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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45화 (45/232)

45화

“선생님.”

사울이 감지한 것을 카스텔이 감지 못할 리 없었다.

“쥐새끼가 몇 마리 있고 주변에 다른 적은 없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카스텔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렇게 카스텔이 사라지는 모습을 본 아이나와 아르멜도 무기를 손에 쥐었다.

사울도 마찬가지로 무기를 쥐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 했다.

지금은 실전 상황이고, 그것도 전장이다.

가능성이 낮아도 최악의 경우는 미리 대비를 해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는 사이 부대에서 떨어져 나온 카스텔은 어디론가 빠르게 이동했다.

선봉 부대의 이동 루트에서 가까운 풀숲이었다.

풀숲에 도착한 카스텔이 말에서 뛰어내렸고, 동시에 풀숲에서 무언가 날아왔다.

화살과 마법 공격이었다.

숨어 있던 적이 쏜 화살도, 마법도 상당히 정확했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어느새 카스텔 주변을 둘러싼 마법 방어막이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 냈다.

이어 카스텔이 손을 뻗자 검푸른 빛이 공격이 날아온 쪽을 덮쳤다.

“으악!”

단말마와 함께 풀숲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다.

카스텔은 허리까지 오는 풀을 헤치고 현장을 확인한 뒤 사울에게 돌아갔다.

다가오는 카스텔을 본 사울이 명령했다.

“병사를 보내 수습해.”

“알겠습니다!”

지체 없이 사울의 명령이 수행되었다.

말을 타고 달려간 병사들은 현장의 모습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잠깐 사이에 이렇게나…….”

쓰러진 건 총 여섯 명이었다.

세 명은 죽었고, 나머지 세 명은 숨이 붙어 있었다.

병사들은 아직 숨이 붙은 적들을 말에 실어 돌아왔다.

주변을 다시 한 번 둘러본 카스텔도 말을 타고 돌아와 사울에게 바로 보고했다.

“이 주변에는 적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상대한 적들의 실력은 어느 정도였나요?”

“제게는 통할 실력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병사나 기사들이 기습을 당한다면 위험할 것 같습니다.”

“방심하지 말고 철저하게 경계해야겠군요. 계속 수고해 줘요.”

“네, 전하.”

이후 매복한 적의 존재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다.

적들이 매복전을 벌여 시간 끌 것을 예상했던 사울은 계획을 수정할 필요를 느꼈다.

‘이대로 가면 사흘 내로 하얀 까마귀의 본거지에 도착할 테지. 놈들이 매복전으로 발목을 잡으려면 벌써 그럴듯한 움직임을 보였을 것인데 그런 건 없어. 본거지에서 결판을 내려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토벌군을 피곤하게 해서 제풀에 지쳐 쓰러지게 만들려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이런 때를 위해 사울은 전생의 기억을 토대로 공부하며 여러 가지 상황에 대비했다.

하지만 그런 사울도 전황을 예측하기 힘들었다.

몇 가지 예측되는 방향은 있지만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을 때는 한쪽 방향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좀 더 넓게 볼 필요가 있었다.

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예측하는 건 어렵지만, 그건 적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카드는 숨기고 상대방의 카드를 예측하며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이는 게 전장에서의 전략 전술이다.

생각 끝에 사울은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는 측근인 아르멜에게 먼저 이야기했다.

“하얀 까마귀는 장기전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군.”

“동감입니다. 전하.”

“일단 놈들의 본거지까지는 가 봐야겠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큰 의미는 없겠지.”

“본거지를 버리고 도망칠 생각일까요?”

“어차피 그들이 우리와 정면 대결을 하기 어렵다면 질질 끌면서 괴롭히는 게 최선이야. 버려진 군사 기지를 개조해서 본거지를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그런 곳에서는 길게 시간을 끌기 어렵지. 포위당하면 전멸당하기 십상이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쨌든 놈들의 본거지까지는 진군을 할 필요가 있어. 그곳이 어떻게 되었는지 직접 확인을 해야 하니까. 하지만 그곳에서 이 토벌전이 끝날 것 같지는 않아. 장기전을 준비해 줘.”

“토벌군 기사들에게 언질을 넣겠습니다.”

“그렇게 해.”

이후 토벌군은 한동안 큰 문제없이 진군했다.

