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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66화 (66/232)

66화

사울의 말에 모두들 눈이 커졌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카스텔마저도 놀란 눈빛을 할 정도였다.

“전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눈이 둥그래진 아이나에게 사울이 웃으며 말했다.

“그들 중 첩자가 있을 수 있지요. 그것을 감안하고 친하게 지내자는 말이에요.”

사울의 말뜻을 가장 먼저 알아들은 건 아르멜이었다.

“첩자를 역으로 이용하자는 말씀이십니까.”

“맞아. 내가 가멜다 왕국의 첩자고 내가 있는 곳에 적국 왕자가 온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접근할 거야. 그리고 언변이나 뇌물로 환심을 사고, 어떻게든 유용한 정보를 알아내려 하겠지. 회유에 실패하면 무력을 동원할 수도 있고. 그렇다면 내 쪽에서 그런 점을 이용할 수도 있을 거야. 선을 넘지는 않고 선을 지키며 이득을 볼 생각이야. 잘 하면 거짓 정보로 적들을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겠지.”

그제야 사울의 말뜻을 알아들은 루시아도, 카스텔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해 볼 만한 일이다.

다만 아르멜은 생각이 달랐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면 전하께서 오해를 받을 수도 있고요.”

“내가 가멜다 왕국 첩자랑 놀아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미리 말해 두는 거야. 누님과 아바마마께 미리 이 일을 알리면 오해를 살 일도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그 일은 제가 보고하겠습니다.”

아르멜을 납득시킨 사울은 다시 질문했다.

“너는 회색 그림자 소속이니 첩자를 다루는 방법을 잘 알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전하.”

“내가 가멜다 왕국 첩자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전하께서 먼저 그쪽에 정보를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첩보의 기본이군.”

첩자는 정보의 전문가들이다.

필요하다면 자신이 가진 진짜 정보를 상대에게 넘겨줄 수도 있겠지만, 공짜로 넘겨주지는 않는다.

저울질을 하고 정보를 내놓는 게 자신에게 이익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한 결단코 먼저 입을 열 자들이 아니다.

그래서 첩자 다루기 어렵고, 첩보전이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울은 일반적인 첩보전을 할 마음은 없었다.

이쪽에는 ‘검은 마녀’가 있으니까.

“남들 눈을 피해 첩자를 만날 수만 있다면 큰 문제는 아니야.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면 되니까.”

아무리 입이 무거운 첩자라도 마법의 힘으로 입을 열게 할 수 있다.

카스텔의 능력이라면 본인이 정보를 토해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문제는 가멜다 왕국 첩자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리라는 점이었다.

“첩자가 누구든 카스텔 님 앞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겁니다.”

“그건 당연하지.”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내가 유인을 하여 첩자를 찾아낸 뒤 선생님이 마무리를 짓는 거야.”

간단하지만 효과적이고 실패해도 뒤탈이 적은 방법이다.

어쨌든 가멜다 왕국 첩자만 찾으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일 것이다.

“성공한다면 효과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단지…….”

“단지?”

“가멜다 왕국 첩자도 전하의 존재와 카스텔 씨의 존재 모두를 알고 있겠지요.”

“그렇겠지.”

사울과 카스텔이 함께 활동한다는 건 알 사람은 모두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

어쩌면 가멜다 왕국의 첩자들은 대신전에 사울이 등장한 순간부터 카스텔의 존재를 예상하고 조심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웬만해서는 자신의 정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꽤나 긴 싸움이 될 지도 모르겠군. 아니면 끝내 첩자가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을 테고. 하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할 거야.’

사울은 해 보기로 했다.

* * *

마음을 정한 사울은 홀로 콜리타를 찾아갔다.

콜리타는 여전히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지만, 사울의 방문을 받을 만큼의 기력은 남아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콜리타의 질문에 사울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먼저 이런 말을 하는 게 대신관이나 이 신전에 불만이 있어서라는 게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 신전에 저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자들이 있더군요.”

세월이 흘러 노쇠했지만, 판단력은 여전한 콜리타는 단박에 사울의 말을 알아들었다.

“가멜다 왕국 출신의 신관이나 성기사들 말씀입니까.”

“네.”

