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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게이머는 파멸을 거부한다-94화 (94/303)

9부 : 대폭주 대비 시작 (12)

위잉 -

우리를 감지한 전차 형태의 강철 슬라임이 포신을 움직였다.

쾅!

직후, 굉음과 함께 놀랍게도 포탄이 발사되었다.

뭐라 말할 틈도 없이, 내가 맨 앞으로 나서서 몸으로 포탄을 받아냈다.

쩡!

육중한 소리가 울렸지만 나는 아무 타격도 입지 않았다.

패시브 스킬 금강불괴에 의해 마력이 10 소모되었을 뿐이다.

그나마도 멀린의 반지 덕에 눈 깜빡할 사이에 차올랐다.

무르도 여전히 내 어깨에 앉은 채 태연했다.

-흥, 타격감 1도 없구만.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요?’

-애송이 네가 생각하잖느냐. 나한테 욕먹을 때마다.

서지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정우야!”

“아, 난 괜찮아.”

“저게 감히…….”

지수의 눈빛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그녀는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뛰어들어, ‘티르의 왼손 장갑’을 착용한 왼손으로 전차를 후려쳤다.

쩡!

전차 표면이 출렁 흔들렸다. 건틀릿에 붙은 방어력 무시 옵션에 의해, 내부에 있는 슬라임의 핵을 건드린 것이다.

부르르 떨던 강철 슬라임이, 형태를 가시 고슴도치처럼 변화시켰다.

“앗!”

갑자기 튀어나온 무수한 가시에 지수가 찔렸다.

다행히 뒤로 튕겨 나와 넘어졌을 뿐, 갑옷 덕에 상처는 입지 않았다. 나는 재빨리 지수를 부축했다.

“괜찮아?”

“응.”

지수는 민망한 듯 벌떡 일어섰다.

미리 갑옷 입혀두길 잘했다. 가시의 날카로움과 길이로 보아, 보통 사람이었다면 벌집이 됐을 것이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네, 저거.’

그때, 가만히 주시하던 김태훈이 나섰다.

“거기, 서번트 씨. 아까처럼 저거 한 번만 더 쳐줄 수 있어?”

“넵.”

탱크 모습으로 되돌아간 강철 슬라임은 타격 입은 핵을 안정화하는 중인지, 조금씩 부풀었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다.

한 걸음 나서는 지수에게, 나도 모르게 걱정스럽게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응, 괜찮아.”

무르가 그런 나를 놀려댔다.

-과보호하는 걸 보니, 이제야 좀 교미하고 싶은 마음이 든 모양이지?

‘헛소리는 사양할게요.’

-타격감 있느냐?

‘아오.’

그때, 김태훈이 비꼬는 듯한 투로 말했다.

“서번트는 기사의 전투를 돕는 게 목적이라며? 그리고 저 친구는 날 보호하라는 임무를 받았고. 이래서야 누가 누구를 보호하는지 모르겠는데?”

저건 왜 시비야.

날 놀리던 무르는 대번에 태세를 전환하여 김태훈에게 하악댔다.

-저 암컷은 내 계약자의 교미 대상이다. 간섭하지 마라, 새 새끼 주제에!

“거봐. 까망이도 내 말이 옳다고 하네?”

-저 미친!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지수가 살짝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정우야, 내가 알아서 해볼게. 이제 돈 받고 일하는 거니까.”

“음, 그래.”

티르의 왼손 장갑까지 줬으니 뭐 괜찮겠지. 여차하면 누가 뭐라든 내가 나서면 되고.

심호흡한 지수는 강철 슬라임을 향해 쏘아져 나가며, 먼저 오른쪽 주먹을 가볍게 뻗었다.

툭!

오른쪽 잽에 맞은 강철 슬라임이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촤악!

동체가 출렁하더니 또 아까와 같은 강철 가시가 성게처럼 튀어나왔다.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다가 무심결에 움찔했다.

그러나 지수는 이미 그 패턴을 파악한 뒤였다.

그냥 아는 수준이 아니라, 가시가 튀어나왔다가 들어가는 속도까지.

가시가 들어가는 움직임에 맞춰, 지수는 짧은 숨을 내뱉으며 뒤로 당겼던 왼손을 힘차게 내뻗었다.

“츳!”

콰앙!

강렬한 충격에, 강철 슬라임은 출렁거리는 정도로 견뎌내지 못했다.

전신의 점액이 순간적으로 튕겨 나가, 가운데 자리한 핵이 모습을 드러냈다.

핵은 탁구공 크기의 흑진주처럼 생겼다. 검고 반들반들하며 윤이 났다.

