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32화 (132/232)

132화

카스텔의 양손에서 뻗어 나간 빛이 요새 아래의 코볼트를 덮쳤다.

적들과의 거리가 멀고, 숫자도 많은 만큼 한 번 공격할 때마다 적잖은 마나가 소모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슬슬 몸에 무리가 왔을 것이다.

지난 패전 때의 상처로 인하여 한계가 생긴 몸으로는 이렇게 큰 힘을 연속하여 쓰는 건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대족장 세네카가 만들어 준 처방이 잘 들은 것일까.

카스텔은 예전보다 힘을 자유롭게 쓸 수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과거 입은 큰 부상 때문에 생긴 족쇄가 절반 정도는 사라진 느낌이었다.

“우와아!”

“역시 검은 마녀다!”

카스텔의 압도적인 무력시위에 요새의 왕국군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예전에 비하면 명성이 다소 퇴색되었을지언정, 검은 마녀는 죽지 않았다.

그녀만 있어도 이 요새는 지킬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모든 왕국군이 그것을 느꼈다.

하지만 카스텔의 몸은 하나뿐이다.

* * *

카스텔이 요새에서 가장 취약한 남쪽을 홀로 잘 막아 낼 동안 다른 요새들도 치열하게 방어전을 치르고 있었다.

“^#$5^^@#%@”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독려의 외침과 함께 코볼트 무리가 계속 요새로 진군해 왔다.

하루 동안 천 명이 넘는 병력을 모조리 소모하더라도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기세였다.

결국 코볼트군은 요새에서 쏟아지는 화살 비와 사울이나 카스텔의 마법을 뚫고 요새에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어떤 놈들은 공성 병기를 성문까지 끌고 가려 했다.

어떤 놈들은 사다리를 이용해 요새 성벽을 오르려 했다.

어떤 놈들은 활을 쏘며 성벽 너머의 적들을 죽이려 했다.

“물러서지 마라!”

“왕국군의 명예를 지켜라!”

다행히 요새를 지키는 왕국군의 사기는 드높았다.

몇몇 병사들이 화살에 맞거나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 적에게 쓰러져도 금방 그 자리를 다른 병사가 메꾸었다.

사울 역시 자신이 맡은 곳에서 물러서지 않고 계속 싸웠다.

종종 화살이 사울에게까지 날아들었지만, 그런 공격은 아이나와 아르멜 두 사람이 맡아 처리했다.

“&$%^&$&”

서쪽 성벽 한쪽에서 코볼트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궁수와 마법사의 도움을 받으며 용케 성벽까지 온전히 걸치는 데 성공한 사다리를 통해 코볼트 한 무리가 기어 올라왔다.

그것을 본 아이나가 말했다.

“전하,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해요.”

허락을 받은 아이나가 코볼트 무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코볼트 무리에 뛰어든 아이나는 자신을 향해 뻗어 온 창을 방패로 쳐 낸 뒤 도끼를 휘둘렀다.

일격에 코볼트 한 마리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코볼트 무리도 아이나가 실력자라는 것을 깨달은 듯 집중 공격에 나섰다.

몇 마리가 한꺼번에 아이나를 창칼로 찌르고 베려 했지만, 그 어떤 공격도 아이나의 몸에 닿지 못했다.

아이나는 능숙한 솜씨로 방패와 도끼를 휘두르며 공격을 막거나 피하고, 또 적을 베거나 후려쳤다.

잠깐 사이에 그녀의 손에 쓰러진 적이 열 마리도 넘었다.

사울도 마법으로 그런 아이나를 지원 했다.

위력은 낮추고 정확도를 높인 공격으로 몇몇 코볼트를 쓰러뜨렸다.

또 왕국군도 아이나를 도왔다.

오래잖아 코볼트가 힘들게 놓은 사다리는 아이나의 도끼질과 발길질 아래 요새 밖으로 넘어갔다.

“꽤애액!”

사다리에 올라탄 채로 넘어가는 코볼트의 비명 소리가 구슬펐다.

“와아아!”

다시 한번 요새 병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요새의 취약점으로 꼽히던 남쪽과 서쪽에서 연이어 큰 전과를 올리며 저절로 사기가 높아진 것이다.

본래부터 방비가 튼튼하던 북쪽과 동쪽도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카스텔 같은 압도적인 실력자, 혹은 사울이나 아이나 같은 준수한 실력자는 없었지만, 높고 튼튼한 성벽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계속 쏴라!”

“한 놈도 성벽에 오르지 못하게 하라!”

