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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43화 (143/232)

143화

피닉스도 말발굽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생각을 할 줄 안다면 아군이 아닌 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깨달았을 테고 말이다.

실제로 달려가 보니 피닉스들은 정신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몇몇은 쓰러진 채 꽁꽁 묶여 있기까지 했다.

무슨 이유인지 입 주변이 피투성이가 된 자들도 여럿 있었다.

사울의 마법으로 바비큐가 된 말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놈!”

적들 중 한 명이 사울을 보고 눈이 뒤집혀 달려들었다.

사울 곁에 있던 아이나가 도끼를 빼 들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사울이 뻗은 마법 검에서 흘러나온 전격이 적의 몸을 강타했기 때문이었다.

“큭……!”

쓰러진 적이 눈을 부릅떴다.

사울이 묶으라 명령하려 했지만, 적 쪽의 움직임이 빨랐다.

“커억!”

쓰러진 적이 피를 뿜으며 눈을 까뒤집었다.

사울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적이 즉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법으로 죽은 건 아니다.

그렇다면…….

‘독인가.’

적에게 붙잡히느니 숨겨 둔 독으로 자결한다.

처음 보는 광경도 아니다.

특히나 피닉스 같은 비밀 결사라면 으레 할 짓이다.

그제야 사울은 조금 전 본 ‘입이 피투성이가 된 채 묶여 있던 적’들의 정체를 알았다.

분명 그들은 살아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카스텔이 생포를 위해 적들을 기절시킨 뒤, 입을 뭉개서 숨겨 둔 독을 꺼낸 것이리라.

무지막지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이다.

교훈을 얻은 사울은 적들을 더욱 무자비하게 상대하기로 했다.

지금 눈앞의 적들은 자살할 힘이 남아 있다면 기꺼이 목숨을 끊을 광신자들이었으니까.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이는 한이 있더라도 확실히 제압할 필요가 있다.

그런 사울의 눈에 한 명의 적이 포착되었다.

후드를 눌러쓴 채 도망치는 데 여념이 없는 인간 혹은 엘프.

사울의 마법 검이 빛났다.

동시에 주먹만 한 불덩어리가 날아가 도망치는 적의 등을 때렸다.

“크아악!”

물리적인 충격과 뜨거운 불의 세례까지 받은 적이 비명과 함께 나동그라졌다.

즉사해도 이상할 게 없는 충격이었지만, 죽지 않았다면 포로가 될 것이다.

지금은 단호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그러는 사이 전장이 된 언덕을 완벽하게 둘러싼 포위망이 형성되었다.

* * *

늦지 않게 전장에 도착한 조나단은 약속대로 목적지인 언덕을 둘러싸는 포위망을 만들었다.

“전하, 포위망이 완성되었습니다!”

기사의 보고에 조나단은 명령을 내렸다.

“좋아. 주변을 밝혀라! 어둠을 틈타 빠져나가는 놈이 없도록!”

조나단의 명령에 마법으로 빛을 만들 수 있는 모두가 빛을 만들었다.

마치 수백 개의 횃불을 동시에 켠 듯 주변이 대낮같이 밝아졌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달아나는 게 불가능해진 것이다.

완벽한 포위망을 만든 조나단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머금으면서도 마음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방심하지 마라. 적들은 한 놈도 놓쳐서는 안 된다.”

“네, 전하!”

“포위망은 그대로 유지하고, 나머지 병력은 나를 따라 이동한다!”

조나단은 아직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코볼트 마을로 짓쳐 들어갔다.

이럴 때를 위해 쿠루굴이 이끄는 코볼트 무리는 미리 눈에 잘 띄는 표식을 달았다.

혼전이 벌어질 때 피아 식별을 하기 위함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도 없었다.

“반갑소!”

조나단을 발견한 쿠루굴이 달려와 예를 표했다.

“전황은 어떠한가?”

“이미 적들은 거의 다 흩어졌소.”

“사울은?”

“사울 왕자는 우리보다 한발 앞서 그 피닉스라는 자들의 추적에 나섰소.”

“그런가. 그럼 나도 추적에 나서도록 하지.”

조나단과 그가 이끄는 병력이 코볼트 잔당, 그리고 피닉스 추적에 합류했다.

합류 전부터 몰릴 대로 몰린 적들로서는 조나단 부대를 당해 낼 수 없었다.

조나단은 직접 말 위에서 아군을 지휘하며 적들을 추격했다.

