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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게이머는 파멸을 거부한다-227화 (227/303)

227화

18부 : 마계 통일 대전의 층 (8)

고르카는 나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신입 주제에, 천마장을 상대하는 데 가겠다고?”

그런데 귓속말을 통해 한 말은 전혀 달랐다.

「그럼 안 가려고 하셨어요?」

나도 같은 방식으로 답했다.

“네. 저와 동료들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가야 해요. 퀘스트가 걸려 있어서.」

퀘스트라는 말에, 고르카가 반응했다.

「그거 봐요. 퀘스트가 있잖아요. 여기가 게임 속이라는 뜻이죠. 그만 인정하고 받아들여요.」

「아, 말하자면 긴데. 던전에서는 원래 퀘스트가 떴거든요?」

「던전에서는 원래? 그럼, 밖에서는요?」

「그건…….」

「스캐빈저 님한테만 퀘스트가 떴겠죠? 그게 플레이어라는 증거라고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역시, 나와 비슷한 시대를 겪은 지인이 제대로 과몰입하니까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이걸 설명하려면 회귀와 리스타트 능력까지 말해야 하는데…….’

그럴 상황이 아닐뿐더러, 구구절절 말해 봐야 믿을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적당히 넘어갔다.

「아이고, 알겠습니다. 그럼 뭐, 일단 이번 퀘스트를 깨 보면 되겠네요. 고르카 님은 여기에 계속 있어도 전 나갈 거니까.」

「그…….」

고르카가 뭔가 더 말하려 할 때였다.

“카르고 님. 서둘러야 합니다!”

코커스가 초조한 듯 우리를 채근했고, 그 말을 증명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쾅! 쿠콰쾅!

“으아아악!”

“캬오오오!”

뭔가 터지고 부서지는 소리.

비명과 괴성, 포효가 뒤섞인 소리였다.

악마와 악마가 싸우는 전투의 소리다. 아무래도 적들이 가까이 온 모양이다.

“……가자.”

우리는 앞장선 고르카를 따라 막사를 나왔다. 그러자 레이저가 내 옆에 따라붙었다.

“뭐야, 계속 막사 근처에서 기다렸어요?”

“네.”

“에휴, 참.”

막사 앞에는 이미 카르고 부대 소속의 악마들이 도열해 있었다.

곤충형, 식물형, 야수형, 뭔지 알 수 없는 괴물형, 우리와 비슷한 인간형 등 생김도, 크기도 다양하다.

그 안에 자연히 파티원들도 함께였다. 이변을 듣고 호출받은 모양이다. 다만, 이혜림 순경은 안 보였다.

‘하긴, 이런 난전에는 안 어울려. 그렇다고 중화기를 쓰기에도 애매하고.’

나를 본 류경재 총경이 손짓해 보였다. 설아는 입 모양으로 말했다.

-뭐가 왔어.

나는 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고르카에게 말했다.

“이만 파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음.”

“혹, 우리 파티는 대장 근처에 있어도 될지요?”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든가. 난전이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내가 고르카 곁에 있으려 한 이유는, 당연히 그를 지키기 위해서다.

나는 악마 무리 속으로 들어가, 파티원들 틈에 섞여 섰다. 고르카는 짧고 굵게 연설했다.

“지금부터 제폰 놈과 그 쫄따구들을 쳐죽이러 간다. 내가 잡은 놈들의 핵은 못 잡은 놈들한테 똑같이 나눠줄 테니, 오로바스 님의 지원이 올 때까지만 재주껏 살아남아라.”

“옛!”

근처에는 우리 같은 50마리의 악마를 거느린 부대가 몇 있었다. 그게 일제히 움직이자 나름대로 장관을 이뤘다.

‘하지만 대부분 죽겠지.’

이 협곡에 있는 악마의 수를 다 합쳐도 500마리가 채 안 된다.

전력에서 밀리는데 지휘관도 천마장이라는 개체. 모르긴 해도 그 제폰이라는 놈 혼자 이 자리의 악마를 다 몰살할 수도 있으리라.

‘우리 파티와 고르카가 없었다면 말이야.’

고르카는 확실히 힘을 숨겨왔다.

그저 생존이 목적이었기에, 고기 방패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지위를 유지해온 것이다. 예컨대 10장 정도의.

그랬던 것이, 나의 등장으로 상황이 좀 달라졌다.

일단은 모처럼 만난 - 그의 표현대로라면 같은 ‘플레이어’이자 지인인 나를 자신의 그늘에 넣기 위해 힘을 드러낸 것이다. 50장인 말 대가리 악마 정도는 단숨에 벨 정도의 힘을.

