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게이머는 파멸을 거부한다-119화 (119/303)

119화

11부 : 시험의 탑 공략 (5)

손태준의 기사 클래스는 ‘탱커’다.

탱커는 명칭 그대로, 선두에서 공격을 받아내며 다른 파티원들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 보니 자신을 강화하거나 파티원들을 지켜주는 스킬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이 ‘고난의 수호’는 유명했다.

공격 스킬 가운데 하나인 ‘검은 죽음’과 더불어 손태준을 상징하는 스킬이기도 했다.

윽, 검은 죽음 생각하니까, 설아가 쓰러지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PTSD 올 것 같다.

내가 회귀에 성공하여 없던 일이 되었으나, 겪은 건 사실이므로 기억이 생생하다. 떨쳐버려야지.

아무튼 고난의 수호가 유명한 이유는, 대상의 그림자를 이용한다는 특이성에 더해 무적에 가까운 방어력 때문이다.

고난의 수호를 강제 해제하려면 손태준이 죽거나, 그림자의 재료가 된 대상이 사망해야 한다.

그런데 후자는 이미 그 대상이 그림자 안에서 보호받는 중이므로 역설이 되어 불가능하다.

결국, 스킬의 주체인 손태준을 없애야 강제 해제할 수가 있는데, 애초에 다른 목표를 공격한 이유가 그를 감당하기 어려워서인 게 대부분이다.

이 스킬의 유일한 약점은 한 번에 한 사람만 커버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림자가 있어야 발동하므로 빛이 없는 장소에서 쓰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각성한 기사들에게는 빛을 발생시킬 방법이 너무 많아서……. 결국 약점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그나저나 그 스킬을 속박용으로도 쓸 수 있는 줄은 몰랐네.’

엄밀히 말해, 지금 손태준은 김태훈을 ‘보호’하는 셈이었다.

어딘가의 안에 가둔다는 속성을 응용해, 그가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구속한 것이다.

“내가 당장 풀라고 했지! 진짜 죽여버린다!”

급기야 참다못한 김태훈이 소리 지르며 길길이 날뛰었다.

자신의 자유가 최우선인 만큼, 그 자유를 구속받는 감각을 못 견디는 거다.

“어디 해보게나. 그걸 뚫고 날 죽일 수 있다면, 사신 기사단의 단장을 시켜주지.”

손태준이 여유롭게 말했다.

김태훈을 저렇게 가지고 놀 수 있다니!

스킬도 스킬이지만 멘탈이 부럽다. 사신 기사단장의 관록은 어디 가는 게 아니구나.

‘저 스킬, 나한테도 있었으면 좋겠다. 김태훈이 말 안 들을 때마다 가둬 버리게.’

역시 명왕은 명왕이다.

이전 시간대에서는 갑자기 이진욱이 죽은 데다, 자기 실수로 설아를 해치는 바람에 당황해서 내게 허무하게 당했지만…….

이런, 또 떠올려 버렸다.

다른 생각, 좋은 생각!

이진욱이 그런 손태준에게 말했다. 어쩌면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사매가 있는 방으로 들어간 놈들, 조금 불쌍하네요. 소리로 미뤄 보아 그 기술을 쓴 것 같은데.”

“음. 혜인이의 분골술은 나도 흉내 내기 어렵지.”

“일인전승의 가문 비전이니까 당연하죠.”

분골술이라. 뼈를 가루로 만드는 수법이라는 뜻인가?

이름만 들어도 살벌하네.

그러고 보니, 최혜인은 기사가 되기 전에도 무도가였다고 들었다.

가문에 전해 오는 실전 위주의 옛 무술을 익혔는데, 문제의 무술은 너무 위험해서 도장이나 시합조차 사라졌다고. 그게 분골술이라는 무술인 모양이다.

“저, 분골술이 어떤 거죠?”

묻는 내게, 이진욱이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했다.

“대상의 정신이 계속 깨어 있도록 유지하면서, 뼈를 뒤틀고 으스러뜨리며 조각내는 기술.”

“…….”

뼈를 아작내는 천사라니. 알고 보니 무서운 사람이었구나, 최혜인.

그때, 손태준이 내게 시선을 보냈다.

“그나저나 역시 이상하군.”

“네? 뭐가요?”

“혜인이의 말대로라면 초면이 아니기는 한데, 그냥 얼핏 스쳐 지나간 것치고는 상당히 인상이 강렬하단 말이야.”

그의 말을 이진욱이 거들었다.

