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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49화 (49/232)

49화

긴장한 아이나에게 아르멜이 말했다.

“전하를 지키는 게 최우선이고 킬리안을 베는 건 그 다음입니다.”

“알고 있어요.”

킬리안도 곁에 있던 칼립소에게 말했다.

“잔챙이는 네가 맡아라. 난 무슨 수를 쓰든 저 왕자를 손봐 주겠다.”

“그러지요. 두목.”

왕자에게 직접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제온의 조언도 잊은 듯, 킬리안은 사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직 성인식을 치른 지 1년도 되지 않은 애송이 왕자.

하지만 자신의 사업을 방해하고 실제로 큰 피해를 입히기까지 했다.

죽이는 게 곤란하다면 죽는 것보다 괴로운 고통을 맛보여 주리라.

한편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아르멜은 아이나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은 전하를 지키십시오.”

“당신은?”

“지키기만 해서는 이기기 어려울 것 같으니 직접 킬리안 일당을 상대하겠습니다.”

“알겠어요.”

합의를 본 아르멜은 몇 명의 기사들과 함께 곧장 킬리안에게로 돌진했다.

킬리안은 다시 죽음의 실을 날렸고, 아르멜은 검을 휘둘러 실을 쳐냈다.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음에도 킬리안은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반면에 아르멜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서운 공격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보다 확실히 실력이 위군.“

이번에는 킬리안이 양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수십 가닥의 날카로운 실이 번득이며 아르멜과 기사들을 덮쳤다.

아르멜은 자신을 향한 공격을 모두 막아 냈지만, 기사들은 아니었다.

“으윽!”

기사 한 명이 피가 흐르는 팔을 부여잡으며 물러났다.

기사의 실력을 탓하기 어려울 만큼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그런 공격을 거의 열 명 상대로 동시에 날리다니.

확실히 도적 두목이라고 얕볼 수 없는 실력이었다.

몇 번의 공격으로 상황을 파악한 킬리안은 칼립소에게 명령을 내렸다.

“시작하지.”

“네, 두목.”

명령을 받은 칼립소가 아르멜과 기사들 상대로 단검을 날렸다.

킬리안보다는 약할지언정 역시 얕볼 수 없는 공격이었다.

동시에 칼립소가 이끄는 병력들 역시 공격에 나섰다.

모두들 하얀 까마귀에서 손꼽히는 실력자들이었고, 평균 실력은 토벌군 병사는 물론 기사들마저 뛰어 넘었다.

상황을 파악한 아르멜은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무리해서 공격하는 대신 지키는 데 전념하라. 시간을 끌수록 우리가 유리하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다른 부대에서도 이곳의 상황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완전히 승기를 잡을 수 있다.

물론 킬리안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실을 날리며 전장을 살피던 그의 눈에 빈틈이 포착되었다.

기사들없이 몇몇 병사들로만 가로막은 길.

그들만 베면 그대로 사울을 노릴 수 있다.

킬리안은 홀로 몸을 날렸다.

병사들은 무기를 치켜들며 달려드는 킬리안을 막으려 들었고, 후방에서는 활이나 마법을 쏘기도 했다.

시위 소리와 함께 날아간 화살.

주문과 함께 날아간 마법.

그것들을 감지한 킬리안도 손을 뻗었다.

그러자 화살도, 마법도 킬리안을 다치게 하지 못했다.

킬리안이 날린 실이 거미집처럼 얽힌 채 빛나며 모든 공격을 막아 낸 것이다.

“저런 기술이…….”

사울을 지키고 있던 아이나도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놀란 건 사울도 마찬가지였다.

킬리안이 ‘죽음의 실’을 쓰는 건 알았지만, 저런 재주를 보여 줄 줄은 몰랐다.

‘거미줄처럼 얽힌 실에 마력을 씌워 방패처럼 사용하는 건가? 순간적으로 실을 저런 방식으로 활용하다니…….

종종 전장에는 일반적인 검이나 마법과는 다른 특별한 기술을 가진 강자가 나타나기도 했다.

카스텔처럼 말이다.

아마 킬리안 역시 전장에 종종 등장하는 ‘별종’인 모양이다.

별종이 꼭 강하다는 법은 없지만, 킬리안은 분명 강한 별종이다.

그러는 사이 킬리안은 순식간에 앞을 가로막는 병사 몇을 처리했다.

이제 사울 곁에 남은 건 아이나와 기사 두어 명뿐이었다.

