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01화 (101/232)

101화

오스펠은 뛰어난 장인이지만, 뛰어난 마법사는 아니라고 했다.

아니, 마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깝다고 했다.

그런 오스펠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골렘에 뛰어난 마법 솜씨가 있다면…….

“이 골렘을 만든 게 오스펠이라면 동료가 있다는 뜻이군. 그것도 마법 실력이 뛰어난.”

“저희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기들은 조사해 보았나?”

“무기에도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역시 마법사, 그것도 마법 아이템을 만들 줄 아는 마법사의 소행이 분명합니다.”

오스펠 혼자가 아니라 동료가 있다.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사울이 쫓고 있는 미지의 적, ‘피닉스’는 일종의 조직으로 추측되었다.

오스펠은 그 조직의 일원이거나 혹은 수장일 가능성이 높다.

사울은 모두에게 말했다.

“아직 확실히 알아낸 건 없지?”

“그렇습니다.”

“알았다. 계속 조사하도록.”

* * *

몸이 회복된 사울은 며칠 동안 피닉스에 대한 것들을 조사했다.

때마침 카멜 산에서도 피닉스에 대한 정보를 들고 사울을 찾아왔다.

“전하, 이것이 저희들이 알아낸 정보들입니다.”

카멜 산에서 온 사절이 사울에게 문서들을 내밀었다.

문서 내용은 크게 특별할 게 없었다.

골렘은 오스펠이 만든 것으로 보이지만 혼자 만든 건 아니다.

또 다른 실력자가 개입한 것 같다.

오스펠과 또 다른 실력자는 아마도 ‘피닉스’의 일원일 것이다.

사실상 새로운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사울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가 알아낸 것과 당신들이 알아낸 것이 거의 같군요.”

“계속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대신전도 마찬가지고. 무언가 쓸 만한 정보가 나오면 좋을 텐데.”

“사소한 것이라도 새로 알아내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전하께서도…….”

“그러지요.”

지금은 정보를 숨길 때가 아니라 공유할 때다.

카멜 산에서도 그럴 생각이니, 사울 역시 협조를 아끼지 않을 생각이었다.

정보가 나오지 않는 게 문제지만.

카멜 산의 사절은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한 채 돌아갔고 사울은 고민에 빠졌다.

당장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는 건 그 자체로도 불안했다.

시간 낭비를 해도 될 만큼 한가하지 않았으니까.

‘이젠 몸도 다 나았으니 무언가를 해야 해. 카멜 산과 친교를 쌓는 것도, 어둠의 세력을 쫓는 것도 당장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워 보이고.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다른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물론 대신전에서도 시간을 의미 있게 쓸 수는 있다.

작정하고 마법 수련만 하루 종일 해도 충분히 보람 있는 하루를 보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사울은 그 이상을 원했다.

스스로 강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명성과 세력을 쌓을 필요가 있었다.

적국 가멜다 왕국에 손을 뻗치고, 원수들을 벌하려면 지금보다 더 거물이 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공을 세워야 하고, 공을 세우려면 무언가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한참 고민하던 사울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중립 지대는 말 그대로 다르센 왕국에도 가멜다 왕국에도 속하지 않은 곳이다.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져 버려진 미개척지에 이종족과 대신전이 세워져 중립 세력권이 만들어졌다.

물론 중립 지대 전체가 이종족과 대신전의 영역에 속하지는 않았다.

카멜 산과 대신전은 중립 지대에서 그나마 쓸 만한 땅에 위치했다.

덕분에 카멜 산을 중심으로 이종족 부족들이 만들어지고, 대신전을 중심으로 한 거주지가 만들어졌다.

중립 지대에 이종족도 대신전도 손길을 뻗치지 못한 땅은 얼마든지 있다.

거주지로는 쓸모가 없고, 자원 같은 것도 없거나 캐내고 운반하기 어려워 버려진 땅.

그런 땅 중에 사울이 관심을 가질 만한 곳이 있지 않겠는가.

무언가를 떠올린 사울은 대신전의 도서관으로 향했다.

“전하, 무슨 일이십니까?”

“중립 지대의 지도가 필요해요.”

“무슨 지도 말씀이십니까?”

“중립 지대를 다룬 지도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아요. 꼭 지도가 아니라 지리책 같은 것이라도 좋고요.”

중립 지대에 위치한 대신전이라 주변 지역의 지도와 지리책 등은 소장하고 있었다.

이 난세에 지도와 지역의 각종 정보를 담은 지리책은 그 자체로 중요한 정보다.

아무에게나 내보이기 힘든 것이었고, 이에 도서관을 관리하던 신관도 난색을 표했다.

“죄송합니다, 전하.”

“내게 빌려주기 어려운가요?”

