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22부 : 대폭주-전뇌성의 침공 (10)
뜨거운 밤을 보낸 뒤.
나는 레이저와 함께 집을 나서서 타워형 던전으로 향했다.
던전 주위는 이미 수경총의 병력, 사신 기사단원들, 그 밖에 이번 사태의 중요성에 공감한 외국의 기사들과 용병으로 꽉 차 있었다.
한국이 인베이더에게 넘어가면 그 뒤는 댐이 무너진 거나 다름없다. 그 사실을 인지한 것이리라.
대폭주가 시작되면 입구에서 인베이더가 쏟아져나온다. 놈들이 퍼져나가기 전에 입구에 화력을 집중 - 최대한 개체수를 줄인다.
이것이 기본 첫 번째 작전이다.
나는 약속해둔 지점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로키 유주연을 비롯한 강림체 팀들도 모두 나와 있었다.
그들은 손깍지를 낀 나와 레이저를 보고, 저마다 다르게 반응했다.
“어머! 그렇지? 역시 사귀는구나!”
유주는 어째서인지 자기가 더 얼굴이 빨개져서 좋아했고.
“흐음, 아깝네요. 정우 씨 여자만 아니었다면…….”
발터는 제우스가 강림한 것인지 헷갈리게 했다. 오늘은 참자.
“다들, 푹 주무셨나요?”
내 물음에 강림체들은 저마다 기운차게 답했다.
“충분히 잤어! 참, 꿈에 BTX의 솔트가 나왔어! 이건 대박 꿈이야!”
“덕분에 잘 잤습니다. 꿈에 가족들이 나와서 복수해 달라더군요.”
음, 확실히 모두 컨디션 좋아 보인다.
나는 그들을 둘러본 후, 타워형 던전의 입구에서 내뿜는 빛이 서서히 강렬해지는 것을 알아차렸다.
던전 탈출용 게이트가 열릴 때와 같다. 수경총 부대도, 사신 기사단도 이상을 눈치챈 것 같다. 각자 소속 부대의 선두에 선 류경재 부국장과 손태준 단장이 보였다.
“자, 그러면…….”
나는 마지막으로 유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마주 웃었다.
이날을 위해, 제어가 안 되던 강림체들도 의식적 강신 훈련을 충분히 해뒀다.
“참전 부탁합니다. 신 여러분.”
푸확!
여섯의 강림체가 일제히 강신하자, 충격파가 유형화하여 퍼질 정도였다. 이미 접한 적 있는 레이저도 움찔했다.
각자의 아이템과 내가 준 아이템을 풀세트로 착용한 ‘신’들이 투기를 피워올렸다.
이윽고.
“어? 하늘이…….”
강대한 힘이 차원 벽을 넘어오는 여파로, 해가 어두워지면서.
“일식……인가?”
어스의 운명이 걸린, 최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간 힘을 비축하듯 잠잠했던 전뇌성이 총력을 다해 침공해올 것이다!
“나온다!”
선두의 기사가 긴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저 사람, 중국의 국가급 기사였지. 류페이라고 했었나.
분명 귀국할 줄 알았는데 어째서인지 남았다. 듣기로는 일본 메이지 기사단의 기사, 나가모토와 친해져서라고 하는데…….
헛소문이겠지.
나는 입구를 주시했다.
예상대로라면, 맨 처음 나올 인베이더는 와치맨.
전뇌성의 주민 가운데 복제 차원을 정찰하기 위해 파견되는 인원이며, 어느 정도 전투력이 있고 재빨라서 전초전에 적합하다.
그다음은 솔저가 나와서 길을 열고 세틀러가 근거지를 구축하겠지.
놔두면 귀찮아지는 와치맨에 화력을 집중하여 몰살한 다음.
세틀러를 빠르게 요격해서 놈들의 전열을 흐트러뜨린다.
작전을 되새기고 있는데, 드디어 최초의 인베이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놈이 ‘말했다.’
“오?”
나는 숨을 들이켰다. 뭔가 잘못됐다.
“다 모여 있네? 처리하기 쉽게.”
내 옆에 있던 레이저도 와들와들 떨기 시작했다. 알아본 것이다.
붉은 드레스 차림의 재앙을.
나는 곧바로 온 힘을 다해 외쳤다.
“모두 타워 양옆으로 물러나!”
이클립스 오망성의 마녀, 마고.
코드명 ‘기네비어’가 손을 내밀었다.
초월 마법, 레드 보이드!
지이이잉!
즉시, 지름 10미터 정도의 작열하는 구체가 생겨났다. 인공 태양에 가깝다.
그 구체는 적당히 빠른 속도로 전진했다. 구체가 생성된 순간, 선두의 인원은 대부분 증발해버렸다.
거기에는 류페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인공 태양은 그 뒤에도 계속 전진하며, 대지와 함께 주변 50미터 안쪽의 모든 것을, 그 성분에 따라 태우거나, 녹이거나, 증발시켰다.
