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카스텔은 포착돤 코볼트 간부들을 덮쳤다.
공격당한 간부들도 반격에 나섰다.
여느 코볼트보다 날카로운 공격을 퍼붓는 녀석도 있었고, 마법을 쓰는 녀석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카스텔에게는 의미 없는 공격들이었다.
“키에엑!”
잠시 소동이 끝나고, 카스텔이 점찍은 목표들은 모조리 포로가 되었다.
“이놈들을 데려가라.”
“네!”
병사들이 코볼트 포로들을 묶어 요새로 호송해 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카스텔은 문득 시선을 돌렸다.
멀리서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카스텔 님, 저건?”
“걱정할 것 없다. 조나단 왕자님의 군대니까.”
“그럼 지금 도망친 것들은 더 쫓지 않아도 될까요?”
“그래도 되겠다. 이미 적들은 회생 불능이고, 저쪽으로 달아나는 코볼트들은 전하께서 처리하실 테니.”
추격군은 더 쫓는 대신 돌아오는 조나단을 맞을 채비를 했다.
오래잖아 조나단이 군대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몇몇 코볼트 포로와 함께 돌아온 조나단과 군대의 모습은 말끔했다.
어떻게 봐도 전투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은 아니었다.
말에 탄 채로 영문을 몰라 하는 조나단에게 카스텔이 다가가 말했다.
“전하, 돌아오셨습니까.”
“뭐가 어떻게 된 건가?”
“전하께서 나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볼트 부대가 요새를 덮쳤습니다.”
“뭐야? 그럼 요새는 어떻게 되었나?”
“무사히 지켜 냈습니다.”
“그럼 사울은?”
“무사하십니다.”
보고를 받은 조나단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 그럼 지금 내가 잡은 저것들도 요새를 공격한 놈들인가?”
“네, 전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군.”
곧 카스텔도 말에 올랐다.
말솜씨 없는 카스텔이지만 전투를 직접 겪은 당사자로서 전황을 설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 들은 조나단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 말이지. 사울 녀석이 요새를 잘 지켜 냈다라…….”
카스텔은 조나단의 태도에서 작은 위화감을 느꼈다.
기뻐해야 할 소식이지만, 마냥 기뻐하지 않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것을 조나단 면전에서 지적하면 안 된다는 상식 정도는 카스텔에게도 있었다.
이렇게 조나단이 이끄는 군대와 카스텔이 이끌던 군대가 함께 요새로 귀환했다.
* * *
조나단의 귀환을 확인한 사울은 요새 성문 밖으로 나갔다.
“형님, 무사하셨군요.”
“그래, 너도 무사했구나.”
조나단은 요새를 슥 둘러보고는 말했다.
“이야기는 들었다. 고생 많았구나.”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너도, 요새도 무사해서 다행이다.”
사울은 조나단 뒤에 있던 카스텔에게 말했다.
“선생님도 무사했군요.”
“네, 전하.”
“포로들은 다 가두어 놓았어요. 이제 형님도 돌아왔으니 함께 의논해 보도록 해요.”
“알겠다.”
조나단은 이상하게 말을 짧게 하며 사울을 지나쳤다.
그런 조나단을 바짝 뒤따르는 매버릭의 모습도 보였다.
그러한 조나단의 모습에 사울은 카스텔이 느낀 것과 흡사한 위화감을 느꼈다.
‘설마 형님이… 귀찮게 되었군.’
일단 사울은 모르는 척 조나단을 뒤따라갔다.
귀환한 조나단은 곧장 회의실로 들어갔다.
사울과 일행도 따라 회의실에 들어갔다.
“전하, 보고 드리겠습니다. 전하께서 요새를 비우신 후 갑자기 쳐들어온 코볼트 무리와의 전투에서…….”
장교들이 조나단에게 하룻밤 동안 있었던 전투에 대해 보고했다.