“그것이…….”

도서관을 관리하는 신관은 상대가 왕자이기에 차마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주저했다.

왕자의 신분만으로는 될 일이 아님을 깨달은 사울은 도서관을 나와 대신전에서 가장 높은 신관인 콜리타를 찾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전하?”

“중립 지대를 다룬 지도와 지리책을 살펴보고 싶어요.”

“지도와 지리책을요?”

“네, 지금은 나나 다른 사람들이나 당장 할 일이 없으니까요. 이 지역에 대해 잘 알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한번 찾아보고 싶어요.”

“알겠습니다.”

사울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콜리타는 선선히 허락했다.

대신관이 허락하고, 왕자가 요구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곧 사울은 대신전 도서관에 있던 지도와 지리책 여러 권을 자신의 방에 들여놓았다.

그리고 사울은 카스텔과 아이나, 아르멜을 불렀다.

“전하,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모두를 대표해 아르멜이 물었다.

사울은 탁자 위에 쌓아 둔 지도와 지리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서 우리의 다음 목표를 찾아보려고 해.”

“다음 목표라고요?”

“중립 지대는 다른 말로 하면 미개척지야. 아무 쓸모도 없고 특별한 것이 없어 버려진 땅도 많지만 쓸모 있거나 특별한 것이 있는데 버려진 땅도 있을 거야.”

사울의 말을 알아들은 아이나가 말했다.

“그럼 우리의 힘으로 그 미개척지를 개척하자는 말씀이신가요?”

“비슷해요. 우리 힘만으로 미개척지를 개척하는 건 어렵지요. 하지만 개척을 시작할 수는 있어요. 탐험하고, 조사하고, 쓸 만한 게 나오면 우리가 갖거나 왕국에 도움이 되도록 할 수 있지요.”

아르멜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하의 말씀은 알겠지만 쉽지 않을 겁니다. 중립 지대 탐험에 개척이라니. 카멜 산도 대신전도 달갑지 않아 할 겁니다. 잘못하면 가멜다 왕국을 건드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나도 알아. 카멜 산이나 대신전을 건드릴 마음도 가멜다 왕국에 시비를 걸 마음도 없어. 그래서 모두를 부른 거야.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누구든 건드리지 않으면서 우리와 왕국에 도움이 될 만한 목적지를 찾아보자는 말이야.”

그러자 아르멜도 납득했다.

“남는 시간을 헛되이 쓰고 싶지 않으시다는 말씀이시군요.”

“알아들어 주니 고맙군. 그럼 다 같이 찾아볼까?”

그때 카스텔이 말했다.

“위험합니다.”

“아직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할지 결정된 것도 아닌데요.”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 위험할 수 있습니다. 중립 지대가 이종족들의 영역이 된 지도 200년이 넘었습니다. 이 대신전이 세워진 지도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버려진 땅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카스텔의 걱정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이었다.

그녀의 말처럼 미개척지라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터무니없이 땅이 척박하거나.

지형이 말도 안 되게 험준하거나.

정체불명의 마법 문제나 몬스터가 날뛰거나.

무언가 쓸 만한 것이 있음에도 미개척지라면 그만큼 위험한 땅이라는 뜻이다.

카스텔의 걱정도 충분히 귀담아들을 가치가 있었다.

“선생님의 말도 일리가 있어요. 일단 다 같이 검토를 해 봐요. 이익에 비해 위험이 크면 생각을 바꿀 수도 있으니.”

그렇게 사울 일행은 책과 지도를 파기 시작했다.

카멜 산과 대신전에 직접적으로 속한 영역은 제외한다.

가멜다 왕국 근처도 제외한다.

두 조건을 제외해도 남는 땅은 꽤 많았다.

여기저기 흩어진 땅을 합치면 왕국 수도의 크기를 넘어설 정도였다.

그러나 조건에 맞는 땅은 하나같이 쓸모없거나 지나치게 위험한 땅이었다.

그나마 질 좋은 광석이 묻혀 있다거나, 희귀한 약초가 난다는 등 쓸 만해 보이는 땅도 살펴보면 하나같이 문제가 있었다.

지형이 너무 험준하다거나 몬스터와 야생 동물이 들끓어 토벌조차 쉽지 않다거나.

그렇게 한참 조사하던 사울의 눈에 한 지역이 들어왔다.

‘슬랙트’

일찍이 들어 본 적 없던 지명이다.

살펴보니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곳이었다.

척박한 환경 때문에 버림받은 땅이었는데 길 잃은 성기사 몇 명이 길을 찾다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슬랙트가 눈길을 끈 이유는 간단했다.

고대의 마법과 연관된 유적으로 추정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역사학계에서 말하는 ‘고대’는 약 2000년 전을 뜻한다.

