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10부 : 시험의 탑 등장 (2)
퓩! 퓨퓻!
작은 금속 구체 수십 개가 날아다니면서 맹독 말벌을 비롯한 인베이더를 격살하고 있다.
크기는 탁구공만 한데, 그 작은 기체에서 놀랍게도 노란 레이저 같은 빛줄기를 쏘아댔다. 거기에 맞은 맹독 말벌은 여지없이 구멍이 뚫려 추락했다.
구체는 간혹 맹독 말벌에게 붙잡혀 물어뜯기기도 했으나, 단단한 표면에 주둥이가 박히지 않았다. 무엇보다 독이 안 통한다.
그런 까닭에, 비행 능력 자체는 맹독 말벌이 우수한데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맹독 말벌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위협적이기 그지없던 중형 인베이더도 날아다니는 금속 구체에게 쓰러졌다.
금속 구체가 일제히 중형 인베이더에게 돌진하여, 몸통이며 머리를 그대로 관통해버린 것이다.
‘저게 뭐지? 드론?’
그 금속 비행체 일부는 모여 있는 생존자들 주변을 선회하면서 보호했다.
분명 의지가 있거나, 누군가의 의지로 움직인다는 뜻.
그게 다가 아니다. 생존자들의 머리 위에는 금속 비행체의 모선처럼 보이는, 흰색의 전함 같은 것이 표표히 떠 있었다.
길이는 대략 1.5미터 정도.
아래쪽은 격납고처럼 크게 열려 있었는데, 그 입구를 통해 금속 비행체 여러 대가 바삐 드나들었다.
그 모양새가 마치 한국인의 민속놀이인 모 게임의 유닛을 연상케 했다.
‘……캐리어?’
그때, 맹독 말벌 무리가 흰색 모선을 향해 몰려왔다.
놈들도 지능이 있는 만큼, 갑작스러운 적 출현의 원인이 모선임을 눈치챈 모양이다.
‘안 돼!’
여전히 내 스킬과 아이템 소환은 작동하지 않았다.
빠르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 보자, 그나마 능력치는 조금 돌아온 게 느껴진다. 저리던 부위에 천천히 피가 돌듯이.
‘……금강불괴 스킬 적용도 안 되는데 괜찮으려나.’
이게, 수트를 잃었던 강철 사내의 기분인가?
하지만 저 갑작스러운 아군이 사라지면 상황은 더 어려워진다.
지금 인베이더들의 주의는 모조리 비행 구체와 흰색 모선으로 쏠려 있다.
모선이 격추되기라도 하면 금속 구체도 위험해질 테고.
그러면 여유를 되찾은 인베이더들이 다시 나와 생존자들을 공격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여기서는 무조건 도와줘야지.’
내가 흰색 모선을 지원하러 뛰쳐나가려고 할 때였다.
팍! 퍼석!
흰색 모선을 향해 날아들던 맹독 말벌들이 갑자기 공중에서 터져버렸다.
흰색 모선이나 금속 구체가 딱히 방어한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나는 저것과 비슷한 현상을 이미 본 적이 있었다.
바로, 던전 안에서.
‘강은빈 경위의 저격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은빈 경위와 늘 함께 움직이는 정기석 경위의 음성이다.
곧, 근처에 금속 구체를 띄운 정기석 경위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저 드론 같은 것들과 캐리어가 정기석 경위의 엔지니어 스킬이었구나! 지난번보다 훨씬 강해진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시야에 떠 있는 타이머를 확인했다.
<남은 시간 - 7:45>
<남은 강습 인베이더 - 24%>
<사망자 수 - 1>
좋아, 양호하다. 추가 사망자도 없고.
여기에 두 기사까지 와줬으니, 이대로 조금만 버티면 이 돌발 사태를 넘길 수 있다.
그냥 시간을 끌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인베이더 수도 줄여야 하는 게 문제지만.
‘90% 이상 처치하라고 했으니까, 14% 더 없애면 되는 건가.’
100마리라고 치면 14마리만 죽이면 된다.
나는 바로 옆까지 다가온 정기석 경위에게 말했다.
“은빈 경위님도 같이 왔어요?”
“네. 갑자기 이상 반응 보고 받고 출동했는데 역시 여기에 계셨군요.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빠른 투로 답하는 정기석 경위의 표정이 어쩐지 몹시 어두웠다.
“상황이 많이 안 좋은가요?”