“@#$%[email protected]#$%”

숨어 있다 발각된 몇몇 코볼트가 그런 조나단에게 저항해 보았다.

하지만 기세가 오른 데다 마나도 다루는 실력자인 조나단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조나단은 굳이 말에서 내릴 필요도 없다는 듯 코볼트의 공격을 피하며 창을 휘둘렀다.

구슬픈 울음과 함께 코볼트가 쓰러졌다.

그렇게 추격하며 몇몇 적을 처리한 조나단에게 한 기사가 달려왔다.

사울과 함께 선발대로 출동한 기사였다.

“사울이 보냈는가?”

“네, 전하. 사울 전하께서는 지금 피닉스를 추격 중이십니다.”

“놈들은 얼마나 잡았지?”

“몇몇은 생포했고, 나머지는 아군에게 죽거나 자결했습니다.”

“자결?”

피닉스를 상대해 본 경험이 적은 조나단은 적잖이 놀랐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알았다. 나는 나대로 놈들을 쫓을 것이니 너는 이만 돌아가도록 하라.”

“네, 전하!”

다시 추격에 나선 조나단은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젠장, 내가 너무 늦게 온 건가?’

약속 시간을 어긴 것은 아니다.

그 증거로 적들이 이 지역을 빠져나가기 전에 포위망을 완성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조나단은 사울이 적들의 힘을 빼놓으면, 자신이 나서 적들을 물리치는 그림을 원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이미 전투는 거의 끝났고, 포위와 추격만 남았다.

포위와 추격도 중요한 임무지만 조나단이 원하던 그림은 아니었다.

‘설마 사울 녀석이 공을 다 차지하려고…….’

의심이 앞섰지만, 당장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의심을 표출하는 건 사울의 행동을 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았다.

“계속 추격하라!”

“모조리 죽이거나 사로잡아라!”

포위망 속에서 추격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어느덧 하늘이 점점 밝아져 왔다.

전투가 마무리된 건 아침 무렵이었다.

“형님.”

“사울.”

추격전을 마치고 복귀한 사울은 조나단의 심상찮은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태연한 듯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기색이 완연한 표정.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 보건대, 지금 사울이 해야 할 일은 자명했다.

“감사합니다, 형님.”

사울은 조나단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찬사를 늘어놓았다.

“형님 덕분에 모든 게 무사히 잘 풀렸습니다.”

“그, 그러냐?”

“네, 형님. 저도 형님이 제때에 와 주실 것이라 믿었고, 실제로 와 주셨으니까요. 형님 덕분에 한 명의 적들도 놓치지 않고 모두 베거나 사로잡았습니다. 이번 작전이 성공한 건 다 형님 덕분입니다.”

전생의 기억 덕분에 사울은 윗사람을 칭찬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았다.

근거 없는 칭찬은 역효과를 부르기 쉽다.

반면에 실제로 상대가 잘한 일을 부풀려서 칭찬하는 건 어지간하면 실패하지 않는다.

조나단이 시간 약속을 지킨 것도, 그의 포위망 덕분에 작전 성공에 도움이 된 것도 모두 사실이었으니까.

확실히 칭찬은 효과가 있었다.

조나단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진 것이다.

“그렇군. 그래, 다친 곳은 없느냐?”

“네, 형님은요?”

“나도 괜찮다. 그까짓 코볼트 따위는 내 적수가 아니지.”

조나단의 기분이 풀린 것을 안 사울은 좀 더 양보하기로 했다.

“네. 형님 덕분에 이번 전투에서 이겼으니 승전보도 형님이 직접 올리시지요.”

“그래? 하하.”

전투에서 승리한 뒤 승전보를 올리는 건 전투 책임자, 혹은 가장 큰 공을 세운 쪽의 몫이다.

사울이 승전보를 직접 쓰지 않고 양보한다는 건 사실상 조나단이 이번 전투를 주도했음을 만천하에 알리라는 뜻이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번 전투에서 가장 큰 전공을 세운 것이 조나단이라 생각하리라.

이에 조나단은 완전히 밝아진 표정으로 사울의 어깨를 두드렸다.

“정말 고생 많았다.”

“감사합니다, 형님.”

“그럼 네가 먼저 코볼트 족장을 만나 보려무나. 나는 군대를 수습한 뒤 가겠다.”

마침 사울도 쿠루굴 쪽의 소식이 궁금했다.

자신들이 그렇듯 쿠루굴 쪽도 전투에서 승리했다고는 들었다.

하지만 피닉스에게 붙잡힌 코볼트 족장에 대한 소식은 없었다.