‘지지부진하던 전선을 깨뜨리고, 고르카가 속한 아스모데우스 휘하 부대의 방어가 약해진 틈을 찔러 온 것은 그래서겠지. 마계도 보이지 않는 시스템의 개입을 받고 있는 거야. 아마, 레이저가 모신다는 주인들 같은.’

어쩌면 고르카가 말한 운영자라는 게 그 주인들일지도 모른다. 그가 한 얘기와는 별개로, 초월적 존재를 어렴풋이 감지할 수는 있으니까.

아무튼, 이건 퀘스트의 일부이자 시험이다.

‘가뜩이나 장기형 퀘스트다. 이 기회에 단숨에 제폰을 잡아서, 고르카를 천마장에 올리고 첫 번째 퀘스트를 깬다.’

나는 이런 내용을 다른 파티원들에게도 전달했다.

다만, 카르고의 정체가 내 지인인 고르카이며 과몰입 증후군에 걸린 기사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괜한 감정이 끼어들까 우려도 되고, 행여 레이저가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염려되어서다.

레이저가 가르바, 그러니까 제임스 그린을 가차 없이 죽이던 모습이 오버랩됐다. 고르카에게도 그러지 말란 법이 없었다.

‘방화벽 스킬과 철저하게 귓속말을 통한 대화……. 분명, 고르카는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았어. 자신이 이 세계, 마계의 구성원처럼 보이기를 바랐다.’

레이저와 적이 되기 싫다. 나는 이런 마음을 문득 깨닫고 멈칫했다.

그녀의 막강한 전투력 때문이 아니다. 그저 싸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왼쪽 옆에서 달리는 류경재 총경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러면 최우선 목표는 저 카르고라는 악마의 보호, 두 번째는 제폰의 섬멸이 되겠구먼.”

“네, 그렇죠. 이혜림 순경은요?”

“컨테이너에 남게 했네. 내부에 화기도 설치했고 외부 침입도 거의 불가능하니까 안전할 거야.”

“잘하셨네요.”

오른쪽 옆에 있던 김태훈이 여느 때처럼 심드렁하게 말했다.

“막타는 되도록 카르고가 치게 해줘야겠네?”

“그러면 더 좋겠지.”

“쩝, 남 좋은 일 하는 취미는 없는데.”

“우리한테도 좋은 일이야.”

“하긴.”

제폰과 그 수하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금세 알 수 있었다.

협곡을 따라가다 보니 끔찍한 소리가 점점 커졌다.

“끄아아악!”

“캬아아아악!”

이 세상 것이 아닌 존재들이 내지르는, 독기와 증오에 가득 찬 괴성. 그리고 단말마들.

곧, 어지간한 김태훈도 표정이 살짝 굳을 정도의 참상이 펼쳐졌다.

“크하하하, 죽……어라! 아스모데우스의……잔챙이들!”

암석 거인이 외치면서, 승용차만 한 주먹을 마구 휘둘러 댔다. 거기에 맞은 하급 악마들이 썩은 과일처럼 터졌다.

퍽! 퍼석!

그럴 때마다 푸르스름한 색과 녹색이 뒤섞인 내장이며 혈액 같은 것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끼에에엑!

상어의 머리에, 팔 대신 독수리 날개가 달린 악마가 암석 거인의 뒷덜미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입을 한껏 벌려, 그대로 목을 깨물었다.

와그작!

“꾸에에엑!”

암석 거인의 목 뒷부분과 상어 머리의 이빨이 동시에 깨져나갔다.

상어 머리의 이빨은 순식간에 다시 돋아났다. 그리고 목 뒤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내면서 쓰러지는 암석 거인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아니, 날아오르려 했다.

하지만 발목을 잡아채여 뜨지 못했다.

여덟 개의 팔이 달린, 또 다른 악마가 상어 머리 악마를 붙잡은 것이다.

여덟 개의 팔 악마는, 상어 머리 악마의 양 날개와 다른 다리마저 붙잡고 그대로 찢어버렸다.

그 직후 여덟 개의 팔 악마 또한, 위에서 떨어진 불덩어리에 휩싸여 숯이 되어버렸다.

손태준이 혀를 끌끌 찼다.

“복마전이 따로 없구만.”

내 뒤에 있던 닭 머리 악마, 코커스가 말했다.

“방금 불덩어리를 뱉어낸 놈이 바로 제폰이다.”

“불을 다루는 놈인가 보네?”

“아몬의 권능을 나눠 받은 거다. 아몬이야말로 불의 화신, 불의 후작이라고 불리는 대악마니까.”

“오올.”

코커스는 참모 겸 악마 명부 전문이라나.

아무래도 마계의 닭 대가리는, 우리 세계의 닭 대가리와 의미가 많이 다른 모양이다.

‘화속성 원거리형 딜러네.’

