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전하!”
오직 사울 한 사람만을 노린 공격에 기사들이 놀라 외쳤다.
사울은 길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코앞의 난관을 버텨 내는 것.
그것만을 목표로 삼아야 했다.
사울은 자신의 힘 대부분을 쏟아부어 쉴드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면서도 반격을 위해 또 다른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순간 눈앞이 일그러져 보였다.
무슨 현상인지 사울은 잘 알고 있었다.
한 번에 마나를 지나치게 사용했을 때 일어나는 부작용이다.
당연한 일이다.
한 번에 무리 없이 쓸 수 있는 마나가 10이라면, 지금 사울이 쓴 마나는 20은 될 거다.
한계치에 두 배나 되는 마나를 단숨에 소비했으니 몸이 축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반격을 위해 공격 마법까지 은밀히 준비했으니 더더욱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울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는 쓰러질 수 없었다.
그래서 사울은 부작용 따윈 생각하지 않고 마나를 한계치까지 끌어모았다.
“도적 따위에게 당할 것 같나!”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크게 외치며 사울은 마나를 쏟아부었다.
지금껏 사울이 만든 그 어떤 마법 방패보다 크고 뚜렷한 형체의 방패가 날아오는 실에 맞섰다.
잠시 후 실이 방패를 긁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전하…….’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아이나도 사울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아챘다.
무리해서라도 전력을 다해 방어하며 적의 빈틈을 노린다.
아이나 역시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음을 깨달았다.
당장 자신들이 저 막강한 킬리안을 이기긴 어려울 것이다.
결국 사울이 주도하여 킬리안을 상대해야 한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킬리안의 막강한 창을 사울의 방패가 버틸 동안 빈틈을 노려 찌르는 것이리라.
아이나는 도끼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지금 방패 역할은 자신이 아닌 사울이 맡고 있다.
그렇다면 사울을 믿고 방패 뒤에서 공격할 틈을 노릴 때다.
쩌저적.
아이나가 빈틈을 노리는 사이 킬리안이 날린 실이 마법 방패를 맹렬히 할퀴었다.
아직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웠다.
예상보다 빨리 마법 방패가 무너지려 하자 아이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다시 마법 방패가 부서지면 이번에야 말로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당장이라도 사울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다행히 사울의 방패는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부서질 듯 말듯 흔들리면서도 끈질기게 버티며 킬리안의 공격을 막아 내냈다.
한계를 넘어선 마나 사용에 사울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덕분에 아이나와 기사들을 위한 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제법이군.”
열 가닥이 넘는 실을 조종하며 계속 사울을 공격하던 킬리안 역시 힘을 더하려 했다.
하지만 그를 가로막는 자들이 있었다.
“죽어라!”
사울을 지키기 위해 킬리안에게 달려든 기사들이었다.
킬리안은 사울에게 날리려던 실을 그들에게 날려야 했다.
동시에 마법 공격도 날아왔다.
토벌군의 마법사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킬리안 공격에 나선 것이다.
역시나 킬리안은 대 마법용 실을 이용해 거미줄 형태의 방패를 만들었다.
“지금이야.”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아이나는 쥐고 있던 도끼를 치켜들었다.
이 도끼로 킬리안을 맞출 수만 있다면 이 모든 싸움을 단숨에 끝낼 수 있다.
지금이라면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나는 가지고 있던 모든 신체의 힘과 마나의 힘까지 끌어모아 도끼를 던졌다.
아이나의 손을 떠난 도끼가 굉장한 속도로 킬리안에게 날아갔다.
이런저런 공격에 맞서느라 정신이 흐트러져 있던 킬리안도 바로 눈치챌 만큼 강력한 공격이었다.
“……!”
놀란 표정과 함께 킬리안이 손을 휘둘렀다.
사울의 마법 방패를 긁고 있던 실 몇 가닥이 빠른 속도로 킬리안 주변에 몰려들어 거미집 형상으로 방패를 형성했다.
그 모든 과정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아쉽게도 아이나가 전력을 다해 날린 도끼가 도착한 건 킬리안이 만든 ‘거미집’이 완성된 직후였다.
챙!
아이나의 도끼는 킬리안이 만든 거미집을 뚫지 못했다.
도끼와 실이 부딪친 게 아니라 도끼가 쇳덩어리를 때린 듯한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갔다.
아이나의 마력 아래 있던 도끼는 다시 아이나에게로 되돌아갔다.
