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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게이머는 파멸을 거부한다-112화 (112/303)

112화

10부 : 시험의 탑 등장 (6)

우리는 장소를 옮겨 세부 사항을 의논하기로 했다.

다행히 나 말고는 모두 이 근처에 살지 않아서, 아무도 탑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곧 수경총에서 나온 병력이 일대를 통제하기 시작했으므로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

모일 장소는 자연히 서지수 일행이 기거하는 맨션으로 정해졌다.

나와 차윤성, 조설아, 김태훈.

거기에 서지수, 서철순, 이춘옥, 박선희까지.

모두 일곱 명이 거실에 모였는데도 북적거리는 느낌은 없었다.

김태훈이 거실을 둘러보며 나직이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집 좋은데? 아까 입구에서 보니까 보안과 프라이버시도 철저하고. 나도 여기로 이사 올까 보다.”

“여기 좀 비싼데.”

“얼마?”

“매매가 25~30억 정도 하더라고.”

“샀냐?”

“어.”

“음, 이제 기사도 됐으니까 바짝 벌면 금방이지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니어서 잠자코 있었다.

거실에는 어쩐지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고 보니 윤성이랑 설아하고 지수네는 오늘 처음 보는 거였지, 참.’

나는 간단히 양쪽을 소개했다.

“얘는 서지수. 나랑 일하는 서번트고 이쪽 이춘옥이랑 박선희는 지수 친구야. 얘는 차윤성, 얘는 조설아. 여기 이상한 형은 김태훈. 셋 다 기사로 각성했고, 태훈 형만 빼고 다들 동갑이니까 말 편하게 해.”

“…….”

낯가림이 심한 차윤성은 고개만 까딱했고.

“흐응, 정우랑 같이 일한다고?”

설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서지수를 관찰했다.

“왜 나만 이상한 형이야?”

김태훈은 다른 부분에 꽂혔다.

그러다 설아의 시선이 철순이에게로 향했다.

“쟤는 누군데? 소개 안 해줬어. 엄청 예쁘게 생겼네.”

“아, 그건…….”

“그거?”

“아니, 걔는.”

내 말을, 지수가 재빨리 이었다.

“내 사촌 동생이야. 철순이라고 해.”

“사촌이라고? 하나도 안 닮았…….”

설아, 은근히 전투력이 있네.

“자, 소개는 이쯤 하고.”

나는 설아의 말을 막으면서 화제를 돌렸다.

“다들 알다시피, 목동에 이상한 탑이 나타났어. 대략 한 시간 전에. 그 탑 아래에 수경총 목동 지구대를 포함해서 아파트 두 개 동이 깔렸고.”

“헐.”

“그중에 우리 집이 있어.”

“…….”

좌중에 무거운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그러다, 아직 사정을 잘 모르고 눈물도 많은 선희가 울먹였다.

“어떡해요…….”

“다행히 가족들이 무사하다는 건 확인됐어. 고맙다, 선희야.”

“아, 정말요? 다행이다.”

“하지만 위험한 상황인 건 여전해서, 내일 아침 일찍 탑 안에 들어갈 생각이야. 가족들을 구할 겸, 던전도 공략하러.”

그때, 갑자기 무르의 음성이 전해져왔다.

-애송이, 들리냐?

“잠깐만.”

나는 손을 들어 애들에게 신호하고 무르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무르, 말해요. 무슨 일 있어요?’

-어쩐지 신호가 좀 약해졌구나.

‘아……. 좀 더 떨어진 곳으로 옮겨와서 그럴 거예요.’

-흠, 뭐. 아무튼, 무슨 일이 생겼다기보다 새로운 사실이 밝혀져서 알려주려고 한 거다. 알고 보니 너희 가족 말고도 다른 인간들이 이 안에 생존해 있더구나.

‘생존자가 더 있다고요?’

-그래. 난 우리 집만 마력 방어막으로 둘러쌌는데, 그게 장벽 역할을 한 것인지 우리 집 아래의 모든 집이 무사한 것 같다.

‘아…….’

-아마, 타워와 비슷한 이 아파트라는 성의 특이한 구조도 원인이겠지.

쉽게 말해, 타워 던전은 위에서부터 짓누르는 형태로 지상에 나타났다.

