갑옷 하나를 줬다.

겉보기에는 솜씨 좋은 장인이 만든 갑옷 같은 느낌이다.

방어력을 상당히 높여주면서 무게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팔면 수천만 원은 할 물건이다.

갑옷을 잠시 살펴본 김태훈이 투덜거렸다.

“내 건 왜 이렇게 투박해? 빛도 별로 안 나고.”

“그냥 입어, 형.”

“쳇.”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주섬주섬 옷 위에 받쳐 입는다.

마지막으로 차윤성이 모두에게 버프를 걸어주었다.

힘과 속도 강화!

방어력 강화!

“윤성아. 이거 유지 시간은 얼마나 되는 거야?”

내 물음에 윤성이 답했다.

“15분. 시간 다 되면 또 걸어줄게.”

“좋았어. 자, 자. 얼른 올라가자.”

우리 계획은 간단했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면서 눈에 띄는 인베이더를 모조리 잡고 내려오는 거다.

우리도 타워 내부 상태를 잘 모르기에, 애초에 정확한 계획을 세우기 어려웠다. 어떤 상황이라도 대응할 만한 역할을 정했을 뿐.

레스토랑이 여러 개 위치한 타워 2층은 텅 비었다.

어지러이 넘어진 의자와 테이블, 흉하게 깨진 유리창 등이 사람들이 다급히 나갔음을 짐작하게 했다.

몰래 들어와서 사냥하려다가 낭패 봤다는 무리의 짓인지도 모르지. 그러고 보니 군데군데 핏자국도 보인다.

조설아가 차윤성의 옷소매를 꼭 잡고 속삭였다.

“무서워…….”

“무섭긴 뭐가. 인베이더들이 너 만나면 더 무서워할걸?”

“이씨…….”

그러다 3층에서 드디어 인베이더가 나타났다.

크르르르르!

김태훈이 휘파람을 불었다.

“곰이네. 빨간 곰.”

블러디 베어. 피비린내 나는 곰.

그의 말대로 곰을 똑 닮은 인베이더다.

일어선 높이는 2.5미터가량.

움직임은 좀 느리지만 엄청난 파워를 가진 B급 인베이더다.

벌써 B급이 나타나다니, 역시 타워에 들어온 보람이 있구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크르르르 -

크으으으으!

그 뒤로 외뿔 고양이 여러 마리와 세눈박이 늑대는 물론, 고슴도치 박쥐까지 나타났다.

김태훈이 혀를 찼다.

“쯧, 아주 동물원을 차렸네.”

인베이더는 위험도에 따라 등급으로 나누기도 하고, 편의상 형상에 따라 나누기도 한다.

야수형, 인간형처럼.

그 밖에도 식물형, 비정형, 나중에는 기계형까지 나온다.

고슴도치 박쥐는 이름 그대로 박쥐의 몸통에 고슴도치 같은 가시가 촘촘하게 돋은 놈이다.

가시 돋은 몸통 자체가 무기라, 불규칙하게 날아다니다가 그대로 온몸을 부딪쳐 온다.

가시에는 독이 있어서, 보통 사람이 찔리면 몇 시간 내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나는 이런 인베이더들의 특성을 재빨리 읊어주었다.

“하여간 신기한 녀석이라니까. 그런 건 또 어떻게 다 아는 거야?”

캬아아아!

김태훈은 덮쳐오는 외뿔 고양이 한 마리를, 목검 소울 블레이드로 가볍게 베어 해치웠다.

그게 신호인 양, 야수형 인베이더들이 우르르 공격해왔다.

나는 맨 앞으로 나서면서 외쳤다.

“윤성이와 설아는 등을 맞대듯이 하고 서로 지켜주면서 싸워. 무리하지 말고!”

두 사람이 긴장한 기색으로 동시에 답했다.

“알았어!”

쾅!

말을 마치자마자, 고슴도치 박쥐가 맹렬히 회전하며 날아와 내게 충돌했다.

머리가 확 젖혀질 정도로 강한 돌격.

김태훈이 움찔 놀랐다.

“어, 야. 말하자마자 네가 처맞으면 어떡해.”

