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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22화 (22/232)

22화

사울은 마법 검을 잡고 외쳤다.

“왜 이럽니까?”

“왜 이러냐고? 그걸 꼭 물어봐야 아나? 가진 것 다 내놔라. 그리고 투구 쓴 계집은 투구를 벗고, 거기 반반한 계집은 이리 와라.”

투구 쓴 계집은 아이나를 말하는 것일 테다.

반반한 계집은 분명 카스텔이다.

반반한 계집이 검은 마녀라는 사실을 알면 저따위로 지껄일 수 없을 테지.

아무튼 다짜고짜 재물은 물론 여자까지 내놓으라고 하는 것만 봐도 눈앞의 도적들이 어떤 놈들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동정할 가치도 없는 악당들인 것이다.

사울이 다시 말했다.

“우리는 영주군 소속입니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건 곧 영주님의 앞을 가로막는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당장 물러나세요!”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대사 연습을 한 사울이었지만, 몸에 익지 않아 언동이 어설펐다.

그런 사울의 어설픈 언동은 도적들에게 더욱 얕보이게 만들었다.

“하, 이 자식 아직 뭐가 뭔지 모르는 것 같은데.”

“이봐. 저 놈은 죽이고 여자들만 데려가자.”

한 도적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제히 석궁이 발사되었다.

목표는 사울과 그가 타고 있던 말이었다.

사울은 재빨리 마법으로 방어막을 쳤다.

반구형의 마법 방어막이 사울의 전방을 가로막았다.

석궁 화살은 방어막을 뚫지 못하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마법사인가?”

“이봐, 그걸로 쏴!”

사울의 마법을 본 도적들은 당황하기에 앞서 대책을 내놓았다.

마법사 역시 공격해 본 경험이 있는 게 분명했다.

도적들이 내놓은 대책은 특별한 화살이었다.

화살이 등장한 순간부터 사울은 알아보았다.

마법의 힘이 깃든 화살이라는 것을.

아마 마법이나 연금술으로 특별하게 만들어진 화살일 것이다.

관통력을 높이든 화살이 폭발하든 무언가 마법으로 방어막을 부수려 할 것이다.

알면서 당할 필요는 없다.

“라이트닝 볼트!”

마법 시동어와 함께 마법 검을 뻗자 커다란 전격 덩어리가 도적들에게 날아갔다.

동시에 아이나도 도끼를 던졌다.

먼저 날아간 전격 덩어리가 화살을 쏘던 도적들을 덮쳤다.

커다란 전격 덩어리는 화살을 쏘려던 도적 모두를 감전시키기에 충분했다.

“으아악!”

사울에게 석궁을 들이대던 도적들이 남김없이 감전 당해 쓰러졌다.

이어 아이나의 도끼도 날아들었다.

마나에 의해 조종되며 날아간 도끼는 도적 두 명을 한꺼번에 베어 버렸다.

동시에 아이나는 방패만 든 채로 도적 무리에게 달려들었다.

날아오는 검을 방패로 쳐 낸 뒤 자신의 손에 돌아온 도끼를 휘둘러 도적을 쓰러뜨렸다.

그러면서도 사울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만에 하나 사울이 위험에 처하면 바로 돕기 위함이었다.

사울 역시 마법 검을 쥔 채 도적들에게 달려들었다.

“젠장, 저기 반반한 계집 빼고 다 죽여!”

도적들 역시 사울과 아이나에게 달려들었다.

사울은 물론 아이나도 생포할 생각을 포기한 듯 인정사정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죽어라!”

한 도적이 살기 어린 외침과 함께 사울에게 창을 내질렀다.

망설임 없는 공격을 볼 때 이미 사람을 여러 번 찔러 본 경험이 있는 게 분명했다.

사울은 마법 검으로 창을 쳐 낸 뒤 도적의 가슴을 찔렀다.

마법을 쓴 직후 공격이 들어왔지만 대단한 수준이 아니라 반격할 수 있었다.

“젠장! 개자식!”

검집 덕분에 목숨을 구한 도적은 잠시 주춤하더니 더욱 거세게 창을 휘둘렀다.

그 광경을 본 사울은 결정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살려 둬야겠지만, 모두 살려 둘 만큼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다.

결심한 사울은 날아오는 창을 피하며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곤 검집으로 창을 쳐 낸 뒤 훤히 드러난 도적의 몸을 찔렀다.

