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이번에는 사울이 화살을 막을 필요가 없었다.
카스텔이 나섰다.
카스텔의 손짓 한 번에 거대한 마법 방어막이 펼쳐져 날아오는 화살들을 모조리 쳐 냈다.
“#@%#$%$#”
무리의 어떤 코볼트도 본 적이 없을 압도적인 마법의 힘에 코볼트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기세를 타고 조나단이 외쳤다.
“모조리 쓸어버려라!”
뒤따르던 사울은 주도권을 조나단에게 넘긴 채로 움직이기로 했다.
지금 조나단보다 잘난 척 해 봐야 큰 의미 없으니 말이다.
조나단은 기세 좋게 선두에서 검을 휘둘렀다.
길이도 사람 키만 하고, 검의 두께와 넓이도 상당한 조나단의 검.
보통 사람은 제대로 다루는 건 고사하고 휘두르기도 버겁겠지만, 조나단은 확실히 제대로 다루었다.
큰 검을 휘둘러 코볼트를 베어 내고, 혹은 코볼트의 공격을 막아 내기도 했다.
빈틈을 노려 덮쳐 오는 코볼트가 여럿이었지만, 대부분 조나단의 검에 막혔다.
사울도 가만 있지 않았다.
조나단의 실력을 감상하면서도 위험하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나치게 눈에 띄는 건 피하기 위해 작고 날카로운 마법으로 적들을 공격하거나 조나단을 도왔다.
사울과 조나단의 부하들도 각각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카스텔은 물론, 아이나나 아르멜도 각자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렇게 사울 일행은 지나치게 돋보이지 않으면서도 강 건너 불구경을 하지도 않았다.
조나단의 부하들 중 눈에 띄는 건 매버릭 정도였다.
창을 든 매버릭은 조나단 주변을 맴돌며 위험 요소를 확실히 배제해 나갔다.
“@#$%@%$”
자기 종족 언어를 지껄이며 코볼트 몇 마리가 달려왔다.
노리는 건 우두머리인 조나단이었지만, 매버릭이 앞을 가로막았다.
“감히 전하를!”
일갈과 함께 조나단이 휘두른 창에 코볼트 두 마리가 한꺼번에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조나단이 안심하고 마음껏 날뛸 수 있는 건 절반은 사울, 나머지 절반은 매버릭의 공이었다.
이대로만 가면 별문제없이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조나단의 체면도 살렸고, 사울도 조나단과 매버릭 등의 실력을 확인했으니 소득은 있었다.
하지만 전장은 항상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전하, 조심하십시오.”
어느새 다가온 카스텔이 사울에게 알렸다.
“무슨 일인가요?”
“마나를 가진 적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형님께도 알려 드려요.”
아직은 카스텔만이 새로운 적의 존재를 감지한 모양이었다.
조나단도, 매버릭도 카스텔의 이야기를 들은 뒤에야 경계 태세를 취했다.
카스텔이 잘못 느낀 게 아니었다.
곧 멀리서 일단의 무리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커다란 늑대를 탄 코볼트 무리였다.
걸어 다니는 커다란 개들이 자기보다 큰 늑대를 탄 꼴이라 겉보기에는 우스웠지만, 마냥 우습게 볼 상대는 아니었다.
“코볼트 기병대다!”
적의 정체를 알아 챈 사울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이종족은 종종 늑대를 길들여 기병으로 활용한다.
코볼트 역시 거대한 잿빛 늑대 등 몬스터에 가까운 늑대를 길들여 기병으로 활용하는 종족이었다.
보통 ‘코볼트 기병대’는 코볼트 중 최정예로 꼽히는 자들이다.
동시에 어지간한 규모와 실력이 있는 코볼트 무리가 아니라면 운용하기 어려운 존재이기도 했다.
요새 주변에 코볼트 무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문제인데 코볼트 기병대까지 등장하다니.
‘아무래도 형님이 해야 할 일이 많겠군.’
이 정도면 요새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대대적인 코볼트 수색 및 토벌전이라도 벌여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당장 모습을 드러낸 코볼트 기병대를 처리해야 했다.
“형님, 조심하세요.”
“걱정 마라. 저까짓 놈들이야.”
