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게이머는 파멸을 거부한다-114화 (114/303)

114화

10부 : 시험의 탑 등장 (8)

팀은 둘로 나뉘어 구성되었다.

손태준과 최혜인, 이진욱으로 이뤄진 사신 기사단의 3인 파티.

그리고 나와 차윤성, 조설아, 김태훈에다 류경재와 서번트 이혜림이 더해진 6인 파티다.

마음 같아서는 류경재 총경과 이혜림은 사신 쪽에 붙이고 싶다.

그래도 외부에서 전력을 평가하기에는 이 정도가 타당하겠지.

아직 우리 힘을 다 드러낸 게 아니니까.

한편, 이혜림에게 쏠리는 의아함을 불식시키려는 듯, 류경재 총경이 그녀를 소개했다.

“여기 이혜림 순경은 수경총 공채 출신의 서번트로, 남산타워 때는 훈련 막바지여서 나와 동행하지 못했네. 이 친구만 함께했어도 자력으로 탈출했을지도 몰라.”

이봐, 그 안에는 마신도 있었다고. 굳이 지적하진 않겠다만.

이혜림은 송충이 같은 눈썹 끝에 검지를 붙이며 절도 있게 경례했다.

“안녕하심까. 이혜림이라고 함다. 기사분들을 뵙게 되어 영광임다. 서번트로서 제 능력은 운반자임다!”

“운반자?”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운반자는 이름 그대로 물리 법칙을 비트는 공간을 만들어, 대상의 무게와 질량을 조작해서 운반하기 쉽게 만드는 이들이다.

공간에 보관한 물건이 종류별로 자동 정렬이 되지 않고 소환도 안 된다는 점에서 내 인벤토리 능력의 하위 버전이지만, 운반자의 능력이 더 뛰어난 점도 있다.

‘내 인벤토리는 세파시 게임에서 비롯된 능력이기 때문인지, 다크 스톤과 아이템 등 세파시 게임과 겹치는 물건만 수납 가능해.’

반면, 운반자는 살아 있는 것만 아니라면, 용량이 허락하는 한 뭐든 자신의 공간에 넣을 수 있다.

기사가 나이트 기어를 보관하는 아공간 활용의 변형된 형태로 짐작될 뿐, 정확한 원리나 유래는 모른다.

매우 희귀한 능력이며 서번트로서는 거의 최상의 존재다.

내가 기억하기로 이 시기에는 아직 운반자가 나타난 적이 없다.

류경재 총경이 내게 물었다.

“운반자를 아나?”

“아뇨, 명칭이 특이해서…….”

“그렇지? 사실, 그간 공식적으로 선보인 적이 없다네.”

그는 말하면서 저도 모르게 손태준을 힐끗 보았다.

아마, 이혜림의 정보를 숨긴 이유는 사신 기사단에서 포섭해올 것을 경계해서이리라.

훈련 중이었다고 했으니 운반자 본인의 생존력과 능력 활용법을 높이느라 그런 부분도 있고.

‘그런 귀한 인력을 이런 상황에 데려왔다는 것은, 어지간히 준비를 마쳤다는 뜻.’

보검이라도 사용하지 않으면 녹슬 뿐이다.

이번처럼 꼭 필요한 상황에 활용하기 위해 세금을 들여 키우는 것이다.

“자, 이것들 좀 봐주시게.”

류경재 총경은 타워에 들어갈 인원에게 작은 책자 형태의 카탈로그 하나씩을 돌렸다.

물건의 명칭과 사진으로 된 목록이 쭉 적혀 있고, 그 옆에는 영어와 숫자로 이뤄진 기호가 있었다. 기호는 물건마다 조금씩 달랐다.

좌중은 신기한 듯 카탈로그를 뒤적였다.

“이게 다 뭐야? 꼭 쇼핑몰 전단 같은데?”

“그렇다기에는 무기도 있다만.”

“가격도 안 쓰여 있어. 물건 이름 옆에 이 기호는 뭐지? A20, C38 이런 거.”

헛기침으로 이목을 끈 류경재가 보충 설명을 했다.

“지금 나눠준 것은 이혜림 순경이 현재 보관하고 있는 물품 목록이네. 어제 종일 선별하여 담았지.”

“헐.”

“작전 수행 도중, 필요한 것이 생기면 카탈로그를 참조하여 요청하면 된다네. 시간이 조금 걸리니까 미리 말해주는 게 좋겠지.”

김태훈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이혜림을 보면서 물었다.

