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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16화 (116/232)

116화

사울의 말을 알아들은 마리안이 되물었다.

“과연. 이 중립 지대는 아직 미개척 지대이지요. 야수, 몬스터, 도적, 카멜 산과 상관없는 이종족… 싸워 공적으로 삼을 만한 상대는 많을 테고요.”

“그래, 그곳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네 동생으로서도 상처 입은 사냥감을 사냥하였다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 보다는 싸울 가치가 있는 상대와 싸워 이기고 명성을 높이는 게 훨씬 나을 테니.”

중립 지대는 위험한 놈들 천지다.

그리고 싸워 이기기만 하면, 무언가를 얻을 만한 것들도 가득하다.

고대 문명은 제외하더라도, 몬스터나 범죄자 소굴만 몇 곳 털어도 분명 얻는 게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상상 이상의 수입을 거둘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잠시 사울의 제안을 생각하던 마리안이 말했다.

“그런데 전하.”

“말 하라.”

“왜 우리가 굳이 전하께 정보를 받아야 하나요? 전하께서 얻을 수 있는 정보라면 우리 스스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인데요.”

다행히 마리안의 질문은 사울의 예상한 것을 넘어서지 않는 것이었다.

“내게 정보를 받아야 할 이유는 간단하고, 또 분명하다. 바로 시간이지.”

“시간이라고요?”

“내가 이 중립 지대에 온 이후로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지금 내가 중립 지대에 대해 아는 건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정보를 모으고 분석한 결과지. 그 시간 동안 모은 귀중한 정보를 그대들에게 넘겨준다면 그대들은 많은 시간을 아낄 수 있지 않은가?”

“후훗.”

마리안은 베일에게 귓속말을 했다.

베일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합의를 본 마리안이 말했다.

“좋아요. 우리에게 주는 정보가 쓸모 있다면, 전하의 제안을 받도록 하지요.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말해 봐라.”

“우리는 이곳에 싸우러 왔어요. 싸울 상대가 떨어지면, 그 다음은 전하나 카스텔 차례가 될 거예요.”

“상관없다. 한 가지만 확실히 약조한다면.”

“무엇인가요?”

“우리는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을 것이고, 조약을 깰 때는 반드시 사전에 통보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통보 없이 조약을 어긴다면 전적으로 어긴 쪽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사울의 말에 마리안은 수긍했다.

“좋아요. 어차피 기습 공격 같은 어설픈 짓을 할 마음은 없으니.”

“그럼 합의는 된 것인가?”

“그렇게 하지요. 다만 전하께서 준 정보가 쓸모가 없을 때는 모든 조약이 무효예요. 그리고 우리가 싸울 만한 대상이 사라진 뒤에는 카스텔을 내놓던지, 전하께서 이 지역에서 물러나셔야 할 거예요.”

사울은 대답을 하기 전 자신의 일행을 돌아보았다.

스스로는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결과라 생각했지만, 다른 의견이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

아무도 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이에 사울도 결론을 내렸다.

“알았다. 약조하지.”

사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때껏 침묵을 지키고 있던 콜리타가 선언했다.

“양측의 뜻이 모아졌으니, 나는 중재인으로서 간단히 조약문을 작성하겠습니다. 양측 대표자들이 서명을 하면 그 조약은 이 중립 지대 안에서는 모두가 지켜야 할 조약이 될 것입니다. 동의하십니까?”

사울이 먼저 대답했다.

“동의합니다.”

이어 마리안, 그리고 베일도 말했다.

“동의합니다.”

“좋습니다. 그럼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 조약문을 작성하겠습니다. 양측 모두 이 중립 지대에 머무는 한 조약을 지키셔야 합니다.”

곧 콜리타가 직접 조약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중립 지대의 평화를 바라는 자로서, 이렇게나마 상황이 진정된 것에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사울의 이야기는 끝난 게 아니었다.

“한 가지 더 이야기 할 것이 있다.”

“무엇인가요?”

“그대들이 알지는 모르겠지만, 이 중립 지대에는 어둠의 세력이 도사리고 있다.”

어둠의 세력이라는 말에 가르시아 남매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들은 적 있어요. 그런데요?”

“우린 지금부터 어둠의 세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려 한다. 어둠의 세력은 중립 지대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 어쩌면 그대들의 활동 반경과 겹칠지 모른다.”

사울의 말에 마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의 세력과 싸우는 일이라면 우리도 방해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어둠의 세력과 싸우는 척 하면서 우리에게 허튼짓을 한다면… 전하의 안위도 보장할 수 없어요.”

“물론이다. 그대들도 알아 두었으면 했을 뿐이다. 본의든 아니든 어둠의 세력과 관련되면 좋지 못할 테니.”

“그런 걱정은 접어 두시지요, 그럼.”

이후에는 크게 중요한 이야기가 없었다.

결국 사울, 그리고 가르시아 남매가 주도한 불가침 조약이 맺어졌다.

효력이 미치는 곳은 어디까지나 중립 지대이며, 기한 역시 ‘사울이 가르시아 남매에게 유용한 정보를 줄 때까지’로 한정되었다.

당장은 평화로울지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평화에 불과할 것이었다.

아무튼 콜리타는 회담에서 오간 내용을 바탕으로 조약문을 작성했다.

조약문을 확인한 사울과 마리안은 각각 서명했다.

이렇게 회담이 끝났다.

회담을 끝낸 가르시아 남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일은 바닥에 꽂아 둔 검을 다시 허리에 차면서 사울에게 말했다.

“전하.”

“무슨 일이지?”