여전히 조나단은 자신만만했다.
실력으로 따지면 조나단이 코볼트 기병에게 고전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신만만하다는 게 신경 쓰였다.
사울은 매버릭에게 눈짓을 했다.
만에 하나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사울의 뜻을 알아들은 매버릭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곧 코볼트 기병대가 아군 쪽으로 돌진해 왔다.
기병대의 숫자는 십여 명.
다른 코볼트 병력은 죽거나 무력화되었다.
머릿수로도 코볼트 쪽이 우위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코볼트 기병대는 기세 좋게 돌진해 왔다.
이길 자신이 있는지, 아니면 동족을 죽인 조나단 등에게 복수를 하기 위함인지.
“건방진 놈들!”
조나단의 검에 희끄무레한 기운이 일렁였다.
전사가 마나를 다루는 방법 중 하나인 오러 블레이드.
마나를 실체화하여 검으로 분출해 위력을 높이거나 공격의 범위를 높이는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조나단은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선두에서 덮쳐 온 코볼트 기병에게 검을 휘둘렀다.
정확하고 강력한 일격에 늑대와 코볼트가 동시에 검에 맞아 나뒹굴었다.
‘대단하군.’
사울은 솔직히 감탄했다.
오늘 본 조나단의 무용 중에서도 가장 대단했다.
오러 블레이드 자체도 고급의 기술인데, 그 기술을 능숙하게 다루는 솜씨가 상당했다.
공격이 지나치게 정직한 게 흠으로 느껴졌지만, 지금의 적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듯했다.
“@#$%@#%$”
코볼트 기병들이 무어라 외쳤다.
‘죽어라’나 그와 비슷한 뜻일 것이다.
살기 어린 외침과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코볼트 무리의 공격이 조나단에게 집중되었다.
“전하를 지켜라!”
휘하 병력들도 조나단 보호에 나섰다.
하지만 조나단은 얌전히 있지 않았다.
연신 검을 휘두르며 코볼트를 베어 나갔다.
사울은 직접 싸우기보다 조나단 쪽에 좀 더 신경을 썼다.
이미 이 전투는 이겼다.
어느새 코볼트 기병도 절반 이상이 죽었고, 전황이 뒤집힐 일은 없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방심은 금물이다.
‘음?’
그런 사울의 눈에 심상찮은 광경이 보였다.
죽은 줄 알았던 코볼트 한 명이 몸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장전된 활을 겨눈 채.
활은 조나단 쪽을 향했다.
그를 본 사울은 자신을 위협할 만한 게 없음을 확인한 뒤, 몸을 날렸다.
지금 조나단은 코볼트 기병과 싸우고 있다.
섣불리 새로운 정보를 알리면 혼란에 빠트리는 꼴이 될 수 있다.
사울은 말없이 조나단 근처로 가 마법 검을 휘둘렀다.
조나단의 근처의 땅이 솟아올랐다.
두껍게 솟아 오른 땅은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 내는 방패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아니…….”
그제야 조나단도 위험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사울이 돌아보니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조나단.
그리고 창을 들고 조나단 곁을 막아 선 매버릭의 모습이 보였다.
매버릭 역시 사울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조나단에게 날아올 화살을 막기 위해 몸을 날린 것이었다.
“형님, 괜찮으세요?”
“그, 그래.”
뒤늦게 위기를 깨달은 조나단은 말없이 계속 싸웠다.
한 번의 위기를 제외하면 큰일은 없었다.
애초에 전력 자체가 상대가 안 되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조나단은 한 명의 기사도 잃지 않고 토벌을 성공할 수 있었다.
“모두 끝났다!”
“현장을 살피고 시체들은 불에 태운 뒤 귀환한다!”
전투가 끝나고 사울은 조나단의 안부를 물었다.
“형님, 다치진 않으셨나요?”
“그래, 조금 전에는 고맙다.”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에요. 제가 나서지 않았어도 문제는 없었겠지만.”
그러면서 사울은 매버릭을 바라보았다.
조나단은 매버릭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그대도 날 구했군, 고맙다.”
“제 임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그럼 형님, 이만 돌아가시지요.”
“그러자꾸나.”