적들의 숫자는 거의 2천 마리는 되었고, 반면에 요새에 남아 있던 아군의 숫자는 500도 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하루 만에 섬멸한 적의 숫자가 최소한 천 마리는 넘었다.
거기에다 간부급으로 보이는 녀석들을 대거 포로로 잡기까지 했다.
반면에 아군의 피해는 경미했다.
사상자도 적은 편이었고, 요새도 크게 파손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대승이었다.
“이상입니다, 전하.”
“그런가.”
한참 묵묵히 생각하던 조나단이 사울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도 적들을 여럿 잡았다. 지역을 수색하면서 눈에 띄는 것들은 모조리 박살 냈지.”
“무언가 알아내신 게 있나요?”
“그래, 한 가지 이상한 게 있더구나. 내가 상대한 놈들은 모두 병사였다. 비록 소수의 병력이었지만 코볼트 농사꾼 따위가 아니라 모두 창칼 든 병사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느냐?”
세상에 병사들만 있는 조직이라는 건 없다.
그것이 국가든 부족이든 병사를 운용하려면 뒷받침이 필요했으니까.
마법 몬스터를 제외하면 먹지 않고 싸울 수 있는 병사는 없으리라.
코볼트도 마찬가지다.
이번 전투에서 코볼트는 2천 마리도 넘는 대규모 병력을 동원했다.
2천 마리의 코볼트 병력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려면 그보다 몇 배나 많은 코볼트 부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주변에서 그 정도의 부족은 발견하지 못했다.
부족이 존재하지만, 조나단이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낮다.
조나단이 그렇게까지 무능한 것 같지는 않고, 또 이 요새와 주변 지역은 비교적 관리가 잘 되어 온 곳이었으니까.
빈틈을 노려 소규모의 코볼트 부족 따위가 몰래 돌아올 수는 있어도 만 단위의 코볼트가 주변에 모이는 걸 포착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나오는 결론은 하나였다.
“외부에서 누군가 코볼트 병력을 모아 이 요새를 공격했다…….”
사울의 말에 조나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그렇다. 이제부터 그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야지.”
“네, 형님.”
조나단은 휘하 장교에게 명령을 내렸다.
“분명 우리 요새에 코볼트 말을 할 줄 아는 자가 몇 명 있었지?”
“네, 전하.”
“좋아, 그럼 잡아들인 놈들을 심문해 봐라.”
그렇게 명령을 내린 조나단은 이런저런 보고를 들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널 남겨 두고 가기를 잘 했군, 사울.”
“형님이 맡겨 주신 일이고, 나라의 소중한 요새니까요.”
“그래, 잘했다.”
조나단은 웃으며 술을 권했다.
사울은 얌전히 그 술을 받아 마셨지만, 동시에 깨달았다.
조나단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은 그렇지 않음을.
“…….”
사울은 모른 척 술을 받아 마셨다.
* * *
사울이 가장 경계하는 것 중 하나가 술에 만취하는 일이었다.
취중 진담이라는 말이 있다.
술에 취하여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의 약점이 될 만한 진심을 토해 내는 건 무엇보다 두려웠다.
하지만 왕자의 몸으로 이런저런 행사에 참여하며 술을 아예 안 마시기는 어렵다.
이에 사울은 자신의 주량을 철저히 기억하고, 절주를 실천했다.
한두 잔은 마시지만 그 이상은 마시지 않는 것이다.
이번에도 절제한 덕분에 사울은 멀쩡히 자신의 방에 돌아올 수 있었다.
“전하.”
카스텔이 그런 사울을 뒤따라왔다.
사울은 새삼 카스텔의 공을 치하했다.
“오늘은 정말 수고 많았어요, 선생님.”
“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보다, 전하.”
“말씀하세요.”
“조나단 왕자님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사울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이야기는 보통 아르멜이 하는데. 하긴 선생님은 요새 밖에서 형님을 만났으니 나보다도 많은 것을 보았겠지요.”
“네, 전하. 무언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어떻게요?”