그러던 중 문득 카스텔이 말했다.

“전하.”

“무슨 일이에요?”

“멀리 무언가가 있습니다.”

“적?”

“확실하지는 않지만 조심하십시오.”

카스텔의 시선은 멀리 숲 쪽을 향해 있었다.

확신이 있었다면 바로 움직였을 것이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카스텔이 움직인 건 얼마 뒤였다.

카스텔의 말이 속력을 높이자 멀리 숲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홀로 숲에 발을 들여놓은 카스텔은 오래잖아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놓쳤습니다.”

“괜찮아요.”

적이 영악하게 움직인 것이지 카스텔이 잘못한 건 아니다.

카스텔의 존재를 굉장히 빨리 눈치채고 도망쳤으니까.

사울을 지킬 책임도 있는 카스텔이 작정하고 쫓아갈 수도 없으니 추격을 포기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 * *

“망할 계집.”

숨겨둔 말을 타고 추격을 뿌리친 칼립소는 멀리서 토벌군의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얀 까마귀의 3인자인 그녀가 단순 정찰만을 위해 여기까지 나온 건 아니다.

기회가 생기면 근방에 매복한 병력과 협력하여 토벌군을 괴롭힐 예정이었다.

그런데 토벌군의 예상치 못한 행보가 이 계획을 무위로 돌렸다.

토벌군 선봉 부대에 평범한 병사들과 기사들만 있었다면 분명 계획대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토벌군의 바뀐 움직임이 계획을 어긋나게 만들었다.

망할 놈의 왕자가 직접 선봉 부대와 함께 움직일 줄이야.

왕자 혼자만 왔다면 계획 실행에 아무 문제가 없었으리라.

오히려 왕자 본인에게 겁을 주면서 상황을 더 유리하게 풀어 나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왕자 곁에는 카스텔이 있었다.

카스텔의 존재 때문에 모든 계획이 무너졌다.

앞서 몇몇 매복병들이 실종되었는데, 아마 카스텔에게 걸려 사로잡혔거나 죽었을 것이다.

칼립소도 멀리서 카스텔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매복병과 같은 처지가 될 뻔했다.

한참 말을 타고 달린 그녀는 아군을 발견하고 말을 멈췄다.

“무슨 일입니까?”

놀란 부하들의 표정에 칼립소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왕자 놈과 마녀 년이 함께 왔어.”

“선봉 부대에 말입니까?”

“그래.”

“그럼 우린…….”

칼립소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적 선봉 부대의 움직임을 보니 이들이 남아 있으면 분명 적들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부하들이 적들에게 붙잡히거나 죽음으로서 하얀 까마귀가 이득 될 게 있는가?

결론은 없다 였다.

희생시킬 만한 가치가 있었다면 기꺼이 희생시키겠지만, 이득될 게 없는 상황에서 부하들을 희생시킬 필요는 없다.

“살고 싶으면 지금 바로 후퇴하고, 놈들에게 잡히거나 죽고 싶으면 남아 있어.”

칼립소의 말에 부하들은 재빨리 그녀와 함께 후퇴했다.

소수 인원에 모두들 말을 타고 있었기에 후퇴 속도는 빨랐다.

한참을 달린 그들은 하얀 까마귀의 본거지에서 머지않은 아지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킬리안과 제온이 있는 곳이었다.

“두목.”

찾아온 칼립소를 본 킬리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꼴을 보니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 것 같지는 않군.”

“네. 하지만 이유가 있어요.”

“말해 봐라.”

“선봉 부대에 망할 왕자 놈과 검은 마녀 년이 함께 있어요.”

칼립소의 말에 제온이 먼저 반응했다.

“둘 다 선봉 부대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고?”

“그래. 검은 마녀가 내 존재를 눈치채고 잡으러 왔어.”

“그럼 네 앞에 있던 녀석들은…….”

“나니까 무사히 후퇴했지, 다른 녀석들은 포로로 붙잡혔던가 죽었을 거야.”

“뜻밖이군. 왕자라면 안전한 중군이나 후방에 남아 있고, 카스텔도 마찬가지인 줄 알았는데.”

킬리안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조금 씹었다.

자신이 판매하는 악마 토끼풀을 말린 것이다.

