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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게이머는 파멸을 거부한다-204화 (204/303)

204화

17부 : 멸망하는 세계의 층 (4)

나는 착지와 동시에, 파티원 전체에 파티챗을 날렸다.

-모두 잘 들으세요. 지금부터 저 공룡을 잡을 겁니다. 혹시 다치신 분은 무리하지 말고 뒤로 빠지시고요, 원거리 딜러는 엄호 부탁할게요.

그러자마자 반응이 왔다.

퓻!

흙먼지를 뚫고 섬광이 뻗어 나와 아르겐티노 사우르스의 왼눈을 맞혔다.

밑에서 위로, 곡사로 맞혀야 함을 고려하면 신기에 가까운 활 솜씨라 할 만했다.

‘최혜인!’

내가 챗을 날리자마자 바로 호응해준 것이 고맙다.

아무리 바늘이라고 해도, 눈을 찔리면 아프고 시야가 흐려진다.

잠깐 멈칫했던 아르겐티노가 발광하기 시작했다.

“우왓!”

축구공만 한 바위가 대포알처럼 날아와, 차윤성의 관자놀이를 스쳤다. 놀란 윤성이가 어깨를 움츠렸다.

“조심해. 다들 왼쪽으로 돌아가자.”

나는 차윤성, 조설아와 함께 아르겐티노의 왼쪽으로 우회하여 돌아갔다. 화살에 왼눈을 맞았으니 그쪽 시야가 어두우리라는 판단에서다.

그렇다고 모조리 왼쪽으로 몰려오면, 아르겐티노도 눈치채고 돌아설 것이다. 다행히 이럴 때는 김태훈이 이목을 끄는 역할을 해줬다.

“와, 이놈 머리 겁나 단단하네.”

김태훈은 아르겐티노의 정수리를 귀혼으로 마구 찍었다.

직접적인 타격은 못 입혔으나, 그때마다 공룡이 움찔거리는 거로 봐서 대미지가 누적되기는 하는 듯했다.

‘귀혼이나 할파스의 마력으로, 머리 내부에 충격이라도 주는 건가?’

거기에 더해, 최혜인은 틈날 때마다 화살을 날려 아르겐티노의 눈이며 코 주변을 노렸다.

화살에 한 번 맞아본 아르겐티노는 이 공격이 꽤나 위협적임을 깨달았다. 이에 긴 목을 위로 쭉 뻗어 흐느적대며 피하느라, 나와 윤성이, 설아를 거의 신경 쓰지 못했다.

덕분에 우리는 아르겐티노의 발치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설아가 막막한 얼굴로, 고개를 한껏 젖혀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무슨 공격을 한다고 통하기는 할까, 정우야? 발목을 겁나 때려야 하나?”

“음…….”

막막해하기는 윤성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르겐티노와 우리의 크기는 20배나 차이가 난다.

그것도 단순 높이만 쳐서 그런 거고, 몸통 크기와 질량까지 치면 차이는 더 벌어진다.

말 그대로, 개미보다는 좀 큰 곤충 - 사마귀나 말벌 같은 게 인간에게 덤벼드는 거나 다름없다.

‘당랑거철(螳螂拒轍 - 사마귀가 앞발을 들고 수레를 위협함)이라는 고사가 괜히 나온 게 아니구만…….’

하지만 우리는 무모한 사마귀와는 다르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강하기도 하고, 우리 분수를 정확히 알고 있다.

“그렇게 하자.”

“응?”

“한쪽 발목만 집요하게 치는 거야. 고목 같은 걸 찍어 넘긴다고 생각하고.”

나는 두 사람에게 그 이유를 간단히 설명했다.

현재, 공룡의 머리는 김태훈과 최혜인이 끈질기게 공격하는 중이다.

어차피 몸통에는 제대로 공격이 먹히지도 않을뿐더러, 매번 엄청난 높이를 뛰어올라야 하므로 효율도 나쁘다.

뒷발이나 꼬리는 시야가 잘 닿진 않겠지만, 휘두르는 꼬리가 너무 위협적이다.

한번 스치기라도 하면 나는 무사하다고 쳐도, 애들은 방어구와 무관하게 곤죽이 될지도 모른다.

‘명검을 막아내는 갑옷이라고 해도, 위에다 언덕을 떨구는 데는 장사 없지.’

아르겐티노 사우르스의 다리는 어마어마한 체중을 지탱하고 있다. 그런 만큼 굵고 튼튼하겠지만, 그중 하나만 손상을 입어도 그대로 쓰러질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앞다리. 그중에서도 시야가 약해진 왼쪽 앞다리의 발목 부위를 노린다. 거기가 현실적으로 제일 먹힐 가능성이 커. 앞다리는 꼬리로 방어하기에도 쉽지 않고.”

