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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58화 (158/232)

158화

다른 몇몇도 자기 의견을 냈지만, 결국 이야기는 사울과 던칸이 말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자가 예상치 못한 이유로 이런 짓을 저지른 게 아니라면, 결국 이 사건은 가멜다 왕국이나 피닉스의 짓일 가능성이 높았다.

사울은 아직 가설인 ‘가멜다 왕국과 피닉스가 관련 있다는 설’은 꺼내지 않았다.

그렇다면 둘 중 어느 쪽의 짓일 가능성이 클까.

저울질을 해 봐도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았다.

회의장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의견이 오갔고, 또 조율을 해 보았지만 모두가 수긍할 만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별다른 성과 없이 회의는 마무리 지어졌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겠어요. 그러니 난 당분간 이곳에 머무르겠어요.”

“네, 전하.”

회의를 마친 사울은 전에 자신이 머물렀던 저택의 손님방으로 향했다.

여장을 풀고 잠시 숨을 돌리는 사울에게 던칸이 찾아왔다.

“홉킨스 경, 무슨 일인가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잠시 다른 자들을 물려 주십시오.”

사울은 던칸의 요구대로 다른 사람들은 물려 주었다.

둘만 남께 되자 던칸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최근 피닉스에 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회의장에 있던 사람들도 알지 못하는 정보인가요?”

“네. 이 사실을 아는 건, 저와 제 아들, 그리고 극소수의 사람들뿐입니다.”

“심각한 정보인가 보군요.”

“그렇습니다. 정보에 따르면 피닉스가… 아무래도 카멜 산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울은 덤덤하게 던칸의 말을 받았다.

“나도 그럴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했어요.”

“네. 저희도 피닉스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희 가문의 영지는 그 어떤 곳보다 이종족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 지금은 그들과 무사히 공존하고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공존이 깨진다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조차 싫습니다.”

“그리고 피닉스는 이 영지에서 인간과 이종족 사이의 공존을 깨려고 한다?”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그렇습니다.”

간단히 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홉킨스 가문 영지는 왕국령을 통틀어 인간과 이종족이 공존하는 유일한 땅이다.

그 공존이 깨진다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홉킨스 가문 영지에서도 평온하게 살기 어렵다면 다르센 왕국의 이종족들은 아마도 왕국에서 사는 것을 포기할 것이다.

그 경우 중립 지대, 심지어 적국 가멜다 왕국으로 향할 것이다.

그 와중에 피닉스 같은 불순분자와 접촉할 가능성도 있다.

큰 전쟁을 앞두고 있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는 일이다.

“보통 일이 아니군요. 하지만 카멜 산을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어요. 카멜 산과 피닉스가 관련 되었다는 증거가 있나요?”

“증거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몇몇 정보를 얻었습니다.”

던칸이 내민 증거는 하나같이 사울의 눈에 차지는 않는 것들이었다.

‘피닉스와 관련된 이종족 주민과 카멜 산의 간부 누군가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이런 내용만으로는 카멜 산을 건드릴 수 없다.

“피닉스와 관련되었다는 주민은 지금 어디 있나요?”

“영지에 잡아 두었습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해 보아야겠어요.”

“그렇게 하십시오.”

던칸은 조심스럽게 말을 돌렸다.

“전하, 제 딸 말입니다.”

“아이나에게 무슨 문제라도?”

“혹시 제 딸이 전하께 실례를 저질렀습니까?”

던칸의 말에 사울은 속으로 혀를 찼다.

‘아이나의 아버지 아니랄까 봐 눈이 날카롭군.’

아이나 스스로 사울과 관계가 불편해졌다는 말을 했을 리는 없다.

사울 앞에서는 당연히 그런 말을 하지 않았고, 사울이 없을 때도 경솔한 소리를 함부로 떠들 사람이 아니었다.

아이나가 술이라도 먹고 실언을 한 게 아니라면 결국 던칸이 날카로운 눈으로 무언가를 읽어 낸 것이리라.

사울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영주가 신경 쓸 만한 일은 없었어요.”