“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도적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다시 태어난 사울이 처음 사람 피를 본 순간이었다.

* * *

전생에는 끝없는 전쟁 속에서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한 자들을 많이 봐왔다.

혹은 무너지기도 했고, 피의 쾌락에 지배당하는 자마저 있었다.

전생의 사울도 마찬가지였다.

전장에서 오랜 기간 싸우며 피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피의 쾌락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항상 자신을 다잡았다.

그 덕분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도 냉철할 수 있었다.

이 도적들은 무자비한 놈들이다.

무자비한 놈들에게 인정을 베풀 필요는 없다.

사울은 냉정하게 검을 휘두르고 마법을 시전했다.

오래잖아 결판이 났다.

이제 주변에 서 있는 건 사울과 아이나, 그리고 구경만 하던 카스텔뿐이었다.

“괜찮아요?”

사울의 질문에 아이나가 고개를 숙였다.

“네. 도련님.”

사울도 아이나도 부상 하나 입지 않았다.

그에 비해 열 명 가까운 도적들은 모조리 죽거나 큰 부상을 입었다.

아이나는 사울의 실력, 그리고 냉정함에 새삼 감탄한 모양이었다.

“정말 대단하세요. 마치 이런 일을 많이 해 보신 것처럼…….”

아이나의 말에 사울은 자문했다.

‘내가 너무 잘 싸웠나.’

난생 처음인 인간과의 실전 치고는 너무 잘 싸운 것일까.

하지만 너무 잘 싸워서 의심 어린 시선을 받는 게 못 싸우다 죽는 것 보다는 낫다.

사울은 작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아이나도 더 묻지 않았다.

사울은 아직 살아 있는 도적에게 다가갔다.

피투성이가 된 도적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더듬거렸다.

“뭐, 뭐 하는 놈이냐…….”

“그건 알 것 없어. 살고 싶으면 대답해. 너희들 본거지가 어디야?”

“그, 그게…….”

“난폭하게 일을 처리하고 싶진 않지만 입을 열지 않으면 너희를 난폭하게 대할 수밖에 없어.”

도적은 악당답게 사울의 말뜻을 빨리 깨달았다.

입을 열지 않으면 지독한 꼴을 보게 해 주겠다는 뜻이다.

이미 승부가 난 상황에서 사울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도적들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도적들은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린 모른다.”

“구워 먹든 삶아 먹든 마음대로 해라.”

이런 도적들의 말에 사울은 카스텔을 돌아보았다.

“대신 해 줄래요?”

“물론입니다.”

카스텔의 정체를 알 리 없는 도적들은 두려워하기는커녕 허세를 부렸다.

“헹. 뭐 하는 계집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쉽사리 입을…….”

허세를 부리던 도적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카스텔이 손을 뻗었을 뿐인데, 도적들은 말을 잇거나 비명조차 못 지른 채 게거품을 물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 예상한 사울은 냉정을 유지했다.

하지만 아이나는 실전 경험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은 예상치 못했는지 당황해했다.

“이건 대체…….”

“마법으로 고통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많으니까요. 선생님은 전문가니까 죽지는 않을 거예요.”

사울의 말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한 아이나는 더 묻지 않았다.

얼마 후, 카스텔은 손을 거두고 미소와 함께 말했다.

“너희들이 말하고 싶지 않다면 상관없어. 오히려 고맙지. 그만큼 즐길 수 있으니.”

이런 일이 정말로 즐거운 것일까.

아니면 연기를 잘 하는 것일까.

사울의 눈에도 카스텔의 미소는 거짓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물며 고문당하는 도적들 입장에서는 지독하게 사악한 ‘검은 흉성’ 으로 보일 것이다.

“선택권은 너희에게 있어. 죽지도 못하고 온몸이 찢겨 나가는 고통을 영원히 맛보던가, 순순히 불고 편해지던가.”

도적들은 즉각 굴복했다.

“사, 살려줘요!”

“뭐든지 다 말하겠습니다!”

“좋아. 너희들의 본거지는?”

“이, 이쪽 길로 쭉 가다 나오는 갈림길에서 무조건 왼쪽 길로 가시오! 그럼 나오는 동굴이 우리 본거지요!”

사울은 이미 알고 있던 정보와 지금 도적의 증언이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마 확실한 정보일 것이다.

