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어둠 속에서 사울 일행은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였다.
결국에는 들키겠지만, 들키기 전 가능한 가까이 갈 필요가 있었다.
그믐날이라 달빛도 어두웠고, 움직이는 데 방해가 되는 것도 없었다.
또한 몸을 숨길 만한 곳도 없었다.
한참 이동하던 중 선두에 있던 쿠루굴이 손짓을 했다.
모두가 멈춰선 가운데, 쿠루굴은 사울에게 속삭였다.
“더 이상 몸을 숨기긴 어려울 것 같소. 언제든 들킬 각오를 해야겠소.”
“그렇겠지요.”
목적지인 언덕 위에는 적잖은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곳곳에 횃불과 마법 불을 배치해 놓은 덕분에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대부분은 코볼트였지만, 다른 종족으로 보이는 자들도 있었다.
‘코볼트는 피닉스에게 빌붙거나 넘어간 자들일 테고… 다른 종족은 피닉스 조직원이나 관련이 있는 놈들이겠지.’
목적지인 언덕 위를 훤히 밝혀 준 덕분에 멀리서도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모두들 각오를 굳힌 가운데, 다시 이동했다.
언젠가는 들키겠지만 그 전까지 최대한 언덕까지 접근할 수 있도록 최대한 은밀히 움직였다.
“…….”
이제 목적지인 언덕이 코앞이다.
조금만 더 안 들키고 갈 수 있다면…….
삐익!
언덕 위에서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심심해서 분 것일리는 없다.
“#%^#%^$#”
휘파람 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말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쿠루굴이 사울에게 말했다.
“들킨 것 같소.”
“어쩔 수 없군요.”
함께 고개를 끄덕인 사울과 쿠루굴은 발걸음을 빨리했다.
동시에 그들이 이끌던 병력도 서둘렀다.
“#%^#$^#%^#^”
언덕 위에서 코볼트들이 지껄이는 소리가 들렸다.
사울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적이다’라거나 ‘전투 준비’ 같은 말인 듯했다.
그 생각이 맞는 모양이었다.
언덕 위에서 한 무리의 코볼트 병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때는 쿠루굴과 같은 편이었을 코볼트들이다.
하지만 쿠루굴은 사정을 두지 않고 공격 명령을 내렸다.
이미 피닉스와 한 편인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 상황이 아니었다.
사울 역시 마법 검을 빼 들었다.
피닉스와 함께라면 저들은 명백한 적이다.
어설픈 자비심 따윈 자신의 목숨을 해칠 뿐이다.
“저항하는 적은 모두 베고 코볼트 족장을 구하라!”
사울의 명령에 모두들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
언덕 위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외침 소리와 함께 적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유리한 고지대를 점한 코볼트들은 활을 쏘고 돌을 던지며 마법까지 시전 했다.
무작정 언덕에 오르다가는 큰 피해를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사울과 카스텔이 나섰다.
사울은 아이나 등에게 호위를 맡기곤 전력을 다해 방어 마법을 시전 했다.
날아오는 화살은 바람으로 밀어내고, 돌이나 마법은 방어막으로 막았다.
여러 형태의 공격을 동시에 막아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사울은 해냈다.
그렇게 사울이 언덕 위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막는 사이, 카스텔은 공격에 전념했다.
거리도 멀고 적의 모습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느낌으로 마법 세례를 퍼부었다.
자칫 구해야 할 족장들이 휘말릴 수 있기에 강력한 마법을 펑펑 날릴 수는 없었다.
이에 카스텔은 마법 범위를 최대한 좁혔다.
카스텔이 선택한 것은 마나로 만든 투창이었다.
사람의 힘으로 던지는 투창은 화살보다 사거리가 짧지만, 카스텔의 마법 투창은 달랐다.
검푸른 마법의 투창이 빠른 속도로 언덕 위로 날아가 적들에게 꽂혔다.
“꽤액!”
멀리서 비명 소리가 울렸다.
한 번, 두 번, 여러 번 비명이 울리니 아군을 향한 공격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덕분에 진군 속도를 더욱 높일 수 있었다.
