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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게이머는 파멸을 거부한다-302화 (302/303)

302화

23부 : 종언 (2)

의문은 곧 풀렸다.

지금도 간혹 떨어지고 있는 포르투나의 화살 비. 이게 문제였다.

드로퍼 애로우의 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타워형 던전 일대 정도가 아니라 양천구 전체에 쏟아졌다고 한다.

그 화살이 쏟아지자, 정기석 경감이 강은빈을 몸으로 감싸고 죽은 것이다.

‘괜찮아, 되살릴 수 있어.’

나는 진정하려고 애썼다.

이놈의 무한, 대체 언제 풀리는 거야!

내게는 끝없는 것처럼 느껴졌으나, 사실 2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타앙!

또 한 발, 총알이 날아왔다.

“큭!”

이번에는 아서의 어깨를 뚫었다.

장갑차도 파괴하는 위력인데, 어깨를 관통당하고 마는 정도라니.

이클립스는 권능뿐만 아니라 육체도 사기다.

그보다 이상하군.

강은빈의 실력이면 헤드샷을 냈을 터인데.

아, 정기석의 죽음에 동요한 것이다. 아무리 내가 되살릴 수 있다고 말했어도, 눈앞에서 연인의 죽음을 보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는 건, 다음에는 맞힌다.

탕!

아서도 이제 저격을 의식했다.

코드 무한(∞)

즉시 무한 코드를 발동했다.

총알이 그의 왼쪽 눈앞 10센티미터 정도에서 멈췄다.

그러나 강은빈은 무한을 걸기에 너무 멀었다.

탕! 타아앙!

코드 무한(∞)!

코드 무한(∞)!

아서는 연달아 무한을 써댔다.

총알이 그의 미간 앞 10센티미터, 오른쪽 눈앞 10센티미터에서 회전하는 상태로 멈췄다.

아니, 정확하게는 아주 미미하게 전진하고 있다.

무한히 생성되는 공간을 돌파하느라 멈춘 듯 보이는 것이다.

‘퍼부어요, 강은빈 경감!’

탕! 탕! 타앙! 탕!

코드 무한(∞)!

코드 무한(∞)!

코드 무한(∞)!

무한 코드를 난사하던 아서는, 결국 못 견디고 자리를 이탈했다.

즉, 나와 레이저에게서 멀어진 것이다. 우리 둘의 움직임이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이놈들, 잔꾀를!”

아서는 자리를 이탈한 기세 그대로, 로키를 향해 돌진했다.

“히익!”

로키는 즉시 줄행랑쳐버렸다.

로키가 그렇게 쉽게 달아날 줄 몰랐던 터라, 아서는 순간적으로 목표를 잃고 주춤했다.

그런 그의 앞에, 기사들 틈에 숨어 있던 내 팀원이 뛰어들었다.

차윤성과 조설아다.

‘두 사람, 기억해둬. 태훈…… 아니, 아서가 저격을 집중적으로 받고, 총알이 허공에 멈춘 뒤 놈이 움직였을 때.’

두 팀원은 내가 지시한 대로 정확히 움직였다.

‘그 순간이 기습할 때야.’

쏟아지는 화살의 비에 쓰러지는 수경총 요원들과 기사들을 보며, 참고 또 참다가.

지난 몇 달 사이의 맹훈련으로 얻은 궁극 스킬을 그대로 발동했다.

궁극 스킬, 무모한 일격!

윤성이의 나이트 기어, 광전사의 검으로만 쓸 수 있는 일격필살의 베기.

상대의 모든 방어력을 무시하는 대신, 자신도 완전한 무방비가 된다. 혼자라면 동귀어진이나 다름없는 기술.

퍽!

역시나 아서는 거기에도 반응했다. 무모한 일격을 어깨에 맞으면서, 동시에 윤성이를 향해 귀혼을 내찔렀다.

콰직!

하지만 윤성이는 혼자가 아니었다. 설아 또한, 새로이 얻은 격투가의 궁극 스킬을 발동 -

궁극 스킬, 칼날 부러뜨리기!

귀혼을 부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궁극 스킬 치고 수수해 보이지만, 어떤 명검, 어떤 등급의 아이템이라도 부러뜨릴 수 있다는 점이 사기다.

망연해진 아서를 향해, 윤성이가 씁쓸하게 말했다.

“오랜만이네, 형.”

“……많이 컸구나. 둘 다.”

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을 열면 눈물이 쏟아질까 봐 참는 것 같다.

그녀는 양손 사이에 잡힌, 부러진 귀혼의 날을 팽개쳤다.

크어어어어어!

그 칼날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더니 거대한 검은 새의 형상이 칼날에서 빠져나와, 어딘가로 다급히 날아가 버렸다.

마신 할파스다.

그랬다. 귀혼 자체가, 김태훈의 삶을 빼앗은 아서의 안에 할파스를 봉인해 두는 열쇠였다.

