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12부 : 열사의 제국에서 (10)
퍽!
설상가상으로 은은하게 켜져 있던 컨테이너의 조명이 꺼졌다.
배터리에 문제라도 생긴 건가.
아니, 차라리 이게 나을 수도 있다. 우리는 어차피 저쪽을 못 보고, 기사들의 시력은 어두워도 아무 지장이 없으니.
‘이러면 상대도 우리를 잘 못 보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내부가 어두워지자 벽에 뚫린 구멍으로 햇빛 줄기가 들어온다.
이 사막은 해가 지지 않는다.
즉, 밤이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분명히 컨테이너 외벽의 홀로그램 장치로 주변 환경과 똑같게 위장한다고 했는데.
상대는 우리의 움직임을 어떻게 알아챈 걸까?
“이혜림 순경님!”
내 부름에, 구석에서 떨고 있던 이혜림이 말했다.
“넵. 저, 저 여기에 있슴다.”
“이거, 위장 시스템 제대로 작동하는 거 맞죠?”
“그럴 겁니다. 지금은, 구멍이 뚫려 버려서 표가 나겠지만…….”
그럼, 뭔가 다른 수단이 있다는 건데.
그러다 문득 컨테이너 천장의 환기구로 시선이 갔다.
여러 사람이 내부에 머무르는 까닭에, 아무리 아공간 기술을 적용했어도 환기 시스템은 필수다.
“저 부분은요?”
“밖에서 구별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환기구 커버에도 홀로그램이 적용됩니다.”
“으음…….”
창문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바깥 풍경이나 감상하기 위한 시설이 아니니까.
그럼, 수수께끼의 적은 도대체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 걸까?
퍽!
“익!”
또, 파열음이 울렸다. 그리고 설아가 낮은 비명을 흘렸다.
“설아야! 맞았어?”
“아, 아니. 아니, 응.”
“맞은 거야, 안 맞은 거야.”
“맞긴 맞았어. 좀 아프지만 괜찮아. 네가 준 아이템 덕에.”
“그러게 움직이지 말라니까.”
“눈앞으로 뭐가 지나간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었다가 그만…….”
“눈앞으로 뭐가 지나가?”
“응. 날벌레 같은 게.”
그 말에, 퍼뜩 아까 느낀 이상한 감각이 떠올랐다.
벌레 같은 게 몸 위를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근질근질한 느낌.
그게 기분 탓이 아니라 진짜였나?
“이혜림 순경님, 혹시 이 안에 벌레가 들어올 수도 있나요?”
“아, 글쎄요. 그런 일은 거의…… 아예 불가능하다고는 못 하겠지만, 들어올 틈이라고는 저 환기구 정도여서. 보통 벌레는 환기구에서 철망과 팬에 막힙니다.”
“보통 벌레가 아니라면요?”
“네?”
“혹시, 불을 모두 끄고 구멍을 막을 수 있나요?”
“아, 넵. 긴급 수복 기능을 사용하면……. 다만, 그 경우에는 홀로그램 시스템이 해제됩니다. 실내조명도 다 나갈 겁니다.”
“상관없어요. 어차피 우리 있는 곳을 아는데요, 뭐. 잠깐 그렇게 해 주세요.”
다른 기사들은 내 의도를 몰라 잠자코 있었다.
곧, 만능 컨테이너의 구멍이 막히고 조명도 꺼졌다. 실내는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모두 꼼짝도 하지 마세요.”
나는 인벤토리의 잡템을 소환했다. 퀘스트 아이템 중 하나인 야광 스프레이다.
‘암흑 던전에 표식을 남기는 퀘스트였지.’
세파시 게임의 장점이자 단점은, HVR 시스템을 이용해 사실성을 극대화한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사용한 퀘스트 아이템을 폐기하는 과정이 꼭 필요했다. 안 그러면 인벤토리만 차지하는 까닭이다.
아무 데나 버리면 그게 단서가 되어서 추적당하거나, 도시에서는 치안을 맡은 NPC에게 걸려 벌금을 물기도 했다. 이에 유저들은 쓸데없는 부분에서 사실적이라고 불평했다.
‘나는 아무 상관 없었지. 퀘스트가 끝난 뒤에도 남은 퀘스트 아이템을 모조리 챙겨 다녔으니까.’
퀘스트 아이템 중에는, 나중에 은근히 쓸모가 생기는 것도 존재했다. 바로 지금처럼.
치익!