그렇게 쿠루굴을 만난 사울은 그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발견했다.

“족장, 무슨 일인가요?”

사울의 질문에 쿠루굴이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족장 대부분을 구하지 못했소.”

“네? 어째서…….”

“이미 죽은 족장도 있고, 전투가 시작되기 무섭게 살해된 족장도 있었소. 놈들에게 붙잡혀 있던 족장과 간부가 열 명도 넘었는데, 살아남은 건 두 명뿐이오.”

그러고 보니 쿠루굴 뒤에 낯선 코볼트 두 마리가 있었다.

둘 다 몸 곳곳에 피로 물든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한 마리는 몸도 못 가누고 누워 있을 만큼 심한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둘 다 생사의 위기를 간신히 넘기고 살아남은 게 분명했다.

“진심으로 애도를 표합니다.”

“고맙소.”

사울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건가요?”

“…아마도 새 족장을 뽑아야겠지.”

“그래야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요. 우리가 한 약속을 지키려면 족장이 서둘러야 해요.”

“그 이주 문제 말이오?”

“그래요. 어쨌든 당신은 자기 몫을 다 했으니 이제 나와 형님이 약속을 지킬 차례이지요. 땅은 이미 준비되었어요. 하지만 가능한 빨리 움직여야 해요. 시간이 길어지면 우리 왕국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사울은 코볼트 족장 대부분이 죽은 게 잘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것, 상황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쿠루굴은 그런 사울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왕자의 말인즉, 나더러 부족 모두를 이끌라는 말이오?”

“그건 족장이 알아서 할 일이지요. 중요한 건 우리에게도, 족장에게도 시간은 많지 않다는 것이에요. 하루빨리 이주를 한다면 우리가 책임질 수 있지만, 시간을 끌면 우리가 책임질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어요. 나는 그러한 불행이 일어나는 걸 원치 않아요.”

“…….”

쿠루굴은 말도 어느 정도 통하고, 멍청하거나 위험한 선택을 할 인물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쿠루굴이 천 마리도 넘는다는 코볼트 무리 전체를 통솔하는 게 최선이다.

왕국으로서도, 사울에게도.

한참 고민하던 쿠루굴이 말했다.

“다른 방법이 없군.”

“사울!”

마침 군대 수습을 마친 조나단도 쿠루굴을 만나러 왔다.

사울은 조나단에게 지금껏 주고받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나단도 사울과 생각이 같았다.

“네 말이 맞다. 이 일은 서둘러야 해. 아무리 루시아 누님이라 해도 오래 기다려 주진 못할 거다. 시간을 끌 필요는 없어.”

“알겠소. 최대한 빨리 부족을 수습해서 이주 문제를 마무리 짓도록 하겠소.”

코볼트 문제를 대충 마무리 지은 사울은 자신이 말한 대로 승전보를 작성하고 보내는 것을 조나단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공은 줄어들고, 조나단의 공은 늘어나겠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이번 일의 공은 조나단에게 양보할 생각이었으니까.

지금 사울에게 중요한 건 전공보다는 피닉스에 대한 정보였다.

* * *

포로로 붙잡힌 피닉스 조직원들은 하나같이 입이 피투성이가 된 채 묶여 있었다.

연금술로 정밀하게 만들어진 독주머니를 입 안에 숨기고 있다 유사시에 자살을 하여 스스로 입을 막는 게 피닉스의 방식이다.

그 사실을 안 카스텔은 적들을 쓰러뜨린 뒤 자살하기 전 마법으로 입을 망가뜨리는 극약 처방으로 독주머니를 빼내고 자살을 막았다.

“선생님, 저들을 깨워요.”

“네, 전하.”

카스텔의 가벼운 마법에 포로들 모두 정신을 차렸다.

살아남은 포로는 모두 합쳐 다섯 명.

인간과 오크, 드워프가 각각 한 명.

그리고 엘프가 두 명.

분명 누군가 쓸모 있는 정보를 갖고 있을 것이다.

“모두들 잘 들어라. 내 이름은 사울, 너희들이 피닉스라면 나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나아가 나나, 조나단 형님, 혹은 다르센 왕국에 위해를 끼칠 목적으로 행동하다 붙잡힌 것일 수도 있겠지.”

“…….”

“왕실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겠다. 그대들이 아는 것을 정직하게 이야기한다면 목숨을 살려 주는 건 물론, 그대들이 평생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신변에 대한 안전도 보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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