“제 딸이 무례를 저질렀다면 제가 꾸짖겠습니다.”

“아니, 아이나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어요.”

잠시 말없이 사울을 바라보던 던칸이 조용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지금은 피닉스 문제에 집중하고 싶어요.”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 *

사울은 일행과 함께 문제의 이종족이 갇혀 있는 감옥으로 향했다.

카멜 산의 간부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이종족은 여러 명이었고, 종족이나 직업도 모두 달랐다.

엘프 상인, 오크 사냥꾼, 드워프 장인.

각기 다른 종족과 직업을 가진 자들이 피닉스와 관련 있다는 혐의로 끌려와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들은 대접을 잘 받지 못했는지 하나같이 몰골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사울은 그들을 동정하지 않았다.

“선생님.”

늘 그렇듯 카스텔이 손을 썼다.

역시 카스텔의 마법에 저항할 수 있는 자는 없었고, 결국 모두들 아는 것을 모조리 토해 냈다.

난잡한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분석한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역시 별것 없군.”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라 사울은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무엇보다도 붙잡힌 자들은 정식으로 피닉스에 소속된 자들도 아니었다.

한둘을 건너 피닉스에 대해 알고 있거나, 혹은 곁다리에 접촉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소득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피닉스에서 이종족 주민들과 접촉하여 민심을 뒤흔들려 하는 것 같지?”

사울의 의견에 아르멜이 찬동했다.

“네, 전하. 이들이 직접 피닉스에 속한 건 아니지만, 피닉스의 뜻대로 움직인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피닉스가 홉킨스 가문 영지를 노리고 있다… 라.”

아직 카멜 산 간부와 피닉스가 관련이 있다는 건 확실한 게 아니다.

사울은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상황을 분석하기로 했다.

피닉스는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자들일 수도 있고, 누군가와 함께 손을 잡았을 수도 있다.

카멜 산의 일부가 피닉스와 한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사울은 자신이 아는 세력들을 떠올려 보았다.

전보다 세력이 꽤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율렌 섬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가진 킬리안 비셔스.

피닉스만큼이나 수수께끼투성이지만 분명 존재하는 어둠의 세력.

그리고 사울의 원수들이 모인 곳이자 적국인 가멜다 왕국.

‘셋 중 세력이 가장 큰 곳은 가멜다 왕국이지. 그들이라면 몰래 피닉스와 손잡고 이런저런 일을 꾸미고도 남아.’

다르센 왕국과 가멜다 왕국은 큰 전쟁을 앞두고 있다.

언제 일어나느냐가 문제일 뿐, 일어나는 것 자체는 기정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양국의 전운이 고조된 시기에 피닉스의 움직임이 활발해진 것이 과연 우연일까.

생각을 정리한 사울은 모두에게 말했다.

“나는 가멜다 왕국 쪽이 의심 가요.”

사울은 자신이 가멜다 왕국을 의심하는 이유를 들려 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모두들 어느 정도 공감했다.

“전하의 말씀대로 피닉스와 가멜다 왕국 사이에 무언가 관계가 있다면, 많은 것들이 설명됩니다. 하지만 그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르멜의 말은 정론이었다.

그동안 벌어진 일들을 돌이켜 보면 확실히 피닉스와 가멜다 왕국 사이에는 무언가 연결 고리가 있다.

사울은 가멜다 왕국이 이종족을 이용하기 위해 피닉스를 만들었다고 밝혀져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확정 지을 만한 증거가 없다.

뚜렷한 증거 없이 내세우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한 주장이다.

‘하나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으면 또다시 미궁에 빠지는 게 반복되는군.’

미궁의 연속이라고 지루해할 틈은 없다.

머잖아 전쟁이 다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니까.

모두의 예상대로 두 나라의 전쟁이 재개된다면, 율렌 섬 전체가 휩싸일 것이다.

가능하면 전쟁이 재개되기 전 많은 것을 알아내야 한다.

“이왕 이곳에 돌아왔으니 당분간 영지를 중심으로 수색을 하는 게 좋겠어요.”

모두들 사울의 뜻에 수긍했고, 그렇게 회의는 끝났다.

