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9부 : 대폭주 대비 시작 (21)
내 요청에 사무소장의 동공이 흔들렸다.
“……응? 네?”
한눈에도 앳되어 보이니, 이게 진심인지 장난치는 것인지 헷갈리는 모양이다.
정기석 경위가 나서서 나를 거들었다.
“구매는 우리 명의로 하지만 실소유주는 이분이 될 겁니다. 원하시는 대로 매물 찾아주시면 됩니다.”
“아…….”
연륜 있는 사무소장은 그만큼 눈치도 빠른 듯했다.
정기석, 강은빈 경위의 언행이 내게 깍듯한 데다, 실소유주라고 하니 더는 군말 없이 매물을 보여주었다.
수경총을 뒷배로 둔 금수저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
“마침, 적당한 물건이 몇 개 나왔어요.”
이 시기에는 차원문 발생에 이은 빅뱅과 인베이더 출몰로 인해 망한 기업이 상당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은 부동산을 내놓고 집을 줄였다.
사무소장은 모니터를 돌려 우리가 보기 좋게 해주었다.
나는 차례로 살펴본 다음, 그 가운데 하나를 골랐다.
“이게 좋겠네요.”
“어머, 젊은 사장님이 안목도 탁월하시네요!”
내가 선택한 집은 고급 빌라로, 우리 집에서 적당히 가까우면서 가장 보안에 신경 쓴 곳이다.
직접 가서 더 봐야겠으나, 사진으로 보기에도 육중한 외관도 그렇고 자재나 평면도를 봐도 그렇고.
확실히 외부인의 침입이 쉽지 않아 보인다.
상대가 기사가 아닌 이상, 이 정도만으로도 꽤 효과가 있으리라.
거기에 상주까지는 아니라도, 수경총 소속의 기사 둘이 함께 산다면?
‘감히 그런 집을 건드렸다가는 수경총은 물론, 대한민국 경찰 조직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된다.’
암살자를 고용한 게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함부로 나대진 못하겠지.
집 밖이나 이동 간에는, 이미 확인한 대로 철순이가 지수를 제대로 호위해줄 것이다.
강은빈 경위가 목소리를 낮추고 내 귓가에 조심스레 물었다.
“기사님. 그런데 빌라는 나중에 팔기 어려울 텐데. 괜찮겠습니까?”
“괜찮아요. 다들 당분간 거기서 살게 할 거고, 나중에 비더라도 직원 숙소로 쓰면 되니까요.”
“아, 그러시다면.”
사무소장이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 그런데 가격이…….”
방 여섯 개, 화장실 세 개에 총 120평인 빌라의 가격은 32억.
두 경위는 가격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어휴……. 어마어마하네.”
“그러게.”
사신 기사단원 정도 되면 몰라도, 수경총 소속 기사의 월급과 보너스로는 사기 어려운 집이다.
하지만 내게는 별것 아닌 금액.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일단 직접 보고 나서 괜찮으면 계좌 이체할게요.”
“아, 네! 그럼 같이 가시죠.”
우리는 차 두 대에 나눠 타고 다 같이 빌라로 이동했다.
실제로 본 집은 더 마음에 들었다. 마침 비어 있어서 내일이라도 바로 입주 가능했다.
“집 주인분은 다른 데 거주하셔서, 제가 대행을 맡고 있어요.”
“그렇군요. 계약하겠습니다.”
나는 다시 사무소로 돌아와 경위들 명의로 계약서를 작성한 다음, 그 자리에서 대금 전부를 이체했다.
물론 수수료도 바로 치렀기에, 공인중개사는 입이 귀에 걸렸다.
“통도 크셔라. 감사합니다!”
“드릴 돈 드리는 건데요, 뭐.”
감히 수경총 소속의, 그것도 기사를 상대로 사기 칠 사람은 적어도 한국에는 없다.
이렇게 해서 불과 두세 시간 만에 집 한 채를 뚝딱 사들여버렸다.
스마트키를 바로 넘겨준 공인중개사는 희희낙락하며 돌아갔다.
“경위님들은 시간 되는 대로 입주하세요. 빠를수록 좋겠지만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겠습니다.”
“지수랑 춘옥이, 선희, 철순이. 넷은 오늘 밤부터 여기에서 지내.”
지수 일행이 화들짝 놀랐다.
