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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51화 (151/232)

151화

그런데 킬리안은 카스텔의 생각과 다르게 움직였다.

무언가를 깨달은 듯 미소를 짓더니, 이내 명령을 내린 것이다.

“마을로 간다.”

“카스텔은 어쩌시고요?”

“무시하고 마을로 간다. 아마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군.”

킬리안 부하들 모두가 의아해했지만, 누구도 그의 명령을 거스르지는 않았다.

곧 킬리안도, 다른 부하들도 모두 말에 탄 채로 그대로 카스텔을 뚫고 지나가려 했다.

‘이런.’

카스텔은 조금 당황했다.

자신 같은 강자를 만난 것이니 도망치거나, 혹은 전원 말에서 내려 전력을 다해 상대할 것이라 예상했다.

설마 기동력을 살려 자신을 뚫고 굳이 마을로 들어가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죽어라!”

기세를 탄 킬리안의 부하 한 명이 카스텔을 말발굽으로 짓밟으려 했다.

물론 카스텔은 얌전히 짓밟혀 주지 않았다.

손짓 한 번에 말은 물론, 그 위에 타고 있던 부하까지 동시에 피를 뿜으며 쓰러졌으니까.

“역시 대단하군.”

그 광경을 곁눈질한 킬리안은 새삼 카스텔의 힘에 감탄했다.

하지만 조금도 두려운 기색 없이 말을 달렸다.

킬리안과 부하들은 일제히 마을로 쳐들어갔다.

카스텔은 그런 킬리안을 공격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말을 타고 오지 않은 탓에 기동력에서 크게 밀린 탓이었다.

카스텔은 마법을 이용하여 서둘러 킬리안의 뒤를 쫓았다.

그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짐작이 갔다.

조금 전 자신이 잡은 포로, 로터스.

이유는 모르겠지만 킬리안도 그를 노리고 온 모양이었다.

‘전하께서는 그자를 절실히 원하셨다. 내가 지킨다.’

카스텔은 곧바로 로터스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곧 로터스가 있는 곳에 도착하려는 순간, 카스텔은 킬리안 일행이 어느새 자신을 쫓아오는 것을 보았다.

‘영악한 놈.’

카스텔은 킬리안이 자신의 생각을 꿰뚫어 보았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향하는 곳에 ‘목표’가 있음을 깨닫고, 진로를 바꿔 곧바로 자신을 뒤쫓는 게 분명했다.

일단 카스텔은 움직임을 멈췄다.

운 나쁘게도 바로 그때, 왕국 병사들이 포로로 잡은 로터스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카스텔 님!”

눈치 없는 병사의 행동에 카스텔은 눈살을 찌푸렸다.

병사들은 주변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가는 것에 놀라 가장 중요한 포로가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굳이 로터스를 데리고 온 것일 거다.

병사들 잘못은 아니지만, 그 행동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병사들, 그리고 로터스를 본 킬리안은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저게 우리들의 목표지?”

곁에 있던 칼립소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두목.”

‘목표’가 포착된 이상 망설일 것은 없다.

예상외의 장애물이 나타났지만, 장애물이 생기면 뛰어넘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아군이 피를 흘리더라도.

“목표를 죽여라.”

킬리안의 명령과 함께 모두들 말에서 내렸다.

킬리안과 부하들을 태웠던 말들은 주인들이 내리자 일제히 흩어졌다.

카스텔은 킬리안의 부하들은 물론, 말들도 고도의 훈련을 받았음을 깨달았다.

아마 저 말들은 전투가 끝나면 다시 몰려올 것이다.

‘고단수로군.’

만만찮은 적들과 마주한 카스텔이 지금 할 일은 하나.

포로를 지키는 일이었다.

“죽여라!”

킬리안과 부하들이 일제히 목표에게 달려들었다.

모두들 자신의 목숨조차 아깝지 않다는 듯, 미친 듯이 달려들어 왔다.

일단 카스텔은 달려오는 모든 적들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카스텔의 특기인 마법의 촉수가 수십 가닥으로 갈라져 적들을 덮쳤다.

“으악!”

촉수에 꿰뚫려 비명을 지르는 자도, 비명조차 못 지르고 쓰러지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소수였다.

대부분의 적들이 카스텔의 공격을 막거나 피해 냈다.