“그럼, 지금 여기에 있는 물건들을 그쪽이 다 보관하고 있다는 거죠?”

“네, 그렇슴다!”

“하나 꺼내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데요?”

“가로세로 1미터 정도 크기의 물체를 기준으로 10초. 거기서 부피와 질량, 개수에 비례하여 시간도 늘어납니다!”

“오호, 신기하네.”

“감사함다!”

“딱히 칭찬은 아닌데.”

“아, 앗!”

나는 살짝 고장 난 이혜림을 보다가, 카탈로그를 쭉 훑어보고 혀를 내둘렀다.

무기 종류는 물론, 고형 식량과 정수한 물 각각 1톤에 더위와 추위를 상정한 남녀 의복까지.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보급기지라 할 만했다.

‘이거, 수경총에서는 완전히 이 이혜림이라는 서번트를 믿고 이번 공략에 참가한 것 같은데? 류경재 총경은 사실상 그녀의 경호원 역할이고.’

던전 안에서도 먹을 것과 물을 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확보 가능성이나 양이 부정확할 뿐만 아니라, 독성을 품었을 가능성이 크다.

기본적으로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이 카탈로그의 물자를 지참한 채 던전에 들어가는 자체로 성공 확률이 몇 배는 증가하리라.

거의 거대한 컨테이너 몇 대를 가지고 가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참가 인원은 적더라도 생존에 필수적인 사람이니, 던전 공략에서 수경총의 지분도 크게 올라간다.

나는 수경총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너구리 영감, 비장의 한 수를 꺼냈구만…….’

조설아도 신기한 듯 조심스레 말했다.

“저, 혜림 순경님. 혹시 지금 하나 시험 삼아 꺼내 봐도 될까요?”

류경재 총경이 대신 허가했다.

“그렇게 하게. 미리 익숙해져야 할 테니.”

“저, 그럼 E-8. 이걸로 할게요.”

“싱가포르풍 닭 육포. 알겠슴다!”

우리 설아, 배고프구나.

이혜림 순경은 딱히 어떤 액션을 취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나처럼 시동어를 왼 것도 아니다. 그저 멀뚱히 서 있을 뿐.

5초 정도 후, 그녀 앞에 잘 포장된 길쭉한 형태의 꾸러미가 나타났다.

“와!”

마술 같은 광경에, 요청한 설아뿐만 아니라 구경하던 다른 이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최혜인은 몇 차례 손뼉까지 쳤다.

“싱가포르풍 닭 육포 50그램, 피킹 및 출고 완료했슴다!”

“진짜 멋져요, 언니.”

“어, 언니…….”

이혜림의 뺨이 살짝 붉어지면서 또 고장 났다.

아무튼, 실제로 발동하는 모습을 보니 대충 어떤 원리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영어와 숫자가 물품을 보관한 아공간의 좌표로군. 헷갈리거나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카탈로그로 제작한 것이고.’

이혜림의 아공간 창고는 내 인벤토리처럼 아이콘 형태로 바로 보이는 게 아니다.

평소에는 무형의 거대한 공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거기에, 이혜림이 물건을 넣음과 동시에 좌표를 매기는 거다.

가령, 카탈로그에서 제일 앞에 위치한 물품은 다름 아닌 식수다.

가장 중요하면서 자주 요청할 물자이기 때문이겠지. 식수에는 A-1이라는 시리얼이 붙어 있다.

‘영어가 가로, 숫자는 세로. 혹은 반대일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아공간의 제일 바깥쪽, A의 1번에 물이 있다는 거로군.’

이론상 이혜림의 아공간은 가로, 세로로 무한히 확장할 수 있을 터였다. 단, 그녀의 기억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시리얼 넘버는 기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카탈로그를 다시 보니, 영어는 J까지, 숫자는 각각의 알파벳에서 최대 50까지 매겨져 있다.

즉, 현재 이혜림은 500개의 물품과 위치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만 해도 대단한데,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지. 훈련하기에 따라 무한히 늘릴 수 있다.’

나는 서번트 이혜림의 가치와 동행 필요성을 인정했다.

소개가 끝나자, 다음은 손태준이 묵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일부러 여기에 찾아온 이유가 있다. 바로, 작전 수행 전에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이고, 혹시 있을지 모를 방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타워형 던전은 아파트 몇 개 동과 상가, 심지어 수경총 지구대가 포함된 지역을 깔아뭉개면서 충격적으로 나타났다.

아니, 말 그대로 ‘강림’했다.

범위는 빅뱅 때보다 좁았으나 그 형태에 의한 충격과 인명 피해는 빅뱅 이상.

