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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77화 (77/232)

77화

“무언가가 옵니다.”

“적인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아직 패거리가 남아 있었다는 말인가.

카스텔의 말이 끝나고 오래잖아 사울도 낯선 마나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도 여러 개였다.

마법사나 마법을 쓸 줄 아는 실력자 여럿이 똑바로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분명했다.

적이 기척만 느끼고 줄행랑치는 것을 막기 위해 카스텔은 자신의 힘을 가능한 숨겼다.

하지만 완전히 숨기기는 어려웠고, 사울이나 아이나 등도 마찬가지였다.

즉 적들은 이쪽에 마나를 다루는 실력자 여럿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줄행랑을 치는 대신 곧바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놈들이 아니군.’

사울뿐만이 아니라 모두들 같은 생각을 하며 긴장했다.

트캇은 자기 꼴도 잊어버리고 이죽거렸다.

“이를 어쩌나? 우리 편이 온 것 같은데.”

트캇이 말하는 ‘우리 편’마저 박살 낸다면 이 자의 태도도 바뀔지 모른다.

사울은 트캇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며 적을 상대하라고 명령하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음?’

낯선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대단한 마법은 아니지만 낯설고, 또 기분 나쁜 기운.

일반적인 마법의 기운과는 무언가 확연히 달랐다.

낯선 마나는 사울이나 다른 일행을 덮치지 않았다.

낯선 마나가 향한 곳을 알았을 때는 이미 반응이 터져 나온 뒤였다.

“크아악!”

비명과 함께 트캇이 피를 뿜었다.

엄청난 내상이라도 생긴 것처럼 어마어마한 기세로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경악한 트캇의 눈빛은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일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으억!”

트캇과 함께 붙잡힌 자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모두들 자기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피를 내뿜으며 경악한 채로 목숨을 잃었다.

순식간에 다섯 명의 포로가 모조리 시체가 된 것이다.

‘이건……!’

마법 지식이라면 상당한 사울로서도 이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새로운 적이 눈 앞에 나타나거나 감지되었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적들이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포로들이 모조리 죽어 나자빠지다니.

미지의 강력한 마법이 시전된 것인가?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당장 떠오르지는 않지만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사울은 적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조금 전 사울이 만들어 낸 마법 불빛 아래에 새로운 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섯 명의 적들.

하나같이 로브에 후드를 뒤집어쓰고, 얼굴에는 복면까지 쓰고 있었다.

여러모로 조금 전 붙잡은 트캇 일당과는 차원이 다른 놈들 같았다.

‘이종족인가.’

사울은 적 대부분이 이종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로브로 몸을 가리고 후드와 복면으로 머리와 얼굴까지 가렸지만 이종족의 특징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오크 특유의 덩치와 푸른 피부가 드러난 자도 있었고, 드워프 특유의 땅딸막한 체형을 가진 자도 있었다.

한두 명은 인간이나 인간과 닮은 엘프 같지만 나머지 세 명은 이종족이 분명했다.

“모두 죽여라.”

적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말했다.

그리곤 명령을 내린 우두머리를 포함한 모두가 사울 일행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보통 놈들이 아니다.’

느껴지는 마나의 기운만으로도 심상찮은 예감에 사울은 마법 검을 치켜들었다.

조금 전에는 봐주면서 여유롭게 싸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가능한 적을 생포하라는 명령을 할 때도 아니었다.

그런 사울에게 거구의 적이 달려왔다.

조금 전 사울을 도운 아이나 역시 먼저 달려온 적을 상대하느라 사울을 도울 새가 없었다.

다행히 사울은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죽어라!”

오크로 보이는 적이 도끼를 휘둘렀다.

아이나가 휘두르는 한손 도끼보다 두 배는 크고 긴 대형 도끼였다.

튼튼하지만 가볍고 가느다란 마법 검으로 저런 도끼질을 막는 건 현명하지 않다.

일단 사울은 몸을 피했다.

제법 큰 동작이 빗나갔지만 오크는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다시금 도끼를 휘둘렀다.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공격이 몇 번이나 사울의 몸을 노렸다.

척 봐도 힘 싸움으로는 불리하다.

그렇다면 마법으로 승부를 낸다.

사울은 오크의 공격이 빗나가자 곧바로 마법 검을 뻗었다.

칼집에서 뽑지도 않고 거꾸로 쥐어진 마법 검을 얕본 듯 오크는 방어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것이 실책이었다.

