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18부 : 마계 통일 대전의 층 (27)
서포터가 다급히 정원의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센시! 센시, 안에 없나? 이상하구먼, 이미 강림에서는 돌아왔을 터인데…….”
아슬아슬하게 포르투나와 엇갈렸다. 센시는 그의 출입을 허가하며 말했다.
“무슨 일이야, 서포터 영감?”
“센시, 와 있었나!”
반색하는 서포터에게 센시는 짐짓 시무룩하게 말했다.
“아, 원탁으로 봐서 알겠지만, 쪽팔리게 목표 실패하고 패퇴 당해서. 그런 주제에 강림하려고 개연성 잔뜩 끌어다 쓰는 바람에 몸이 안 좋네.”
서포터는 위로하듯 대꾸했다.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강림 시간 자체도 워낙 짧았던 데다, 막판에 정말로 그 친구…… 카발리어가 나타났으니! 그걸 밝혀낸 것만도 대단하지.”
센시는 몸이 안 좋다는 말을 할 때, 서포터의 입꼬리가 실룩이는 걸 놓치지 않았다.
‘웃는 거 다 보여, 영감. 어쨌든 진짜 목표는 달성했군.’
그러면서 생각과 다르게 말했다.
“고마워. 그런데 큰일이라는 게 뭐야?”
“아아! 마고가…….”
“엉?”
“마고가, 불법 강림을 실행했네!”
예상한 대로다.
그런데도 화가 치밀었다.
마고가 예상대로 움직였다는 사실이, 아서에 대한 그녀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라서.
그래서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치미는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다.
으득.
센시가 진심으로 분노했기에, 서포터는 감쪽같이 속았다.
서포터 또한 다른 목적을 숨긴 까닭에, 거기에 신경이 쏠려 더 쉽게 속기도 했다.
“그래, 그래. 놀라고 화나겠지. 자네가 기껏 힘들게 강림했건만, 못 참고 불법 강림을 해 버렸으니. 이게 이클립스 모두에게 얼마나 큰일인지!”
“자세히 말해봐, 영감.”
“음, 그러니까…….”
서포터가 해준 얘기는 대략 이랬다.
마고는 센시의 강림이 결정된 후부터 모습을 감췄다.
그녀 혼자 강림에 반대했기에,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그저, 본체가 있는 근거지에 틀어박혀 있으리라 짐작했다.
그곳은 마고가 마법을 연구하는 마탑이자 성으로 설정한 곳이기도 한 까닭이다.
한데 강림 상황을 원탁으로 살필 때도 끝내 나타나지 않아, 서포터와 포르투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마법사인 마고는 특성상 강렬한 호기심과 탐구심을 가졌다. 그런 특성은 태어난 직후에 마더 브레인이 뇌의 구조를 예측하고 부여한 것이기에 절대 바뀌지 않는다.
급하게 만든 통로에의 강림은, 몇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드문 이벤트다. 아무리 강림에 반대했다고 해도, 그녀가 그걸 안 볼 리가 없다.
그러다 좀 전, 마더 브레인에게서 긴급 지시가 내려온 것이다.
마고가 허가받지 않고 강림을 시행했으니, 최선을 다해 해당 지역에 개연성을 부여하라고.
“자네는 아마 강림에서 돌아온 직후라 지시가 닿지 않은 모양이네.”
“음, 아직 전뇌성의 일부로 완전히 재구성되지 않았으니…….”
강림은 단순히 목표 지점으로 이동만 하는 게 아니라, 우주를 속여 그 차원의 일부로 인정받는 행위다. 개연성을 확보하여 섭리를 만든다.
그렇다 보니, 일시적이나마 존재의 형태가 완전히 바뀐다.
조금 전까지 센시는 외우주의 신 가운데 하나인 니알라토텝으로 존재했다. 니알라토텝이라고 우주를 속인 것이다.
그래야 그 정도의 강대한 존재가, 갑자기 통로에 나타난 데 대한 개연성이 부여되는 까닭이다.
바꿔 말하면 센시가 센시로서 통로에 나타나는 행위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 상태에서 전뇌성의 이클립스, 센시로 빠르게 돌아오는 중이다.
“……나는 개연성 부여에도 참여 못 하겠군.”
“어쩔 수 없지. 급한 대로 나와 포르투나가 해봄세. 이대로 뒀다가는 마고가 소멸해버릴 판이니…….”