그렇게 모두들 언덕 위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언덕 위에는 꽤 그럴듯한 거주지가 만들어져 있었다.
언뜻 봐도 천막과 흙을 쌓아 만든 건물이 수십은 넘어 보였다.
‘저 건물 어딘가에 코볼트 족장이 있겠지.’
주변을 살핀 사울은 방어막을 거두었다.
이젠 방어가 아닌 공격에 나설 때였다.
“젠장!”
“놈들이 어떻게!”
주변을 한참 살피던 사울의 귀에 익숙한 언어가 들려왔다.
코볼트의 말이 아닌 인간과 엘프, 드워프 등이 쓰는 공용어다.
말소리가 들려오는 위치를 보건대 적이 분명했다.
지금 이곳에서 코볼트 말을 쓰지 않는 적은 피닉스뿐일 것이다.
“저쪽이다!”
사울은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움직였다.
카스텔과 아이나 등도 그런 사울을 뒤따랐다.
사울이 목소리를 들은 쪽에는 천막 몇 개가 줄지어 있었다.
그리고 천막 주변에서 바삐 움직이는 몇몇 적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나같이 후드를 깊이 눌러쓰고 있어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간간이 드러나는 얼굴이나 손만 봐도 코볼트가 아니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인간, 엘프, 유독 키가 작은 드워프로 보이는 몇몇까지.
저들이 피닉스이거나, 그와 관련 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는 저들을 중점적으로 공격해요.”
“네, 전하!”
명령과 함께 사울은 직접 피닉스를 공격했다.
마법 검의 보석이 반짝이며 마나가 진동하고, 진동하던 마나는 불꽃으로 화했다.
가능한 생포해야겠지만, 어설프게 상대할 수는 없다.
생포하려다 다치거나 죽는 것만은 사양이다.
사울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기로 했다.
일단 사울은 여러 명의 적에게 동시에 불꽃을 날렸다.
적들의 실력을 시험해 보기 위함이었다.
여럿을 동시에 공격하느라 위력은 크게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 없는 공격.
불꽃은 목표가 된 적 한 명, 한 명에게 정확히 들어갔지만, 단 한 명의 적도 쓰러지지 않았다.
마법으로, 혹은 검으로 마법을 막아 내거나 피한 것이다.
‘전원, 마나를 다룰 줄 알고, 실력도 있는 자들이군.’
모두 실력자라면 더더욱 방심할 수 없다.
사울은 경계심을 더욱 높였다.
“모두 죽여라!”
적들 사이에서 살벌한 외침을 신호로 사울 일행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살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아니…….”
“저자는?”
몇몇이 사울 일행을 보고는 당혹스러워하더니 이내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 후퇴하라!”
순식간에 분위기가 급변한 가운데, 사울은 그 이유를 알아챘다.
‘나나, 카스텔을 알아본 모양이군.’
머릿수로만 따지면 적들이 싸워 보지도 않고 도망칠 이유는 없다.
조금 전 사울이나 카스텔의 활약상도 그렇게까지 압도적인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결국 적들이 자신이나 카스텔의 정체를 파악했다고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적들이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사울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던가.
모조리 사로잡거나 이 자리에서 처리하기로 한 이상 최후의 발악을 염두에 둬야 했다.
“#$^#$5*#$^”
코볼트와의 전투도 한창이었다.
적 코볼트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지만, 피닉스 조직원 없이는 전력이 부족했다.
이에 사울은 요새에서 데려온 몇몇 정예를 제외한 대부분의 병력을 피닉스 추격에 투입했다.
어차피 피닉스를 잡아야 끝나는 전투였다.
그렇게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적들을 쫓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둡고, 지형은 낯설며 곳곳에 함정까지 있었다.
“전하, 이쪽입니다.”
카스텔이 앞장서 함정을 탐지하고 파괴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일행에 뒤쳐지지 않고 움직이는 건 대단했지만, 도망치는 적들을 공격할 여유까지는 없었다.
이에 사울이 나섰다.
함정 탐지와 파괴는 카스텔에게 모두 맡기고, 자신은 공격에 집중하기로 했다.