‘이런, 최초의 피해가 너무 크다!’
오판이다. 시작부터 이클립스가 나설 줄이야!
“류페이이이이이!”
일본의 기사 나가모토가 비통하게 외치며, 처음으로 스킬을 발동했다.
궁극 스킬 발동, 폭주희생혈탄 暴注犧牲血彈!!
저건 나가모토의 궁극 스킬이다.
동시에 이름 그대로 생명을 깎아먹는 스킬이기도 하다.
자기 피에 마력을 담아 증폭하여, 권총 형태의 나이트 기어를 통해 쏘는 스킬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친구를 잃은 분노 때문은 아니다. 나가모토는 알아본 것이다. 이 정도 기술이 아니고서는 어떤 의미도 없음을.
퍽! 퍼벅! 파바바바박!
야구공만 한 총탄 수십 개가 마고의 전신을 꿰뚫었다.
“됐…….”
창백해진 나가모토의 얼굴에 희열이 떠오르려다 급격히 사그라졌다.
“……빌어먹을.”
마고가 금세 재생되는 모습을 본 것이다.
저건 불의 정수다. 류경재 총경과 마찬가지로, 마고도 불 그 자체가 된 것이다.
피가 모두 빠져나간 나가모토가 털썩 쓰러졌다. 지켜보던 제우스가 말했다.
“아깝군. 내 아우를 데려왔다면 일이 쉬웠을 터인데.”
제우스의 아우고 불 속성에 우세한 신이라면, 포세이돈을 말한다.
“최종 보스가 먼저 나왔습니다. 허를 찔렸네요. 여러분, 나서주시죠.”
내 말에, 강림한 신들이 움직였다.
류경재 부국장이 앞으로 나섰다. 마고가 불을 쓰는 것을 보고, 같은 불덩어리인 자기가 상대하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안 됩니다, 부국장. 큰불은 작은 불을 삼켜버린다고!’
화르르륵!
마고와 류경재 부국장이 맞붙었다. 류경재는 마고가 내뿜는 불을 몸으로 밀어내면서 전진했다.
“어머? 버그 중에 이런 게 있었나…….”
중얼거리는 마고를 향해.
류경재 부국장이 내뱉었다.
“버그라고 부르지 마시오.”
궁극 스킬 발동, 염룡!
스킬은 보통 각성할 때 주어지지만, 훈련에 따라 생겨나기도 한다. 특히, 대기만성형 기사들에게 그런 경우가 많았고, A급이던 류경재는 현재 -
“윽?”
SS급의 기사가 되었다.
푸르게 번득이는 용 형태의 불줄기가 마고를 휘감자, 그녀의 안색이 변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마고의 몸이 미세하게 작아지고 있었다. 더 강한 불에 흡수되고 있는 것이다.
“가자, 레이저!”
“응!”
나는 거기까지 지켜보다가, 병력이 빠진 것을 확인하고 뛰어들었다.
직업 효과에 의해, 내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 메모리에 저장된 기사들의 전투력이 상승한다.
“오오옷!”
아니나 다를까, 내가 가까워지자 염룡의 불길이 더욱 거세졌다.
“꼴사납게 뭐 하는 거야, 마고.”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클립스는 마고 혼자가 아니었다.
체구보다 더 큰 활을 든, 소녀처럼 보이는 여성이 타워형 던전 입구에서 걸어 나왔다. 동시에, 그대로 시위를 당겼다.
두 번째 이클립스, 포르투나다.
코드명 모르간. 마법 대신 궁술을 택한 궁극의 궁사.
펑!
“크윽……!”
이번에는 류경재 부국장이 신음을 삼킬 차례였다. 불로 이뤄진 그의 몸 가운데가 뻥 뚫려버렸다.
강렬한 진공파가 관통하고 지나간 결과, 상당 부분이 불똥이 되어 흩어졌다.
염룡도 덩달아 약해졌다. 염룡의 불로 류경재의 손상 부위를 채우기 위해서다.
마고는 그 틈에 얼른 빠져나왔다.
“흥……. 내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어.”
“어련하시겠어.”
말과 동시에, 포르투나는 연이어 진공 화살을 날렸다. 류경재 부국장이 피할 방향을 예상한 샷.
“이런!”
그때, 누군가 류경재 부국장의 앞에서 화살을 막아냈다.
“손 단장!”
“방어는 내가 전문이지.”
그뿐만이 아니다. 손태준의 어깨너머로 화살 하나가 날아갔다.
화살을 본 포르투나가 코웃음 쳤다.
“뭐야, 감히 나와 활 대결을 하겠다고?”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콰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포르투나와 마고가 동시에 타워형 던전 입구에 처박혔다.
“?!”
“카악!”