빠른 투로 말한 내 설명에, 윤성이와 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해 보자.”

“어쩌면 될 것 같기도!”

“절대로 무리는 하지 마. 공룡이 앞발을 들면 즉시 멀어진다. 들어 올린 다리는 언젠가는 내려야겠지. 그럼 다시 덤벼들어서 공격하고. 치고 빠지는 타이밍을 잘 조절해야 해.”

“오케이.”

“알았어!”

“그럼, 가자.”

콱!

나는 독하게 마음먹고, 신창 롱기누스를 소환하여 발목 부위를 힘껏 찔렀다.

창날이 30센티미터 정도 들어갔다가 빠져나왔으나, 아르겐티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람으로 치자면 3밀리 정도 찔린 셈이려나? 인간보다 통각도 둔할 테고…….’

문제는 출혈조차 없다는 거다.

신창 롱기누스는 갓 등급 아이템다운 무시무시한 옵션이 붙어 있다. 회복 불가, 대상과 같은 레벨의 출혈 발동, 방어력 무시라는 옵션이다.

방어력 무시 옵션 덕에, 두꺼운 가죽을 쉽게 뚫고 찔렀다. 그런데 가죽이 얼마나 두꺼운지, 출혈이 생길 정도의 깊이까지 창날이 닿지를 않는다.

‘황당하네.’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질량과 육체가 무기 그 자체다.

당혹스러워하기는 윤성이도 마찬가지였다.

“와, 미치겠네.”

사실, 윤성이의 나이트 기어인 ‘광전사의 검’은 아르겐티노 사우르스 같은 적과 상성이 좋지 않았다.

적을 약화하는 게 아니라, 윤성이 자신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까닭이다.

대표적인 것이 이름과 연관 있는 고유 스킬, ‘광란’이다.

상대가 인간이라면, 몸 사리지 않고 미친 듯 덤벼드는 저돌적인 상대가 두려울 수 있다.

그러나 개미가 미쳐 날뛰어 봐야 개미다. 차라리 바퀴벌레 같은 게 마구 날아다니면 혐오스러워서 도망치기라도 하지.

힘과 속도 증가, 저항력 증가 등의 옵션도 비슷한 이유로 큰 의미가 없다.

결국, 윤성이는 대검 타입인 광전사의 검으로 내리찍는 식의 공격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거죽 표면이 약간 파이거나 긁히는 정도에서 그쳤다.

설아도 난감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윤성이의 무기가 아르겐티노와 상성이 나쁘다면, 설아는 클래스 자체가 최악의 상성이다.

설아의 나이트 기어인 ‘세계수의 가지’는 톤파 형태의 봉이다.

관절기나 던지기, 꺾기 스킬을 사실상 쓸 수 없으니, 톤파로 후려치거나 찍는 식의 공격을 해야 한다.

칼날을 벼린 창검도 안 먹히는데 둔기 타격이 먹힐 리가 없다.

“에잇! 얍!”

설아가 톤파를 휘두를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났으나, 아무 반응도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레이저의 모노와이어라면 발목 정도는 자를 수 있을지도…….’

나는 잠깐 이 생각을 떠올렸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그녀에게 의존해서는 안 돼.’

레이저는 롬 제국의 가르바로 살다가 겨우 기억을 되찾은 제임스 기사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살해했다.

그 행위 자체도 소름 끼쳤으나, 내가 제임스에게서 어떤 정보를 얻을까 우려하여 사전 차단한 의도가 빤히 보였다.

레이저를 뜻대로 움직이는 듯한, 수수께끼의 마스터라는 존재도 마음에 걸렸고.

‘도움 좀 받았다고 해서, 그런 상대를 믿을 수는 없지. 그럴 거면 애초에 전력 외로 분류해 놔야 전투 시 착오가 생기지 않는다.’

아까 밟힐 뻔했다가 도움받은 것은 돌발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돌발상황을 믿고 던전 공략을 계속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결국, 우리는 정말 사마귀라도 된 것처럼, 하릴없이 기둥 같은 발목을 찌르고 때리고 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공격을 퍼부었을까.

“먹혀라, 좀!”

내가 무수히 찔렀던 자리를, 땀범벅이 된 설아가 온 힘을 다해 후려쳤고.

퍼억!

이제까지와 좀 다른, 더 둔중하고 울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거수는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다리를 가볍게 터는 동작에 불과했지만, 여파는 컸다.

“우왓!”

“꺅!”

돌풍과 함께, 우리 셋 모두 나가떨어져 버린 것이다.

