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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9화 (9/232)

9화

사울은 마법 검을 든 채 카스텔과 교실로 향했다.

“오늘은 4대 원소 마법을 동시에 다루어 적을 공격하는 기술을 복습해 보겠습니다.”

“네, 선생님.”

5년째 쓰고 있는 교실에서 오늘 수업 주제를 밝힌 카스텔이 손짓을 했다.

자신을 마음껏 공격해도 좋다는 신호였다.

사울은 마법 검을 치켜들었다.

검을 뽑는 않는 대신 거꾸로 들고 푸른 수정이 박혀 있는 손잡이로 카스텔을 겨누었다.

사울의 몸속 마나에 마법 검이 반응했다.

검을 쥔 사람만 알아챌 수 있는 미미한 진동과 함께 푸른 수정이 빛나기 시작했다.

마법 시전을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울은 네 개의 마법을 동시에 시전했다.

불, 물, 바람, 땅.

네 갈래로 흩어진 마나가 각각 4대 속성을 띈 채로 각각의 형상이 되었다.

불꽃이 된 마나는 기본적인 불의 마법인 ‘파이어 애로우’

물이 된 마나는 기본적인 물의 마법인 ‘워터 스피어’

바람이 된 마나는 기본적인 바람 마법인 ‘에어 블레이드’

땅이 된 마나는 기본적인 땅의 마법인 ‘록 블래스트’가 되었다.

원소의 힘 그 자체로 상대를 태우거나 찌르거나 베거나 강타하는 기본 마법이다.

각 원소의 기본 마법을 시전하는 건 초보 마법사에게도 쉬운 일이다.

하지만 마법 두 개를 동시에 시전하는 건 하나만 시전하는 것보다 제곱으로 어려웠다.

기본 마법 네 개를 동시에 시전한 건, 각각 따로 시전하는 것보다 네제곱으로 어려웠다.

하지만 사울은 마법 시전에 성공했다.

“하앗!”

함성과 함께 사울이 마법 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네 마법이 일제히 카스텔에게 날아갔다.

네 마법 모두 날아가는 속도와 정확도 모두 흠잡을 데가 없었다.

문제는 위력이다.

“…….”

카스텔은 사울의 마법 공격을 막으면서 방어막도 치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 맨몸으로 받는 것처럼 보였다.

보통 사람이 똑같이 행동한다면 자살행위겠지만, 카스텔은 달랐다.

“나쁘지는 않군요.”

네 마법을 모두 몸으로 받은 카스텔이 말했다.

상처를 입지 않은 건 물론 입고 있는 망토자락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물론 진짜로 맨몸으로 받은 건 아니다.

사울은 카스텔이 어떻게 마법을 막아내는 지 보았다.

카스텔은 마법을 쓰는 대신 순수한 마나의 힘을 내뿜어 자신을 방어했다.

카스텔 같은 괴물급 마법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카스텔의 실력이면 당장 전장에 나가도 무시무시한 활약을 펼칠 수 있을 거야. 그 ’약점‘만 아니라면.’

속으로 중얼거리던 사울은 문득 카스텔을 ‘선생님’이라 호칭하는 데 아주 익숙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언젠가는 저 선생님의 목을 베어야 할 것인데.

“전하,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카스텔의 질문에 정신을 차린 사울이 말했다.

“내일이 성인식이잖아요.”

“그랬지요. 내일이 전하의 성인식이니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선생님도 내 성인식에 참석할 거죠?”

“전하의 명령이라면.”

사울의 성인식에 카스텔도 참여한다면 카스텔이 사울의 스승이자 ‘측근’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일이 될 것이다.

“명령이 아니에요. 하지만 가능하면 선생님도 참석해 주면 좋겠어요.”

제자이자 왕자의 ‘부탁’에 카스텔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석하겠습니다.”

“고마워요.”

화려한 파티를 좋아하지 않는 카스텔이지만, 제자의 성인식에 참여하는 건 썩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에 사울은 안심하고 성인식 준비를 했다.

참석할 때의 복장을 미리 입어 보고 어떻게 행동할지도 머릿속으로 그렸다.

그리고 성인식 후 아바마마께 무슨 말을 할지도 결정했다.

그러는 사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5년 전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었지만, 목소리나 행동거지가 여전히 꼿꼿한 그레이였다.