흥미진진하게 관람하던 무르가 평했다.

-참, 언제 봐도 타격은 일품이구나.

핵이 드러나는 시간은 몇 초에 불과했으나.

“그렇지!”

김태훈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제 말로만 ‘음속 찌르기’가 아니라, 강력해진 소울 블레이드 덕에 정말 음속처럼 보이는 찌르기가 핵에 작렬했다.

콰지직!

핵이 단숨에 깨지고 강철 슬라임은 물처럼 녹아 흘러내렸다.

김태훈은 비로소 흡족한 기색이 되었다.

“바로 그렇게 하는 거야. 서번트 씨.”

“네…….”

지수의 주먹을 높게 쳐준 무르는, 김태훈의 찌르기는 사정없이 평가절하했다.

-흥, 운 좋게 맞힌 주제에 거들먹거리기는.

……도대체 무르와 할파스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마음 같아서는 다른 마신을 소환해서 물어보고 싶다.

대신, 김태훈이 내게 물었다.

“나 각성하는 게 목적이니까, 기여도 내가 먹어도 불만 없지?”

“어, 뭐.”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냐?”

“내 표정이 어떤데.”

“누가 커피 마시고 담배 피운 다음 얼굴에다 입김 내뿜은 표정.”

“잘 아네. 지금 내 기분이 그래.”

“왜?”

진심으로 의아해하는 김태훈의 얼굴을 보는데, 익숙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스트레스 수치가 10 증가했습니다.> -현재 수치 : 40

하하. 오랜만이네, 스트레스.

수양한 덕에 한동안 잠잠했는데.

무르의 짜증에 더해, 김태훈의 뻔뻔함까지 더해진 결과다.

나는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기분을 참으며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형,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우리는 형의 전속 파티원이나 직원 같은 게 아냐. 그냥 호의에서 형이 기사가 될 수 있게 도와주는 거라고. 그것도 무상으로.”

나는 ‘무상’이란 단어에 힘을 줬다.

형이라고 불러주는 것만도 고마운 줄 알아라, 인마.

“그런데?”

“그러니까 내 소중한 직원한테 이래라저래라하지 말란 말이지. 고맙다는 말은 못 할망정.”

이어진 김태훈의 반문에, 나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정우 너는 내가 각성하도록 왜 도와주는데?”

“응?”

“왜 도와주느냐고. 내 힘이 필요해서 그런 거 아니야?”

“그건…….”

나는 대폭주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가장 믿는 두 사람에게만 했다.

그래도 역시 김태훈은 뭔가 느낀 모양이다. 예리한 녀석.

내가 살짝 당황하자 무르가 길길이 뛴다.

-저, 저 뻔뻔한 것!

서지수가 나서서 말했다.

“나 진짜 괜찮아. 그 뒤에 내가 좀 알아봤는데, 기사들은 대부분 상대하기에 몹시 까다롭다고 들었어. 이쪽 일 계속하려면 차라리 태훈 오빠처럼, 필요한 것만 딱 시키는 사람이 나을 것 같아.”

“호오.”

김태훈이 제법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도 어쩐지 서운하면서도 감개무량했다.

양아치 무리랑 얽혀 일진 짓 하면서 중학생들 삥 뜯기나 하던 녀석이.

어엿이 한 사람 몫을 하는 어른이 된 기분이랄까.

어쩌면 그날 신촌파에게 납치당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무도한 패거리와 어울렸는지, 그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깨달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훅 철들었네?”

내 말에 서지수는 겸연쩍게 웃기만 했다.

*

서지수는 이정우의 옆얼굴을 훔쳐보면서 생각했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다르게 살기로 한 거야.’

처음에는 솔직히 무섭고 싫었다.

괴상한 가면을 쓰고, 자신들 삼인방을 순식간에 제압했으니까.

하필 애들 돈을 빼앗던 중이라 더 부끄럽기도 했다. 치부를 보인 기분이었다.

‘나도 잘 알고 있었어. 그게 얼마나 한심한 짓인지.’

당시 서지수와 친구들은 엉망진창이었다.

서지수는 아직 겨우 19세지만 나름대로 평생을 바쳤던 복싱을 못 하게 됐다.

친구에게 집요하게 추근대는 놈을 몇 대 쳤다는 이유였다.

물론, 상대의 이가 부러지는 등 예상보다 좀 심하게 다치긴 했다.

‘그놈은 그렇게 당해도 쌌어.’

아무튼,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탓에 목표를 잃고 비뚤어져 버렸다.