‘왕자도 왕자지만 저 어린 계집도 한가락하는군.’
공격을 막아 냈지만 킬리안은 제법 놀랐다.
상당히 날카로운 공격이었고, 대단한 위력이었다.
게다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심상치 않은 마나의 기운에 시선을 돌리니 사울 주변에 마법의 기운이 모이는 게 보였다.
사람 머리보다 큰 불덩어리.
말이나 소도 단숨에 꿰뚫을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얼음 창.
뭉쳐진 형상이 어렴풋이 보이는 바람의 칼날.
물결이 일렁이듯 흔들리는 대지.
불, 물, 바람, 땅.
4대 마법 속성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울의 강력한 마법을 경계하던 칼리안에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아르멜이 달려들었다.
“킬리안!”
지금껏 싸움에서 제몫을 다하면서도 튀지 않고 빈틈을 노리던 그가 마침내 기회를 잡은 것이다.
아르멜의 날카로운 검격이 킬리안을 향했다.
마나를 이용하여 순간적으로 강화시킨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한 빠르고 날카로운 공격.
마나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따라할 수 없는 위력이다.
하지만 킬리안은 당황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주던 ‘거미집’을 아르멜 쪽으로 돌렸다.
아르멜이 휘두른 검이 킬리안의 거미집과 부딪쳤다.
검과 검이 부딪친 듯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아르멜의 검이 튕겨 나갔다.
큰 충격에 검을 놓칠 뻔한 아르멜은 간신히 자세를 바로잡았다.
킬리안이 그런 아르멜에게 손을 휘둘렀다.
새로 모습을 드러낸 몇 가닥의 실이 아르멜을 덮쳤다.
아르멜은 검을 휘둘러 실을 쳐냈지만, 한 가닥을 미처 쳐내지 못했다.
“큭.”
한쪽 다리가 베인 아르멜은 신음과 함께 자세가 흐트러졌다.
흐트러진 자세로 시선을 내려보니 다행히 출혈은 심하지 않았다.
일단 상처를 무시하기로 한 아르멜은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았다.
“끈질긴 놈들.”
킬리안은 그런 아르멜에게 결정타를 날리려는 듯 다시 손을 휘두르려 했다.
바로 그때.
“킬리안!”
사울이 큰소리로 외쳤다.
사울의 외침과 느껴지는 마나에 킬리안은 아르멜에게서 시선을 뗄 수밖에 없었다.
그런 킬리안의 시선에 완성된 사울의 마법이 보였다.
불, 물, 바람, 땅.
4대 속성의 마법 하나하나가 무시하지 못할 위력을 품고 주인의 명령만을 기다리는 게 보였다.
“칫.”
킬리안은 그때까지도 마법 방패를 긁고 있던 실들을 거두었다.
여기저기 힘을 분산시키면서 막을 만한 공격이 아니었다.
킬리안의 기세가 수그러들자 아르멜이 다시 검을 휘둘렀다.
아이나 역시 다시 한 번 도끼를 던졌다.
킬리안이 그런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 내는 찰나.
마침내 사울이 마법 검을 뻗었다.
마법 방패를 유지하면서도 마나를 짜내 만들어 낸 네 개의 공격 마법이 일제히 킬리안을 덮쳤다.
“!!!”
킬리안도 사울의 이번 공격에는 긴장했다.
사울의 마법은 화려한 왕궁에서 지내던 애송이 왕자가 시전한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하나하나가 강력했고, 또 정확했다.
킬리안은 사울 앞에 나타난 뒤 처음으로 방어에 집중했다.
적을 죽이는 일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스스로 지키는 데만 전념했다.
먼저 날아오는 불덩어리가 대 마법용 실과 부딪쳐 소멸되었다.
커다란 얼음 창도 마찬가지로 대 마법용 실에 부딪쳐 소멸되었다.
바람의 칼날은 실로 막기는 어려웠다.
킬리안은 몸의 마나를 끌어올려 한껏 도약했다.
바람의 칼날이 그런 킬리안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마지막 남은 건 대지의 공격이었다.
마치 지면에서 파도가 치듯 물결치며 다가온 흙덩이가 킬리안 근처에서 솟아올랐다.
꼬챙이 모양으로 높이 솟아오른 흙덩이가 허공에 뜬 킬리안의 몸을 꿰뚫으려 했다.
위기의 순간 킬리안이 손을 휘둘렀다.
