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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게이머는 파멸을 거부한다-295화 (295/303)

295화

22부 : 대폭주-전뇌성의 침공 (5)

사실은 불안했다.

나는 마계에서 니알라토텝이며 마고와 싸운 뒤, 하늘 위의 하늘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파티원 전체와 악마들까지 덤볐는데도 속수무책이던 그 압도적 강함.

거기에 과거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누구보다 아서의 강함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특히, 아서가 적이 된 것은 그냥 단순히 적 하나가 늘어난 게 아니다.

우리 가운데서 제일 강한 아군이 사라진 대신, 더 강한 적이 나타난 셈이다.

‘김태훈…….’

돌이켜보면 김태훈은 같은 동족이라 할 수 있는 인베이더, 얼굴 도둑까지 죽여가면서 나의 신뢰를 얻으려고 했다.

그를 생각하면 아직 속이 쓰리다.

나와 레이저가 나서고, 내 아이템을 모조리 털고, 사신 기사단과 수경총의 전력까지 더한다고 해도 정말 그들 - 전뇌성을 이길 수 있을까?

어떤 면에서 우리한테는 창조주와 동급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들을?

타워형 던전에서 나온 뒤에도 저런 생각에 제대로 잠을 못 잤다.

그랬는데 뜻밖의 힌트 두 가지가 나타난 것이다. 그중 하나는 방금 알게 되었고.

“뭐냐? 왜 그런 눈으로 보냐?”

“후후, 반갑습니다. 로키 님.”

“가, 가까이 오지 마라!”

나는 로키의 손을 덥석 잡았다.

“강림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응? 그거야 뭐…….”

“저,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들어주면 나한테 좋은 게 뭔데?”

“원하는 신물이 있다면 그게 뭐든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호오?”

로키의 눈이 순간 번득였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우선, 어떤 신물을 고르느냐에 따라 로키 자신의 힘을 더욱 강대하게 키울 수 있다.

로키와 관련된 아이템은 로키의 단도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기 때문이다.

혹은, 마음에 들지 않는 신의 강림을 견제할 수 있다. 내가 외부에 한 번도 풀린 적 없는 신화 테마의 아이템을 로키에게 주면, 그 자체가 봉인이 되는 것이다.

만약, 로키가 이곳 - 어스에서 계속 유희를 즐기기를 원한다면 후자도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흐음……. 일단, 부탁이 뭔지 들어보고 정하겠다.”

“알겠습니다.”

역시, 교활한 신이다. 대충 넘어가지 않는군.

나는 굳이 숨길 것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현재까지 어스에 강림한 신들을 다 모아서, 제가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십시오. 혹은 강림체라도 좋습니다.”

“에엑? 귀찮은데……. 어스는 상당히 넓다고!”

“거기에 필요한 비용은 얼마가 들든 지원해 드리지요. 이걸 선금으로 치겠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나는 강림한 신들 가운데 제일 먼저 로키를 만났고, 그의 강림체는 마침 내 친구다.

새로운 강림체를 찾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그 강림체가 내게 우호적일지도 미지수다.

로키를 설득해서 이 일을 맡기는 게 제일 빠르다. 그라면 강림한 신의 기운도 나보다 더 쉽게 찾아낼 수 있으리라.

“어, 얼마가 들든?”

“네. 다만,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나는 로키에게 대폭주에 관해 간단히 설명했다. 듣고 난 로키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뜻대로 안 되니까 멸하려 하는 거냐. 속 좁은 놈들이구만 그래.”

“제가 우주 전체를 알진 못하지만, 신의 존재를 믿으며 그 신이 강림할 만큼의 섭리가 허용되는 세계는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지…….”

“부디 도와주십시오. 도움을 받아 살아남게 된다면, 제가 책임지고 신전도 세워드리겠습니다.”

“신전?!”

처음부터 너무 많은 패를 꺼냈나?

하지만 지금 아쉬운 쪽은 나다. 밀당할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

다행히, 로키가 드디어 동의했다.

“좋다. 그 정도면 해볼 만하지.”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해보자고.”

로키가 손을 내밀며 히죽 웃었다.

나도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 직후, 유주연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정우?”

