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육체 개조라는 말에 사울이 되물었다.
“나라에서 금하고 있는 그 육체 개조를 말하는 건가?”
“네. 마법을 통한 육체 개조 말입니다.”
잠시 생각하던 사울은 얼마 전 사라진 칼립소에게 생각이 미쳤다.
“그럼 칼립소라는 다크 엘프가 육채 개조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 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의 표정이 굳었다.
“그런 중요한 일을 왜 내게 보고하지 않았지?”
“그러니까… 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르멜의 말을 들은 사울은 카스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게 아르멜의 생각이었을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면 ‘선생님’의 생각이었겠지.
“선생님이 숨겼군요.”
“네.”
“왜 그랬나요?”
“아르멜의 말 그대로입니다. 확실하지 않은 일을 가지고 생각할 게 많은 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카스텔의 말에 사울은 흠칫했다.
생각이 많다.
선생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것인가.
나쁘다는 뜻은 아닌 것 같지만, 남들보다 유독 생각이 많다는 것 때문에 경계당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정말 많다.
하물며 카스텔에게는 정말 못 할 이야기가 많다.
전생의 자신을 죽인 장본인이며, 그 원한은 아직 잊지 않았으니까.
그 때문에 언제나 생각이 많고 누굴 대할 때도 몇 번이나 생각을 하면서 대했다.
그것이 카스텔이나 다른 사람에게는 무언가 이상한 모습으로 비치는 것일까.
무언가 찔린 기분이 든 사울은 자기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그건 선생님 마음대로 생각할 게 아닌 것 같은데요?”
“......”
카스텔은 사울의 날 선 말에도 아무 말 없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사울은 자신이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래서는 안 된다.
마음에 안 들어도 본심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
사울은 재빨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나도 요즘 이래저래 생각할 게 많아서.”
그런 사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스텔도 뒤늦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전하.”
일단 카스텔은 납득한 것 같다.
사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상황을 수습했다.
“앞으로는 나도, 여러분들도 좀 더 마음을 터놓도록 해요. 우리 처지가 처지다보니 아무것도 숨기지 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린 모두 동료나 다름없는 입장이니. 내 말 맞지요?”
사울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번 일은 더 따지지 않겠어요. 그리고 선생님.”
“네.”
“육체 개조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도 되겠지요?”
“네 문제없습니다.”
“육체 개조라는 것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아보았지?”
“일단 그 과정에 필요한 재료들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육체 개조 실험을 위해서는 수많은 마법과 연금술 재료들, 그리고 실험체가 필요하니까요.”
설명을 듣던 아이나가 물었다.
“실험체라면?”
“사람처럼 지성을 가진 종족들 말입니다.”
“사람으로 실험을 한다고요? 그럼 그 실험체는?”
“대부분 죽거나 살아도 죽느니만 못한 상황을 맞게 되지요.”
아이나의 표정에 혐오감이 짙게 떠올랐다.
“끔찍하군요. 왜 육체 개조가 법으로 금지되었는지 알겠어요.”
“그 말대로입니다. 잔인하고 비도덕적이며 수많은 희생을 치르는 일이지요.”
“그런 잔인한 짓이 우리 영지 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건가요?”
“영지 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시 사울이 물었다.
“그게 뭐지요?”
“칼립소에 대해 좀 더 알아보았습니다. 믿을 만한 정보원에 따르면 그녀는 몬스터와 싸우다 팔 한 쪽을 먹힌 적이 있다고 합니다.”
치료 마법에도 한계는 있다.
팔다리가 잘린다면 그 잘린 팔이 멀쩡하다는 전제하에 마법으로 붙여 원래대로 복구할 수 있다.
그런데 몬스터에게 먹혀서 사라진 팔을 복구한다?
사울이 아는 한 그런 치료 마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칼립소의 팔이 의수 같지는 않았는데.”
카스텔도 동의했다.
“맞습니다. 분명 순수한 육체였습니다.”
“그럼 칼립소가 개조를 통해서 막강한 생명력과 치유력을 손에 넣은 존재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증거는 없지만 유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전례도 있고요.”
사울도 언젠가 마법서에서 본 기억이 났다.
백여 년 전 육체 개조가 만연하던 시절 수많은 인간들이 실험으로 희생되었고, 그 결과 다양한 개조인이 나타났다.
개중에는 팔다리, 심지어 머리가 잘려도 죽지 않고 재상하는 몬스터 같은 인간도 있었다.
이야기책이 아닌 역사서에 기록된 사실이다.
“정말 그 다크 엘프가 육체 개조를 했다면… 하얀 까마귀는 그저 불법 약물이나 파는 도적들 수준을 넘어선 존재라는 뜻이겠지요.”
아르멜이 대답했다.
“정말 마법으로 육체 개조를 시도했다면 놈들은 반역자 혹은 이단자나 다름없습니다. 하루 빨리 잡아야 합니다.”
사울도 동의했다.
“물론이지. 그리고 이왕 모두들 알게 된 사실이니 이제부터 우리 모두와 정보를 공유하도록 해.”
“하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르멜은 이제 막 성인식을 치른 사울이나 아이나에게 이런 일을 맡기는 게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막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둘 다 귀한 몸이라 더더욱 꺼려지는 모양이었다.
아르멜의 속내를 읽은 사울은 자신이 가진 무기를 활용하기로 했다.
“나는 괜찮아. 그대는?”
사울의 질문에 아이나도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정말 우리 영지에 이단자 같은 놈들이 있다면 그 어떤 문제보다도 시급해요.”
