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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19화 (119/232)

119화

“대족장도 지하 도시만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인간이 지하 도시에 들어가려면 드워프 족장님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들어가는 허락과 나가는 허락은 따로라지요?”

“네. 들어오는 건 허락되었지만, 나가는 건 허락받지 못해 지하에서 삶을 마친 인간도 있습니다.”

“그렇군요.”

카멜 산 지하 도시.

확실히 호기심이 동하는 부분이지만, 지금은 무리하게 관심을 줄 여유가 없었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중요했다.

그렇게 사울은 카멜 산 도서관에 도착했다.

카멜 산 도서관은 왕국의 중앙 도서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크고, 장서량도 많았다.

두 도서관은 차이는 주체가 누구냐에 있었다.

왕국 도서관은 철저히 인간 기준으로 책들을 쓰고, 모았다.

그리고 카멜 산 도서관은 철저히 이종족 중심으로 책들을 쓰고, 모았다.

그래서 이곳에 산더미처럼 쌓인 책 대부분은 이종족이 자신들의 문자와 지식을 기록한 것들이었다.

과거 이종족은 인간의 노예였다.

그 과정에서 두 종족의 언어는 같아졌다.

이종족 고유의 언어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의 이종족이 율렌 섬의 공용어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문자는 같지 않았다.

인간과 같은 언어를 쓸지언정, 문자까지 인간과 같은 것을 쓸 수는 없다는 이유로 이종족은 노예 시절에도 자신들의 문자를 지켜 왔다.

그 문화는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왔고, 결국 언어는 통해도 문자는 통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사울도, 다른 일행도 이종족의 문자는 배운 적 없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도서관에 쌓인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해 준 건 세네카였다.

“전하, 오늘 읽을 책은 이것입니까?”

“그래요.”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사울이 주문한 ‘어둠의 세력’에 대한 책을 받아 든 사서가 눈을 감고 마법 주문을 읊었다.

사울은 알지 못하는, 심지어 카스텔도 알지 못하는 마법이다.

얼마 후, 주문이 끝나고 책이 희미하게 빛났다.

지친 표정의 사서가 책을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요.”

사울은 받아 든 책을 가지고 도서관에 마련된 방으로 향했다.

사울과 일행들이 모인 가운데, 책이 펼쳐졌다.

마법의 힘으로 희미하게 빛나는 책에 기록된 문자는 이종족의 것이 아닌, 인간의 것이었다.

율렌 섬의 모든 인간이 사용하는 일명 ‘율렌 문자’.

본래는 엘프 문자로 기록된 책을 율렌 문자로 일시적으로 바뀐 것이다.

사서가 시전한 마법의 힘이었다.

“번역 마법이라… 몇 번을 봐도 신기해.”

일시적으로 문자를 번역해 주는 마법 주문.

사울이 아는 한 인간 세상에는 이런 마법이 없다.

듣기로 엘프 고유의 마법이라고 했다.

다른 문자는 물론 암호까지도 번역을 해 주기 때문에 엘프에게는 암호가 통하지 않는다던가.

물론 한계는 있었다.

효력은 대략 하루 정도였고, 한 명의 마법사가 노력해도 책 한 권 정도의 분량을 번역하는 게 한계라던가.

때문에 사울 일행은 하루에 딱 한 권의 책을 탐독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되기는 했다.

인간이 아닌 이종족의 입장에서 이종족의 지식을 작성한 책이었으니까.

곧 사울 일행은 한자리에 모여 책을 읽어 나갔다.

오늘 선택한 책은 어둠의 세력, 그중에서도 그들의 근황에 대해 기록한 책이었다.

‘어둠의 세력과 손을 잡은 오스펠이 어둠의 세력을 이끄는 지, 혹은 누군가의 첨병인지는 알 수 없다.’

‘오스펠에게 동료가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오스펠은 인간들의 영역에서 활동한다는 피닉스와도 연결 고리가 있다. 어쩌면 그 조직을 그가 만들었을 수도 있다’

비교적 최근에 쓰인 이 책에서는 오스펠이라는 인물을 크게 주목했다.