내 물음에 정기석이 답했다.
“아, 여기는 이제 거의 정리했습니다. 기사님의 지원 덕에 저와 은빈이 실력이 훨씬 좋아졌거든요. 그런데…….”
정기석 경위가 한 곳을 가리켰다.
멀리, 수수께끼의 탑이 있는 방향이다.
“저것 말입니다.”
“네.”
“저게 정확히 우리 지구대 위에 나타나서…… 지구대에 있던 제 후배와 동료들 거의 20여 명의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
“그뿐만이 아니라 반경 400미터 안에 있던 모든 건물과 도로가 깔려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 왜 그러십니까?”
정기석 경위는 갑자기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서는 나를 보며 당황했다.
나는 무방비 상태로 성큼성큼 인베이더들을 향해 걸어갔다. 나중에는 거의 뛰다시피 했다.
정기석 경위가 기겁하여 나를 붙잡았다.
“왜, 왜 이러십니까?”
“이것 놓으세요.”
“아무리 기사님이 강해도 이렇게 무방비로 다가가면 위험합니다!”
“싸우려는 게 아닙니다.”
“그럼 왜…….”
죽으려는 거지.
내가 죽어야 이 상황을 리셋하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어째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저 거대한 탑이 나타난 방향이, 우리 집이 있는 쪽이라는 것을.
저 정도 높이의 구조물이 자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넓이의 지면을 차지하리라는 것을 말이다.
탑이 어디에서 떨어져 내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정상적인 물리 법칙대로라면 거대한 크레이터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 충격파로 주변의 건물들도 모조리 날아갔을 테고, 어마어마한 양의 흙먼지와 파편이 솟구쳤을 것이다.
그러나 타워가 불쑥 나타났을 뿐, 굉음도, 흙먼지도, 붕괴도 없었다.
그렇기에 곧장 떠올리지 못한 것이다. 타워 아래에 있었을 뭔가를.
애초에 저런 구조물이 갑자기 한순간에 나타났다는 자체가 비정상이다.
문제는 비정상적인 현상 가운데도 바꿀 수 없는 법칙은 존재한다는 것.
예컨대 마법에 의해서든 공간 이동을 했든, 타워가 서 있으려면 반드시 지반이 필요하다거나.
그 지면 위에는 정기석 경위의 동료들뿐만 아니라, 내 가족이 있었다.
“놔요.”
“기사님!”
“놔……. 으아아아아!”
내가 한시라도 빨리 죽어야 한다.
이러는 동안에도 시간이 지체된다. 자칫, 지금이 회귀 포인트로 인정받지 못하면 나는 또 영영 가족을 잃게 되는 것이다.
“기사님, 진정하십시오!”
한데 뒤에서 날 안다시피 붙잡은 정기석의 팔을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다!
그가 아무리 3대 1톤을 친다고 해도, 30레벨에 각성한 내 힘보다 세진 않을 텐데.
그러다 한 박자 늦게 깨달았다.
내 능력치가 제한된 상태라는 것.
거기에 더해 스킬 발동도 되지 않으므로 -
‘지금 죽어봐야…… 리스타트 못 할 수도 있어?!’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개죽음이다.
내가 살아 있어야 방법도 찾는다.
그 사실을 깨닫자 다리 힘이 풀렸다.
“이건, 말도 안 돼…….”
갑작스러운 돌발 퀘스트에 이어, 집이 있던 자리에 탑이 나타나다니.
저런 타워 따위는 미래의 원래 역사에는 없었다고!
정말, 이대로 다 끝인 건가?
저절로 눈가에서 눈물이 솟구쳤다. 울며 스르르 주저앉는 내 태도를 보고, 정기석은 뭔가 눈치챈 듯했다.
“기사님, 혹시 저 탑 아래에…….”
그때, 생존자들 쪽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경찰 아저씨, 저희 좀 살려주세요!”
마지막 남은 인베이더 몇 마리가 이판사판식으로 생존자들을 공격해 가고 있다.
“……유감입니다.”
정기석은 내가 약해져 있음을 모른다. 그래서 날 두고 생존자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는 민중의 지팡이니까.
“으아아아아!”
내가 바닥에 엎어지며 절규를 터뜨린 직후였다.
-그놈 참, 시끄럽다!
예의 툴툴대는 어조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무르다!
나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무르! 우리 가족은…….’
