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12부 : 열사의 제국에서 (16)
내가 어릴 때, ‘유체 이탈’이라는 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산 채로 영혼을 몸에서 빼내는 행위인데, 명상 등을 통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고 나면 육체와 가느다란 줄 같은 것으로 이어진 영혼이 자유롭게 유영하며 돌아다닌다고.
요즘도 간혹 드라마나 영화, 애니 등의 소재로 쓰이는 현상이다.
솔직히 나는 명상한답시고 졸다가 착각한 게 아닌가 의심했었다.
실제로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그 유체 이탈이라는 것을 하면 지금 같은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허공에 떠서 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투명한 돔 밖에 나온 채로.
내 발아래에 연기가 반구 형태로 뭉쳐 있었기에 돔 바깥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연기가 자욱한 돔 안에 쓰러진 채였다.
‘한심하네, 나도.’
언뜻언뜻 연기 사이로 다른 파티원들도 보였다. 다들 정신을 잃었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이다.
‘구해야 하는데…….’
그렇게 초조해하는 한편으로는 냉철한 내가 있었다.
‘왜 저것들까지 내가 책임져야 하지? 이 안에 들어온 목적만 빠르게 수행하면 되지 않나?’
‘아니지. 혼자 못 해내니까 함께 온 거잖아.’
그러다 퍼뜩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저 아래에 보이는 저게, 정말 내가 맞나?
아니, 그렇잖아.
어떻게 한 장소에 두 명의 내가 존재할 수 있느냐고.
게다가 아까부터 뭔가 나 아닌 다른 존재의 생각이 동시에 전해지는 것 같다.
손으로 얼굴을 더듬어 만져보았다. 얼굴 표면이 매끄럽고 딱딱했다.
이 모양은…….
“해골 가면…….”
나는 중얼거리며 눈을 떴다.
“정우, 괜찮냐?”
윤성이가 나를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있었다. 옆에서 김태훈이 말했다.
“해골 어쩌고 하는 거 보니까 머리가 정상이 아닌 모양인데?”
“헛소리 좀 하지 마, 형.”
나는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았다.
“가스! 독가스는?”
“해결됐어.”
“어떻게? 다들 무사해?”
윤성이 대답 대신 한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언제나처럼 무심한 얼굴의 최혜인과 옆에 딱 붙어 있는 외눈의 검사, 악투샤가 있었다.
“최혜인 기사님이 타이밍 좋게 와서, 밖에서 벽을 부숴 주셨어. 다른 사람들도 다 무사해. 네가 의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이, 주위를 정찰하러 갔어. 이혜림 순경은 소환한 컨테이너를 수리 중이고.”
“아, 그랬구나. 다행이다.”
내가 정신 차린 걸 본 최혜인이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치유 스킬을 썼는데도 마지막까지 의식이 안 돌아와서 걱정했습니다.”
“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아마, 내 정신이 늦게 돌아온 이유는 발진 작용제 가스 탓이 아닐 것이다.
의식을 잃은 사이에 뭔가를 봤다.
아니, 접했다.
분명, 그로 인해 정신이…….
“어라? 나, 뭘 본 거지.”
어쩐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떠오르는 거라고는 꿈에서 반복해서 본 해골 가면의 사내뿐.
‘꿈에 나온 그 남자와 뭔가 연관이 있는 건가…….’
여전히 멍해 있는 내가 걱정됐는지, 윤성이가 재차 물었다.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수포가 생긴 부분은 다 치료했는데.”
“응. 그, 페어라이트는 어떻게 됐어?”
“페어라이트?”
“아, 그 사나운 반달곰처럼 생긴 인베이더 말이야.”
“완전히 연소해서 사라졌어. 끝에는 이것만 남았는데, 드랍 아이템인지 뭔지 잘 모르겠어.”
윤성이가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새끼손톱만 한 작은 칩이었다.
나는 그것을 받으며 말했다.
“꼭 마이크로SD 카드나 유심칩처럼 생겼네.”
“우리도 그런 얘기 했어. 그리고 너라면 뭔가 알지 않을까 하고.”
나는 진실의 눈으로 칩을 확인했다.
<죄악의 기억>
세계의 비밀에 대한 정보가 담긴 하이퍼 메모리 카드입니다.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특정 장비가 필요합니다.