“응?”

어느새 로키는 유주연으로 돌아와 있었다. 타임 오버인가.

아니면 로키의 장난일지도.

내게 잡힌 손을 본 유주연이 얼굴을 붉혔다.

“이거…….”

“아, 미안!”

내가 얼른 손을 놓자, 유주연은 당황한 기색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체념한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휴, 또 시작이네.”

“뭐가?”

“내 옷차림, 이상하지 않아?”

“내가 알던 차림새와 다르긴 하네.”

“한 달 만에 만나서 길바닥에서 얘기하기에는 이상하지만……. 나 아무래도 심각한 몽유병에 걸린 것 같아.”

몽유병이라.

유주연은 로키의 존재를 못 느끼는 건가?

일단, 그녀 말대로 길에 서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어디 가서 밥이라도 먹으면서 얘기할까?”

앞서 들른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는 돈만 내고 정작 음식은 거의 못 먹었다. 유주연이 살짝 웃었다.

“좋아!”

이후, 근처의 일식집에서 대화해본 결과.

유주연은 로키를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다만, ‘자기 꿈에 나오는 이상한 남자’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그 남자의 말에 따라 이상한 옷을 입기도 하고, 그가 원하는 장소에 가기도 한다.

그러다 갑자기 깨어나면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고.

“게다가 꿈에서는, 어째서인지 내가 그 로키라는 남자 말에 절대복종하는 거 있지? 동아리 선배나 직장 상사한테보다 더. 뭐랄까, 꼭 광신도 같은…….”

“흐음. 그럼, 꿈속에서의 일은 다 기억하는 거야?”

“한 90% 정도? 지금도 분명 너 만나려고 준비하던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그 후 정신을 잃었다가 또 로키의 말대로 움직였어. 다행히 너한테 제대로 찾아오긴 했더라.”

나는 어떻게 설명할지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유주. 그거, 아니 - 그분, 진짜 신이야.”

“뭐? 신? 누가. 로키가?”

“응. 말하자면 너는 일종의 신들린 형태인 거야. 다만, 우리가 아는 무당이나 이런 것하고는 좀 다르고. 네 몸에서 공생하는 중이라고나 할까.”

“왜 나한테…….”

“미안. 내가 저번에 준 아이템 때문인 것 같아.”

유주연은 로키의 단도를 받았을 때의 일을 기억해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때 잠깐 정신이 멍해졌어! 그리고 뭔가 충성 맹세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난 인베이더의 습격으로 충격받은 부작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야. 그 아이템을 통해서 로키 님이 너한테 들어간 거야. 그걸 강림이라고 해. 넌 강림체가 된 거고.”

나는 강림체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기본적으로, 강림한 신의 총애를 받았다는 의미이므로 어지간해서는 다치거나 죽지 않는다.

또, 어떤 신이 강림했느냐에 따라 그 신의 권능 일부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김태훈은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빨라져서, 나중에는 거의 음속 이상으로 움직이기도 했다.

단, 그는 강림체라기보다, 아서가 제 편의를 위해 할파스를 끌어들인 게 아닌가 짐작되었다.

진짜 김태훈이 아니라 아서가 그의 삶을 탈취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체력이나 순발력 같은 신체 능력은 대부분 좋아질 거야.”

“아, 어쩐지. 난 갑자기 건강해진 줄 알았네.”

다행히 유주연은 조금 놀라긴 했어도, 크게 겁먹거나 충격받은 기색은 아니었다.

아마, 로키가 나쁘지 않게 대해준 덕이겠지.

로키와 내가 계약한 내용도 알고 있어서 얘기하기가 편해졌다.

“그러니까, 로키 님이 잠들어 있는 동안은 네가 움직여줘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어?”

내 말에 유주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상관없어. 어차피 딱히 할 일도 없고.”

“참, 학교는? 나야 기사라는 게 다 밝혀졌고,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으니까 그렇다고 쳐도. 너는 학교 가야지.”

“아, 정우 넌 모르겠구나. 나 자퇴했어.”

“……왜?”

유주연은 인베이더의 강습 사건 이후, 트라우마와 악몽에 시달렸다고 한다.