“전하!”

그 광경을 본 아르멜은 곧장 사울에게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칼립소가 그를 막아섰다.

“날 두고 어딜 가려고.”

칼립소가 날린 단검이 아르멜의 진로를 막았다.

급한 마음에 단검을 무시하고 사울을 지키려 달려가던 기사 한 명이 단검에 쓰러지기까지 했다.

상황을 깨달은 사울은 마법 검을 치켜들었다.

아이나도 도끼와 방패를 치켜들며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전하.”

“그대도요. 모두들 조심하라!”

킬리안은 다시금 미소와 함께 손을 휘둘렀다.

동시에 사울도 마법 검으로 마법을 시전했다.

“쉴드!”

전방에 반투명한 반구형의 마법 방패가 만들어진 가운데, 날카로운 실 여러 가닥이 마법 방패를 할퀴었다.

여기저기에서 무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 소리로 시끄러운 전장에서도 실이 마법 방패를 긁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단한 위력이다.’

사울은 킬리안의 ‘죽음의 실’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저 거미줄처럼 여린 실에서 이런 강력한 힘이 나올 수 있다니.

동시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본인의 실력만으로는 킬리안을 이기기 어렵다는 것을.

하지만 킬리안과 칼립소가 감당하기 어려운 실력자라도 이쪽은 머릿수가 훨씬 많고 시간을 끌수록 유리하다.

그 장점을 최대한 살릴 필요가 있었다.

“모두들, 방어를 굳혀라.”

사울의 말이 아니라도 모두들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눈앞의 킬리안의 목만 베면 이 토벌전은 끝나겠지만 무리한 전공에 욕심을 낼 때가 아니다.

반면에 킬리안은 우위를 점했다고 생각했는지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재미있군 그래.”

킬리안은 마법 방패를 긁는 실에 더욱 힘을 불어넣었다.

실에 가해진 마법의 힘은 어마어마했고, 결국 마법 방패가 버티지 못하고 깨져 나갔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마법 방패가 붕괴된 순간 사울은 다시금 마법을 시전했다.

“쉴드!”

“그렇게 두진 않아!”

킬리안의 외침과 동시에 몇 가닥의 실이 날아왔다.

급하게 만들어진 마법 방패와 실이 부딪친 순간 사울은 큰 충격을 느꼈다.

‘이건…….’

실 자체에 무언가 강력한 힘이 흘렀다.

어지간한 마법 방패 따윈 무시해 버릴 수 있는 힘 말이다.

실제로 사울이 두 번째로 친 마법 방패는 너무나도 어이없이 잘려 나가 소멸되었다.

순간 마나가 흐트러진 사울은 다시 마법을 시전할 만큼의 순발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대로는 꼼짝없이 킬리안의 공격에 당할 판이었다.

그 순간 아이나가 사울의 앞을 철통같이 막아섰다.

자신의 목숨과 바꿔서라도 사울의 목숨만은 지키겠다는 태도였다.

그런데 그녀의 방패와 도끼에 부딪힌 실이 힘없이 끊어졌다.

그 광경을 본 사울은 재빨리 상황을 분석했다.

분명 저 실은 마법 방패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에 반해 아이나의 방패나 도끼에는 별다른 충격을 주지 못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는 법.

지금 킬리안이 날린 실은 일종의 대(對) 마법용 무기인 듯 했다.

마법은 잘 상대하지만 도끼나 방패 같은 물리적인 무기 앞에서는 약한 특징이 있는 게 아닐까.

전생의 전장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었다.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 마법 대응에 특화된 대(對) 마법용 무기 등이 등장하는 일 말이다.

킬리안 정도의 거물이라면 어떤 방법으로든 그런 무기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이 사울 주변의 기사들도 킬리안을 공격했다.

하나같이 실력자들이었지만, 킬리안의 눈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후훗.”

비웃음과 함께 킬리안이 격정적으로 피아노를 치듯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연주하는 것은 악기가 아닌 죽음의 실이요, 나오는 소리는 감미로운 음악이 아닌 쇠 긁는 소리와 비명이었다.

“으악!”

“아아악!”

연신 기사들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개중 무사한 건 아이나 뿐이었다.

방패와 도끼로 사울과 자신 모두를 철통같이 지켰다.

잠깐 사이 킬리안과 사울 사이에 서 있는 건 아이나 밖에 없게 되었다.

왕자의 위기에 놀란 병력이 어떻게든 지원에 나서려 했지만 킬리안의 부하들이 막았다.