고대 시대의 마법은 몇 차례의 큰 전쟁으로 대부분 유실되었고, 일부 지식만 간신히 남아 후대에 전달되었다.

그 남은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마법 체계가 만들어지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 때문에 2000년 전 고대 마법이 현재의 마법보다 수준이 높았으면 높았지 낮지는 않았을 것이라 주장하는 학자가 많았다.

2000년 전의 고대.

지금 못지않게 어쩌면, 지금보다 뛰어났을지 모를 마법의 전성시대.

그 시기의 마법 유물이 종종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있었다.

일명 ‘아티팩트’로 불리는 유물들이었다.

때로는 아티팩트 그 자체가, 혹은 아티팩트를 재료로 만든 무기나 도구가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고대의 마법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마법이나 연금술이 탄생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고대의 마법 연구 유적은 마법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관심을 가지는 화제였다.

“흥미로운 것을 찾았어요.”

사울은 자신이 찾은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다.

모두들 흥미를 보였다.

“슬랙트?”

“고대의 마법 연구실로 추정되는 유적이라니.”

“확실히 이런 곳이라면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요.”

모두들 호기심을 보이자 사울은 미끼를 던졌다.

“어때요? 이 정도면 한번 목표로 삼을 만할 것 같은데.”

아르멜이 신중히 말했다.

“위치는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 왕국 영토와도 멀지 않으니 우리가 이곳에서 움직인다고 가멜다 왕국에서 트집을 잡지는 못할 겁니다.”

“그래서 한번 가 보려는 거야.”

“문제는 가멜다 왕국과의 관계와는 별개로 위험하다는 겁니다. 정보에 따르면 길 잃은 성기사 세 명이 마법 실험실을 찾았고, 한 명만이 살아 돌아왔다는군요. 그가 가져온 자료를 통해 이 유적의 이름이 ‘슬랙트’라는 게 밝혀졌고.”

“그래. 유적을 발견할 때 성기사들은 모두 부상을 입은 상태였고, 또 굶주렸다지. 그런데도 한 명이 살아남았다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조사를 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거야.”

“저로서는 확실히 말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고대의 마법 유적 같은 건 제 전문이 아니라…….”

사울은 아이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대는 무언가 아는 것 없나요?”

“조금은 알고 있어요.”

“그래요?”

“네, 전하. 5년 전 저희 영지에서 고대 마법 유적이 발견된 적 있습니다.”

아이나의 말에 아르멜이 반박했다.

“들은 적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홉킨스 가문 영지에서 발견된 유적은 말 그대로 흔적만 남은 것에 불과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요. 제가 알기로 쓸 만한 건 거의 없었어요. 그저 유적 주변을 지키던 몬스터 몇 마리만 있었을 뿐.”

“그리고 당신은 직접 그 현장을 찾지는 못했겠지요.”

“그래요, 듣기만 했지요.”

“듣기만 했다면 크게 쓸모 있는 정보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홉킨스 가문 영지의 유적은 흔적만 남은 것이고, 이 슬랙트라는 유적은 아직 무언가 살아 움직이는 곳으로 보입니다만.”

“전하께서 제게 질문을 하셨고, 아는 대로 대답했을 뿐인데 뭐가 잘못이지요?”

보고 있던 사울은 아이나와 아르멜을 말렸다.

“둘 다 그만둬요.”

아이나가 화들짝 놀라 사죄했다.

“죄, 죄송합니다, 전하.”

이어 아르멜도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둘 다 사죄했지만, 태도는 달랐다.

아이나는 당황했지만 아르멜은 냉정을 유지했다.

사울은 아르멜이 아이나를 견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견제하는지 굳이 물어 볼 필요는 없다.

아르멜은 본래 사울과 아이나가 가까워지는 걸 원치 않았으니까.

아르멜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한 명에게만 면박을 줄 정도는 아니다.

사울은 둘을 진정시킨 뒤 말했다.

“모두의 의견을 듣고 싶어 부른 것이지 개인적인 다툼을 보려고 부른 게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전하.”

“아무튼 아이나, 그대는 고대 마법 유적을 직접 본 적은 없지요?”

“네.”

“그럼 선생님은?”

눈빛을 받은 카스텔이 말했다.

“몇 번 가 본 적 있습니다.”

“그럼 우리 중 고대 유적에 대해 가장 잘 알겠군요. 선생님의 생각은 어때요?”

질문을 받은 카스텔은 대답 대신 슬랙트라는 유적에 대한 정보를 다시 한번 살폈다.

직접 두 눈으로 보거나, 가 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라면 얻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한정된 정보 안에서 가능한 많은 것을 찾아내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카스텔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모든 것을 꼼꼼히 점검한 뒤 입을 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