이클립스들은 서로 가족처럼 각별하지는 않다. 그 정도가 아니라 센시처럼 상대를 증오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식 심층의 문제.
그런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어서는 안 되었다.
일원이 위기에 처했다면, 또는 그 사실을 알았다면 - 그에 상응하는 조처를 해야 한다. 외면하는 행위는 허락되지 않는다.
거기에 반했다가는 마더 브레인에 의해 크래커로 격하되거나 일반 시민이 되고, 그 자리는 새로 선발한 이클립스가 채울 것이다.
계속 부재중인 카발리어가 교체되지 않은 것도, 그의 행동이 ‘이클립스와 전뇌성을 적대’하는 것은 아닌 까닭이다.
어쨌거나 표면상으로는, 무분별하게 생겨난 복제 차원을 소멸하기 위해 떠난 것으로 되어 있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랬다.
“마고, 대체 무슨 짓을…….”
분통을 터뜨리는 센시에게, 서포터가 빠른 투로 말했다.
“카발리어가 정말로 거기에 모습을 드러낸 이상, 그녀도 참기 어려웠겠지. 심지어 그것…… 멀린과 함께 말일세. 심경은 이해가 가네.”
“……그 자식, 끝내 그러고 있을 줄은.”
“자네는 여기서 재구성에 힘쓰게. 그래야 뭐든 다시 시도해볼 테니. 마고 문제는 나와 포르투나가 해결하지. 일단,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바로 온 거네. 그래야 자네도 더 재구성을 서두를 테지.”
“으음, 고마워. 그럴게.”
“나와 포르투나까지 움직이면 전뇌성에는 이클립스가 자네밖에 남지 않게 되네. 전뇌성을 잘 부탁하네. 노파심…… 아니, 노옹심(老翁心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하는 말이라네.”
센시는 되지도 않는 개그를 치는 서포터에게 억지로 웃어 보였다.
“하, 하하. 알겠어. 여기는 나한테 맡겨두라고.”
“그럼.”
서포터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흠, 나도 슬슬 가볼까.”
센시는 서포터와 포르투나가 마고의 불법 강림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보기 위해, 천천히 원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일은 그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
분노하여 강림까지 감행한 마고가, 직접 아서와 멀린을 없앤다.
그런 마고를 서포터와 포르투나가 데려온다.
추가로, 어쩌면 포르투나는 멀린을 없애기 위해 마고를 슬쩍 도울 수도 있다.
‘영리한 아이니까.’
이후, 돌아온 마고는 반드시 마더 브레인의 처벌을 받으리라. 불법 강림은 중대 위법 행위이니까.
어쩌면, 최악의 경우 이클립스의 지위도 잃게 될지 모른다.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봉쇄형에 처하게 된다. 전뇌성의 주민들은 사념으로 형태를 구성하는데, 봉쇄형은 그 구현을 일정 부분 금지당하는 처벌이다.
그것이 집이든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든, 가뜩이나 스트레스에 취약한 전뇌성의 주민은 큰 고통을 받고 -
‘약해진다.’
제 손으로 사랑하던 이를 죽이고.
지위와 정체성도 빼앗기며.
마고는 - 아니, ‘기네비어’는 어느 때보다 약해질 것이다.
그때야말로 그녀를 차지할 때다.
센시는 마고의 본명을 곱씹으면서 엷게 웃었다.
다 잘 되어가고 있는데도 화가 난다. 센시의 전신이 꼭 분노의 전사 워리어여서만은 아니다.
‘미쳤구나, 마고.’
이클립스의 불법 강림이라니.
마고는 정상이 아니다.
미쳤다. ‘사랑’이라는, 사념체의 비정상적인 증세로 미친 거다.
‘나도 미쳤고.’
마고가 그렇게 될 줄 알면서도, 센시는 계획을 감행했다. 그도 미친 거다.
‘포르투나도 미친 듯하고.’
그런 센시의 비밀을 알면서도, 포르투나는 침묵하고 있다. 센시를 좋아하는 마음에 더해, 증오하는 멀린을 없애기 위해.
‘서포터도 정상은 아니지.’
센시가 보기에, 서포터 영감 또한 뭔가를 숨기고 있다. 능구렁이 같은 성격 때문에 드러내진 않으나,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미친 자들이 어디까지 가는지 보자, 기네비어. 그 끝이 어디이든, 나는 너와 함께 할 거니까.’