“두목의 명령이다!”

“저놈들이 왕자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라!”

일개 도적이 토벌군을 쓰러뜨리고 왕자를 겁박하려 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기막힌 일이요, 치욕이다.

하지만 사울은 치욕에 주저앉지 않았다.

“대단한 실력이군.”

사울의 감탄에 킬리안은 미소를 짙게 했다.

“이제 전하 차례입니다.”

킬리안의 존댓말에는 다분히 비꼬는 의도가 섞여 있었다.

그럼에도 사울은 넘어가지 않았다.

“날 죽일 생각인가?”

“아니요. 죽이지는 않겠습니다. 그 대신 고통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쳐 드리지요.”

“…….”

“제게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한다면 한 번 용서할 생각도 있습니다만.”

“왕자인 내가 도적 따위에게 무릎을 꿇으리라 생각하나?”

“후훗.”

킬리안이 다시 실을 날렸다.

아이나가 앞에서 실을 막고 쳐냈지만, 모두 막지는 못했다.

개중 한 가닥이 사울을 노렸다.

다행히 대단한 공격은 아니라 사울이 마법 검으로 쳐낼 수 있었다.

“전하……!”

마침내 사울이 직접 공격을 당하는 상황에 이르자 아이나는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한심하군요. 도적에게 무릎을 꿇지 못한다고 하면서 영주의 딸의 뒤에 숨어 목숨을 부지하는 꼴이라니.”

전생과는 별개로 왕자로 태어나고 자란 사울로서는 참기 어려운 모욕적인 말이었다.

사울도 내심 분노했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화를 내는 것보다 더 효과가 좋은 방법이 있었으니까.

“한심한 건 그쪽 아닌가?”

“???”

“나도, 여기 아이나도 아직 성인식을 치른 지 1년도 되지 않았다. 어리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는 나이지.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경험도 쌓을 만큼 쌓은 도적놈이 어린 우리를 겁박하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게 더 부끄럽고 한심한 일 아닌가?”

“……!”

사울의 반론에 킬리안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재미있군.”

그러면서 킬리안이 다시 실을 날렸다.

열 가닥이 넘는 실의 절반은 아이나를, 나머지 절반은 사울을 노렸다.

사울은 조금 전 교훈을 잊지 않았다.

자신과 아이나의 앞에 조금 전보다 두 배는 튼튼한 마법 방패를 쳤다.

킬리안이 날린 실은 모조리 마법 방패에 부딪쳤다.

“!!!”

역시나 이번에 날아온 실중에도 대(對) 마법용이 포함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조금 전보다 훨씬 튼튼하게 친 마법 방패를 뚫지는 못했다.

그 틈을 타 사울은 아이나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지금은 방어에 전념해요. 빈틈이 생기면 공격을 하고.”

사울의 말뜻을 알아들은 아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하.”

그러면서 사울은 다시 킬리안에게 말했다.

“다시 말하지. 부끄러운 줄 알아라. 도적놈.”

킬리안은 미소를 유지한 채, 전보다 살기 어린 눈빛으로 맞받았다.

“왕자의 입에서는 어떤 비명이 나올지 기대되는군.”

사울도 킬리안의 살기를 느꼈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이 자리에서 죽거나 끔찍한 꼴을 당할 것이다.

긴장감으로 검을 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지만, 떨지는 않았다.

목숨을 건 싸움은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킬리안이 손을 뻗었다.

여러 가닥의 실이 복잡한 궤도로 춤을 추며 사울에게 날아갔다.

사울은 다시 한 번 쉴드 마법을 시전했다.

아낌없이 마나를 쏟아부어 튼튼하게 만든 마법 방패에 십여 가닥의 실이 날아와 할퀴었다.

그럼에도 실이 방패를 할퀴는 순간 사울은 큰 충격을 느꼈다.

‘정말… 대단한데.’

실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

마법 방패를 부수거나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對) 마법용 무기나 기술이라 해도 이 정도의 힘을 발휘할 줄이야.

카스텔을 제외하면 이렇게 강력한 힘은 느껴 본 적 없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싸우고 있는 칼립소와 비교해도 격이 다른 수준의 강함이었다.

적의 강함을 인정하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하지만 자존심과 별개로 버티다보면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다.

킬리안도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사울을 향한 공격을 더욱 거세게 했다.

그가 날린 실이 기사들은 물론 아이나도 안중에 없다는 듯 사울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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