“아얏!”

엉덩방아를 찧은 설아는 그 자리에서 일어설 생각도 않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건 무리야…….”

“벌써 포기하지 마!”

“벌써가 아니라고. 한 시간은 쉬지 않고 때린 것 같은데.”

말이 한 시간이지, 프로 싸움꾼이라 할 수 있는 이종격투기 선수들도 3분 5라운드를 마치면 파김치가 된다.

“열 시간이라도 쳐야 해.”

이를 갈며 일어난 윤성이가 재차 공룡에게 돌진하려 했다. 그러다 웅덩이에 발이 빠져 휘청하고 크게 넘어지고 말았다.

“끄악!”

아무리 웅덩이나 돌이 있어도, 원래라면 그런 일이 생길 리 없다. 윤성이도 기사의 신체 능력을 가졌으니까.

다리의 힘이 빠질 정도로 지쳤다는 얘기다. 기력은 물약으로도 인위적으로 회복이 안 되는 요소다.

설아가 벌떡 일어나 윤성이에게 달려갔다.

“윤성아, 괜찮아?”

“아오, 이런 곳에 왜 웅덩이가…….”

“아까 공룡이 꼬리 막 휘둘렀을 때, 나무가 뿌리째 뽑히면서 생긴 거 같아.”

나는 둘의 곁으로 다가왔다가 그 대화를 들었다. 순간, 뭔가가 퍼뜩 뇌리를 스쳤다.

아르겐티노 사우르스의 다리는 강철 같은 뼈대와 칼날도 잘 안 들어갈 정도의 두꺼운 가죽으로 보호되고 있다.

거기다 크기 자체가 워낙 커서, 타격을 입히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공룡이 발을 헛디딜 정도의 구덩이를 판다면?’

한쪽 다리의 높이를 대략 5미터라고 치고.

완전히 다 빠지게 하는 것보다, 무릎 정도까지 빠뜨리는 편이 낫다. 그럼 3미터 정도만 파도 되니까 구덩이를 빠르게 만들 수 있고, 그편이 뼈나 관절을 다치게 할 확률도 높아진다.

‘더구나 이곳의 지형은, 대부분 무른 석회암으로 이뤄져 있다. 땅을 파는 쪽이 공룡의 몸에 상처를 내는 것보다 훨씬 쉬워.’

내가 잠깐 멍해지자, 설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정우야, 너도 힘들지?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어.”

“네 말이 맞아. 방법을 바꾸자.”

“응? 어떻게…….”

“땅을 파는 거야. 방금 윤성이가 넘어진 것처럼, 아르겐티노가 발을 헛디뎌 넘어질 정도의 구덩이를.”

내 설명을 들은 설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덩달아 입 모양도 동그래졌다.

“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대박. 천재다.”

“무슨 천재까지. 발상의 전환이지.”

근처에 다른 구덩이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공룡이 미리 인지할 수 있었던 데다, 너무 얕거나 좁아서 피해 가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만들 구덩이는 얘기가 다르다.

너비도 깊이도 인위적으로 아르겐티노의 발 크기에 맞춰, 넘어뜨리는 데 최적화한 구멍을 팔 거니까.

또, 아무것도 없던 땅에 갑자기 생겨난 구덩이라면 효과가 더 클 것이다.

“발 바로 앞에다 파면 되겠지?”

“응. 구덩이는 내가 팔게. 적당한 스킬이 있거든. 너희는 계속 발목 부위를 공격하면서 주의를 끌어줘.”

“알았어!”

윤성이와 설아는 다시 아르겐티노에게 달려갔다.

나도 둘의 뒤를 따르면서, 구덩이 팔 위치를 계산했다.

좀 전부터 아르겐티노는 발을 거의 땅에서 떼지 않았다. 서 있는 자리에서 좀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눈으로 계속 날아오는 최혜인의 화살과.

머리에 붙은 커다란 빈대 같은 김태훈이 이동을 방해하는 것이다.

‘역시 왼쪽 발이 낫겠지? 오른쪽보다 잘 안 보일 테고. 조금만 전진해도 바로 빠지도록, 발에서 2미터 정도 앞에다가.’

나는 아르겐티노 사우르스의 움직임을 계속 살피는 동시에, 지정한 위치에 스킬을 발동했다.

천상의 창!

무수한 빛의 창이 허공에 나타나 지면에 꽂혀 폭발했다. 그 반응에 따라, 마력을 세밀하게 조절하여 내가 원하는 규모의 구덩이를 만들었다.

“됐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아르겐티노 사우르스가 굳건히 버티고 선 채, 뒤로도, 앞으로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망할……. 그냥 발밑을 바로 파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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