나는 엎드린 자세 그대로, 손 안에 소환된 야광 스프레이의 분사구를 위로 향하게 하여 노즐만 눌렀다.
무형 무색의 야광 가스가 허공에 뿜어졌다. 그러자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저게 뭐지?”
김태훈이 숨죽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캄캄한 실내에, 반딧불이처럼 반짝거리는 것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정말로 벌레가 있었어.”
“벌레?”
“응. 평범한 벌레는 아니겠지만. 벌레 형태의 인베이더일 수도 있고, 상대의 스킬일 수도 있고.”
아마 저것이 우리 움직임을 감지하는 방법이리라.
내가 이 안에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예상한 것은, 꼭 감각 때문만은 아니다.
저격해 오는 각도도 이상했다.
예를 들어, 설아가 맞은 것도 그렇다.
설아는 소파 등받이 뒤에 웅크려 몸을 숨기고 있다.
그녀의 움직임을 보려면, 소파에 가려지지 않은 위치여야 한다.
‘그런데 설아가 얼굴 앞에다 자기 손을 흔드는 것까지 봤단 말이지. 마치, 소파 반대편이나 위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이에, 컨테이너 안에 다른 눈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한 거다.
나는 천장 부근에서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빛나는 날벌레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 위치에서 저런 식으로 날아다니면 우리가 다 보이겠지.’
단, 저 감시하는 벌레에게도 한계는 있는 듯하다.
첫 번째는, 움직이는 대상만 감지한다는 것.
그게 아니었다면, 벌레 바로 아래에 위치한 설아나 김태훈 등은 이미 저격에 맞았을 테니까.
두 번째는, 저 벌레는 ‘움직임’만을 포착할 뿐. 그게 생물인지 무생물인지, 인간인지 아닌지 하는 것까지는 구분하지 못한다는 거다.
아까 컵을 던졌을 때 쏴 맞힌 게 그 증거다.
‘우선, 벌레를 제거하면 상대의 시야를 가릴 수 있다.’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최혜인이 나직이 물어왔다.
“저것들, 다 떨어뜨립니까?”
“음, 아니, 잠깐만요.”
어차피 벌레를 없애도 상대에게는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하리라.
그럴 바에는 저걸 역이용해보면 어떨까.
‘이혜림 순경의 말대로라면, 환풍구를 발견하고 벌레를 들여보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 홀로그램은 움직임이 없으니까.’
그런데도 감시 벌레가 컨테이너 안에 들어왔다는 것은, 어디서부터인가 우리를 추적해 왔다는 뜻.
혹은, 우리에게 붙어 있다가 좀 전부터 활동을 개시했다는 거다.
“여러분, 잘 들으세요. 지금부터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아함.”
페어라이트는 조금 지루해졌다. 자기도 모르게 하품이 비어져 나왔다.
‘심심하네.’
한 놈은 확실하게 제거한 것 같다. 조금 느리지만 단조롭게 움직이던 걸 정확히 쏴 맞혔다.
그런데 뒤의 것들은 긴가민가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버그들이 놀라서 우왕좌왕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물건을 던진 것 같기도 했다.
어쨌거나 다 맞혔다.
‘두 놈 정도는 잡았으려나?’
제법 눈치가 빠른 놈들이다.
페어라이트의 소환수, ‘스파이웨어’가 움직임을 감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숨죽이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다.
‘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언제까지고 꼼짝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지.’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페어라이트 자신에게도 한계가 있다는 거다.
뜨겁거나 힘들어서는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여기, 모래 언덕에서 백 년이라도 대기할 수 있다.
너무 지루해지지만 않는다면.
페어라이트는 단조로움과 지루함을 못 견뎠다. 아이러니하게도 둘 다 저격수가 반드시 갖춰야 할 미덕이기에, 이는 그녀의 큰 결함으로 작용했다.
그런데도 페어라이트가 인정받는 까닭은, 대개 지루해지기 전에 목표물을 끝장내기 때문이다.
‘으윽.’
좀이 쑤신다. 저놈들, 언제까지 저렇게 꼼짝도 안 하고 있을 거지?
혹시나 하고 스파이웨어들의 시야를 확인해봤지만, 여전히 움직임은 없었다.
페어라이트는 당장이라도 일어서서 뛰어가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눌러 참았다.
이는 전적으로 포르투나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충성심 덕이었다.
‘참아야 해. 포르투나 님께서, 반드시 벌레들을 제일 먼저 찾아내 다 제거하라고 하셨으니까.’