“그러니까요. 나도 딱 사부 같은 느낌입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거슬리기에, 우리한테 라이센스를 테스트를 안 받고 수경총과 거래해서 멋대로 딴 놈이라 그런가 했더니.”

이진욱이 내게 연신 불퉁댄 것은 그래서였나?

아무튼, 뜻밖이다.

현재의 시간대에서는 분명 나와의 인연이 스쳐 지나간 정도일 따름인데. 저런 식으로 느끼고 있었다니.

혹시, 회귀해 오기 전의 기억이 남아 있는 건…….

‘에이, 설마. 그럴 리가.’

나는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시간을 거슬러 왔으니 그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게 되고, 실제로도 그랬다.

설아가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자체가 증거다.

“저는 다른 데서 두 분을 뵌 적이 없습니다만.”

“내 기억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한데 육감이라는 게 참 이상해서 말이야.”

“뭐, 찾아보면 접점이 있을지도 모르죠.”

슬슬 답하기 곤란해지던 차에, 때맞춰 기다리던 인물이 나타났다.

“이놈들, 그만해! 신고식도 정도껏 해야지.”

바로, 지하 감옥 입구를 지키는 간수였다.

고참 죄수들이 신입을 밟을 시간을 준 다음, 적당한 때에 끼어들어 말리는 게 관행인 듯했다.

그래야 고분고분해져 대들지 않고, 싸움도 안 나서 자기들이 편해지는 까닭이다.

“아니, 얼마나 팼기에 애들이 저 모양……. 응?”

구시렁대면서 감방 앞으로 다가오던 간수가 멈칫했다.

일렁이는 횃불 아래, 뻗어 있는 고참 죄수 셋을 비로소 본 것이다.

더구나 여자 셋만 가둬둔 방에.

문제의 여자 셋은 털끝 하나 안 다치고 멀쩡했다.

그사이 손태준은 김태훈에게 걸었던 스킬을 얼른 해제해버렸다.

아무리 꼴통인 김태훈이라도 그 정도 눈치는 있는지, 더 안 날뛰고 잠잠했다.

나는 철창에 코를 끼우다시피 하고 옆방 분위기와 간수를 관찰했다.

그나마 복도가 휘어져 있어서, 얼굴을 바짝 붙이고 가재눈을 뜨자 어느 정도 옆방 내부가 보였다.

“이게 무슨…….”

중얼거리는 간수에게, 최혜인이 내가 일러준 대로 말했다.

“이자들, 죄지은 병사들입니까?”

“으음, 그렇다.”

나도 그러리라 짐작은 했다.

단련된 신체나 자세도 그렇고, 은연중에 자기들끼리도 서열이 있는 듯 행동해서다.

“롬 제국의 병사들은 상당히 약한 모양입니다.”

“……뭐?”

“그렇지 않습니까? 죄를 짓고 들어온 자들이니 다른 병사들보다도 더 흉악할 텐데, 무기까지 들고서도 저 한 사람에게 깨졌으니 말입니다.”

“너 혼자 맨손으로 때려눕혔다고? 저 셋을?”

간수는 믿기 어렵다는 눈빛으로, 바닥에 드러누운 죄수 셋을 내려다보았다.

“엄살 부릴 놈들이 아닌데…….”

셋 다 눈물 콧물을 흘린 채, 입가에 거품까지 물고서 제정신이 아니다.

군사 훈련을 받고 실전도 겪은 자들이었기에 고통에 강해야 정상이었고, 또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뼈가 뒤틀리고 으스러지며 부러지다 못해 조각나는 감각을 맨정신으로 배겨내기에는 무리였다.

‘이걸 알고 최혜인에게 부탁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더 깊은 인상을 주게 됐네.’

롬 제국은 무인의 지위가 높은 군사 국가로 보인다. 따라서 무를 숭상하는 분위기가, 일반 백성들뿐만 아니라 군인들 사이에도 만연하리라.

이진욱과 서로 한창 죽일 듯이 싸웠던 라칸이, 네놈의 용맹함을 감안하여 봐준다는 둥 어쩌고 했었지.

이는 곧, 저들이 야만인으로 치부하는 종족이거나 노예 또는 포로라고 해도, 무력이 강한 자는 쓰임이 있다는 뜻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항복했을 때 그 자리에서 즉결처분하려 들었을 테니까.

어차피 야만인이라 제국법의 적용을 받는 백성도 아닐 테니, 굳이 끌고 갈 필요 없이 베어버리면 그만 아니냐는 거다. 실제로 처음에는 그럴 기세였고.