“전하, 4왕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셔.”

“네, 전하.”

사울 바로 위의 형, 4왕자 조나단 다리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왕실의 일원만이 입을 수 있는 화려한 가죽 갑옷 차림에 큰 검을 등에 찬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사울보다 1년 몇 개월 앞서 성인식을 치른 조나단은 군인의 삶을 택했다.

지금은 왕국 기사단에 들어가 한 부대를 이끌고 있다고 하던가.

어린 나이에 한 부대를 맡을 정도면 고귀한 혈통을 타고난 덕도 보았겠지만, 조나단의 능력 역시 뒷받침되었을 것이다.

아바마마는 무능한 왕자에게 하나의 부대를 책임지게 할 사람이 아니니까.

실제로 사울은 조나단에게서 마나의 기운을 느꼈다.

마나를 다룰 수 있는 ‘마법 전사’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그래. 오랜만이구나. 성인식 준비는 잘 되어 가나?”

“네. 선생님도 참석하신다 하셨고요.”

사울의 말을 들은 조나단은 카스텔을 곁눈질했다.

카스텔은 조나단에게 한 번 인사를 하고는 멍하니 서 있었다.

시종, 하다못해 웬만한 귀족이라도 무례함을 지적 받을 태도였지만 조나단은 굳이 카스텔의 무례함을 지적하지 않았다.

지적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형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나야 바삐 지내지. 하루 빨리 전장에 나가 보고 싶지만……. 가멜다 왕국 놈들이 도통 움직이지 않으니 말이지. 어디 반란군이나 유명한 도적놈이나 잡으러 갈까 싶다.”

“그렇군요.”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지금의 너라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여럿 있을 것인데.”

이제 막 성인이 된 사울이 선택할 수 있는 진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세력을 모을 수만 있다면 국왕 자리에도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사울은 아직 국왕 자리까지는 탐을 내지 않았다.

“생각해 둔 게 있어요.”

“그래? 혹시 큰형님이나 작은형님 파벌에 가입하기라도 할 생각이냐?”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정치는 골치 아프기도 하고요.”

“하긴, 네 말대로다. 정치는 골치 아프지. 큰형님이랑 작은형님이 벌써부터 눈치 주고 감시하는 걸 보고 있으면 나까지 머리가 아파진다니까.”

“하하. 동감이에요. 그래서 누님도 두 분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

‘누님’ 이야기를 들은 조나단이 혀를 내둘렀다.

“누님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라.”

“아, 죄송해요.”

1왕자 실베스터와 2왕자 카리스는 조나단 입장에서 크게 거북한 상대가 아니었다.

둘 다 자기 세력을 키우는 데 여념이 없었고, 자신의 파벌에 적대하지 않는 한 일부러 적을 만들지 않으려 했다.

덕분에 1왕자와 2왕자 어느 쪽 편도 들지 않은 사울과 조나단은 두 형님을 별 문제없이 만날 수 있었다.

두 형님도 자신들 중 어느 한쪽 편을 들지도 않고, 왕위에 도전할 낌새도 보이지 않는 사울과 조나단을 크게 경계하지 않는 눈치였다.

반면에 루시아는 달랐다.

여전히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그래서 방심할 수 없는 누님이다.

“아무튼 오늘 성인식 잘 부탁해요, 형님.”

“그래. 혹시 춤추고 싶은 귀족 영애라도 있나? 내가 알아봐 줄까?”

“그 정도는 제가 알아볼 수 있어요.”

“후훗, 그래. 알았다.”

조나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은 후궁 소생의 왕자라는 공통점 탓일까.

왕비 소생의 형님들이나 누님보다는 조나단과 말이 잘 통하는 느낌이었다.

좀 단순 무식한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전하, 저도 이만.”

“네. 선생님.”

카스텔이 떠나자 그레이가 다시 나타났다.

그레이는 새삼 감회가 새로운지 눈물까지 그렁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전하께서 내일 성인식을 맞이하시는군요.”

“그동안 고마웠어. 그레이.”

“별 말씀을. 이 그레이는 언제나 전하께 충성할 뿐입니다.”

“정말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해.”

언제나 사울을 돌봐 주는 그레이를 향한 고마운 마음은 말만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가능하면 평생 곁에 두고 싶을 정도다.