타입 : 하이퍼 메모리
기능 : 없음
내구도 : 12
소유주 : 포르투나
가치 : ?
처음 보는 타입의 아이템이다.
즉, 세파시에도 없던 아이템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어쩐지, 매우 중요한 물건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자고로 비밀 정보치고 중요하지 않은 게 없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소유주의 이름.
‘포르……투나?’
‘포르투나’라는 이름이 마음에 걸린다.
크래커의 이름은 분명 페어라이트였다.
페어라이트에게서 나온 잔여물의 소유주가 포르투나라는 존재라면.
‘페어라이트를 보낸 게, 그 포르투나라는 놈인가?’
포르투나, 포르투나.
어쩐지 낯설지 않다. 분명히 처음 보는 이름인데도.
“그게 뭔지 알겠어?”
묻는 김태훈에게 적당히 답했다.
“짐승형 인베이더와 이 던전의 정보가 담긴, 일종의 메모리카드 같아. 그런데 지금은 내용을 확인할 수가 없네. 다른 아이템이 있어야 작동하는 식이어서.”
“흐응, 그렇군.”
마침, 손태준과 류경재 등이 돌아왔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오, 이정우 기사! 정신이 들었군. 괜찮은가?”
“네, 총경님.”
위급한 상황에서의 작전 지시와 적의 정보 등, 파티장은 은연중에 내가 되어 있었지만.
공식적으로는 어디까지나 두 사람이 리더였다.
나는 둘에게 메모리 카드의 존재를 설명하고 처분을 물었다.
“그런 거라면 잘 보관하는 게 좋겠군.”
이혜림 순경의 아공간에는 보관할 수 없다.
미리 좌표를 정해두고 수납하는 식이어서 빈자리가 없는 까닭이다.
이는 해당 좌표의 물건이 없어져도 마찬가지다.
“일단 제가 가지고 있겠습니다.”
내게는 인벤토리가 있다. 현실 세계의 아이템은 보관할 수 없는 대신, 세파시와 겹치는 아이템이나 다크 스톤 같은 드랍 아이템, 던전 부산물 등은 거의 무제한으로 넣을 수 있다.
“음, 그렇게 하지.”
“그게 좋겠네.”
손태준과 류경재는 거의 동시에, 아무 이의 없이 수락했다.
“……괜찮으시겠어요?”
손태준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네놈이 온갖 물약이며 희한한 물건들을 어딘가에서 꺼내는 건 알고 있다. 아마, 아공간 관련된 스킬 같은 거겠지. 거기 잘 넣어둬.”
“알겠습니다.”
그렇군.
내가 파티원들을 분석하고 서포트하는 만큼, 그들도 나를 관찰하고 있는 건가.
하긴, 함께 던전 공략까지 시작한 이상, 언제까지고 다 숨길 수는 없다. 던전 공략은 짧게는 몇 시간이지만 길게는 몇 달도 걸리는 까닭이다.
그 기간은 일거수일투족을 보면서 함께 행동하게 된다.
‘우리 가족을 구하려고 공략대에 참여했을 때 예상한 거잖아. 그럴듯한 설명이라도 생각해두는 편이 좋겠네.’
그때, 이혜림 순경이 외쳤다.
“다 됐슴다!”
그녀는 얼굴이 벌게져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만능 컨테이너를 수리하느라 고생 좀 한 모양이다.
“수고했다, 혜림아.”
“아님다, 총경님!”
나는 이혜림 순경에게 물었다.
“궤도 사격 때문에 거의 만신창이가 됐는데, 그걸 고칠 수 있어요?”
“넵. 보관한 장비의 수리도 제 능력의 일부임다. 크고 복잡한 물건일수록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충분히 가능함다!”
“그렇군요. 진짜 대단해요.”
“과찬이심다!”
파티원들은 수리를 마친 만능 컨테이너에서 휴식을 취했다.
“반경 5킬로미터 정도까지는 샅샅이 확인하고 온 것 같군. 설마 그 거리 밖에서도 저격하는 놈은 없겠지.”
나는 말하는 손태준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시간을 빼앗아서…….”