‘그러다, 이진욱과 싸우는 사이 점차 눈빛이 달라지는 걸 봤지.’

적의가 어려 있을지언정 그것은 분명 탄복의 눈길이었다.

나는 세파시 시나리오와의 유사점에 더해, 그 부분에 착안했다.

던전 자체의 설정인지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롬 제국은 뛰어난 무인을 필요로 하고 우대하는 나라가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최혜인을 품평하듯 위아래로 훑어보던 간수의 눈빛이 점차 변했다. 그것은 욕망에 찬 음습한 눈빛은 분명 아니었다. 오히려 탐색에 가까웠다.

“너, 한 번 더 싸울 수 있겠나? 그럼 좀 더 좋은 방으로 옮겨 주지.”

“그런 건 필요 없습니다. 대신, 다른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무슨?”

“내용은 이긴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쉽지 않을 거다.”

피융!

간수가 허리춤에서 새카만 돌을 꺼내 벽을 치자, 특이한 소리가 울렸다.

그게 신호인 양 다시 돌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이번에는 다섯 명의 죄수가 걸어 나왔다.

“이 시험에는 저놈들의 운명도 달렸거든. 모두 사형수인데, 이길 때마다 일 년씩 형 집행을 유예받고 있지.”

과연, 이번에 나온 다섯 명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뭔가 초연한 듯하면서도 조용한 투기가 흘러넘친다.

그 가운데 한 명은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었는데, 다섯 명 중에서 제일 강하게 느껴졌다.

시험 삼아, 진실의 눈으로 애꾸눈 죄수의 능력치를 확인해 봤다.

악투샤

[레벨 30 검투사]

-성향 : 혼돈 중립

-클래스 : 투사, 검사

-등급 : B

-칭호 : 백전노장

-스테이터스

힘 : 150

속도 : 180

지능 : 120

행운 : 5

생명력 : 1500

마력 : 1200

지구력 : 3300

-스킬

생존 본능 (패시브)

고통 둔화 (패시브)

전장 검술

빈사의 반격 (1회 제한)

과연, 상당히 강하다.

거의 각성 직전의 기사 지망생이라고 봐도 될 정도.

밑줄이 표시된 백전노장 칭호의 내용을 보니, 백 명 이상과 싸워 이긴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라고 한다.

저게 다 죄수가 된 뒤에 이긴 횟수였다면 백 년 유예로 사형을 면제받고도 남았을 터이니, 그전에 전쟁터에서 죽인 숫자가 대부분이겠지.

다른 건 모르겠는데, 빈사의 반격이라는 스킬은 주의해야 할 것 같다.

딱 한 번 쓸 수 있다는 걸로 보아, 죽기 직전에 발동하는 동귀어진(함께 죽을 각오로 공격하는 것)의 기술 같은 느낌이다.

‘이걸 알려줄 방법이 없나? 가만.’

내가 기사가 되고 나서, 이 정도 인원으로 파티를 맺고 던전에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다면 세파시에는 있지만 내게는 그전까지 없던 기능이 생겨나 있을지도 모른다.

‘상태창.’

내 상태창을 띄우고 살펴보자, 과연 능력치 아래에 깜빡이는 쪽지 모양의 아이콘이 활성화되어 있다.

파티원들끼리 떨어져 있어도 대화가 가능한 파티 챗 기능이다.

철창에 붙어서서, 최대한 부자연스럽지 않게 파티 챗 아이콘을 터치했다. 그러자 대화로 이어지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파티 챗 기능이 오픈되었습니다.>

-메시지를 전할 상대의 이름을 확인하고 대화 내용을 떠올리세요. 같은 파티원만 대상으로 지정 가능합니다.

‘됐어!’

뒤이어, 주르륵 나타나는 파티원의 이름 가운데 최혜인을 선택했다.

‘대화 내용을 떠올리라고 했지. 최혜인 기사님, 제 목소리 들려요?’

“어?”

최혜인의 가벼운 탄성이 들려왔다. 나는 얼른 생각을 덧붙였다.

‘제 스킬 가운데 하나니까 놀라지 마세요. 티도 내지 마시고요. 제가 저자들의 정보를 좀 알아낸 게 있는데, 이 스킬을 이용해서 전달할게요. 이해하셨으면 헛기침 한 번 해주세요.’

“흠, 흐흠.”

최혜인이 살짝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그녀의 헛기침을 다르게 해석한 간수가, 비웃음 어린 투로 물었다.

“왜, 이번에는 자신 없나?”

최혜인은 뜻밖의 답을 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