사울도 잘 아는 이름이었다.

어둠의 세력과 손을 잡은 것으로 추정되는 자로서, 그의 실험장에서 한바탕 전투를 벌인 적도 있었으니까.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사울의 적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대부분의 내용은 사울도 아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책 말미에 신경 쓰이는 내용이 등장했다.

‘오스펠을 찾으려는 몇 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끝내 찾지 못했다.’

‘그 정도의 인물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죽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카멜 산의 영역은 물론, 중립 지대 자체를 벗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피닉스가 중립 지대 밖에서도 활동하듯, 그 또한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눈에 띄는 대목을 찾은 사울은 생각해 보았다.

오스펠이 중립 지대를 벗어났다면 어디로 갔을까.

그저 범죄자가 몸을 피하는 것이라면 아예 섬 밖으로 도망칠 수도 있다.

율롄 섬을 나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

교역 혹은 외교를 이유로 수시로 대륙과 통하는 배가 드나들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율렌 섬의 모든 항구는 철통 같은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범죄자나 반역자가 외부로 탈출하는 것을 막거나, 섬 안팎에서 첩자가 드나드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럼에도 오스펠 정도의 거물이라면 어떻게 해서라도 섬을 탈출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울은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보았다.

‘이런 녀석은 도망치는 게 아니라 숨어서 음모를 꾸미려 할 거야. 그렇다면…….’

생각하던 사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중립 지대가 아니라면… 다르센 왕국이나 가멜다 왕국에 있겠지.”

아이나가 놀라 물었다.

“오스펠이라는 드워프가 두 나라 중 한 곳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그가 그렇게 대담할까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중립 지대라면 카멜 산이나 대신전에서 그를 쫓겠지만, 중립 지대를 벗어나면 그가 누구인지도 모를 거예요. 물론 드워프라 눈에 띄겠지만, 좋은 은신처만 찾는다면 드워프 한 명이 숨는 건 어렵지도 않을 테고.”

“그럼 오스펠, 나아가 그의 조직인 피닉스가 다르센 왕국에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럴 수 있지요. 놈들과 관련이 있을지 모르는 하얀 까마귀도 율렌 섬 전역에 퍼져 있으니.”

사울은 아르멜에게 말했다.

“왕실에서도 피닉스에 대해 알고 있지?”

“전에 보고를 하였고, 또 왕국 정보부에서도 자체적으로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스펠이라는 드워프에 대해서도 보고한 적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널리 퍼지지는 않았을 테니, 왕국 어딘가에 놈이 숨어 있을지도 몰라.”

“가멜다 왕국에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역시 앉아서 기다리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안 나올 것 같아. 그게 무엇이든 직접 찾아야 하는데…….”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얻은 건 있다.

세네카나 다른 이종족과 교류하면서도 역시 얻은 게 있다.

하지만 책을 통하거나 혹은 이야기를 들어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다.

세네카는 조만간 전쟁이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고 말했다.

정말 그런 흐름이 있다면, 어둠의 세력도 중대한 변수가 될 것이다.

사울 역시 어둠의 세력과 부딪친 적 있고, 그들은 사울을 적으로 여길 터.

그렇다면 이쪽에서 먼저 그들을 최대한 공격하는 게 바람직한 일이다.

‘조급하게 움직이면 안 되겠지만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어. 율렌 섬을 떠나기 전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이뤄야 할 텐데…….’

고민 끝에 사울은 모데아를 불렀다.

“호위대장, 중립 지대 어딘가 남아 있을 어둠의 세력을 본격적으로 찾아 볼 생각이에요. 협조를 부탁해도 될까요?”

“어둠의 세력이라면…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디든, 누구든 상관없어요. 중립 지대에서 피닉스라는 이름의 조직이 존재하고, 그 조직이 어둠과 관련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 아직 중립 지대 어딘가에 그들의 세력과 근거지가 있을 거예요.”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찾아보고, 필요하면 토벌하겠어요.”

“…위험한 일입니다.”

“알아요. 하지만 머잖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가는 더 큰 위험이 찾아올 수 있으니까요.”