특히, 스터디 카페와 분위기가 비슷한 카페나 교실에는 있기에 어려워졌다고.

‘그래서 갑자기 패밀리 레스토랑이며 일식집으로 가자고 했구나. 보통 카페를 고를 텐데 말이지.’

“거기다 아무리 기억이 있다고는 해도, 이런 식으로 몽유병까지 생겨서 말이야. 정상적으로 학교를 나갈 수가 없겠더라고. 그냥 검정고시 치려고.”

“으음……. 네 실력이라면 문제없겠지만, 로키 님이 무섭거나 원망스럽지는 않아?”

“괜찮아. 인베이더들이 공격해오는 악몽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로키가 나타나서 물리쳐줬거든.”

아아, 그래서였군.

로키 입장에서는 강림체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일지도 모르지만.

유주연은 그 덕에 정신이 붕괴하지 않았던 거다.

실제로 인베이더에게 죽을 뻔한 뒤에,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개한테 물려도 트라우마가 생기는데, 상대가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기이한 괴물이라고 생각해 보라고.

그때, 유주연이 쿡 하고 웃더니 말했다.

“그런데 정우 너, 로키한테 꼬박꼬박 님이라고 붙이고 존대하네?”

“진짜 신이라니까, 하하. 신세 질 일도 있고.”

“뭐, 좋아하긴 하겠네.”

이후는 차례로 나오는 요리를 먹으면서 각자의 근황을 얘기했다.

나는 허용 범위 내에서, 타워형 던전에서 겪은 일들을 말해주었다.

유주연은 매우 신기해하며 집중해서 들었다.

헤어지기 전, 나는 유주연에게 카드 한 장을 건넸다. 금속으로 된 검은색 신용카드다.

“자, 이거.”

“이게 뭐야?”

“약속했잖아. 필요한 비용은 얼마가 들어도 지원하겠다고. 너, 외국 나가야 할지도 몰라.”

“우와, 정우 너 부자야?”

“로키 님께 맡긴 일에 지장이 없도록 지원할 정도는 돼.”

“으으, 나 신용카드 한 번도 안 써봤는데.”

그야 그렇겠지. 미성년자니까.

“딱, 일에 필요한 용도로만 쓸게…….”

“아냐. 너도 필요한 거 있으면 뭐든 써도 상관없어.”

“그렇게 말해도…….”

유주연은 카드를 받아 조심스럽게 지갑에 넣었다.

“그럼, 가볼게. 오늘 고마웠어.”

“그래.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바로 연락하고. 곧 또 보자.”

“알았어. 안녕!”

나는 멀어지는 유주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마, 저게 무슨 카드인지 알면 더 놀라겠군.

타워형 던전에서 나온 뒤, 나는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몇 가지 일을 했다. 저 카드도 그중 하나다.

우리나라 최대 금융사의 VVIP 고객에게만 발급되는 블랙 카드로, 무려 한도 제한이 없다.

나는 타워형 던전에서 나오면서, 거의 세계에 얼굴이 알려졌다. 그전까지 드러나지 않은 고등학생 기사의 출현이니 관심이 집중될 게 당연하다.

‘어디, 다음 스케줄은…….’

심지어, 던전에 끌려 들어간 자기 가족을 구해 나온 고교생 기사라니. 얼마나 상품성 확실한 스토리인가.

실제로, 바로 다음 날부터 온갖 방송사,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며 광고 요청이 빗발쳤다.

금융사가 보기에 투자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손태준, 류경재 등과 인맥이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나는 택시에 탄 채 상념을 이어나갔다.

‘재미있었지. 가상 차원에서 그 정도로 현실 반영이 세밀하고 사실적일 줄은…….’

아차,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지.

뺨을 양손으로 철썩 때리자, 택시 기사가 백미러로 이상하다는 듯 나를 보았다.

다음 약속은 수경총에서 친분을 다진 두 기사, 정기석과 강은빈 경위를 만나기로 했다.

그 두 사람도 대폭주를 대비할 중요한 전력이자, 안부를 나눌 친구이기도 했다.

얼마 후, 약속 장소인 카페에서 두 기사를 만난 나는 경악했다.

“이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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