1:1, 아니 적들의 숫자가 지금의 절반만 되었어도 카스텔의 공격은 훨씬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킬리안과 그가 이끄는 정예는 숫자도,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더군다나 카스텔은 온전히 눈앞의 적들을 죽이는 데 집중할 수도 없었다.

“쏴라!”

화살에 단검부터 마법까지.

가지각색의 원거리 공격이 먼저 날아왔다.

목표는 카스텔이 아닌, 로터스였다.

“칫.”

카스텔은 로터스의 앞을 가로막으며 모든 적들의 공격을 막아 냈다.

비록 카스텔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지만, 그 광경을 본 킬리안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랬군.”

“두목, 어찌할까요?”

“지금 카스텔은 주인을 지키는 개에 불과하다. 그리고 저 개의 보호를 받는 놈은 바로 로터스라는 놈이지.”

킬리안의 말뜻을 알아들은 칼립소도 킬리안처럼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모두들! 카스텔을 노리지 말고 목표를 노리고 공격하라!”

만에 하나 카스텔이 로터스를 포기하고 전력으로 반격해 오면 킬리안의 처지도 크게 어려워진다.

하지만 킬리안은 그렇지 않으리라 확신했고, 그 확신은 맞았다.

카스텔은 적극적으로 반격하는 대신 로터스를 지키는 데 전념했다.

로터스를 데리고 피신할 여유도 없는 파상 공격 속에서 촉수를 휘두르고 방어막을 치면서 맞섰다.

“재미있군, 재미있어!”

킬리안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본격적으로 전투에 끼어들었다.

그의 양손에서 수십 가닥의 실이 빛나며 카스텔을,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지키고 있는 로터스를 덮쳤다.

“……!”

카스텔은 다른 적을 공격하는 것보다, 나아가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보다 로터스를 우선해 지켰다.

마법으로 막고, 필요하다면 몸으로도 막았다.

덕분에 로터스는 확실히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적들의 이어지는 파상 공격, 그리고 그 누구보다 정확하고 날카로운 킬리안의 공격들을 완전히 막거나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로터스가 아닌, 카스텔이 피를 보았다.

“큿.”

카스텔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킬리안이 날린 실에 팔이 베인 탓이었다.

잘린 옷자락이 흩날리고 상처에서 나온 피가 흘러내렸다.

카스텔이 피를 흘리는 것을 본 킬리안은 더없이 즐겁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너도 피를 흘리는군, 카스텔.”

“…….”

킬리안의 조롱에 카스텔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러면서도 카스텔은 로터스를 지키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조롱하면서도 킬리안은 다시 실을 날렸고, 다른 적들도 계속 공격을 퍼부었다.

차라리 카스텔 본인을 노렸다면 막거나 피하기 쉬웠겠지만, 영악하게도 끈질기게 로터스만을 노렸다.

여전히 기절한 로터스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를 데리고 이동하다가는 역공을 허용할 것이다.

역으로 강력한 공격을 퍼부으려 해도 킬리안 쪽에서 빈틈을 주지 않았다.

비록 킬리안의 힘은 카스텔에 미치지 못했지만, 자그마한 빈틈이 보일 때마다 연신 실을 날렸다.

그래서 지금의 카스텔은 로터스를 지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카스텔! 언제까지 그 쓸모없는 고깃덩어리를 지키고 있을 거냐?”

“…….”

“네 실력은 이 정도가 아니지 않느냐. 그 고깃덩어리는 치우고 날 공격해 봐라!”

킬리안의 도발에도 카스텔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전투가 길어지면서 막강한 카스텔도 점점 빈틈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카스텔이 입는 상처도 늘어 갔다.

아직 카스텔에게 상처를 입히는 데 성공한 건 킬리안 뿐이었지만, 전투가 더 길어지면 어떻게 될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하핫! 악명 높은 검은 마녀도 한물갔군!”

“오늘은 검은 흉성이 뒈지는 날이다!”

간이 커진 킬리안의 부하까지도 도발을 이어 나갔다.

반면에 킬리안은 상황이 좋지 않음을 깨달았다.

‘정말 대단한 계집이군.’

당장은 누가 봐도 자신들이 유리한 상황이다.

이대로 장기전을 펼치면 목표인 로터스를 죽이는 건 물론, 카스텔까지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킬리안에게는 장기전을 펼칠 시간이 없었다.

뒤를 맡긴 녀석들은 결코 사울을 당해 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신과 칼립소를 비롯한 최정예가 모두 빠진 이상, 결국 사울은 그들을 물리치고 이 마을로 올 것이다.