그의 손끝에서 뻗어 나간 실이 흙덩이를 감쌌다.
흙덩이를 막거나 베려고 날린 실이 아니었다.
킬리안은 흙덩이를 휘감은 실을 쥐고 날아오는 마법의 기세에 몸을 맡겼다.
실과 연결된 킬리안의 몸은 흙덩이에 관통당하는 대신, 흙덩이가 움직이는 기세에 맞춰 날아갔다.
멀리 날아간 킬리안은 보잘것없이 나가떨어지는 대신 제대로 된 낙법으로 착지했다.
그런 킬리안의 모습에 사울은 순간 상대가 적이라는 사실도 것도 잊고 감탄했다.
정말 대단한 실력이요, 몸놀림이다.
현생에도 전생에도 저 정도의 실력자는 많이 보지 못했다.
저 정도의 실력이 있으면 평민이라도 다르센 왕국에서든 가멜다 왕국에서든 한자리 할 수 있을 것인데.
“그 정도 실력으로 도적 집단이나 이끌고 있다니, 한심하군.”
사울의 말에 킬리안이 눈을 번득였다.
“너 같은 놈에게는 듣고 싶지 않다.”
‘나 같은 놈?’
말뜻을 잘 알아듣는 편이라 자부하는 사울도 킬리안의 말은 쉽게 알아듣기 힘들었다.
나이 어린 애송이에게 이런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투는 아니다.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소리지?”
“알려 줄 이유는 없지. 죽어라.”
다시금 킬리안이 양손을 뻗었다.
그의 양손에서 수십 가닥은 되는 실이 새로 흘러나왔다.
“이런…….”
조금이라도 말로 시간을 끌어 보려 한 사울은 바로 이어진 공격에 당황했다.
아무래도 킬리안은 아직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지 않은 것 같았다.
자신은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데 말이다.
더 버틸 수 있을까.
이 자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좌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려는 찰나, 다행히 구원이 다가왔다.
“왕자 전하를 공격한 반역자들이다!”
“모조리 쳐 없애라!”
한 무리의 병력이 다가왔다.
후방에서 보낸 지원군이었다.
긴급히 파견된 지원군이라 병력은 많지 않았지만, 사울 입장에서는 천군만마와 같았다.
물론 킬리안 입장에서는 심각한 방해물이었지만.
“빌어먹을.”
욕설을 뇌까리며 킬리안은 다른 쪽을 살폈다.
처음부터 소수 병력으로 기습을 한 것이라 이미 아군은 한계였다.
함께 온 병력도 상당수 죽거나 전투 불능이었고, 칼립소 같은 실력자들만 분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싸우다가는 전멸이다.
‘왕자 놈을 죽이지는 못해도 팔다리라도 하나 자르거나 눈이라도 뽑고 싶었건만.’
생각을 정리한 킬리안은 품에서 호각을 꺼내 불었다.
삐익!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전장의 수많은 소음을 뚫고 울려 퍼졌다.
그냥 호각을 분 것이 아니라 마법으로 소리를 증폭시킨 결과였다.
호각을 분 킬리안은 사울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또 보자.”
그렇게 이야기하는 킬리안의 얼굴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조금 전 사울이 날린 마법 중 ‘바람의 칼날’에 스친 결과였다.
그런 킬리안의 살기 어린 눈빛에 사울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정신과는 별개로 몸이 먼저 살기에 반응을 한 것이다.
사울은 몸의 반응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말했다.
“다음에는 살려 보내지 않겠다.”
“…….”
그런 사울을 쏘아보던 킬리안이 몸을 돌렸다.
그런 킬리안에게 칼립소가 다가와 물었다.
“두목, 왕자 놈은 어떻게 했어요?”
“못 죽였다.”
“그럼 눈알이라도 하나 빼셨나요?”
“그것도 다음 기회에 해야겠다.”
“그래요? 쳇. 아쉽게 되었네.”
“우리는 몇 명이 남았나?”
“두목과 저를 합쳐서 다섯 정도요.”
데리고 온 병력의 절반 이상이 죽거나 사로잡혔다는 뜻이다.
킬리안은 별수 없다는 듯 말했다.
“후퇴한다.”
“네, 두목.”
킬리안 일행은 숨겨 둔 말을 타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놈들이 도망친다!”
“쫓아라!”
일단의 병력이 도망치는 킬리안 일행의 추격에 나섰고, 남은 토벌군은 전장 수습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