-흥, 다 잘 있다. 네 양친도, 여동생 릴리스도. 갑자기 뭐가 떨어져 내리기에, 내가 우리 집 전체에 마력 방어막을 펼쳤거든.
이제 대놓고 우리 집이라고 했지만 조금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아니, 무르가 원한다면 그깟 아파트 따위 몇 채 줘 버려도 무방하다.
무르의 목소리가 이토록 달콤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그런 내 기분을 감지한 무르가 거들먹거렸다.
-내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이제야 깨달았느냐, 애송이?
‘그럼요, 그럼요! 귀인이십니다. 이 은혜는 제가 평생 갚을게요.’
-좋아. 다만, 문제가 좀 있다.
‘네? 무슨 문제요?’
-아무래도 우리 집만, 어딘가 괴상한 곳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구나.
‘괴상한 곳이요?’
-언뜻 느끼기에는 마계와 아주 흡사한데 또 완전히 같지는 않고.
무르의 설명을 듣다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아파트 위로 타워가 겹쳐지던 순간, 무르는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알고 마력 방어막을 펼쳤다.
다만 현재의 형태로는 한계가 있어서, 아파트 전체가 아니라 우리 집만 덮어씌웠다.
반면, 아파트 건물의 다른 부분은 타워의 질량에 짓눌렸거나, 혹은 차원 이전 시의 간섭에 의해 가루가 되다시피 사라져버렸다.
즉, 저 타워 내부 가운데에 우리 집만 덩그러니 남아버린 것이다.
부모님과 정아 그리고 무르가 집안에 머무르는 채로.
‘우리 집이 7층이니까…….’
타워 내부에서 대략 아파트 7층 정도에 해당하는 높이에 끼어 있을 것이다.
‘구하러 가야 해.’
지금이야 무사하지만, 저 타워가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우리 집을 제외한 아파트 전체가 삭제되어 버렸으니 물도, 전기도 공급이 중단됐을 터.
어머니가 냉장고며 선반에 식재료를 쟁여두시는 편이긴 하나, 그걸 감안해도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보름 정도가 한계다.
그러는 사이, 정기석 경위와 강은빈 경위는 나머지 강습 인베이더를 모두 처리했다.
그러자 눈앞의 메시지창이 빨갛게 반짝였다.
<남은 시간 - 3:22>
<남은 강습 인베이더 - 0%(완료!)> <사망자 수 - 1>
-방어 시간이 남았으나 강습 인베이더를 모두 처치했으므로 퀘스트를 종료합니다.
-클리어 조건을 모두 충족했습니다.
-보상으로 오리지널 아이템이 소환됩니다.
지이이잉!
내 앞의 허공이 열리고, 그 안에서 빛에 감싸인 뭔가가 나타났다. 마치 나이트 기어가 소환될 때처럼.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뭐인지는 몰라도 펜 정도의 크기이니 오히려 작은 편이다.
나는 홀린 듯 손을 내밀어 그것을 붙잡았다. 그러자 아이템을 감싸고 있던 빛이 사라지고 형체가 나타났다.
차가운 느낌을 주는 무광 은색의 가느다란 막대 모양이다.
‘이게, 오리지널 아이템…….’
그때 반가운 메시지창이 떴다.
<퀘스트를 완료하여 방화벽을 리셋합니다. 모든 제한이 해제되었습니다.> -능력치 코드가 원상복구됩니다.
-스킬 코드가 원상복구됩니다.
-인벤토리 및 아이템 코드가 원상복구됩니다.
※ 금지된 코드에 접근하지 않도록 유의하세요! 해당 페널티는 또 예고 없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거참 고맙네.
수상쩍은 단어들은 좀 이따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진실의 눈 스킬로 오리지널 아이템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전뇌 펜슬>
이계에서 사용하는 특수 아이템입니다. 전뇌 태블릿과 함께 사용할 때 제 성능을 발휘합니다.
타입 : 오파츠 기어
기능 : 없음.
내구도 : 250
소유주 : 이정우
가치 : 판정 불가.
고유 스킬 :
-코드 조작
전뇌 태블릿을 이용하여 우주의 법칙 코드를 일부 조작 가능합니다. 단 그에 따른 페널티가 존재합니다.
-스케치
전뇌 태블릿을 이용하여 새로운 코드를 그리거나 써넣을 수 있습니다.
……과연, 확실히 세파시 게임에는 없는 아이템이다.
난 도대체 뭘 주운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