‘아마 머잖아 사울 왕자가 도착하겠지.’

카스텔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로터스를 지키면서 버티다 보면 머잖아 올 사울의 힘으로 전세를 뒤집을 수 있다고 말이다.

당장 로터스나 카스텔을 죽이기는 어렵다.

카스텔의 몸에 상처가 점점 늘어 갔지만, 당장은 죽기는커녕 약해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시간을 허비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어쩔 수 없군.’

결단을 내린 킬리안은 곁에 있던 칼립소에게 명령했다.

“후퇴한다.”

“네?”

“후퇴한다.”

칼립소는 상황을 파악했다.

킬리안의 뜻이 분명하다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

“네, 두목.”

칼립소가 크게 휘파람을 불었다.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에 전장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킬리안도, 다른 자들도 로터스나 카스텔을 공격하는 대신 후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물러가려는가.’

큰 소리로 후퇴 명령이 떨어지진 않았지만, 카스텔도 공기가 바뀐 것을 깨달았다.

아직 로터스는 무사하고, 이 전투는 자신이 이겼다.

카스텔은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의 생각대로 적들이 후퇴하기 시작했지만 무리해서 추격하는 대신 끝까지 로터스를 지키는 데 전념했다.

덕분에 킬리안도, 다른 자들도 큰 문제 없이 후퇴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히힝!”

각지에 흩어졌던 킬리안 부대의 말들은 휘파람 소리를 듣고 일제히 돌아왔다.

킬리안도, 부하들도 모두들 말에 올라탔다.

말에 탄 킬리안은 마지막으로 카스텔을 바라보았다.

킬리안의 후퇴가 확실해졌음에도 카스텔은 여전히 한 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몸 곳곳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면서도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킬리안을 노려보았다.

“검은 흉성이 저렇게 필사적으로 내 일을 방해할 줄이야.”

저기 쓰러져 있는 게 사울이라면 납득할 수 있다.

왕자를 지키기 위해 왕국 마법사가 목숨을 거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지금 카스텔은 적국의 마법사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렸다.

그 사실이 킬리안에게는 정말 흥미로웠다.

‘비록 임무는 실패했지만… 정말 재미있어지겠군, 정말로.’

킬리안은 실패자답지 않게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다.

킬리안이 점점 멀어지는 와중에도 카스텔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얼마 후, 사라진 킬리안 대신 사울과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생님?”

카스텔의 모습에 사울은 적잖이 놀랐다.

다른 사람도 아닌 카스텔이 피를 흘리다니.

“어떻게 된 건가요?”

사울의 질문에 카스텔은 로터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자를 지키느라 적들을 붙잡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알 만했다.

홀로 로터스를 지키느라 킬리안과 제대로 싸우지 못했고, 그 결과 부상까지 입은 것이리라.

반면에 로터스는 상처 하나 없이 무사했다.

그 광경에 사울은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카스텔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카스텔은 상처를 입고 로터스는 멀쩡한 것을 보니 정말 기분이 복잡했다.

카스텔 역시 로터스처럼 전생의 ‘원수’임을 떠올리면 더더욱.

“…….”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하던 사울은 뒤늦게 카스텔의 안부를 물었다.

“선생님은 괜찮아요?”

“이 정도 상처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제 몸은 보통 사람과 다르니까요.”

“상처가 크지 않다니 다행이군요. 하지만 혹시 모르니 진찰을 받도록 해요.”

“네, 전하.”

사울은 킬리안이 사라진 쪽을 돌아보았다.

이미 킬리안은 추격할 수 없을 만큼 멀어졌다.

“아르멜, 주변을 정리한 뒤 저들의 흔적이라도 쫓아 봐.”

“네, 전하. 포로는 어찌하실 겁니까?”

사울은 입을 열기 전 다시 한번 숨을 가다듬었다.

로터스에게 묻고 싶은 것고 있고, 하고 싶은 것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다른 자들이 알면 안 된다.

“일단 네가 심문하여 정보를 얻어 내도록 해. 그다음에는 내가 직접 심문해 보지.”

“전하께서 직접 말이십니까?”

“그래, 힘들게 잡은 포로잖아. 따로 심문을 하면 정보를 좀 더 캐낼 수 있을지 모르니.”

“알겠습니다.”

이렇게 포로가 된 로터스는 사울과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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