오크를 향해 뻗어 나간 마법 검 손잡이의 보석이 빛나며 날카로운 얼음 칼날이 뻗어 나갔다.

마법으로만 공격하지 않고 검술과 함께 마법을 시전함으로서 보다 빠르고 날카로우며, 피하기 어려운 공격이 완성되었다.

“컥!”

마법 검에서 뻗어 나간 얼음 창에 꿰뚫린 오크가 눈을 부릅떴다.

복부가 완전히 꿰뚫렸으니 보통은 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사울은 상대가 오크고, 과거에도 비슷한 일을 겪은 경험 때문에 방심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오크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자신의 복부를 꿰뚫은 얼음을 꽉 움켜쥐고는 도끼를 치켜들었다.

그대로 사울의 머리를 날릴 기세였다.

“……!”

상상 이상의 생명력에 놀란 사울이었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사울은 재빨리 마법 시전을 멈춰 얼음 창과 마법 검을 분리시켰다.

그리곤 날아오는 도끼를 피해 몸을 뒤로 뺐다.

오크의 도끼질이 허투루 돌아가고, 빈틈이 훤히 드러났다.

“파이어 월!”

마법 시동어와 함께 사울이 마법 검을 뻗었다.

마법 검이 가리킨 끝, 오크가 서 있던 곳의 지면에서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사람 키보다 두 배 이상은 되는 높이의 커다란 불기둥은 순식간에 오크를 집어삼켰다.

불기둥이 나타나고 사라진 건 몇 초도 되지 않았지만, 그 속에 있던 적의 생명을 불사르는 데는 충분했다.

“크아아악!”

비명과 함께 온몸이 그슬린 오크가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 광경을 본 사울은 혀를 내둘렀다.

방금 전 시전한 파이어 월은 상당히 강력한 마법에 속했다.

보통 인간이나 오크였다면 거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잿더미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저 오크는 잿더미가 되지 않았고 바로 죽지도 않았다.

보통 오크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을 현상이었다.

‘역시 보통 놈이 아니야.’

눈앞의 적을 쓰러뜨려 여유가 생긴 사울은 주변 상황을 살폈다.

새로운 적은 트캇 일당보다는 강했지만 사울 일행이 못 당해낼 강적은 아니었다.

사울이 한 명을 쓰러뜨린 사이 카스텔이 두 명을 쓰러뜨렸다.

남은 건 우두머리와 그 곁에 있는 두 명 뿐.

“…후퇴한다.”

우두머리는 조금 전의 기세가 무색하게 곧바로 후퇴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여러 가지 상황을 준비하느라 소극적으로 움직였던 카스텔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카스텔은 마법의 힘을 빌려 엄청난 속도로 적에게 달려들었다.

두 명의 적들은 놀라면서도 카스텔을 막기 위해 공격했지만, 의미 없는 일이었다.

“크으윽……!”

카스텔은 쓰러져 신음하는 적 우두머리의 복면을 벗겼다.

“다크 엘프로군.”

짙은 갈색 피부의 엘프, 다크 엘프.

밝은 피부를 가진 보통 엘프보다 희귀한 종족이다.

이어 카스텔은 또 한 명의 복면을 벗겼다.

이번에는 밝은 피부의 보통 엘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전원이 이종족이었다.

아무리 이종족이 흔한 중립 지대라지만, 이종족으로만 구성된 자들이 자신들과 한패인 트캇을 살해하고 또 사울 일행을 공격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너희들은 뭐냐. 하얀 까마귀인가?”

“…….”

“순순히 말하지 않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입을 열게 하겠다.”

사울의 말에 우두머리인 다크 엘프가 눈을 부릅떴다.

“너희들은 우리에게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뭐라고?”

다크 엘프의 눈빛이 번득였다.

동시에 낯선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

누군가 또 공격을 하는 것인가?

긴장한 사울이었지만, 자신이나 동료에게 공격은 날아오지 않았다.

해를 입은 건 쓰러진 적들이었다.

“크아악!”

다크 엘프가 피를 토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 옆에 있던 엘프도, 그리고 아직 살아 있던 다른 적도 마찬가지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뜻밖의 사태에 사울마저도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일행 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피와 죽음을 누구보다 많이 겪은 카스텔이었다.

카스텔은 쓰러진 자들에게 다가가 살핀 뒤 사울에게 보고했다.

“모두 죽었습니다.”