“안심하십시오. 그들이 전하께 해를 끼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미 신을 따르며 신에게 모든 것을 바친 자들이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얀 까마귀나 어둠의 세력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한 가지 약속을 받고 싶어요. 가멜다 왕국 출신의 신관이나 성기사가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는데, 내가 다르센 왕국 왕자라는 이유만으로 그 열쇠를 내놓지 않아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일 같은 건 피하고 싶습니다.”

천연덕스러운 표정의 사울을 바라보던 콜리타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300년의 전쟁이 두고두고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사울도 쓴웃음을 지었다.

“그 말에는 동의합니다.”

“전하의 말씀을 잘 알겠습니다. 무엇을 원하시는 지도 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습니다. 전하는 가멜다 왕국을 멸망시키고 싶으십니까?”

콜리타가 허세를 부리는 건 아니다.

사울의 속내를 어디까지 꿰뚫어 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많은 것을 짐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을 모르는 자를 속이는 건 쉽지만 아는 자를 속이기는 어려운 법.

속내를 다 드러낼 수는 없어도 어느 정도는 진실을 말해야 할 것 같다.

‘진실이라면…….’

사울은 지금 자신이 가멜다 왕국에 가진 감정을 돌이켜 보았다.

전생의 조국이지만 충성심은 남아 있지 않고 원한만 남았다.

가멜다 왕국이 멸망당하고 잿더미만 남아야 할까?

그것을 원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가야 할까.

의외로 사울은 지금 이 질문을 받기 전까지 그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심으로 전생의 조국을 송두리째 멸망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을까.

아니면 가족의 몰락에 가담한 사람만을 골라 피를 봐야할까.

이 자리에서 결정 내릴 정도로 가벼운 질문이 아니었다.

결론 내리지 못한 것을 결론 내렸다고 거짓으로 말하기도 어렵다.

결국 사울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르센 왕국의 왕자로서 적국을 물리쳐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물리친다고 하셨지요. 그것은 왕국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전하 개인의 영광을 위해서입니까, 그도 아니면 둘 다입니까?”

‘굳이 말하자면 개인적인 원한을 풀기 위해서이지요.’

사울은 진심을 입 밖에 낼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이렇게 말씀드리지요. 어쨌든 나는 무고한 피를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싸워야 한다면 왕실의 일원으로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시군요. 조국에 대한 의무를 다하겠다는 것을 탓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던 콜리타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저는, 그리고 교단에서는 이 신전이 정치적 다툼의 무대가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요?”

“전하를 이용하려는 자가 이 신전에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전하께서도 이곳까지 찾아오신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마음속을 꿰뚫어 본 듯한 콜리타의 말에 사울은 적잖이 놀랐다.

과연 다르센 왕국과 가멜다 왕국 모두의 견제를 받으면서도 중립 지대의 대신전을 잘 운영해 온 사람다운 면모랄까.

늙고 병들었지만 만만한 사람은 아니다.

사울은 미소로 속내를 감추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신관. 그러니 내 부탁도 들어주세요.”

“말씀하십시오.”

“가멜다 왕국 출신 신관과 기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었으면 합니다.”

그런 사울을 바라보던 콜리타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고요?”

“네, 전하.”

왕자가 먼저 부탁을 했는데 거기에 조건 운운하는 건 상당히 무례한 언동이다.

경험 많은 콜리타가 그것을 모를 리 없는데 무례를 감수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무슨 조건인가요?”

“신관 한 명을 전하 곁에 두셨으면 합니다.”

“신관? 어떤 신관인가요?”

“그 아이의 이름은 데이빗입니다. 가멜다 왕국 태생이지요.”

아이라고 말 할 정도면 젊다 못해 어린 신관인 모양이다.

어린 신관을 곁에 둔다는 것부터가 문제인데, 가멜다 왕국 출신이라면 더 큰 문제다.

일단 사울은 거절해 보았다.

“그 신관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아직 어리지만 뛰어난 아이입니다. 전하께서 걱정하는 그런 사람도 아니고요.”

사울이 돌려 거절해 보았지만, 콜리타는 계속 밀어붙였다.

어지간히 데이빗이라는 신관을 사울 곁에 붙여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지. 여긴 왕국법 위에 교단의 규율이 있으니.’