*
우리 일행은 가미긴의 영지로 입성했다.
확인 결과 가미긴을 살해한 것은 니알라토텝으로 밝혀졌다. 영지의 무수한 악마들이 그렇게 증언했다.
“숙부님, 이런 비참한 모습으로…….”
나는 가미긴의 머리를 깃대에서 내리며 우는 오로바스를 보면서 생각했다.
‘그 니알라토텝이라는 놈은 가뜩이나 짧은 지속 시간에, 나타나자마자 가미긴부터 순삭하고 우리한테 온 거였어? 30분을 버틴 게 기적이네.’
가미긴의 머리가 소멸하지 않고 남은 것도, 그를 해치운 상대가 특수한 존재여서 그런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김태훈 덕인 게 된다.
그가 결정적으로 시간을 끌어 주었고, 정체를 드러내면서 니알라토텝이라는 놈이 동요했으니까.
그래, 정체.
그 정체가 문제다.
‘아서…… 라.’
우선, 김태훈의 실체인 아서도 우리를 적대하는 인물은 아님이 확실하다. 그 부분은 안심이다.
니알라토텝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 것만 봐도 그렇다. 적이었다면 죽게 버려두면 그만이니까.
문제는, 그걸 알면서도 술렁이는 내 기분이다.
단순히 정체를 속여왔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정체를 숨기고 있다.
최근에는 종종 잊곤 하지만, 내 실체는 회귀해 온 50살의 아저씨다.
‘아니지. 멀린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언제부터, 혹은 언제까지 멀린이었지?
아서라는 이름.
그리고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멀린으로서의 시간이 나를 불안하고 긴장하게 만든다.
이것은 아마, 니알라토텝이 사라지기 전에 한 말과도 연관이 있으리라.
-말은 바로 해야지, 아서. 의견 차이로 인해서 헤어졌다고? 그게 아니잖아.
-네가 지긋지긋해진 멀린이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갈 때마다, 네가 그 세계로 따라가서 소멸시켜 버렸기 때문이잖아. 그래서 네가 모르는 차원으로 도망친 거고.
믿기지 않는다.
김태훈이 아무리 괴팍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놈이며 한때 내가 사이코패스로 의심한 놈이라 해도.
‘지긋지긋해져서 떠난 것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내가 돌아온 세계로 따라와서 그 세계를 소멸시켜 버렸다고?
내가 돌아갈 곳을 없애려는 목적만으로?
‘그건 사이코패스 정도가 아니라, 그냥 완전히 미친놈이잖아.’
그래서 더 직접 물어보기가 어렵다. 김태훈과 나는 돌발 퀘스트 완료 이후, 계속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다.
보다 못한 차윤성이 내게 말할 정도였다.
“야. 나 모르는 사이에 태훈 형이랑 싸우기라도 했어?”
“아닌데?”
“그런데 왜 그러냐? 계속 서로 슬슬 눈치 보고, 너는 대놓고 태훈 형을 피하고 있잖아.”
“그런가…….”
그게 다가 아니다. 고르카도 김태훈을 슬슬 피하고 있다.
나보다 정도가 더 심해서, 거의 꼬리 만 개 같은 모양새다.
그사이 오로바스는 마음을 추스르고, 가미긴의 후계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후……. 계속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 수 없지. 가미긴 대후작 대행의 이름으로 명한다. 성문을 열어라.”
끼이이익!
가미긴의 살아남은 수하들은 큰 이견 없이 즉각 성문을 열었다.
오로바스가 가미긴이 가장 아끼는 조카임은 모두 아는 듯하다.
적통인 그가 때마침 나타나서 상황을 수습해주니 오히려 고마운 노릇이다.
“우, 우리도 들어가자…….”
고르카는 안쓰러울 정도로 김태훈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성문을 들어서면서, 잔뜩 움츠린 고르카의 등을 보다가 퍼뜩 생각났다.
그래, 고르카!
그에게 물어보면 되겠다.
아서와 나, 스캐빈저에 대해서.
그는 아무래도 내가 잊어버린 일들을 기억하고 있는 듯하니까.
귓속말로도 대화할 수 있으니 안성맞춤이다. 나는 우선, 고르카에게 먼저 귓속말을 날려보았다.
「고르카 님, 저랑 얘기 좀 해요.」
「…….」
어째서인지 대답이 없다.
‘왜 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