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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18화 (118/232)

118화

두 번째로 방문하는 카멜 산은 여전히 이국적이고, 또 평화로웠다.

카멜 산의 독특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울이 품고 있던 긴장감마저도 잠시 잊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사울은 카멜 산의 평화에 젖는 대신 자신의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반가워요.”

엘프들은 사울을 환영해 주었다.

이번에도 사울 일행은 엘프들의 안내를 받으며 거대한 나무가 끌어올려 주는 바구니를 타고 단숨에 카멜 산 정상에 올랐고, 곧바로 대족장 세네카를 만났다.

“다시 뵙습니다, 전하.”

“반갑습니다, 대족장.”

세네카와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은 사울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제가 보낸 편지는 받으셨지요?”

“가르시아 남매 말씀이시지요.”

“그렇습니다, 대족장.”

세네카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예전에 한 번 가르시아 남매와 부딪친 적이 있습니다.”

“저도 들은 적 있습니다. 6년 전쟁 도중의 일이었다고요.”

“네. 가르시아 남매와 그들이 이끄는 부대가 군사 작전을 위해 카멜 산 영역을 지나가려 했지요. 우리는 거부했습니다. 전쟁에 개입하지 않기 위해서였지요. 그 때문에 피가 흐를 뻔했지만 간신히 무마했습니다.”

“저 역시 그자들과 약조를 했습니다. 아마도 당분간은 저나 대신전, 카멜 산에 집적거리지는 않을 겁니다.”

사울의 말에 세네카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그들과 협상을 한 겁니까?”

“싸움을 원하는 자들에게 싸울 곳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곳 주민들을 건드리지 않는 방향으로.”

“과연…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이겠지요.”

사울은 약속대로 가르시아 남매에게 여러 정보를 넘겨주었다.

중립 지대의 몬스터 서식지처럼 마음껏 싸울 수 있는 장소에 대한 정보들이었다.

조약도 맺었고, 정보도 정확히 전달했으니 당분간은 문제없을 것이다.

그 ‘당분간’이 언제까지일지는 예측하기 어려웠지만.

그런 사울의 말에 세네카는 안도하면서도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세상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둠의 세력도 그렇고, 가르시아 남매까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그뿐만이 아닙니다. 불안 속에서 누려온 평화가 서서히 막을 내리는 것 같습니다.”

사울은 세네카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우리 왕국과 가멜다 왕국 사이에 다시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안타깝지만 그렇게 생각합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그 이유를 여쭈어 봐도 될까요?”

“흐름이 그렇습니다.”

“흐름이라고요?”

“저는 오랫동안 카멜 산을 떠나지 않았지만, 율렌 섬 전역의 정보들을 받고 있습니다. 율렌 섬의 안위는 카멜 산, 나아가 중립 지대의 안위와 직결된 문제이니까요.”

세네카가 율렌 섬의 정보에 민감하듯 사울도 마찬가지였다.

율렌 섬의 안위는 본인의 안위, 그리고 목적과도 직결되는 부분이었으니까.

사울 또한 지금의 평화가 영원히 지속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전쟁이 조만간 재개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한 말이다.

“우리 왕국이나 가멜다 왕국에서 본격적으로 전쟁 준비를 한다는 정보를 들은 바는 없습니다만.”

“저도 그런 정보는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흐름이라는 게 있는 법입니다. 그 흐름이 점점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사울은 근거가 뚜렷하지 않고 두루뭉술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말하는 자가 세네카라면,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수백 년간 율렌 섬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현자이니까.

“정말 머잖아 전쟁이 확실히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꼭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세상에 확실한 건 없는 법이니까요. 대신 이렇게 말씀드리지요. 저는 머잖아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가능성보다 더 높다고 봅니다.”

“…….”

불안한 평화가 끝나고 다시 전쟁이 시작될지 모른다.

6년 전쟁처럼 승패가 없는 전쟁이 될지, 혹은 두 나라 중 한 곳이 이길지, 아예 한 나라가 멸망하는 전쟁이 될 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세네카는 전쟁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럼 정말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는 카멜 산, 나아가 이 중립 지대가 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두 나라 중 어느 쪽의 편을 들 마음은 없으시군요.”

“네,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로서는 이곳 주민들의 안위를 지키는 데 전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상했던 대답이다.

세네카 입장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으니까.

사울은 화를 내는 대신 다른 질문을 했다.

“상대가 어둠의 세력이라면 어떻습니까?”

“어둠의 세력과 싸우는 일이라면 협조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솔직히 저는 대족장, 나아가 카멜 산 모두가 다르센 왕국과 함께했으면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여러분들의 안위, 나아가 이익을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분명 아바마마께서도 이종족과의 공존을 바라실 테니까.”

“전하의 진심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타국과의 전쟁은 도와드릴 수 없겠습니다. 그건 저의 뜻이자 카멜 산에 있는 대부분의 뜻이기도 합니다.”

“하는 수 없군요.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당분간 여기 머무를까 합니다. 언제까지 머무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머무를 수 있을 때까지 어둠의 세력에 대해 조사하고, 할 일을 찾아보려 합니다.”

사울의 말에 세네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카멜 산은 언제나 전하를 환영합니다.”

“고맙습니다. 대족장.”

세네카와 이야기를 마치고 나온 사울은 세네카가 한 말을 되새겨 보았다.

‘흐름이라…….’

세네카는 심상찮은 흐름 때문에 조만간 전쟁이 다시 재개될지 모른다고 했다.