사울의 결심이 굳었음을 안 모데아는 더 말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모데아가 다시 찾아와 말했다.

“대족장님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모데아는 지도 한 장을 내밀었다.

중립 지대를 묘사한 지도였는데, 곳곳에 표식이 그려진 게 보였다.

“이 표식은?”

“이 중립 지대에 존재하는 미확인 구역, 그중에서도 어둠의 세력이 있을지 모르는 곳입니다.”

“이런 곳을 미리 파악하고 있었으면서 손을 쓰지 않았다고요?”

“자칫 동족이 희생당할 수도 있는 터라…….”

아무래도 세네카가 동족의 피해를 막기 위해 현장 조사나 전투를 피한 모양이다.

그만큼 동족의 피를 보기는 싫다는 것이다.

이해는 가지만, 실망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어둠의 세력은 언제 중립 지대, 나아가 율렌 섬 전체를 좀 먹을지 모르는 자들이다.

그런데 세네카는 그런 자들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닌가.

‘대족장에게도 한 소리 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대족장은 엘프뿐만이 아니라 카멜 산에 속한 모든 이종족을 ‘동족’이라 부르며 소중히 여겼다.

세네카 같은 현자라면 지금 자신의 행동이 몸속에 중병을 키우는 꼴임을 알 것인데도 말이다.

눈치를 보니 모데아마저도 세네카의 그러한 태도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세네카의 뜻에 찬동했다면 애당초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지도를 가져 왔을 리 없었으니까.

“호위대장, 내가 나서서 이 지역을 조사하면 어떨까요?”

“대족장님을 설득하는 것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역시 모데아도 이 일 만큼은 사울 편인 모양이었다.

“좋아요. 모두와 의논해 본 뒤 대족장에게 말해 보겠어요.”

“네, 전하.”

사울은 일행에게도 협조를 구했다.

얼마 전 지나치게 서두른다는 이유로 한 소리 들은 터라, 가급적 신중히 행동하겠다고 약속을 거듭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일행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모두들 신신당부를 잊지 않았다.

“조심하십시오.”

“전하의 안위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어쨌든 모두와 합의를 본 사울은 곧바로 세네카를 찾았다.

사전에 모데아가 언질을 넣었는지, 세네카 쪽이 먼저 이야기를 했다.

“어둠의 세력 때문에 보자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대족장.”

잠시 말없이 사울을 바라보던 세네카가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겁쟁이라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울은 진심이었다.

겁쟁이는 비겁한 자들을 부르는 단어다.

세네카가 비겁한 건 아니다.

다만 자신이 동족이라 부르는 이종족의 희생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울의 생각을 증명하듯, 세네카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저 역시 이 일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습니다. 필요하다면 저 자신이 직접 움직이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움직이면 대신전에서도, 나아가 두 왕국에서도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보이겠지요. 자칫 그것이 카멜 산의 평화를 무너뜨리는 게 두렵습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말씀하셨지요. 지금 이 율렌 섬에 심상찮은 흐름이 있다고. 머잖아 전쟁이 다시 시작될지 모른다고. 전쟁은 어둠의 세력에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아직 우리는 어둠의 세력의 실체, 그리고 그들의 목적을 잘 모릅니다. 다만 그들이 해악이라는 것만은 분명한 일입니다.”

“말씀대로입니다.”

“대족장의 처지는 이해합니다. 그러니 제가 대신 나서겠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이 중립 지대에서 마음대로 움직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대족장이 도와주십시오.”

세네카는 눈을 감고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피하기만 할 일은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대족장.”

다시 고민하던 세네카는 결국 수긍했다.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최대한 조용히 처리해 주십시오. 그리고… 전하는 물론 동족의 피를 적게 흘리도록 해 주십시오. 이 두 가지를 약속해 주시면 저 역시 전하를 돕겠습니다.”

꽤나 무책임할 수 있는 말이다.

자신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왕자인 사울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과하는 꼴이 아닌가.

하지만 사울은 이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상대는 율렌 섬 이종족의 정점에 선 자, 대족장 세네카니까.

“약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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