“나는 괜찮으니까.”

뒤로 젖혀졌던 고개를 세우고.

“형은 신경 쓰지 마.”

소환한 광창(光槍), 레이 드라이브로 박쥐를 꿰뚫었다.

창날이 빛으로 이뤄진 에픽 등급의 단창이다.

마음 같아서는 발키리의 창을 쓰고 싶었다. 그게 더 효율이 좋다.

혼돈 악 성향의 김태훈에게는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커서 어쩔 수 없이 레이 드라이브를 골랐다.

팍!

고슴도치 박쥐는 그대로 재가 되어 흩어졌다.

그 아래로 구슬 같은 다크 스톤이 후둑 떨어진다.

등급이 제법 되어서 그런지 작은 것들로 서너 개 배출했다.

“크하하하! 괴물 같은 새끼.”

김태훈은 광소를 터뜨리며 인베이더를 닥치는 대로 베어 넘겼다.

정면으로 뛰어오른 외뿔 고양이를 대각선으로 일도양단한 직후.

목검을 빙글 돌려, 다리를 물려고 달려드는 세눈박이 늑대의 목을 내리찍는다.

연이어, 목검을 재차 위로 쳐올리면서 고슴도치 박쥐를 밑에서부터 베어버린다.

이 삼연격이 눈 깜빡할 사이에 이뤄졌다. 누가 괴물인지.

스킬도 아닌데 스킬 같다. 확실히 난 놈은 난 놈이다.

아무리 마신이 빙의되어 있고 그 마신의 무기를 쓰고 있다고 해도.

각성조차 안 한 마력지체가 저 정도로 강하다니.

그리고 뭐랄까…….

“이히힛. 더, 더 와라. 다 덤벼!”

뭔가의 목숨을 빼앗을 때 더욱 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저 살기가 인간에게로 향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질 수 없지.

나도 김태훈의 약간 뒤편에 서서, 레이 드라이브를 닥치는 대로 찌르고 휘둘렀다.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위에 잡템과 다크 스톤이 순식간에 쌓였다.

뒤에서 따라오는 형국인 조설아와 차윤성이 얼른 그것들을 챙겼다.

부산물은 똑같이 나누기로 협의한 상황.

나는 굳이 안 받아도 되지만, 호의가 둘리 되는 경우를 많이 봤기에 그냥 받기로 했다.

김태훈은 점점 더 흥이 올랐다.

“크크, 김태훈 식 십자 베기!”

놀고 있네. 스킬은 확실히 아니다.

한 번에 베어도 되는 걸 굳이 두 번 베면서 힘을 뺀다.

저게 먹힌다는 게 더 문제지만.

촤악!

세눈박이 늑대 한 마리의 머리가 십자로 쪼개졌다.

거의 동시에, 나도 마지막 고슴도치 박쥐를 잡았다.

피비린내 곰의 친위대 격인 인베이더는 그걸로 끝났다.

크오오오!

분노한 듯 포효한 피비린내 곰이 김태훈을 향해 돌진해왔다.

약간의 지성이 있어서, 일부러 계단에서 우리를 상대한 모양인데.

그게 오히려 놈에게는 악수가 되었다.

졸개들이 다 죽을 때까지 피비린내 곰 자신이 나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역시 짐승은 짐승이다.

그나저나, 성난 피비린내 곰의 공격은 딜러인 김태훈이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탱커 역할인 내가 감당해야지.

“형, 비켜!”

나는 블링크를 발동하여 김태훈의 앞을 가로막았다.

쾅!

직후, 일어선 자세인 피비린내 곰의 강렬한 앞발 내려치기가 내 어깨에 작렬했다.

“큭!”

고통 때문이 아니라 압박감에 낮은 신음이 나왔다.

다리가 절로 꺾이며, 내가 딛고 선 계단이 부서질 정도의 위력.

대신, 피비린내 곰은 앞발을 든 자세 그대로 빈틈을 드러냈다.

전투에 천부적인 센스가 있는 김태훈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푸확!

기이한 자세로 찌른 소울 블레이드가 피비린내 곰의 오른쪽 겨드랑이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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