“좋아.”

들을 것을 다 들은 사울이 나섰다.

검집 째로 휘두른 사울의 검에 도적들 모두가 기절했다.

“자, 동굴로 가요.”

그러자 카스텔이 물었다.

“다 처리하고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죽을죄를 지은 적들이니 모조리 숨통을 끊어 버리는 게 편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울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요. 살아남은 녀석들은 재판을 받고 법의 처분을 받도록 해요.”

아이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악당이라도 가능하면 재판을 거쳐 법으로 처벌하는 게 올바른 일이니까.

이런 두 사람의 뜻에 카스텔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결국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카스텔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아직 살아 있던 도적들 모두가 잠들었다.

마법으로 잠재운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도적들도 허튼짓 못 하게 조치를 취한 사울 일행은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말이 다니기는 어려운 길이라 모두 걸어 올라가야 했다.

길이 꽤 가파르고 험했지만 사울도 아이나도 산길을 오르는 정도로 지칠 만큼 약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카스텔이었다.

“헉, 헉…….”

거친 호흡 소리에 사울이 고개를 돌리자 카스텔이 가슴을 부여잡는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

“…….”

카스텔은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거친 호흡에 가슴까지 부여잡는 모습은 누가 봐도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놀란 아이나가 물었다.

“괜찮아요?”

“……”

카스텔이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가운데, 사울이 대신 대답했다.

“잠시 쉬도록 해요.”

“아, 알겠어요.”

아이나는 갑자기 ‘검은 마녀’가 약한 모습을 보이리라고는 생각 못 한 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반면에 사울은 침착하게 카스텔을 살폈다.

처음 본 모습은 아니다.

원인도 알고 있었다.

독의 후유증으로 인한 불규칙한 발작 증상.

이 발작이야말로 과거의 상처가 완전히 낫지 않았다는 가장 큰 증거다.

이 발작이 흔하게 나타나는 건 아니다.

카스텔과 오랫동안 가까이 지낸 사울도 이 모습을 본 건 열 번이 채 되지 않았다.

“도련님. 저건…….”

사울이 말을 잘랐다.

“비밀로 해 주세요.”

“무, 물론이에요. 제가 알면 안 되는 일이면 더 묻지 않을게요.”

사울은 씁쓸하게 웃으며 조금은 알려 주었다.

“가끔 있는 일이예요. 보통은 크게 힘든 일을 하거나 몸이 좋지 않을 때 나타난다던데, 지금 저 증상이 나타날 줄은 몰랐어요.”

“왜 저러시는 거죠?”

“과거 상처의 후유증이라고 해 두지요.”

사울은 더 말하지 않았고, 설명할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영민한 아이나는 어느 정도 짐작했다.

한때 무패를 자랑하던 검은 마녀 카스텔이 저런 후유증을 남길 만한 상처를 입은 건 딱 한 번뿐이었을 테니까.

가멜다 왕국의 최강자, ‘가르시아 남매’와의 전투.

그리고 패배.

“……”

다행히 카스텔의 발작은 오래가지 않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자 호흡도 안정되었고 표정도 편안해졌다.

안정을 되찾은 카스텔은 아이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가씨.”

“네.”

“지금 본 건 비밀로 해 주세요. 물론 아가씨의 가족에게도요.”

카스텔의 싸늘한 눈빛을 마주한 아이나는 단숨에 깨달았다.

비밀이 알려지면 카스텔이 크게 분노하리라는 것을.

“아, 알겠어요.”

“고마워요.”

사울은 카스텔이 진정되기를 기다려 물었다.

“선생님. 다시 움직여도 될까요?”

카스텔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지나갔으니 당분간은 문제없을 겁니다.”

사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출발하지요.”

“네, 네…….”

약간의 소동이 끝나고, 사울 일행은 다시 이동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광경을 본 것으로 모자라 입막음까지 당한 아이나는 마음이 복잡했다.

‘설마 카스텔 님에게 저런 병이 있을 줄이야.’

본의 아니게 알면 안 되는 비밀을 알게 된 기분이다.

거기에다 카스텔의 발작을 보고도 냉정할 뿐만 아니라 거리낌 없이 사람을 베던 사울의 모습은 또 어떠했는가.

오늘은 여러 가지로 신기한 것들을 많이 본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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