탑에는 물리 법칙이 완전히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아예 법칙에서 자유롭지도 않았다. 타워가 서 있기 위한 지반이 필요한 게 그 예다.

그 결과, 무르가 보호한 우리 집 위쪽의 층은 모조리 으스러지듯 짓눌렸으리라, 아마도.

같은 원리로 우리 집에서 수직으로 아래의 층들은 무사했다. 우리 집이 지붕 역할을 한 덕이다.

‘우리 집과 같은 라인의 아래층. 그 집의 사람들이 다 살아 있다는 거군.’

내 생각을 읽은 무르가 말했다.

-다만, 언제까지 무사할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이 탑 안이 마계와 느낌이 비슷하다고 했었지? 집 밖의 환경도 그렇고, 너희가 인베이더라 부르는 것들이 돌아다니는 것 같다.

‘그렇군요.’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애송이. 나와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니까.

‘내일 아침에 바로 진입할 거예요. 우리 가족들 좀 잘 부탁할게요, 무르.’

-뭐, 하는 데까지는 해 보마. 네 엄마라는 인간과 여동생 릴리스는 어쨌거나 나를 퍽 아껴줬으니까. 내 마력이 미약하기는 해도, 네놈에게서 비롯되니 고갈되지도 않고.

무르와의 통신은 여기에서 끝났다.

“무슨 일이야?”

나는 궁금한 듯 묻는 윤성에게 간단히 답했다.

“내 스킬을 응용해서, 탑 안의 생존자와 대화했어. 다행히 우리 가족을 포함해서 무사한 사람들이 더 있는 모양이지만…….”

“오!”

“탑 내부는 환경도 이상한 데다 인베이더들이 돌아다녀서 위험한 상황이라고 하는군. 구조를 서두르는 게 좋겠다고.”

“억, 역시나 던전이었어…….”

기사들은 긴장과 기대가 뒤섞인 복잡한 표정이었다.

“이렇게 되어서, 함께 던전을 공략할 파티를 만들려고 해. 인원이 결정되면 수경총에 신고해야 해서 지금 확실하게 정하려고.”

내 말에 차윤성이 의아한 듯 반문했다.

“아까 다 정한 거 아니었어?”

“시간이 좀 더 지났고 위험성도 파악했으니까,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

“장난하냐? 바뀔 일 없거든?”

설아가 윤성의 말끝에 얼른 덧붙였다.

“나도!”

문제는 지수와 철순이였다.

나는 아직 킹 슬라임, 철순이를 완전히 믿지 못한다. 그래서 거미 여왕의 독액으로 금제를 걸었다.

하지만 만약 내가 타워형 던전에서 오래 못 나올 경우, 철순이에게 해독제를 줄 사람이 지수뿐이다.

‘그렇다고 지수와 철순이를 둘 다 데리고 가자니, 던전 안에서 철순이가 어떻게 변이를 일으킬지 알 수가 없다.’

인베이더 대부분 - 특히 귀족 등급의 인베이더는 던전에서 더욱 강해지는 까닭이다. 그 힘을 믿고 덤벼들거나 폭주하기라도 하면 귀찮아진다.

또한, 지수를 노렸던 폭탄 테러 조직이 잡히지 않은 상황이라, 여기에 남게 될 춘옥이와 선희의 안전도 마음에 걸린다.

‘결국 철순이는 탑에 데려갈 수 없고, 내가 부재중인 상태에서 지수와 철순이를 떼어놔서도 안 된다. 따라서 지수도 덩달아 탑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군.’

이거 무슨 선택의 딜레마도 아니고.

어쨌거나 결론은 나왔다.

“지수와 철……이 아니라, 지수는 이번 던전에는 안 들어가는 편이 좋겠다.”

“왜?”

반문하는 김태훈을 무시하고, 나는 지수에게 철순이를 슬쩍 가리키며 눈짓해 보였다.

지수는 서운한 기색이었으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뭐, 파티원은 정해졌네. 기사 네 명만 들어가는 것으로. 회의 끝?”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지. 수경총 쪽에서 챙겨주겠다고는 했는데, 그래도 당장 준비할 수 있는 식량과 물자 체크하고. 전투 시 일일이 지시하기 어려우니까 기본적인 포지션도…….”

“으엑.”

나는 세 기사와 함께 상황별로 간단한 작전을 짰다.