“저기 충차가 온다! 불을 질러라!”

코볼트 무리는 요새 그 어떤 곳도 뚫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끝없이 요새를 공격하던 코볼트 무리도 점점 줄었다.

언뜻 봐도 병력의 절반 이상이 죽거나 큰 부상을 입은 것으로 보였다.

“#@%#$%^”

결국 코볼트 무리는 물러갔다.

“와아아!”

요새에서는 다시 한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장교들이 사울을 칭송했다.

“전하, 우리가 이겼습니다!”

사울 역시 밝은 표정으로 모두의 공을 치하했다.

“모두들 정말 수고했다.”

칭찬을 하면서도 사울의 마음속에는 한 점 의구심이 남았다.

생각보다 어려운 전투는 아니었다.

적의 머릿수가 많았지만, 이쪽의 전력도 충실한 데다 요새까지 끼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의아한 것은 코볼트 입장에서 지나치게 무모한 전투였다는 점이었다.

물론 사울 일행, 특히 카스텔의 존재는 코볼트로선 예상외였을 것이다.

코볼트 나름대로 첩자를 풀었다 해도 조나단 왕자가 동생을 부르고, 동생과 함께 카스텔까지 요새에 올 것이라 짐작하거나 정보를 알아낼 수는 없었으니까.

지금 사울 일행이 요새에 없었다고 가정하면 코볼트 무리의 공격이 그만큼 위협적이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코볼트의 공격은 무모했다.

특히 이쪽의 전력이 생각보다 강하며 하루아침에 요새를 점령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적들은 지나치게 무모한 공격을 반복했다.

그 결과 아군의 두 배가 넘던 적이 하루 만에 절반 이상 쓸려 나갔다.

제아무리 공성전에서 불리한 공격 측의 입장이었다 해도 너무나도 큰 피해였다.

물론 코볼트는 인간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녀석들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공세를 펼칠 만큼 능력이 있는 녀석들이, 전장에서 이렇게 무모하게 움직인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이에 사울은 승전에도 불구하고 쉽게 마음을 놓지 않았다.

적들이 물러간 것을 확인한 뒤에도 하루 동안 경계 태세를 유지하도록 하고 회의를 소집했다.

사울의 부하들과 요새의 장교들까지 모두 모인 가운데 사울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우리가 이겼고, 모두들 수고했다. 그대들도, 또 병사들도 잘 싸워 준 덕분이다. 하지만 코볼트 무리가 너무 무모하게 공격을 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대들의 의견은 어떠한가?”

사울의 말에 부하들은 물론 장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가운데 한 장교가 의견을 밝혔다.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코볼트가 아무리 머리가 나쁘다 해도 이번 공격은 지나치게 무모했습니다.”

다른 장교도 맞장구를 쳤다.

“솔직히 놈들이 이렇게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생각보다 똑똑한 놈들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요새를 공격할 땐 너무 무지막지해서…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사울이 느낀 것을 다른 장교들도 똑같이 느낀 것이었다.

사울은 자기 의견을 밝혔다.

“내 생각도 같다. 그래서 가설을 세워 보았다. 누군가 코볼트에게 머리를 빌려주었다가 전투가 시작된 뒤에는 그 머리를 쓴 놈이 발을 뺀 것이라는.”

장교들 절반은 사울에게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나머지 절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울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장교들에게 물었다.

“다른 의견이 있나?”

“네, 전하. 저희는 그동안 여러 번 코볼트와 싸웠습니다만, 단지 그뿐이었습니다. 이 지역에서 코볼트 이외의 존재가 코볼트와 힘을 합쳤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일리 있는 이야기다.

사울도 실전 경험이라면 남부럽지 않지만, 여기 모인 장교들은 바로 이 요새와 그 주변에서 잔뼈가 굵은 자들이다.

그들이 직접 보고 들은 경험은 소중한 정보들이었다.

“그렇다면 코볼트가 직접 이 정도의 작전을 생각할 만큼 똑똑하다는 말인가?”

“그 또한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이겼지만,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확실히 이번 전투는 이질적이다.

어떤 일이라도 생길 수 있는 게 전장이지만, 그것이 상식을 벗어난 일이라면 무언가 변수가 생겼다고 보아야 한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때는 아닌 것 같다. 적들이 완전히 섬멸되거나 혹은 물러가기 전까지는 모두들 방심하지 말도록.”

“네, 전하.”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사울은 잠시 휴식을 취하려 했다.