“잠시 혼자 생각하고 싶어.”

“아, 네. 왕자님. 그럼.”

그레이까지 사방에서 나가고, 사울은 방에 홀로 남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사울은 방구석에 숨겨 둔 일기장을 꺼냈다.

일기는 비밀스러운 것이다.

하물며 전생을 기억하는 왕자의 일기는 더욱 비밀스러운 것이다.

사울이 반역 사건에 가담하지라도 않는 이상, 감히 왕자의 일기를 꺼내 볼 녀석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의 경우를 대비하여 사울은 일기를 암호처럼 작성했다.

자신이 아니면 알아보는 게 불가능하도록,

사실 이 일기는 복수를 위한 메모다.

현재 가멜다 왕국이 돌아가는 상황.

롤랜드가 죽음으로 충성했음에도, 그의 가문이 무너지고 가족들까지 죽게 내버려 둔 놈들.

사울이 복수해야 할 대상.

여러 복수에 필요한 정보들을 정리해 둔 메모였다.첫무대

“이놈들은 절대 용서할 수 없지. 절대로.”

복수심이 사울의 삶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언젠가 카스텔의 목을 베고, 가멜다 왕국에 살고 있는 원수들의 목을 베는 건 물론 가멜다 왕국 전체에 복수하고 싶다.

내일 성인식이 그를 위한 첫 무대가 될 것이다.

* * *

성인식 날이 밝았다.

오늘만큼은 사울이 왕국의 주인공이다.

사울은 주인공 자리에 걸맞게 화려한 예복을 차려입고, 마법 검을 찬 채로 ‘바다 궁’으로 향했다.

바다 궁.

국왕이 머무르는 황금 궁 다음으로 크고 화려한 궁전이다.

이름처럼 푸른 보석과 석재로 꾸며진 바다 궁은 왕실의 여러 중요한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후궁 소생의 왕자인 사울이 이 바다 궁에서 열리는 파티의 주인공이 되는 건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른다.

그만큼 왕자의 성인식은 중요한 행사인 것이다.

“왕자님 입장하십니다!”

시종의 외침과 함께 사울은 몇몇 시종과 카스텔을 대동한 채 바다 궁에 입장했다.

바다 궁 파티장에 모여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사울 왕자에게 집중되었다.

하나같이 이 나라에서 유명한 귀족들, 혹은 거물들이나 그 수행원들이다.

평상시라면 후궁 소생 왕자 따위는 크게 신경도 안 쓸 법한 거물들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오늘만은 모두들 예의 바른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오늘 사울에게 무례를 범하는 건 왕실 전체에 무례를 범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전하. 성인식을 축하드립니다.”

“고마워요. 안젤로 경.”

사울은 자신에게 먼저 인사한 ‘안젤로 경’에게 예를 갖춰 답례했다.

이 나라의 재상이며 국왕 다음가는 실권자로 불리는 안젤로 마르테스 공작.

겉보기에는 반백의 머리에 작은 체구를 가진 사람 좋은 영감님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마렌은 자녀들 앞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혹시나 내가 생각보다 빨리 세상을 떠나 너희들 중 한 명이 예정보다 일찍 왕이 된다면……. 안젤로 경을 제일 먼저 쳐내라. 지금의 너희들은 그 늙은 뱀을 감당하지 못 할 테니까.’

사울은 아바마마의 말을 떠올리며 끝까지 예의를 갖추었다.

공작은 적으로 만들면 곤란한 사람이이니까.

그 밖에 사울은 여러 명의 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지금은 세력이나 파벌을 불문하고 적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가능한 모두에게 평등하고 예의바르게 대했다.

그런 사울을 대하는 귀족들의 태도도 나쁘지 않았다.

대충 인사를 마친 사울은 왕실 사람들이 모인 쪽으로 향했다.

눈에 띄는 곳에 서 있는 두 명의 왕자가 보였다.

오늘의 주인공인 사울 못지않게 화려하게 차려입은 두 청년 왕자.

짙은 갈색 머리에 날카로운 눈빛이 돋보이는 1왕자 실베스터.

실베스터보다 연한 금발 머리에 깊은 눈빛이 돋보이는 2왕자 카리스.

지금 이 나라의 가장 유력한 왕위 계승권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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