몸과 정신 양쪽에 좋지 않다는 걸 킬리안도 잘 알았지만, 지금처럼 머리를 빨리 회전시킬 필요가 있을 때는 사용했다.

잠시 후, 악마 토끼풀의 효과를 느끼며 킬리안이 말했다.

“왕자 놈이 선봉 부대에서 쳐들어온다면 우리도 사양할 것 없다.”

“두목, 자객이라도 보내실 생각입니까?”

“병기를 쓴다.”

‘병기’라는 말을 들은 제온이 놀랐다.

“그것들 말입니까?”

“그래. 지금 바로 준비시켜라.”

“함부로 쓰기에는 여러모로 위험합니다만…….”

“그럼 그것들을 써 보지도 않고 모두 처분하자?”

“그게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킬리안과 제온의 말을 듣고 있던 칼립소가 말했다.

“저는 두목 의견에 찬성이에요. 기껏 만든 병기들을 쓰지도 않고 처분하는 건 아깝잖아요?

그 겁대가리 없는 왕자 놈에게 겁을 줄 필요도 있고요. 병기들이라면 뜻밖의 성과를 거둘 지도 모르죠.”

제온은 계속 반대했다.

“그 병기가 완성품이라면 괜찮지만, 미완성입니다. 오히려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둘의 말을 듣고 있던 킬리안이 말했다.

“검증되지 않은 병기를 완성시키는 데 실전만큼 좋은 방법은 없지.”

“두목. 하지만…….”

“어차피 우리가 그 병기를 쓰던 말던 놈들은 우리를 토벌할 생각이다. 병기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지.”

킬리안의 생각이 바뀌지 않을 것을 안 제온은 자기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놈들을 향한 공격을 준비하고, 나머지는 본부를 불태울 준비를 해라. 그리고 필요하면 내가 직접 놈들과 싸울 테니 그 준비도 하고.”

명령을 내린 킬리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니 멀리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선봉 부대가 멀지 않은 곳까지 당도한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던 킬리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왕자 놈이 주제도 모르고 직접 나오셨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내가 직접 현실의 냉엄함을 알려 주지.”

그런 킬리안의 말뜻을 알아들은 제온의 눈이 커졌다.

“두목. 설마 직접 왕자를……?”

킬리안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짙게 했다.

그 미소를 본 제온은 깨달았다.

더이상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제온은 차선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부디 왕자를 직접 해치는 일은 없도록 하십시오.”

“물론이지. 하지만 공포를 보여 줄 생각이다. 평생 못 벗어날 만큼의 끔찍한 공포를.”

킬리안의 말에 칼립소도 히죽 웃었다.

즐길 생각이 가득한 둘 앞에서 제온은 자기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저는 따로 움직이며 두목을 돕겠습니다.”

“그렇게 해라.”

* * *

아직 토벌군의 진군은 순조로웠다.

몇 번 매복한 적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언젠가부터 매복한 적들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매복했던 적의 흔적이 발견되거나 멀리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적들의 모습을 본 기사들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놈들이 완전히 겁먹고 내빼는 것 같군.”

“검은 마녀가 우리와 함께 할 줄은 몰랐겠지.”

사울은 전황을 낙관하는 휘하 기사들의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았다.

기사들의 말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전황을 돌이켜 볼 때 적들은 분명 토벌군을 방해하고 괴롭히려 했다.

하지만 카스텔 한 명의 존재로 그 계획이 어그러졌다.

이쪽 전력이 우월한데 적의 계략까지 무너뜨렸으니 전황을 낙관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사울은 지금이야말로 방심하면 안 된다고 느꼈다.

그 지독한 하얀 까마귀가 이대로 물러설 것인가.

아닐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도망치는 게 아니라 맞서 싸우는 쪽을 택했다.

킬리안도 정보를 통해 자신들의 전력이 열세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전력이 열세인데 정면으로 토벌군에 맞설 만큼 멍청한 인간이라면 그 위치까지 올라가지도 못했을 터.

사울은 카스텔, 아이나, 아르멜을 불러 나지막이 말했다.

“기사들과 병사들을 좀 다잡을 필요가 있겠어요.”

이런 일에 밝은 아르멜이 먼저 사울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전하 말씀대로입니다. 벌써부터 방심하거나 군기가 풀어지면 안 될 테니까요.”

카스텔과 아이나도 이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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