“뭐? 정말?”
“그래. 집이 무너져서 당장 갈 곳도 없잖아.”
“하, 하지만 이렇게 좋은 집에서 어떻게…….”
나는 머뭇거리는 지수에게 힘주어 말했다.
“넌 내가 고용한 직원이잖아. 도울 의무가 있다고. 어차피 나중에 나와 계약한 기사나 내가 고용한 직원들에게는 숙소를 제공하려고 했어. 그게 좀 빨라진 것뿐이다.”
“고마워……. 일 열심히 할게!”
지수의 눈가가 살짝 촉촉해졌다. 춘옥이와 선희는 신나서 들썩거렸다.
“집 구경해도 돼……요?”
“당연하지. 이제 너희가 살 집인데.”
“아싸!”
“대박!”
철순이는 지수에게 빈틈없이 붙어 있었고, 두 사람은 방과 화장실을 모두 들여다보고 다녔다.
빈집이지만 고급 소파와 식탁 등 기본적인 가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에어컨에 식기세척기, 세탁기까지 있어서 텔레비전 정도만 사면 될 듯하다.
정기석 경위가 얼떨떨한 기색으로 말했다.
“아니……. 솔직히 기사님께 보답한다는 심정으로 관사를 나오기로 했거든요. 관사가 공짜 치고는 시설이 정말 좋아서, 한번 나오면 다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러셨어요?”
“네. 특별히 경호할 대상도 있다고 하시니까, 명색이 경찰인데 모른 척할 수도 없고……. 그런데 이건 오히려 저희가 감사해야겠는데요?”
강은빈 경위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저 이런 집에서 처음 살아 봅니다!”
“하다못해 관리비와 공과금은 저희가 내겠습니다. 이정우 기사님.”
“어? 그럼 그러실래요? 보자, 여기가 평균적으로 월 150 정도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히끅!”
나는 웃음을 참으며 정기석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딸꾹질을……. 추우세요?”
“아니, 아닙니다. 저, 그게…….”
“하하, 신경 쓰지 마세요. 처음부터 제가 부담하겠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강은빈이 겸연쩍게 말했다.
“무슨 관리비가 어지간한 아파트 월세보다 더 나오네요.”
“뭐, 워낙 넓은데다가 보안 서비스도 제공하니까요.”
나는 소녀들을 두고, 두 경위와 함께 빌라를 나왔다. 셋이서 따로 할 얘기가 있어서다.
순찰차 앞좌석에 두 경위가 앉고, 나는 뒷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최대한 자세히, 모든 상황을 얘기했다.
내가 진실의 눈으로 암살자의 정체를 알아낸 정도만 제외하고.
폭발이 일어난 후 수상한 자가 현장을 확인하러 왔다가 나와 싸웠다는 것.
그가 내게 사로잡힐 지경이 되자, 누군가 저격하여 죽여버렸다는 것 등을 알려주었다.
“그런 뒤에 시신은 치워버린 것 같더군요. 혹시나 하고 류경재 총경님과 통화해 봤는데, 폭발 사고만 인지할 뿐 아무것도 모르시는 눈치였어요.”
마주 본 두 경위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동료를 죽여서 입 막을 정도면, 보통 독한 놈들이 아닌데?”
“그러게. 사제 폭탄 테러까지 했으니……. 그 자리에 이정우 기사님이 없었다면 대참사가 일어날 뻔했어.”
나는 두 사람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수사하시면서 가능한 선에서 꼭 배후를 캐주세요. 어떤 자들이, 왜 지수를 노리는지. 이대로라면 또 위험해질지도 모릅니다.”
“알겠습니다.”
“뭐든 알아내면 연락해 주세요.”
“네, 그러죠.”
진지한 얘기를 마치고, 정기석이 조금 질렸다는 듯 농담 섞인 어조로 말했다.
“아니, 기사님. 그런데 30억짜리 집을 떡하니 저희 공동명의로 구매하셨다가, 나중에 저희가 배 째라고 하면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상관없어요.”
“상관…… 없다고요?”
“네. 그랬다가는 두 분만 손해일 테니까요. 앞으로 그런 집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두 분께 혜택을 드릴 거거든요.”
정기석과 강은빈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강은빈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이정우 기사님. 저희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시는 겁니까?”
“네?”