이것으로 마지막 수도 사라졌다.

할파스와의 합일은 꽤 성가셨지.

아서의 양팔이 축 늘어졌다.

오른쪽 어깨는 강은빈의 저격으로 다쳤고, 왼쪽 어깨는 윤성이의 일격에 반이나 베여 덜렁거린다.

윤성이가 광전사의 검을 겨눈 채 말했다.

“그만 포기해, 형. 그 팔로는 더 못 싸워. 형 동료들도 저 할아버지 말고는 다 끝났고.”

아서가 흐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포터 영감은 아서와 마고를 회복시키려 했으나, 아테나의 죽음에 독기가 오른 제우스의 집중 견제를 받고 있다.

움찔하기만 하면 벼락이 내리꽂혀, 방어막을 열지도, 움직이지도 못했다.

센시는 시바 신을 상대로 분전했지만, 서서히 밀리고 있다. 기회를 노리던 삼신할머니가 시바 신을 본격적으로 회복시켜 주기 시작한 까닭이다.

삼신할머니는 생명을 관장하는 신이다. 그녀의 회복 스킬은 엄청났다. 단일 목표 대상으로는 서포터 영감보다 효율이 더 높았다.

나는 혀를 내둘렀다.

‘우와, 저거 최상…… 아니, 신급 생명력 회복이네.’

초당 최대 생명력의 20%가 회복해버리는 무시무시한 회복 스킬.

시바 신은 회복과 파괴를 동시에 행하며, 아예 방어도 무시하고 센시를 두들겼다. 그리고 그때 이르러 숨겨둔 한 수를 꺼냈다.

신체(神滯), 진면목!

시바의 몸이 변했다. 네 개의 팔, 네 개의 얼굴 그리고 각 얼굴마다 세 개의 눈이 되었다.

팔 두 개로 퍼붓는 공격에도 겨우 맞서던 센시가, 네 개의 팔을 버텨낼 리 만무했다.

더구나 사면상과 열두 개의 눈은, 이제 센시의 모든 검격을 피해내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시력이 좋아졌다기보다 가까운 미래를 보고 피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다 마침내, 시바의 주먹이 센시의 명치에 틀어박혔다.

센시가 이제까지 시바의 권능인 ‘파괴’를 버텨낸 이유는, 그가 지닌 검 때문이다.

검 또한 모든 물질을 파괴하는 성질이 있었으므로 시바의 권능을 상쇄한 것이다.

그러나 육체에 직접 닿은 신의 권능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하하, 망했군.”

센시는 빛의 입자처럼 변하며 붕괴하기 시작하는 명치를 보고 쓰게 웃었다. 그런 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불렀다.

“기네비어……. 전뇌의 우주에서 다시 만나자.”

“모드레드, 나도야!”

최후의 순간, 선택받은 센시는 그래도 웃으면서 사라져갔다.

그리고 나와 레이저는 아서가 아닌, 흔들리는 마고를 노렸다.

“어딜!”

마고가 우리를 향해 강렬한 불길을 뿜어댔다. 그녀는 한쪽 다리를 잃었으나, 빠른 조치 덕에 생명은 구했다.

나는 빙검 스카디를 소환, 냉기를 뿜어 맞서면서 다가갔다.

그러자 마고는 불길의 기세를 더욱 올렸다. 냉기가 분출하는 족족 곧바로 증발하여 사라졌다.

아직 저런 힘이 남아 있었다고?

“나는 있잖아, 멀린.”

안 되겠다. 나와 레이저 둘 모두에게 불카누스의 작업복을 소환하여 착용했다.

“전부터 너를 죽이고 싶었어. 처음에는 아서가 너한테 관심이 너무 많아서 그런 줄 알았거든?”

치이이익

급기야 불카누스의 작업복까지 녹아내렸다. 이러다 마고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타죽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그냥, 너한테서 본능적인 불길함을 느낀 거야. 언젠가 전뇌성을 파멸시키리라는. 그래서 대신 너를 파멸시키려고 했는데…… 이제야 되겠네.”

팟!

나는 착용하고 있던 불카누스의 작업복을 해제하여 버림과 동시에, 새로운 불카누스의 작업복을 소환, 착용했다. 레이저에게도 마찬가지.

“?”

마고는 잠깐 어리둥절하다가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혼란, 분노, 두려움이 차례로 스쳐 갔다.

“말도 안 돼. 그 정도의 아이템이 어떻게 계속…….”

“아, 인생 1회차를 아이템만 수집했거든.”

두 번, 세 번.

나는 계속 불카누스의 작업복을 교체해가면서, 마침내 마고의 코앞에 도달했다.

“기네비어!”

아서가 안타깝게 외쳤으나, 여기까지 올 여력은 없어 보였다.