“별소리를. 네가 아니었으면 아까 크게 낭패를 볼 뻔했다. 파티원이 회복하길 기다리는 건 당연한 거다. 설령 그로 인해 공략 시간이 늦춰져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페어라이트 놈과 정신없이 싸우느라 이진욱의 죽음을 애도하지도 못했다.
내가 비록 방구석 폐인처럼 수십 년을 살았지만,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는 안다.
“저, 이진욱 기사님 일은…… 진심으로 유감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어린 녀석이 제법 어른스럽게 예를 표할 줄 아는구나. 고맙다. 그 녀석도 기사였으니까, 언제든 이런 곳에서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각오는 했을 거다.”
“네…….”
“처음 나타난 형태의 던전을 공략하던 중이었고, 혜인이가 직접 시신을 수습해 줬으니 녀석 딴에는 호사스럽게 죽은 셈이지.”
말은 그렇게 해도, 손태준의 눈가는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그가 사신 기사단에 속한 기사와 제자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아는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원래 이진욱은 이때 죽을 운명이 아니었다.
내가 회귀해 오기 직전까지도 사신 기사단을 이끌면서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나로 인해 운명이 바뀐 셈이다.
어차피 내가 죽지 않고 과거로 온 자체가 역사를 바꾸는 일이지만, 본격적으로 뒤틀리기 시작한다는 실감이 났다.
그래서인지 손태준에게 더 미안했다. 나로 인해, 이진욱이 예정에 없던 죽음을 맞이한 것 같아서.
“진욱이의 원수를 내 손으로 직접 처단하지 못한 게 아쉽긴 하구나.”
그런 기분 때문인지, 나는 손태준에게 원래 얘기할 마음 없었던 정보를 털어놓았다.
“그놈은 크래커라는 종류의 인베이더입니다.”
“크래커?”
“네. 기존의 인베이더보다 더 강하고…….”
나는 섭리의 충돌에 대해 말하려다 말았다. 지나치게 얘기가 길어진다.
“형태와 무관하게, 뭔가 기사에 더 가깝다는 느낌입니다. 앞서 나타났던, 와이어를 쓰는 소녀도 크래커였고요.”
손태준은 내게 크래커라는 존재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냥 묵묵히 내 얘기를 듣기만 했다.
그때, 류경재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 던전에는 그런 크래커라는 것들이 계속 출몰하는 건가?”
“확실하진 않지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으음…….”
류경재 총경은 침음성을 뱉었다.
이미 그 크래커의 기습에 기사 하나를 잃었다. 그것도 무려 사신 기사단의 부단장이다.
파티원들에게는 심각한 일로 여겨질 만했다. 물론, 나에게도.
“그리고, 그 크래커를 우리에게 보낸 존재가 있는 것 같아요.”
“뭐라고!”
착 가라앉아 있던 손태준의 눈빛이 사납게 번득였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파티원도 반색했다. 김태훈이 내게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설명하기에는 어려운데…… 뭔가 패턴이 있어. 처음에 나왔던 그 여자애도 그렇고, 이번 것도. 그리고 우연히 마주친 게 아니라, 분명 의도를 가지고 우리를 추격해 왔잖아.”
“음, 그건 그렇지.”
“그 말인즉슨, 우리 위치를 파악하고 그것들을 보낸 존재가 있는 거지.”
조설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게 이 던전의 보스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크래커라는 인베이더들도 그렇게나 강했는데, 그걸 우리한테 보낸 장본인은 엄청나게 세겠네.”
손태준이 무거운 분위기를 깨고 으르렁대듯 내뱉었다.
“그게 어떤 존재든 간에, 내가 반드시 찾아서 찢어 죽일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진욱이의 영전에 바칠 거다.”
“그러셔야죠. 저도 돕겠습니다.”
“고맙소, 총경.”
나는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그들을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이 세계 - 그러니까 던전에 침입해온 건 우리다.
그들은 우리를 격퇴한 것이고.
하다못해 벌이나 개미조차, 자신들의 보금자리에 들어온 이종(異種)을 그냥 두지 않는다.
그런데 정당방위에 당한 주제에, 이렇게나 원한을 불태우다니. 이게 정상일까?
그리고 우리의 기준이 아니라, 저들의 시각에서 생각하는 나는 정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