때마침 마법으로 시력을 높인 사울의 눈에 목표가 보였다.
“저건… 말인가?”
어둠 속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것들.
이럴 때를 위해 피닉스는 언덕 아래에 말 몇 마리를 숨겨 둔 모양이었다.
말이라고 해야 몇 마리에 불과해 도망치는 녀석들의 절반, 아니, 4분의 1도 태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4분의 1’ 속에 중요한 열쇠를 쥔 녀석들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말을 타고 어둠 속으로 도망친다면 카스텔이 작정하고 추격해도 잡기 어렵다.
결국, 적들이 말을 타기 전에 모두 잡아야 했다.
“그렇다면……!”
사울은 최근에 익힌 마법을 떠올렸다.
실전에서 쓰는 건 처음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보다 적절한 마법이 없으리라.
바삐 움직이는 와중에도 사울은 정신을 집중시켰다.
그리곤 마법 검을 치켜들며 주문을 외고, 시동어를 읊조렸다.
“라이트닝 스톰.”
라이트닝 스톰.
바람 속성에 속한 전격 마법 중에서도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마법이다.
사울이 종종 사용한 라이트닝 볼트가 본인의 신체에서 뻗어 나간 전격으로 적을 강타한다면, 라이트닝 스톰은 정해진 장소에 다량의 전격을 몰아치게 만든다.
그 전격 세례가 폭풍처럼 몰아친다고 해서 ‘라이트닝 스톰’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었다.
‘전격 폭풍’은 코앞에만 몰아치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먼 거리에서도 몰아치게 할 수 있다.
그만큼 큰 마력과 정확한 계산이 요구될 뿐.
수련을 할 때는 여러 번 성공했지만 실전에서 시전 하는 건 처음이다.
첫 번째 실전이라고 실패가 용납된다는 한가한 말을 할 때는 아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
시동어를 내뱉은 뒤에도 사울은 마법을 제대로 시전 할 수 있도록 계속 정신을 집중했다.
그 결과, 어둠 속에서 멀리 무언가 빛나는 게 보였다.
사울이 목표로 삼은 곳, 말들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곳 주변에 전격이 폭풍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히힝!”
“으아악!”
말 울음소리와 적들의 비명 소리가 어우러졌다.
마법이 제대로 시전 된 게 분명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하기 위해 최대한 마법을 강하게 시전 했다.
전격 폭풍 속에 휘말린 말들은 모두 죽었을 테고, 마법에 저항할 줄 아는 자라도 피하거나 막지 못했다면 꽤 타격을 입었을 터.
“후…….”
사울은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대량의 마나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나에게는 그 마법 보석으로 만든 아이템이 필요해.’
현재 사울의 최대 약점은 마법을 다루는 기술에 비해 마나양이 부족하다는 것.
마법 보석으로 만든 아이템만 있으면 충분히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극심한 마나 소모를 수습하고 있는 사울에게 카스텔이 말했다.
“전하, 더 이상의 함정은 없는 것 같으니 제가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해요.”
카스텔은 몇몇 병력을 이끌고 앞서 나갔다.
그리고 사울은 잠시 멈춰섰다.
이럴 때를 대비해 ‘마나 포션’을 가지고 왔다.
떨어진 마나를 단숨에 회복시킬 수 있는 약.
효과는 최고이지만, 왕실에서도 함부로 쓰지 못할 만큼 귀한 물건이라 이럴 때를 대비해 딱 한 병만 가지고 왔다.
“…….”
마나 포션을 들이킨 사울은 포션 속에 가득 찬 마나가 몸속을 순환하는 것을 느꼈다.
낯설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다.
실제로 급격히 소모한 마나가 어느 정도 채워지면서 몸 상태도 나아졌다.
두두두-
정신을 차린 사울은 땅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지진 같은 게 아니다.
말발굽 소리였다.
“형님이 근처에 온 모양이군.”
이어 전방에서 싸우는 소리도 들려왔다.
적을 만난 카스텔이 한바탕하고 있는 것이리라.
사울은 자신을 돌보기 위해 멈춘 일행에게 말했다.
“자, 우리도 움직여요.”
“네,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