하지만 미처 쉴 겨를도 없이 다급한 보고가 들어왔다.

“전하!”

“무슨 일이지?”

“적들의 움직임이 관측되었습니다!”

“지금 말인가?”

“네! 급히 와 주십시오!”

전장에서 야습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전투 한 번으로 절반의 병력을 잃고 난 뒤 야습을 걸어오는 건 상식 밖의 일이다.

일단 사울은 재빨리 전망대로 향했다.

확실히 보고받은 대로, 코볼트군이 요새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머릿수는… 천 마리에 가까운가. 어디서 병력을 더 모은 것 같군.”

사울에 이어 카스텔도 의견을 밝혔다.

“어딘가에 숨겨 둔 예비 병력까지 모조리 끌어온 모양입니다. 아마 저것이 놈들이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의 전부이겠지요.”

“그렇겠지요.”

이 지역은 군사적 요충지이기는 해도 크게 비옥한 땅은 아니다.

코볼트가 인간보다 거친 땅에서도 살 수 있다 해도, 천수백의 병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운영할 수는 없다.

말 그대로 짜낼 수 있는 수준까지 다 짜낸 병력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 지역은 물론, 근방의 코볼트 세력까지 모여 요새 하나를 떨어뜨리기 위해 집결하였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역시 비상식적이다.

코볼트들이 저렇게까지 하면서 이 요새를 공격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들의 절멸을 각오하면서 말이다.

“싸움을 걸어왔으면 상대해 줘야지. 전투를 준비하라!”

“네, 전하!”

명령을 내리면서도 사울은 내심 기만책일 가능성도 생각했다.

요새를 공격하는 척 힘을 빼는 전술 말이다.

하지만 코볼트는 그렇게까지 똑똑하진 않았다.

“#$%^#$%^”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낮에 이어 밤에도 요새가 피로 물든 가운데, 코볼트 무리가 큰 피해를 입은 채로 물러났다.

수비 측도, 공격 측도 같은 전략을 사용했고 전력 역시 큰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기 놈들이 기어오른다!”

“막아라!”

낮과 밤이 바뀌었지만 전투 방식은 비슷했다.

낮에 그랬듯, 밤에도 코볼트는 활을 쏘고 성벽을 기어오르고, 또 성문을 부수려 했다.

이에 왕국군은 성벽 위에서 활을 쏘고 돌을 던지며 창칼과 마법까지 동원해 필사적으로 막았다.

전투는 몇 시간 동안 이어졌다.

낮에 이어 밤까지 싸우느라 요새의 모두가 지쳤지만, 아직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다.

천 명에 가깝던 코볼트군도 무모한 공격 속에 어느덧 숫자가 절반, 아니, 그 이하로 줄어들었다.

밤새 이어진 전투는 아침에야 마무리되었다.

거의 모든 코볼트들이 죽거나 다쳤다.

하루 사이에 2천 마리에 가까운 코볼트가 죽거나 부상을 입었으니 굉장한 피해였다.

패잔병이 된 코볼트들이 물러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사울은 결정했다.

‘역시 수상해.’

패잔병을 추격하는 건 위험 부담을 감수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위험 부담을 감수할 때였다.

너무나도 이상한 코볼트의 움직임을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적들을 추격, 섬멸해요. 그리고 지위가 있는 자들은 가능한 사로잡도록 하고.”

“네, 전하!”

이견은 없었다.

곧 굳게 닫혀 있던 요새 문이 열리며 일단의 병력이 추격에 나섰다.

본래는 사울도 추격군에 합류하려 했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만류에 대신 카스텔을 내보냈다.

“아랫것들은 섬멸하고 지휘자는 사로잡아라!”

“@#$%@#%@#$%”

인간의 언어로 외치는 독려와 코볼트들이 정신없이 지껄이는 소리가 전장에 메아리쳤다.

사울은 추격군을 내면서도 만에 하나 함정일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 때문에 굳이 자신이 가지 않고 카스텔을 내보냈다.

다행히 함정은 아니었다.

“한 놈도 남기지 마라!”

추격군에서 장교들이 독려하는 가운데, 선두에서는 카스텔이 맹활약했다.

덕분에 코볼트 무리는 거의 모두 쓸려 나갔다.

“##^#$%^”

코볼트의 시체를 넘어 쫓던 카스텔의 눈에 목표가 비쳤다.

자기들끼리 무어라 지껄이며 도망치는 코볼트 한 무리.

차림이나 장비 등을 볼 때 대장이나 간부급이 분명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