“…알겠습니다. 이제부터 두 분께도 숨기지 않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모두들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 홀로 남은 사울은 정신없이 머리를 굴렸다.
‘일이 이렇게 복잡해 질 줄은 몰랐는데. 악명 높은 범죄 조직에 이어 이젠 육체 개조라고? 정말 골치 아프군. 하지만 그런 쓰레기들을 내버려 둘 수도 없고.’
한참 생각하던 사울은 노크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전하.”
귀를 기울여야 간신히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
아르멜이 몰래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다.
사울은 조용히 문을 열어 주었다.
“무슨 일이지?”
“꼭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사울과 마주 앉은 아르멜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육체 개조 이야기라면 아까 회의에서 다 하지 않았나?”
“네. 실은 전하께 따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투구 전사가 아니라 ‘사울 왕자’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말뜻을 알아들은 사울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아르멜이 다시 말했다.
“이제 그 아가씨를 멀리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이나를?”
“네, 전하.”
“어째서? 나는 혼약자도 없는 몸이고 아이나와 선을 넘을 생각도 없는데.”
“…주제넘는 말이지만 제 임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말씀드리는 겁니다. 전하. 저는 홉킨스 가문의 감시 임무도 받았습니다.”
“알고 있어. 아이나도, 홉킨스의 다른 가문 사람들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테고.”
“말씀대로입니다. 하지만 홉킨스 가문에 대한 감시는 왕녀 전하께서 직접 명령하신 부분입니다.”
“홉킨스 가문이 반란이라도 도모하고 있다는 말이야?”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르멜이, 나아가 루시아 왕녀가 이런 의심을 할 이유는 충분했다.
사실 홉킨스 가문이 진심으로 왕실에 충성을 바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말하자면 왕실과 계약 관계를 맺은 셈이다.
다스리기 어려운 변방을 관리하는 역할을 떠맡는 대신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보장받는 계약.
꽤나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은 계약이었지만, 지금까지는 큰 문제없이 잘 해나갔다.
하지만 왕국이 자치권을 빼앗지는 않을지, 반대로 자치권을 가진 영주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진 않을지 서로에 대한 의심은 점점 커져갔다.
아직 다르센 왕국과 가멜다 왕국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내실을 다져야 할 때 내분이라도 생긴다면 왕국이 크게 흔들릴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홉킨스 가문을 의심하고 조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조용히 힘을 키우고 싶었는데… 세상 일 마음대로 안 되는군.’
거물 범죄 조직에, 육체 개조에, 이젠 정치 이야기인가.
아르멜이 개인적인 감정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아무튼 왕실에 소속된 사울로서는 왕실을 최우선으로 할 의무가 있다.
사울의 삶의 목표는 다르지만, 왕자 신분으로서 의무를 내팽겨 칠 수는 없다.
사울은 아이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전장에서는 이미 완성된 전사처럼 행동하지만 아직 어린 탓에 미숙한 구석도 많다.
그런 모습이 더 호감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생의 기억을 가진 사울로서는 가질 수 없었던 순수한 모습이니까.
사울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기억해 두지.”
“그 아가씨를 멀리하시겠습니까?”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나는 내 지위와 의무를 기억하고 있어. 그거면 된 것 아닌가?”
“…알겠습니다.”
설득에 실패한 아르멜은 더 말하지 않고 사울의 방을 나갔다.
홀로 남은 사울은 기지개를 펴며 중얼거렸다.
“그레이도 그렇고, 저 녀석도 그렇고. 하나같이 홉킨스 가문은 싫어하는군.”
홉킨스 가문.
왕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경계의 대상이기도 한 곳.
왕자의 몸으로 그곳에 온 사울이 이런 잔소리를 많이 듣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잔소리를 듣는 건 두렵지 않다.
두려운 건 여기까지 와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힘.
그리고 명망, 세력, 권력.
삶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더 강해져야 했고, 그를 위해서는 무언가를 이루어야 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말이다.
사울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하얀 까마귀와 이단자를 때려잡는 일이라면 인정할 만한 업적이 될 수 있겠지.’
* * *
사업을 하려면 냉혹해져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하물며 범죄 사업을 업으로 삼는 킬리안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킬리안의 일과는 직접 피를 보거나, 피를 보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들로 점철되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킬리안은 부하 여럿을 데리고 ‘원정’에 나섰다.
“으아악!”
“사람 살려!”
한 마을 밖에서 부하 몇 명과 서 있던 킬리안은 마을에서 연신 들려오는 비명 소리 앞에서도 태연했다.
하얀 까마귀가 만들어 내는 참상에 두려워하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았고, 반대로 즐기지도 않았다.
마치 본인이 사신이 된 것처럼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피와 죽음의 소리 앞에서 무덤덤할 뿐이었다.
그러다 무언가 고통스러운 듯 눈살을 찌푸리더니 이내 품속에서 자그마한 덩어리를 씹어 먹고는 평정을 되찾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을에서 일을 마친 부하가 돌아왔다.
“다 끝났어요. 두목.”
피를 뒤집어쓰고 단검을 든 채 잔혹한 미소를 지은 다크 엘프.
칼립소였다.
“결과는?”
“한 놈도 남김없이 다 죽여 버렸어요.”
자신의 명령이 이행되었음을 확인한 킬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둑놈들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지.”
사업이라는 명목 하에 마을 하나를 쓸어버린 킬리안은 그 길로 자신의 본거지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