“…어떻게 된 건가요?”

“조사를 해 봐야겠지만 독이나 마법으로 죽은 것 같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건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조금 전 트캇 일당과 같은 수법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몰랐지만, 이들은 스스로 선택하여 목숨을 끊었군요…….”

정신을 차린 사울은 먼저 주변을 살폈다.

이 어두운 숲에 자신들을 제외하면 살아남은 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남은 건 열 구의 시체 뿐.

사울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카스텔이 다시금 말했다.

“이들을 죽인 건 독이 아니라 마법인 것 같습니다.”

“대체 무슨 마법이지요?”

“제가 쓸 줄 아는 마법이거나, 제가 직접 본 적 있는 마법은 아닙니다.”

율렌 섬 최고의 전투 마법사 중 한 명인 카스텔이 쓴 적도 본 적도 없는 마법이라니.

사실 사울은 카스텔이 실력에 비해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석적으로 배우고 뛰어난 자질과 노력으로 강해진 마법사가 아니라, 본인이 원한 적 없던 힘을 억지로 손에 넣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정석적인 과정을 따라 강해진 마법사가 아니라 가진 힘에 비해 지식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스텔의 지식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수많은 마법을 구사할 줄 알았고, 또 수많은 실전을 치르며 다양한 마법을 경험했다.

그런 카스텔이 알지 못하는 마법이라니.

“선생님이 전혀 모르는 마법이라면 왕실 마법사단이라도 불러 조사해야겠군요.”

“지금으로서는 그게 유일한 방법일 겁니다. 조사단이 찾아오기 전에 시체가 썩고 마법의 흔적도 다 날아가 버릴 가능성이 높지만.”

“…그러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선생님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거예요?”

“말씀드렸듯 제가 알거나 혹은 본 적은 없는 마법입니다. 다만…….”

“다만?”

“이렇게 낯설고 강하며 또 위험한 마법이라면 짐작 가는 게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흑마법입니다.”

흑마법이라는 말에 모두의 표정이 변했다.

마법은 크게 백마법과 흑마법으로 나눌 수 있다.

백마법은 빛의 신이 창조한 이 세상에 흐르는 빛의 마나를 바탕으로 하며, 흑마법은 빛의 신과 대비되는 어둠의 마나를 근간으로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마법의 절대 다수는 백마법이다.

어둠, 어둠의 세력, 흑마법 등 그게 무엇이든 빛의 신과 반대되는 것을 기반으로 한 마법이나 학문, 종교 등은 이단으로 지정하여 철저히 탄압했기 때문이다.

교단의 경전에 따르면 빛의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섭리와 질서를 만들었다면 어둠은 세상 모든 것을 파괴하고 혼돈과 무질서로 돌리는 존재라고 한다.

그렇기에 어둠에 조금이라도 관여한 행동을 하거나 힘을 빌려 쓰는 건 세상을 파괴하고 무질서로 돌리는 데 협조하는 짓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어둠에 조금이라도 관여한 자들을 ‘이단’이라 부르며 탄압하고, 나아가 탄압이 정당하게 여겨지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에 흥미를 느끼는 자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창조와 섭리, 질서와는 반대되는 혼돈, 파괴와 무질서를 추구하는 힘은 빛의 힘과는 시작점부터 달랐고, 또 막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막강한 힘 이면에는 힘을 얻기 위해 누군가의 생명을 흡수하거나, 죽은 시체를 되살려 움직이는 등 온갖 불경스럽고 비도덕적인 행위가 뒤따랐다.

따라서 어떤 이유에서든 어둠에 관련된 지식을 익히는 건 엄격히 금지되었고, 스스로의 의지로 이를 익힌 자는 이유 불문 처형되었다.

그러한 극약 조치가 천 년 넘게 이어졌지만 어둠의 뿌리를 뽑지 못했다.

흑마법도 마찬가지였다.

율렌 섬, 나아가 이 세상의 주류 마법은 백마법이다.

상대를 상처 입히고 죽이는 마법이든, 상대를 치유하고 생명을 지키는 마법이든 빛의 마나를 기반으로 한다.

반면 흑마법은 백마법과는 시작점부터 달랐고, 체계와 주문 등도 크게 달랐다.

따라서 흑마법은 대마법사에게도 낯선 마법일 수밖에 없었다.

그 대마법사가 몰래 흑마법에 대해 배웠거나 익히지 않은 이상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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