차원문과는 또 다른, 전혀 새로운 형태의 던전이다. 이렇게 되면 폭발을 막기 위한 마력 차폐벽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된다.

“그만큼 국내외 언론과 군부의 관심이 집중됨은 물론, 재계의 관심도 쏠린 상태다.”

나는 손태준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던전에서는 새로운 사업이 생겨나고 자원도 얻어지기에 마련이니까.’

최초 공략대에 쏟아지는 관심도 상상 이상이리라.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위성이나 첩보로 이 정보를 입수한 해외에서도.

“오히려 민간 주택이면서 프라이버시 보호가 철저한 이곳이, 더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는 거군요. 시간대도 그렇고.”

김태훈도 알았다는 듯 대꾸했다.

그러자 손태준이 새삼스레 나와 김태훈, 차윤성, 조설아를 차례로 훑어보았다.

“조금 충격이로군. 아무리 간부들이 해외에 나가 있었다곤 해도, 자리를 비운 사이에 기사가 넷이나 탄생하다니.”

“아, 그거…….”

김태훈이 뭔가 말하려는데, 더 가까이에 있던 설아가 나보다 한발 앞서서 그의 옆구리를 푹 찔렀다.

장하다, 설아야.

묘한 분위기를 눈치챈 류경재 총경이 얼른 나서서 화제를 돌렸다.

“그런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하시고, 슬슬 출발합시다. 더 시간을 지체하면 이른 아침부터 모인 보람이 없어집니다.”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는 해도, 사신 기사단에게 우리의 신변과 이 장소까지 노출한 게 미안하기는 한 모양이다.

“그럽시다.”

손태준이 먼저 돌아서서 현관을 나갔다.

거실 넓이는 넉넉했는데도, 그가 나가자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다.

빌라 앞에는 수경총 전용차 대신, 평범한 승용차 세 대가 서 있었다. 모두 국산 중형차다. 시선 끌 것을 우려하여 일부러 수배해온 모양이다.

우리는 차에 나눠 타고 타워형 던전을 향해 출발했다. 배웅 나온 서지수와 친구들이, 안 보일 때까지 서서 손을 흔들었다.

“혹시 모르니까 좀 돌아서 가겠슴다!”

우리 일행 세 명이 탄 차의 운전을 맡은 이혜림 순경이 말했다. 미리 정해둔 경로가 있는 듯했다.

차는 일부러 무의미한 장소를 찍고, 더 먼 길을 돌아서 천천히 타워로 향했다.

목동 2단지 아파트.

우리 가족이 사는 곳이다.

타워는 정확히 목동의 한가운데, 그 위에서부터 나타났다.

익숙한 풍경이 가까워질수록 황폐해진다. 나도 모르게 어금니에 지그시 힘이 들어갔다.

코앞에서 본 수수께끼의 타워는 엄청난 위용을 자랑했다.

규모로만 따지자면 예전에 한번 가봤던 강남의 L타워를 연상케 했다. 국내 최고 높이였던 그 건물은 빅뱅 때 무너져, 지금은 터와 잔해만 남아 있다.

거대한 규모에 더해, 외형이 고풍스러운 서양식이고 주변에 짙은 안개도 껴 있어서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장난 아니네…….”

자신과 연관된 일 외에는 무감정한 김태훈조차 혀를 내둘렀다.

“저 주변에 뭐가 날아다니는데?”

놀란 차윤성의 목소리에, 류경재가 대꾸했다.

“비행형 인베이더라네. 덕분에 구경꾼 문제는 덜었지.”

참, 긍정적이시네.

날아다니다가 언제 기습해올지 모르니, 사람들이 섣불리 가까이 오지 못하는 것이다.

타워가 나타나면서 일대를 초토화하여 더 위험하게 느껴진 까닭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타워 주변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접근을 통제하고 있는 소수의 경찰 병력과 졸음을 참는 기자 몇 명이 전부였다.

우리가 탄 차를 본 경찰들이 갑자기 일제히 기자들을 둘러쌌다. 미리 지시한 일인 듯했다.

“어어? 이거 뭡니까?”

“타워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났습니다. 위험해서 그럽니다.”

“뭐가 나타났다는 거예요? 지금 코앞에 있었는데도 아무것도 못 느꼈고만?”

소란을 틈타, 우리는 재빨리 차에서 내려 타워 입구로 다가섰다.

성문처럼 생긴, 높이 3미터가 넘는 거대한 입구를 본 순간.

‘어?’

나는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