제폰은 옛날 SF 영화에서 본 에일리언을 똑 닮았다.

다만, 영화에서처럼 눈이 퇴화한 게 아니라, 화등잔만 한 눈이 우리 있는 데서도 보일 만큼 벌겋게 이글거렸다. 몸 전체가 시커먼데 눈만 붉었다.

‘시력도 좋겠고.’

놈은 교활하게도 선두에 있지 않았다. 병력이 훨씬 많은데도 맨 뒤에서 불덩어리만 난사해 댔다.

그 불덩어리는 때로 제 졸개를 맞히기도 했으나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신중하면서 무자비한 성격.’

최종 퀘스트의 일부답게 꽤 난이도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래 봐야 천마장일 뿐.

우리 파티의 전력은, 군단장에 해당하는 마신도 감당할 수 있다.

그런데 고르카는 어떨까?

진실의 눈이 방화벽 스킬에 막혀서 그의 능력치를 제대로 못 봤다.

하지만 답은 곧 나왔다.

「에휴, 악마이긴 한데. 그래도 내 부하놈들이라고 막 죽어 나가니까 기분이 영 별로네. 빨리 끝냅시다.」

고르카의 귓속말이 들려온 것이다. 제법 떨어진 곳에 있는데도 똑똑하게 들린다. 이거 편하네.

‘그러고 보니, 세파시 게임에서는 시야에 닿는 곳까지가 범위였던가? 시선으로 대상을 지정하니까.’

나도 귓속말로 답했다.

「어쩌려고요?」

「음, 피차 너무 눈에 띄면 피곤해지니까요. 스캐빈저 님 일행이 제폰 바로 앞까지 길을 열어준 뒤에 힘이 다하고, 그 틈에 내가 저놈을 처리하는 걸로 하죠.」

「적당히 힘겨워 보이면서 길을 여는 데까지는 쉬운데, 그런 뒤에 고르카 님 혼자 제폰을 처리할 자신 있어요?」

「말했잖아요.」

귓속말을 통해서도 고르카의 웃음기가 느껴졌다.

「힘을 숨겨왔다고.」

「좋아요. 그걸로 가죠.」

나는 파티원들에게 작전을 말했다.

“우리가 직접 죽이면 안 되고, 너무 센 것처럼 보여도 안 되니까. 제폰 앞까지는 우리가 길을 뚫은 다음, 카고르가 따라오면 적당히 돕죠.”

“콜.”

“그게 좋겠네.”

우리는 즉시 움직였다. 늘 그래온 것처럼 김태훈이 선두에 서고, 손태준은 맨 뒤로 빠졌다.

김태훈은 속도와 예리함으로 길을 열고, 손태준은 후방과 측면을 방어하기 위해서다.

치유 능력이 있는 나와 윤성이가 가운데, 류경재 총경과 조설아가 두 번째에 섰다.

“자, 그럼.”

허공에 손을 뻗어 검은 목검, 귀혼을 소환한 김태훈이 고개를 양쪽으로 꺾었다.

“또 목숨 좀 거둬 볼까?”

지켜보던 닭 머리 악마 코커스가 사뭇 걱정스러운 듯 부리를 열었다.

“무리하지 마라. 신참들은 전공을 세우는 대신…….”

투확! 퍽!

곧 청녹의 피보라가 일었다. 모두 아몬 진영, 그러니까 제폰이 데려온 악마들의 피다.

“……살아남는 게 우선…….”

설교 비슷한 걸 하려던 코커스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녀석, 기회주의자인지는 몰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놈이네. 나는 코커스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모님.”

“차, 참모……. 그래.”

코커스는 내 존대가 기분 좋은 듯, 볏의 빨간색이 짙어졌다.

두두두두!

곧, 우리도 김태훈을 따라 돌진했다.

“하하하하하! 꺼져라!”

김태훈은 검은 섬광이 되어 악마의 파도를 헤치고 쇄도했다. 그 압도적 무력은 악마들의 시선을 끌었다.

“인간형, 제법 설치는구나.”

일어선 거북이를 닮은 악마가 김태훈의 앞을 막아섰다. 처음으로 돌진이 막히나 싶었던 순간.

“길막하지 마라, 꼬북칩.”

퍽!

거북이 악마는 정말로 과자처럼 단번에 깨져나갔다.

적당히 하라고 했는데, 신났구만. 저거…….

그러다가는 의도치 않은 놈의 시선까지 끌게 된다고.

아니나 다를까.

크우우우우 -

입에서 허연 연기를 뿜어내던 제폰이, 김태훈이 다가오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푸확!

불의 후작 아몬의 권능을 나눠 받았다는 파멸의 불덩어리가 김태훈에게 똑바로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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