“본인과 다른 사람들의 안위를 지키려는 전하의 노력은 참 눈물겨웠습니다.”

“…….”

“나는 힘 대신 다른 수단으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사람을 썩 좋아하지 않아서 말입니다. 이 자리가 전장이 아님을 다행으로 생각하십시오.”

실로 두려운 협박에도 사울은 물러서지 않았다.

“전장에서 적으로 만난다면 싸울 뿐.”

“훗, 머잖아 그렇게 될 것 같군요. 그럼 또 봅시다. 이왕이면 전장에서.”

이런 베일의 말은 언젠가 사울을 베고 말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베일, 그리고 마리안은 회담장을 나갔다.

“무사히 끝나서 다행입니다, 전하.”

아이나의 말에 사울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르시아 남매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지고, 무시무시한 기운도 점점 사라지면서 몸에 긴장이 풀렸다.

사울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그리고 뒤늦게 손도 땀에 젖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몸이 먼저 반응한 결과였다.

“정말 대단한 자들이에요. 가르시아 남매는.”

사울의 말에 아이나가 맞장구를 쳤다.

“정말로, 정말로 괴물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아이나도 사울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긴장했던 모습이 역력했다.

아르멜도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카스텔도 그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카스텔의 말에 사울은 조금 전 그녀에게 심한 말을 한 것을 떠올렸다.

“선생님을 사냥감이라 부른 건 사과해야겠군요.”

“전하께서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뿐입니다.”

“사실이라…….”

“지금의 저는 결코 그들을 당해 낼 수 없으니까요.”

말투는 평온했지만, 카스텔의 눈빛은 떨리고 있었다.

이번 회담이 굴욕적으로 느껴진 탓이리라.

사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회담 결과 자체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예상대로 풀린 셈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가르시아 남매에게 힘으로 짓눌렸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몸이 제멋대로 떨리고, 식은땀을 흘리기까지 했다.

그것만으로도 큰 굴욕이었다.

가르시아 남매가 그 광경을 떠올리며 자기들끼리 비웃을 것이라 생각하니 굴욕감에 손이 떨릴 정도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들만큼의 무력을 가지지 못했고, 또 말이 통하지 않는 자들이었으니까.

이 정도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만으로도 실패를 한 것은 아니다.

사울은 중재 역할을 맡은 콜리타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대신관님.”

콜리타가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전하.”

“조약에 서명을 했으니 가르시아 남매도 당분간 조용할 겁니다. 대신관님도 그만 쉬도록 하시지요.”

“그래야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콜리타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부축을 받으며 물러갔다.

절로 걱정이 되는 광경이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 * *

회담장을 나선 사울은 일행과 함께 다시 한번 회담 내용을 점검했다.

“가르시아 남매가 조약을 어기지는 않겠지?”

사울의 질문에 아르멜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은 큰 문제없을 겁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실제로 쓸 만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고, 가르시아 남매는 그 정보에 따라 사냥에 나서겠지요. 당분간은 괜찮을 겁니다.”

“그 당분간이 어느 정도일까?”

“음… 아마도 몇 달 정도가 아닐까요.”

“몇 달이라.”

당장은 가르시아 남매가 날뛸 만한 환경을 만들어 주어 그들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

그동안 사울은 안전하게 자신의 영역에서 움직일 수 있을 것이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한계가 있을 것이다.

중립 지대는 넓다면 넓다고 볼 수 있지만, 두 거물이 마음껏 활개 치고 다니기에는 좁다.

사울 일행과 가르시아 남매가 각각의 영역에서 마음껏 움직이고 다니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사울은 굳이 어둠의 세력 이야기를 꺼냈다.

일단 가르시아 남매는 어둠의 세력과는 관련이 없는 것 같았으니까.

필요하다면 어둠의 세력 이야기를 다시 꺼내거나, 카멜 산과의 관계를 이용해 가르시아 남매를 제어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또한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번 회담은 나쁘지 않게 끝났지만, 상황이 많이 복잡해졌어요. 우리가 이곳에서 머무를 수 있는 기간도 길어야 몇 달이 고작이겠지요. 아직 가르시아 남매와 싸울 힘이 없고, 그들이 작정하고 덤벼들면 몸을 피하는 게 상책이지요. 하지만 최악의 상황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이곳에 머무르면서 무언가를 하고 싶어요.”

아이나가 의견을 냈다.

“전하, 그렇다면 카멜 산에 다시 가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카멜 산 말인가요?”

“네, 어차피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쓸지 대족장과 의논해 볼 만하지 않을까요?”

사울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 있었다.

이제 고대 유적을 찾거나 몬스터 사냥 같은 것을 할 겨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다 가르시아 남매와 부딪치게 된다면 기껏 이뤄 낸 협상이 쓸모없게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대신전 안에 처박혀 있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카멜 산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가르시아 남매도 카멜 산은 함부로 간섭할 수 없다.

단 둘이서 카멜 산과 전쟁을 벌일 만큼 미치광이는 아니니까.

“카멜 산이라… 확실히 대족장과 이종족 모두와의 관계를 좀 더 돈독히 하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 같아요.”

다른 사람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에 사울의 다음 행선지가 결정되었다.

* * *

협상을 마치고 돌아온 가르시아 남매는 가멜다 왕국 외교관에게 협상 결과를 통보했다.

“그럼 당분간 중립 지대에서 우리 왕국을 위해 일하시는 겁니까?”

“그래요.”

마리안의 대답을 들은 외교관이 정중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곳에서 자작님들을 돕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하지요. 우리 부하들은 어떻게 지내던가요?”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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