이춘옥은 대회에서 상대의 반칙으로 중상을 입었음에도, 그쪽 감독이 거대 유도 파벌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실격패 당하고 은퇴했다.

박선희는 끈기 없는 성격과 혹독한 훈련 그리고 코치의 성희롱 탓에, 재능이 있었음에도 육상을 포기했다.

처지가 비슷한 친구들과 모여 그때까지 못 해본 일탈을 감행했다.

처음에는 등교를 거부하고, 클럽에서 남자애들과 어울려 놀고 술을 마시는 정도였다.

그러다 어느새 정신 차려 보니, 폭력 조직에 협박당해 돈을 상납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저 클럽에서 만난, 잘나가는 오빠들인 줄 알았던 이들은 폭력 조직의 일원이었다.

‘옆 학교 중학생들의 돈을 빼앗으라고 알려준 것도 그들이었지.’

그렇다고 책임을 전가할 생각은 없다. 어쨌거나 선택은 자신들이 했으니까.

죽을힘을 다해 저항하지도,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았다.

즐기기까지 한 것은 아니지만, 놈들이 가족과 친구를 인질로 협박한 탓도 있어서 반쯤은 자포자기했던 것 같다.

어차피 몰락해가는 세계에 망한 인생,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그런 나를 네가 강제로 끄집어내 줬어.’

세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상대였던 홍대파를, 우스울 정도로 쉽게 깨부수는 이정우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그 뒤에 이어진 행동은 더더욱.

‘때리거나 손해 배상을 요구하지도, 협박하지도 않고 진심 어린 사과만으로 용서해주다니.’

그래서 퇴학당했음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홍대파가 물러난 사이, 신촌파가 고백을 빌미로 들러붙었을 때도 거절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이전이었다면 두려워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그 고백이 진짜 좋아해서가 아니란 것쯤은 처음부터 알았다.

그저 홍대파에게 바치던 상납금을 자기들이 받고 싶었을 뿐이다.

‘나 같은 걸 좋아할 남자가 있을 리 없지.’

그 증거로, 고백을 거절하자마자 고백남이 한 행동이 납치였다.

‘정우는 그때도 도우러 와줬어.’

천천히 나락을 향해 가던 자신의 인생을 구해준 데다, 몰랐던 재능까지 일깨워줬다.

서번트라는 직업.

처음에는 그것 때문에 가깝게 굴었나 싶어서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리 알았을 방도가 없을뿐더러, 검색해 볼수록 나쁘지 않은 일 같았다.

그래서 서지수는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누구의 파트너가 되더라도 이정우가 실망하거나 욕먹을 일 없도록.

그가 언젠가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도록.

“갑자기 훅 철들었네?”

이정우의 놀림에, 지수는 그런 감정을 감추고 웃었다.

“히힛.”

*

김태훈과 서지수의 호흡은 사냥을 진행할수록 점점 찰떡이 되었다.

방식은 비슷했다. 서지수가 주먹으로 강철 슬라임의 조직을 뒤흔들면, 찰나의 순간 드러난 핵을 김태훈이 파괴했다.

‘이거, 내가 끼어들 틈도 없네.’

역시 내 눈은 정확했다.

지수가 마력지체였다면 뛰어난 기사로 성장했을 것이다.

그렇게 서번트 서지수의 도움으로, 김태훈이 각성 기여도를 빠르게 쌓아나가길 한 시간여.

마침내 공간이 열리며 필드 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바뀌며 무지갯빛으로 번쩍이는 거대한 슬라임이었다. 머리에는 작은 금색 왕관까지 달려 있다.

덩치가 크긴 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김태훈도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다소 맥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뭐야, 이게?”

그러나 무르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여전히 내 어깨에 머물렀으나, 일어서서 꼬리를 탁탁 내리치기 시작했다.

-조심해라, 애송아. 만만치 않은 놈이구나.

진실의 눈으로 무지갯빛 슬라임을 확인하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레벨 80 킹 오리칼쿰 슬라임]

-성향 : 혼돈 중립

-클래스 : 군주

-등급 : 마 자작

-칭호 : 파괴되지 않는 존재

-스테이터스

출력 : 370,000 ADE

힘 : 720

속도 : 320

지능 : 400

행운 : 7

생명력 : 7200

마력 : 4000

지구력 : 2080

-스킬

물리 충격 흡수 (패시브)

마법 충격 흡수 (패시브)

중독 면역 (패시브)

짓누르기

회전하기

변신하기

전설의 금속 오리칼쿰으로 이뤄진, 슬라임의 왕입니다. 어지간한 충격이나 마법으로는 타격을 입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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