화살이 날아가는 도중 순식간에 거대한 기둥처럼 변하여, 둘을 한꺼번에 던전 입구에다 틀어박은 것이다.
“이게 올림퍼스의 기둥이다.”
손태준은 자기 뒤에서 화살을 날린 아테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의 등짝을 누군가 철썩 때렸다.
“집중하세요!”
“어, 으응.”
얼마 전부터 손태준의 서번트가 된 서지수다.
“카아아악! 이것들은 또 뭐야!”
포르투나가 괴성과 함께, 아테나의 화살을 산산조각 내면서 튀어나왔다.
“크큭, 무슨 꼴이냐. 모르간.”
그 파편과 함께, 세 번째 이클립스가 입구에서 나와 그대로 돌진해왔다.
돌진형의 전사 - 센시다!
센시는 벗은 상체에, 두 자루의 카타나를 든 채였다.
“어림없다!”
손태준이 센시의 돌격을 저지하려 방패를 내밀었으나 -
서걱!
센시가 지나가며 휘두른 검은 손태준의 방패 - 아르키메데스의 벽을 간단히 잘랐다.
“아닛?”
그의 팔도 함께.
지수가 재빨리 잘린 팔을 주워 붙이고, 내게 배운 대로 최상급 치유 물약을 퍼부었다.
“하하하하, 재미있구나! 이번 일식은 오랜만에 재미있겠어!”
센시는 광소를 터뜨리며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잘랐다. 피하지 않고 버티던 기사들이 후두둑 잘려 쓰러졌다.
그러다 전진이 처음으로 막혔다.
쾅!
“응? 내 검을 맨손으로 막아?”
“상당히 난폭한 자로구나.”
시바가 센시를 가로막은 것이다. 앞으로 내민 손으로 검을 막으면서.
“네놈의 검은 모든 물질을 절단하는 성질이 있구나. 하나, 나 또한 모든 것을 파괴하는 신. 파괴와 파괴가 만났으니 그 검은 무용지물이다.”
“파괴신이라고? 네가?”
센시는 특유의 자세를 취했다.
상체를 한껏 비틀고, 검을 등 뒤로 숨기듯 돌린 다음.
파쇄격!
대상을 재생 불가로 분쇄하는, 일격필살의 베기다.
콰아앙!
“그래.”
팔뚝을 겹쳐 검격을 막아낸 시바가 말했다.
“내가 파괴신, 시바다. 내 신도의 원한에 응하여, 오만한 네놈들을 파괴하러 임하였다.”
“뭐라는 거야, 씨발.”
“신성모독이구나, 네놈.”
센시와 시바가 격돌했다.
뒤이어 입구에서 나온 것은, 흰 수염을 늘어뜨린 푸근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기억이 돌아온 나는 그를 바로 알아보았다.
‘서포터 영감……. 퍼시벌!’
서포터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느긋하게 중얼거렸다.
“이런, 이런. 생각보다 고전하고 있네그려.”
“저자를 막아요!”
내 외침에, 서포터의 정수리로 뭔가가 떨어져 내렸다. 번개다!
콰르르릉!
서포터는 어느새 그 자리에 없었다. 옆으로 한참 떨어진 위치로 이동해 있다.
“마른 대낮에 벼락이라네, 무섭네, 무서워.”
제우스가 날린 벼락이다. 서포터가 피할 줄은 몰랐는지, 제우스는 다소 당황한 기색이다.
그러나 헛방만 친 것은 아니다.
그 번개 한 방으로 던전 입구 앞에 어마어마한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그리고 시바가 파괴할 수 없다고 한 던전 입구가 녹아 뭉개져 버렸다.
‘저건, 법칙 밖의 번개라는 건가……!’
역시 그리스 신화의 주신.
하지만 못 맞힌 것은 역시 뼈아팠다.
“힘들 내자고, 허허.”
얼티밋 터보 리프레시!
서포터 영감의 전신에서 찬란한 황금빛 오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범위에 들어간 이클립스들은 순식간에 모든 상처가 아물고, 마력이 폭발하듯 올라갔다.
“큭!”
여기에는 신들의 강림체도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아테나와 최혜인이 나란히 지원사격을 하여 이클립스의 발을 묶었다.
그러나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클립스 하나가 남았다.
오망성의 꼭짓점이자, 이클립스의 지휘 사령관과 같은 존재.
‘무한’이라는 사기성 코드를 사용하는 무한의 카발리어.
‘아서…….’
한때는 내 동료, 형이라 불렀던 김태훈이다.
‘왜 안 나오지? 어디에…….’
내가 그의 부재에 잠시 정신이 팔린 순간.
푸확!
“크윽?”
배에서 뜨거운 고통이 전해졌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눈에 익은 검은색 목검이 내 배를 뚫고 튀어나와 있었다.
뒤이어,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멀린. 아니, 정우야.”
최악의 적이 마침내 나타났다.
“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