그리고 회의를 마친 사울은 두 사람을 불렀다.

“선생님, 아이나, 잠시 이야기 좀 할까요?”

사울, 카스텔, 아이나 세 명이 마주 앉았다.

사울은 새삼 두 사람과의 관계가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표정이나 눈빛, 나아가 마음까지도.

두 사람이 자신을 대하는 게 변한 이유는 뻔했다.

‘그 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

로터스를 죽인 일.

아직도 사울은 그 일을 후회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죽을죄를 지은 자를 죽였을 뿐이다.

정의로운 일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카스텔과 아이나와의 마음이 멀어진 건 신경이 쓰였다.

일단 카스텔은 스승이고, 아이나는 친구가 아닌가.

언젠가는 카스텔에게 칼을 들이대야 할 테고 아이나와의 관계를 정리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칼을 들이대거나 불가피하게 관계를 끊기 전까지는 가능한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건 욕심일까.

처음에는 로터스를 죽이기 이전의 관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새삼 카스텔과 아이나를 마주하고 있으니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왕자라도, 그리고 카스텔의 제자이자 아이나의 친구라도 두 사람의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정말 이런 일을 처리할 때가 가장 골치 아픈 것 같아.’

감정 없이 스스로의 목적에만 전념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하지만 사울 스스로 카스텔이나, 아이나에게 품은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은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제때 진화할 필요를 느꼈다.

“아이나.”

“네, 전하.”

“이종족을 만나기 전 영주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러셨습니까?”

“일 이야기도 했지만… 나와 그대의 관계에 대해서 걱정하더군요.”

아이나는 사울의 말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예상대로 아버지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던 모양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아버님 때문에 불쾌하셨다면…….”

던칸이 비슷한 언동을 하는 것을 본 사울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불쾌하다니요. 맞는 말을 했을 뿐인데.”

“…….”

“그대나 선생님이나 아무래도 지난번 로터스의 일로 많은 것을 생각한 것 같아요. 내 말 맞지요?”

“…그렇습니다.”

듣고 있던 카스텔이 끼어들었다.

“전하.”

“네, 선생님.”

“이제야 말씀드리지만, 전하는 잘못하신 게 없습니다.”

“뭐라고요?”

“로터스는 우리의 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죽을 짓을 하였지요. 전하께서 무슨 이유로 그의 목숨을 거두었든 전하의 잘못이 아닙니다.”

듣고 있던 아이나가 눈을 크게 떴다.

사울도 적잖이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 카스텔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카스텔의 말은 계속되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하는 아무것도 잘못하시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로터스를 죽이지 않았다면 상황이 좀 더 나아졌을 것인데.”

“저는 전하를 잘 압니다. 전하께서 로터스를 죽였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셨겠지요. 전하는 속이 깊은 분이니.”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비꼬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카스텔은 달랐다.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을 말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만 전하, 한 가지만 말씀해 주십시오.”

“무엇을요?”

“전하께서는 그자의 죽음에 관련된 무언가를 숨기고 계신 것 같습니다.”

날카로운 질문이지만, 예상 밖의 질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질문이 날아오기 전 나온 말들이 의외였다.

사울은 미리 준비한 대로 말을 잘랐다.

“그자의 죽음은 내 실수 때문이었어요. 그게 전부예요.”

“…알겠습니다.”

카스텔의 짧은 침묵에서 사울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역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군.’

어색한 관계를 조금이나마 무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사울은 아쉬움을 숨기며 두 사람을 다독였다.

“나는 여러분을 믿어요. 선생님은 내 스승이고, 아이나는 내 친구예요. 지금 내 곁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두 사람뿐이에요. 물론 그레이도 있지만, 전투와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니까요.”

사울의 말에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하.”

그렇게 둘 모두 인사와 함께 방을 나섰다.

모두 물러가고 홀로 남은 사울은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신뢰가 깨져도 어쩔 수 없다. 내겐 할 일이 있으니…….’

전생의 원한을 생각해서라도, 그리고 비참하게 죽은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이제 와서 멈출 수는 없다.

그저 나아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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