사울도 몸을 돌려 자신이 할 일을 찾았다.
모두들 자신의 일에 충실한 가운데, 조나단은 순간 사울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
그런 조나단의 모습을 본 것은 단 두 명뿐이었다.
* * *
요새의 책임자인 조나단이 직접 전투에 나섰고 또 승전했다.
큰 전투는 아니었지만, 이를 기념하여 요새에서 작은 파티가 열렸다.
“술은 한 잔씩만 마셔라! 대신 먹을 것은 마음껏 먹어도 좋다!”
“내일부터 다시 정상 근무로 돌아간다는 걸 기억하고 무리하지 마라!”
기사나 장교는 불론 일반 병사들에게까지 먹을 게 베풀어졌고, 조나단과 사울은 보다 화려한 식탁에서 푸짐하게 즐겼다.
파티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조나단과 추호도 적대할 마음이 없던 사울은 겸손한 태도로 조나단을 적당히 띄워 주었고, 조나단도 수긍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 나갔다.
그러던 중 아르멜이 파티 자리를 잠시 빠져나갔다.
화장실에 가겠다는 핑계를 댔지만,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르멜 씨.”
몰래 아르멜을 불러낸 건 매버릭 스타우트였다.
아르멜은 매버릭이 그러하듯, 예를 갖추어 그를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매버릭 씨.”
두 사람은 인적 없는 장소로 이동했다.
둘만 남게 되자 아르멜은 날카로운 눈으로 매버릭을 바라보았다.
자신처럼 나이는 젊지만 뛰어난 인재라는 평을 듣는 매버릭이다.
그런 그가 자신을 불러낸 이유가 있을 터.
일단 아르멜은 정중히 말했다.
“이렇게 단둘이 만나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전에는 거의 만날 기회가 없었으니.”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조금 전의 일 때문에 말입니다.”
아르멜은 매버릭이 말한 ‘조금 전 일’을 기억해 냈다.
조나단이 자신을 도와준 사울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낸 것을 자신과 매버릭 둘만이 목격했다.
아르멜은 상대 쪽에서 반응이 없으면 지금은 모른 척 할 생각이었다.
의미심장한 일이기도 했지만, 상대 쪽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굳이 먼저 문제를 제기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쪽에서 문제를 삼은 이상 그에 맞게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그 일 때문에 무언가 걱정이라도 있는 겁니까?”
아르멜의 질문에 매버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전하를 잘 압니다. 아무래도 미리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매버릭의 말에 아르멜은 미끼를 던져 보았다.
“그럼 조나단 왕자님께 직접 조언을 하거나, 혹은 사울 왕자님께 말씀을 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매버릭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일을 키우자는 게 아닙니다. 일이 커지기 전에 수습하자는 것이지요.”
“수습이라. 그렇다면 그 역할에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 것인데요.”
“아니, 없습니다. 카스텔 님이야 이런 문제와는 상관없는 분이시고, 아이나 씨는 이런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기엔 입장이 난처하시지요. 사울 왕자님의 집사인 그레이 씨도 있지만, 그 사람도 이런 정치적인 문제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고요.”
“…….”
아르멜은 조금 감탄했다.
분명 매버릭은 꽤나 명성 높은 인재였지만, 그 명성은 어디까지나 군사적인 부분에 한정되어 있었다.
스스로 무술 실력이 상당하며 군을 이끄는 능력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치적인 능력이나 상급자를 보좌하는 능력 같은 건 전혀 알려진 바 없었다.
하지만 이 짧은 대화만으로도 아르멜은 매버릭이 정치적 능력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저를 택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은 사울 왕자님의 충복이 아니니까요.”
“…….”
역시 만만치 않은 자다.
아르멜의 진짜 주군이 루시아라는 것까지 다 파악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저 정도의 인재가 조나단 곁에 붙어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오늘 두 왕자님이 함께 싸웠습니다. 덕분에 우애가 더 깊어졌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애가 깊어지기는커녕, 다툼의 씨앗이 생겼다?”
“그렇다고도 볼 수 있지요.”
아르멜은 돌려 말하지 않기로 했다.
“조나단 왕자님이 전하를 시샘하신다는 말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