“그러니까… 조나단 왕자님이 좋지 않은 마음을 가진 것 같았습니다.”
역시 카스텔에게 아르멜 같은 논리적인 설명은 무리인 것 같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는 충분히 알아들었다.
나아가 스스로도 이미 알고 있었다.
형님이 자신을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나는 형님의 공을 빼앗을 생각 같은 건 추호도 없지만.’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혹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누군가와 싸워야 할 수도 있고, 패자를 짓밟아야 할 수도 있다.
특히나 정치판에서 그러한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사울은 모르지 않았다.
형제라도 얼마든지 정적이 될 수 있다.
특히 왕자라면 형제든 뭐든 서로 정적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국왕의 후계자로 꼽히는 1왕자 실베스터와 2왕자 카리스가 이미 정적인 것처럼 말이다.
사울과 조나단 역시 정적이 되어 으르렁대거나, 심지어 서로의 목숨을 노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것이 본인이 살길이거나, 삶의 목표를 이루는 길이라면 사울은 피할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필요 없는 골육상쟁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좋다.
조나단과 우애 깊은 형제로 살 마음은 없지만, 싸울 만큼 미워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나아가 조나단을 향한 원한도 전혀 없었다.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왕자라는 공통점 때문에 조나단이 잘해 줬으면 잘해 줬지, 못할 짓을 하지는 않았으니까.
“조나단 형님과는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요?”
질문을 받은 카스텔이 대답했다.
“전 그런 것은 잘 모릅니다. 아이나 씨와 상담하시는 게 어떨까요.”
“…그렇겠군요.”
아이나는 사울과 나이도 비슷하고, 또 사이좋은 오라버니가 있으니 그녀에게 물어보라 한 것이리라.
하지만 사울은 아이나를 부르지 않았다.
왕실 문제에는 가능한 아이나를 개입시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대신 사울은 그레이를 불렀다.
“그렇습니까? 조나단 왕자님이 전하를 시샘하시는 것 같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무술이나 마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왕자의 집사로 오래 근무하며 왕실 사정에 밝은 그레이다.
이런 일을 의논하는 데는 아르멜보다도 더 적절한 사람이다.
한참 고민하던 그레이가 말했다.
“전하 앞이니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조나단 왕자님은 뭐랄까, 속이 좁은 분이십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쁜 사람이거나 원래부터 날 미워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정확한 말씀이십니다. 그분은 뭐랄까… 이 요새에서 전하는 자신을 보조하고 자신이 주도하여 무언가를 이뤄 내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내가 주도권을 잡은 꼴이 되었다?”
“네, 전하의 잘못은 아니지만요.”
확실히 사울이 잘못한 건 없다.
문제의 요새 공격은 사울도, 조나단도, 다른 자들도 예상치 못했으니까.
하지만 일은 벌어졌고, 조나단은 주도권을 뺏긴 모양이 되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도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 얌전히 이 요새를 떠나는 게 좋을까?”
“그건 해결책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럴까?”
“지금 전하께서 요새를 떠나시면 조나단 왕자님은 전하가 자신을 더욱 얕잡아 본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중요한 일은 다 했으니 그 뒤처리나 맡으라고…….”
일리 있는 지적이다.
이미 깊숙이 이 일에 개입한 상황에서, 이대로 떠나 버린다면 조나단은 자신을 더욱 시샘하고 미워할지 모른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조나단 전하를 도와드리십시오. 그러면서 체면도 살려 드리십시오. 이미 전하께서는 얻은 게 많으시니까요.”
“그렇군. 고마워, 그레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
사울의 칭찬에 그레이는 마뜩잖은 표정으로 몇 마디 보탰다.
“평소에도 이렇게 제 충고를 잘 들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후훗.”
그레이의 이 말은 들어 주기 어려울 것 같았다.
어쨌든 사울은 그레이의 충고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요새에 며칠 동안 머무르며 조나단의 체면도 살려 주고, 또 이 일을 확실히 매듭짓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뜻밖의 보고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