“알겠습니다. 대신관의 뜻에 따르지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배려도 함께 부탁드립니다.”

‘정말 큰 부탁을 하시는군요.’

사울은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이왕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대범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으니까.

오래잖아 부름을 받은 데이빗이 들어왔다.

데이빗은 이제 열일곱 살인 사울보다 확연히 어려 보였다.

입고 있는 신관복도 보통 신관들과는 달랐다.

더 간소하고, 또 검소한 신관복은 견습 신관의 것이었다.

“찾으셨습니까, 대신관님?”

데이빗은 다소곳이 콜리타에게 인사를 했다.

몸가짐은 크게 흠잡을 데 없었지만, 귀족 출신은 아닌 모양이었다.

“데이빗. 여기 계신 분이 누구인지 알겠느냐?”

질문을 받은 데이빗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다르센 왕국의 사울 왕자님이 아닙니까?”

“그래. 당분간 널 사울 왕자님 곁에 두려고 한다.”

“알겠습니다.”

가멜다 왕국 출신인 자신을 적국 왕자 곁에 두겠다는 말에도 데이빗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사전에 말이 오가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울은 모르는 척 데이빗에게 말을 걸었다.

“만나서 반갑다. 데이빗.”

“저도요, 잘 부탁드립니다. 전하.”

데이빗은 적대감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태도로 허리를 숙였다.

고개를 든 데이빗의 표정에서도 적대감이나 두려움, 하다못해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다르센 왕국의 왕자를 만나고, 또 그의 곁에 있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 지 잘 알고 있을 것인데 말이다.

‘바보 아니면 대범한 녀석이겠지.’

사울은 콜리타가 보는 앞에서 어려운 이야기를 꺼냈다.

“가멜다 왕국 출신이라고?”

“그렇습니다, 전하.”

“내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다고 했지?”

“네. 다르센 왕국의 다섯 번째 왕자이신 사울 다리우스 전하 아니십니까?”

“맞아. 비록 휴전 조약을 맺기는 했지만, 네 적국의 왕자지.”

데이빗은 이런 사울의 말에도 겁먹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전하.”

“괜찮다고?”

“네. 저는 아주 어릴 때 가족을 잃고 신전에 왔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국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어느 쪽의 편을 들 마음도 없습니다. 저는 오직 빛과 교단을 따를 뿐이며, 대신관님의 명령에 따라 전하를 모실 것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또 외부인을 곁에 붙이는 일이니 사울 쪽에서도 조사를 할 것이다.

“좋아. 당분간 내 곁에 있도록 해.”

“감사합니다. 전하!”

사울은 콜리타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대신관.”

사울 쪽에서 이야기를 들어 주었으니 이제는 콜리타가 사울 이야기를 들을 차례다.

말뜻을 알아들은 콜리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하.”

* * *

데이빗은 사울을 보좌하겠다는 명분으로 따라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명분일 뿐이다.

지금의 사울에게는 특별히 보좌나 시중이 필요 없었다.

그런 일은 그레이나 아르멜, 혹은 왕국에서 데려온 사람들에게 맡기는 게 편했다.

하지만 대신관이 맡긴 사람을 홀대할 수는 없다.

일단 사울은 데이빗을 그레이에게 소개했다.

“이쪽은 내 시종장 그레이. 그레이, 여긴 견습 신관 데이빗이야.”

사울의 소개에 그레이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하면서도 일단 인사를 했다.

“견습 신관이라고?”

“네, 시종장님.”

데이빗은 그레이에게도 싹싹하게 인사를 했다.

귀족의 시각으로 보면 부족했지만, 싹싹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레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신관님이 직접 붙여 주셨다는 말이지. 앞으로 전하를 잘 모셔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사울은 그런 그레이에게 조용히 말했다.

“잠시 이야기 좀 해.”

“무슨 일입니까?”

“데이빗, 잠시만 나가 주지 않겠어?”

“네, 전하.”

사울은 데이빗을 내보낸 뒤 그레이는 물론 카스텔과 아이나, 아르멜 모두를 불러 말했다.

“저 견습 신관 말인데… 가멜다 왕국 출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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