“무력으로나 경제력으로나, 솔직히 기사님 개인의 능력만으로도 저희가 필요할 일은 거의 없잖아요. 이번 같은 특수한 경우만 빼면요.”
정기석이 그 말에 덧붙였다.
“이번 건도 류경재 총경님 통해서 바로 처리할 수도 있죠. 물론, 그분이 좀 고지식하긴 하지만.”
“음…….”
나는 잠깐 고민했다. 먼저 말해준 건 고마운데, 둘의 이런 반응이 내 예상보다 빨라졌다.
‘새로운 직업 특성 때문인가?’
내 원래 직업인 스캐빈저와 초월적인 매니저에 더해.
진짜 기사가 되면서 ‘초월적인 CEO’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나를 향한 기사들의 호감도는 10% 하락하지만, 대신 그 수치만큼의 카리스마가 올라간다.
카리스마라는 게 뭔지는 알겠는데, 명확하게 정의하기가 어려워서 찾아보니 이런 의미였다.
-절대적인 권위.
-대중을 따르게 하는 능력이나 자질.
내 경우, 이 카리스마 수치가 대중이 아닌 기사들에게로 향한다.
나를 접하면 할수록, 위압감과 충성심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이다.
‘거기다 10% 하락했다고 해도, 진실의 눈으로 본 두 사람의 호감도는 100%.’
호감과 존경심, 복종심을 동시에 느낀다. 한마디로 경애.
그 감정의 요동을 못 이기고 먼저 손을 내밀어 온 거다.
그렇기에 둘의 눈빛에 담긴 감정은, 의혹이나 경계라기보다 어떤 기대감에 가까웠다.
나는 말을 골라 가면서 신중하게 답했다.
“사실, 저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골라서 기사단이 아닌 새로운 조직을 만들려고 합니다. 아, 조직이라기보다는 회사에 가깝겠네요.”
언뜻 감이 안 오는지, 정기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회사…… 말입니까?”
“네. 기사분들에게 일한 만큼 대가를 주어, 강제가 아닌 진심이 우러나 인베이더와 싸울 수 있는 회사. 소속 기사는 오직 훈련과 전투에만 전념하며, 그 외의 모든 문제들 - 예를 들면 의식주, 세금, 기자 인터뷰 등을 모조리 처리해주는 회사. 혹시나 다쳤을 때는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치료 과정과 비용 일체를 부담하는, 그런 회사요.”
잠깐 말문이 막혔던 강은빈이 입을 열었다.
“정말 꿈같은 얘기인데, 실례지만 그렇게 해서 이정우 기사님이 얻는 게 뭡니까? 물론 기사 수익의 일정 부분을 당연히 받으셔야 하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돈은 충분하신 것 같은데요. 돈 때문에 하시려는 것 같지도 않고요.”
“제가 얻는 것은…….”
강은빈의 물음에, 나도 한 번 더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애초에 왜 기사 에이전시를 만들려고 한 것일까?
처음에는, 그냥 나와 윤성이, 설아가 자유롭게 활동하기 위해서였다. 수경총이나 사신 기사단에 얽매이지 않고.
하지만 내가 아는 미래의 정보까지 취합하여 틈틈이 생각하면 할수록.
뚜렷한 한 가지 목표가 떠올랐다.
기사들은 나와 함께 싸우면 자연히 원래보다 강해진다. 무려 1.5배나.
거기에 내가 가진 무한대에 가까운 다크 스톤과 고품질의 아이템을 활용할 수 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더 강해질 것이다.
그런 혜택을 얻으면서, 나를 배신하지 않을 이들만으로 주변을 채운다.
‘실제로 외국으로 스카우트 되어 떠나는 건 애교 수준이고, 암흑 기사 같은 존재들이 나타나서 더욱 세상이 개판이 됐지.’
내가 그 일에 성공한다면 -
‘암울하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대폭주로 인해 수십만 명이 죽고, 그런 뒤에는 언제 귀족급 인베이더가 나타날지 몰라 벌벌 떠는 미래를. 내가 소중한 이들을 모두 잃어버린 미래를.’
인베이더와 싸우다가 혹사당한 기사들은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하나둘 죽어 나갔다.
나를 구하려다 죽은 백은의 기사, 문정호처럼.
그럴수록 인류는 점점 궁지에 몰렸다. 나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