사울은 거기까지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전쟁은 언제나 벌어질 수 있다.

물론 전쟁을 하려면 명분이나 이유가 필요하기에, 그 낌새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우발적인 사건으로 전쟁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오랫동안 피 맺힌 원한으로 가득한 나라끼리라면 더더욱 쉽게 발생할 것이고.

이럴 경우에는 전쟁이 벌어지려는 낌새를 쉽게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300년 동안 벌어진 다르센 왕국과 가멜다 왕국의 전쟁도 두 나라의 사소한 오해와 국지전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이 커지고 오래가 300년의 적대 관계가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세네카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전쟁을 향한 흐름이 느껴진다는 건 두 나라 모두에 심상찮은 기류가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사울은 스스로 정보 획득 및 분석에 게으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심상찮은 기류 같은 것은 느낀 적이 없었다.

자신의 방에 돌아올 때까지 해답을 내리지 못한 사울은 함께 들어온 아르멜에게 물었다.

“대족장의 말을 어떻게 생각해?”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뜻밖이었습니다.”

“너도 그 흐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뜻이지?”

“네, 전하. 지금으로서는 최소 몇 년은 전쟁이 다시 일어나기 어렵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대족장이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나도 똑같이 느꼈어.”

사울은 아이나나 카스텔에게도 눈짓을 했지만,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세네카는 오래 살아온 엘프로서 무언가 사람을 초월한 지혜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사울이나 아르멜도 모르는 비밀 정보라도 알고 있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지금으로선 알기 어려웠다.

“당분간 여기 머무르면서 이것저것 알아보도록 해요. 모두들 물러가도 좋아요.”

“네, 전하.”

카스텔, 아이나, 아르멜까지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사울 방을 나선 세 명이 금방 돌아왔다.

“무슨 일이에요?”

“전하. 대신전에서 보내온 소식입니다.”

아르멜이 내민 서신을 받아 본 사울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확실한 건가?”

“네. 제 수하가 직접 보내왔습니다.”

대신전의 수장, 대신관 콜리타가 쓰러졌다는 소식이었다.

자세한 병명은 나오지 않았지만, 상태가 꽤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보통 일이 아니군.”

사울의 말에 아르멜이 말했다.

“이 일 때문에 그 신관이 우리와 함께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데이빗 말인가? 확실히 그렇군.”

사울과 자주 함께 다니던 데이빗은 이번에 따라오지 않았다.

콜리타 쪽에서 무언가 느낀 듯 그를 붙잡았다고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본인이 쓰러지리라는 것을 미리 예측한 게 아닐까.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군. 내일 안으로 내가 직접 쾌유를 바란다는 친서를 작성 할 테니 보내도록 해.”

“네, 전하.”

대신관 콜리타의 건강은 사울에게도 중요한 문제다.

만에 하나 그가 갑자기 숨을 거두기라도 하면 대신전에는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것은 사울에게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동안 쌓아 온 인간관계도 그렇고, 또 콜리타는 이대로 죽기에는 아까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 * *

사울은 며칠 동안 카멜 산에서 여러 이종족을 만나고, 어둠의 세력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확실히 첫 번째 방문보다는 두 번째 방문이 좀 더 순조로웠다.

세네카를 제외한 대부분의 엘프들은 여전히 사울을 경계하는 듯했지만, 이전보다는 경계심이 누그러진 듯했다.

또 친절한 안내인도 생겼다.

도끼와 석궁을 잘 다루는 세네카의 호위대장.

드워프 모데아였다.

“전하. 오늘은 어디로 가실 겁니까?”

“도서관에 가려고요.”

“알겠습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모데아는 사울의 전속 안내인처럼 매일같이 사울을 찾아와 안내를 하거나 도움을 주었다.

그가 세네카의 호위대장임을 고려하면, 세네카의 뜻인 게 분명했다.

대족장의 호의이자 사울의 감시꾼 역할을 겸한 것이리라.

의도가 다소 불순하게 느껴졌지만, 어쨌든 모데아는 큰 도움이 되었다.

사울과 구면인데다, 함께 싸워 본 적도 있는 탓인지 전보다 태도가 너그러워졌는데.

사울이 이런저런 부탁을 해도 웬만하면 들어줄 정도였다.

다만 선은 철저히 지켰다.

“호위대장.”

“네, 전하.”

“분명 카멜 산의 지하에는 커다란 마을이 있지요? 마을을 넘어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던데.”

“…그렇습니다. 전하.”

“드워프가 건설하였고, 이제는 드워프와 몇몇 이종족이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곳이라 들었어요.”

“말씀대로입니다.”

“한번 가 보고 싶은데, 부탁해도 될까요?”

사울의 부탁에 모데아가 고개를 숙이면서도 단호히 말했다.

“그것만은 들어 드릴 수 없습니다.”

“역시 그런가요.”

카멜 산 지하의 도시.

드워프들이 건설하고, 여러 이종족이 거주하고 있다는 지하 도시는 사울 같은 인간에게는 전설과 같은 곳이다.

지하 도시가 전설과 다른 점은 분명히 실존하는 장소라는 점이겠지.

하지만 인간은 누구도 그곳에 들어가 본 적 없었다.

사울은 물론, 수많은 인간들이 카멜 산의 지하 도시에 들어가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지하 도시에 들어간 인간은 있어도 들어갔다 나와서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한 인간은 없었다.

그곳에 다녀온 이종족도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철저히 입을 다물었다.

왕실에서 나서 조사를 해도 별다른 소득이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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