이미 레이저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다행히 레이저는 실패하고 달아난 모양이지만, 그녀보다 늦었다는 게 자존심 상했다.
‘흥, 가뜩이나 마고 님이 포르투나 님에게 언니 노릇을 하려는 게 마음에 안 드는데 말이야.’
언니, 언니라.
페어라이트는 포르투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부드러워 보이는 갈색 곱슬머리 위에 살짝 눌러 쓴 빵모자.
멜빵 달린 청바지를 입고, 제 작은 몸집보다 더 큰 활통을 멘 모습. 못 견디게 좋은 향기.
‘귀여워. 사랑스러워…….’
페어라이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포르투나를 보고 있노라면, 마력을 공급하지 않아도 배가 안 고플 것 같다.
불경한 생각이지만, 포르투나를 꼭 안고 뺨을 비비고 싶다. 갈색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깊숙이 숨을 들이마시고 싶다.
‘아아, 포르투나 님…….’
페어라이트는 포르투나가 자신을 언니라고 부르는 상상을 했다. 그것만으로도 잠깐 기절할 뻔했다.
그 포르투나가 약속해 주었다.
저 돌연변이 벌레들을 제일 먼저, 제일 많이 처치한다면 - 손등에 입 맞추도록 해 주겠다고!
‘그럴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아.’
그 일을 방해하는 것들은 가만히 두지 않으리라.
그게 레이저든, 스키드 로우든, 코덱스이든 간에.
페어라이트가 포르투나와의 황홀한 시간을 상상하면서, 고질병인 ‘싫증’을 간신히 견디고 있을 때였다.
우우우웅!
별안간, 스파이웨어들이 강렬한 신호를 보내왔다. 큰 움직임이 감지된 것이다.
궤도 사격!
페어라이트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기술, ‘궤도 사격’을 발동했다.
이 타워의 상공에는 감시 시스템을 갖춘 인공위성, ‘더 문’이 존재한다.
그 감시 위성은 오직 이클립스의 그레이트 펜타그램 - 즉, 위대한 다섯 존재만이 눈으로써 사용할 수 있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다.
그 예외가 바로 페어라이트다.
페어라이트는 더 문의 ‘꿰뚫어 보는 눈’을 이클립스처럼 항시 사용할 수는 없으나, 목표물을 저격하는 데 제한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페어라이트가 부리는 스파이웨어들은 더 문과 좌표를 공유하며 일정 범위 내의 움직임을 감지한다. 그리고 목표물을 지정하여 사격 요청을 할 수 있다. 지금처럼.
퍽! 퍼퍽!
빗나갈 일은 없다. 악수하거나 고개를 흔드는 정도의 작은 동작도 감지하는데, 이번에는 움직임이 컸다.
크고, 빠르다.
‘어라?’
목표물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분명, 궤도 사격에 맞았는데도.
‘아슬아슬하게 급소를 빗나간 건가? 아니면 아이템을 착용해서 충격을 줄였나?’
페어라이트는 잠시 갈등했다.
벌레들이 달아나는 건 분명한데 어쩐지 찜찜하다.
하지만 갈등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놈들이 제법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 이러다 놓치기라도 하면, 또 다른 크래커가 기회를 가로챌지도 모른다.
‘그럴 수는 없지. 포르투나 님의 입술을 걸고…….’
마침, 마냥 대기하는 데 ‘싫증’도 났다.
손등을 은근슬쩍 입술로 바꾼 페어라이트는, 은신해 있던 모래 언덕에서 일어나 스파이웨어가 포착한 목표물을 추격해 갔다.
바로, 손태준과 이혜림이 탑승한 두 대의 황여우를.
*
나는 이혜림 순경으로 하여금 컨테이너를 철수시켰다.
그녀의 수납 능력은, 우리만 그대로 남긴 채 컨테이너와 그 안의 물건들을 아공간으로 돌려보내는 게 가능했다.
그렇게 컨테이너를 치운 뒤.
황여우를 손태준과 이혜림이 있는 위치에 소환했다. 정확히 운전석에 오도록.
그런 다음, 황여우를 출발시켰다.
그러자마자 퍽 하고 버기카의 표면이 움푹 파이며 불꽃이 튀었다.
나는 거기에 개의치 말고, 적당한 속도로 차를 몰게 시켰다.
그러자 얼마 후.
좀 떨어진 모래 언덕 위에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