두 팔이 성치 않은 상태로, SS급 직전인 윤성이와 설아를 상대하자니 여력이 있겠나.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

나한테 신경 쓰지 말고.

“이익…….”

마고는 눈물 맺힌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끝까지 불길을 뿜어댔지만, 화염 내성인 불카누스의 작업복을 다섯 벌이나 녹이느라 그 기세는 거의 사라진 뒤였다.

나는 가스레인지 불꽃보다도 못한 불을 뿜는 마고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를 파멸시키려 했다고 했나?”

“…….”

“거부한다. 난, 파멸을 피하려고 회귀까지 거듭한 몸이거든. 다음 회귀를 대비해서 게임화 능력을 심어두고서. 즉, 회귀한 게이머는 파멸을 거부한다-라는 거지.”

“……지옥에나 떨어져, 멀린.”

“응, 거기에 내 친구들 많아.”

전 주인에게 차마 최후의 일격을 날리지 못하는 레이저를 대신해.

스킬 발동, 천상의 창!

나는 마고와의 오랜 악연을 끝냈다.

투확!

마고는 끝없이 떨어지는, 거대한 빛의 창 가운데서 산산이 흩어져 죽음을 맞이했다.

감상에 빠질 틈이 없다. 아직 서포터 영감이 건재하고 아서도 살아 있다.

서포터가 있는 한, 아서는 언제든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

“레이저, 서포터 처리를 부탁해.”

제우스가 붙어 있으니, 레이저가 가세한다면 그쪽은 끝이다. 레이저가 내게 다짐하듯 말했다.

“아서는 끝까지 조심해야 해. 절대 방심하지 마.”

“알았어. 이제 곧이다.”

레이저는 서포터에게로.

나는 윤성이, 설아와 싸우고 있는 아서에게로 향했다.

다가오는 나를 본 아서가 뇌까렸다.

“그렇군. 기네비어도, 모르간도 떠났나…….”

“당신도 이제 뒤따라갈 거야, 아서.”

“솔직히 이 정도로 해내리라고는 생각 못 했다. 우리 다섯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멀린 널 너무 과소평가했어. 설마, 다른 차원의 존재까지 불러들일 줄은.”

“전뇌성의 오만함에 그들이 스스로 참전한 거야.”

말하는 동안, 서포터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제우스의 집요한 번개를 막아내느라 방어막에 쓸 마력이 다한 뒤.

마고를 공격하지 못한 데 죄책감을 품은 레이저가, 인정사정없이 서포터를 난도질해버린 것이다.

본래 서포터는 혼자서 큰 활약을 하기 어렵고, 아군이 많을수록 빛을 발한다. 이클립스의 멤버 치고는 허무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제 당신 혼자 남았네?”

아서가 고개를 푹 숙였다가 -

“그러니까. 이제야 그걸 꺼낼 수 있게 됐군.”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나 혼자 남았을 때 - 이게 발동 조건이거든.”

“……뭐?”

나는 기억을 더듬어 아서의 모든 기술을 파악했다.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

“참고로 이걸 꺼내 보는 건 나도 딱 두 번째야. 이번 차원에서는 처음이고. 귀혼이 생각보다 튼튼해서 말이지.”

아직, 내가 모르는 하나가 남아 있었다.

나는 총에 맞아 축 늘어졌던 아서의 오른팔이 다시 멀쩡해진 걸 보았다.

‘아차, 신의 잘린 오른손!’

그 오른손에, 빛에 휘감긴 롱소드 한 자루가 홀연히 나타났다.

설마, 두 번째 나이트 기어라고?

아니, 이게 처음부터 있었던 거다. 귀혼은 할파스의 무기였으니.

그랬다.

이 녀석의 코드네임은 아서.

아서의 진짜 무기는…….

“신검, 엑스칼리버.”

스릉!

반응할 틈도, 막아낼 수도 없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가장 튼튼한 방어구를 소환했지만, 엑스칼리버는 갑옷을 자르고 나의 금강불괴도 무시했다.

모든 이클립스가 전멸하고 아서 혼자 남았을 때만 나타나는, 개연성과 섭리를 무시하는 검.

나는 아서가 엑스칼리버를 언제 처음 사용했는지 베이면서 깨달았다.

‘나, 여기에 당한 적이 있네.’

모두 쉬쉬하던 이클립스의 첫 위기, ‘개기일식.’

그때 선대 이클립스가 모두 전멸했던 것이다. 아서만 제외하고.

그리고 그런 일을 벌인 장본인은 아마도, 첫 번째 생의 나.

그때, 나는 아서에게 처음으로 죽었다.

아서는 그런 나를 경계하여 회귀한 시점까지 쫓아오길 반복했고.

‘무한……. 아서의 자리인 카발리어는 한 번도 바뀐 적이 없구나.’

나는 레이저의 울부짖음을 귓가로 아련히 들으면서, 세 번째의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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