갑자기 인베이더에게 기습당했을 때, 생존자의 흔적이 보일 때, 정신 공격을 당했거나 중독됐을 때 등.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 은근히 많아서, 총 10여 가지를 상정하고 암기시켰다.

그러는 사이, 지수는 친구들과 함께 집을 뒤져서 쓸 만한 것들을 모아 가져왔다.

기사가 되었어도 양분과 에너지 대부분은 음식물로 섭취해야 한다는 게 인간의 슬픈 점이다.

힘이 강해져서 무게 제한은 거의 안 받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부피는 어느 정도 타협해야겠지만.

세파시 게임에서 비롯된 물건이거나 드랍 아이템이 아닌 탓인지, 인벤토리에 수납되지도 않는다.

“어디 보자. 참치 캔, 라면, 김, 즉석밥. 이거 다 줘도 괜찮아?”

내 물음에 지수가 답했다.

“우리는 쌀로 밥 지어 먹고 냉장고에 있는 반찬 먹어야지. 그런 건 가져가기 어려우니까.”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참, 구급약 같은 건?”

“그건 괜찮아. 그리고 지수야, 잠깐만.”

나는 지수만 따로 방으로 불렀다.

등 뒤에서 김태훈이 평온하게 말했다.

“자려는 건가? 오래 못 보니까?”

“쿨럭!”

“께에엑!”

나는 사레가 들리고 설아는 이상한 비명을 질렀다.

나는 김태훈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니거든?”

“그런데 자리를 왜 옮겨?”

“당연히 지수한테만 할 말이 있으니까 그러지.”

“흠, 그래.”

내가 저 인간 때문에 화병 나고 말지.

지수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잔뜩 의식하는 게 분명했다. 방에 들어와 마주 앉은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철순이 때문에.”

“아아, 으, 응!”

“이걸 보름에 하나씩 먹여.”

나는 인벤토리에서 해독 포션 한 박스를 꺼내 지수에게 건넸다.

“모두 24개야. 일 년치 분량이지.”

“설마 그렇게나 오래 못 나와?”

“혹시 모르니까. 괜히 철순이 죽게 하면 안 되잖아.”

“……그냥, 그 독 아예 풀어주면 안 돼?”

“그건 안 돼.”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인베이더가 괜히 인간의 천적으로 지정된 게 아니다. 지성이 있든 없든 마찬가지다.

지금이야 금제를 받으니까 협조적이지만, 풀려서 자유로워지는 데다가 나까지 없어지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고.

“알았어.”

“다용도실은 비워둬. 저번처럼 철순이 먹을 걸로 가득 채워둘게. 혹시나 다 먹어버리면 고철 같은 거 사다가 주면 될 거야.”

“응…….”

“철순이가 옆에 있으니까 어지간해선 괜찮겠지만, 너도 조심하고. 아직 집에 폭탄 터뜨린 놈들 안 잡힌 것 알지?”

“응, 난 걱정하지 마. 너에 비하면…….”

“그래, 지수 넌 잘할 거야.”

나는 시무룩해서 고개를 푹 숙인 지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별 의미는 없었다. 그냥 기특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다.

내 손이 닿자 지수가 움찔했다. 잠시 후, 고개를 든 그녀의 분위기가 어쩐지 이상했다.

뭔가 비장하기도 하고 야릇하기도 하다고 해야 하나.

“정우야.”

“응?”

“꼭 무사히, 최대한 빨리 돌아와야 해.”

“당연하지.”

말하는 동안 지수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은 느낌은, 기분 탓인가?

그러다 코가 닿을 지경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기분 탓이 아니네?!’

“정우야.”

“……!”

내가 아무리 모태 솔로에 눈치가 젬병이어도, 이건 무슨 뜻인지 안다.

‘더 은밀하게 말할 게 있단 거지, 훗. 우리 신뢰 관계도 제법 단단해졌어.’

따로 방 안에 들어와서 대화 중인데도 귓속말을 해야 할 정도로.

하긴, 기사는 청력도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니까.

혹시 차윤성이나 설아가 본의 아니게 들을 수도 있고, 특히 김태훈은 문 앞에 가까이 와서 엿들을지도 모른다.

‘매너보다 자기 호기심이 더 중요한 인간이거든.’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가 귓속말하기 편하게 해주고 속삭였다.

“뭔데? 얼른 말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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