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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82화 (182/232)

182화

아직 중립 지대는 다르센 왕국과 가멜다 왕국의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을 뿐, 간접적으로는 이미 영향을 받고 있었다.

중립 지대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사울은 그 부분을 체감했다.

“전하! 탈영병을 체포했습니다!”

운 나쁜 다르센 왕국의 탈영병 몇이 대신전으로 향하는 사울 일행의 눈에 띄었고, 그 자리에서 체포된 것이었다.

탈영, 특히 전시 탈영은 선처를 받아도 장기간의 유배 및 노역형이고, 보통은 사형이다.

이는 다르센 왕국도, 가멜다 왕국도 다르지 않았다.

사울은 붙잡힌 탈영병을 동정하지 않았다.

지옥 같은 전장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심정이야 이해할 만했다.

하지만 탈영을 용납하면 군대가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모두 왕국으로 압송하고, 혹시나 다른 탈영병을 만나면 놓치지 말고 모조리 체포하라.”

“네!”

사실 중립 지대는 탈영병이 머무르기 좋은 곳으로 꼽혔다.

대신전이나, 카멜 산이나 탈영병 문제에는 손을 놓고 있기 때문이었다.

탈영을 권장하거나 탈영병을 적극적으로 포용하진 않았지만, 중립 지대로 도망친 탈영병의 체포 및 송환을 요구하는 두 왕국의 요구는 거절하는 상황이었다.

탈영병을 잡아가려면 직접 잡아가라.

직접 잡아가는 건 방해하지 않겠지만 도와주지도 않겠다.

이러한 입장을 가진 중립 지대는 탈영병 입장에서는 최고의 도피처였다.

또 난민 문제도 심각했다.

다르센 왕국과 가멜다 왕국 모두 주민들이 전란을 피해 중립 지대로 도망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왕국 주민이 전쟁을 피하기 위해 왕국에서 도망치는 것 역시 적발 시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다.

하지만 전란을 피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주민들이 결코 적지 않았다.

사울은 탈영병을 용납할 수 없듯, 난민들도 용납할 수 없었다.

전장의 참혹함이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용납할 수는 없었다.

군기가 사라진 군대나 백성이 사라진 나라는 전쟁을 계속하기는커녕, 제대로 유지될 수도 없는 법이니까.

탈영병에 대한 처분을 명령한 사울은 계속 움직였다.

* * *

대신전으로 향하는 내내 전과는 달라진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카멜 산이나 대신전에 속한 병사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순찰을 도는 모습.

또 이종족 주민들도 금방 전장에 나갈 기세로 무장을 하고 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이곳 주민들도 전쟁 걱정을 많이 하는 모양이군.”

사울의 중얼거림에 아이나가 대답했다.

“그럴 것입니다.”

“최근 몇십 년간 중립 지대가 전쟁에 휘말려 큰 피해를 당한 적은 없을 것인데. 그럼에도 역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나 봐요.”

“종종 피해를 당한 적은 있다고 합니다. 전쟁에 휘말린 주민 몇몇이 사망하거나, 혹은 군대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은 몬스터들이 중립 지대의 마을을 습격하는 일도 있었답니다.”

“그런가. 그럼 미움받아도 어쩔 수 없군요.”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도 중립 지대 주민들은 다르센 왕국도, 가멜다 왕국도 환영하지 않았다.

하물며 전쟁이 터지고, 불똥이 튈 것이 우려되는 지금은 오죽하겠는가.

심지어 지나가는 주민 중에서는 대놓고 사울을 보고 삿대질하거나, 침을 뱉는 주민도 있었다.

사울을 호위하던 기사들이 발끈했다.

“저 무례한 놈들이?”

“전하, 저 무례한 자들을 가만두실 겁니까?”

사울은 분노한 기사들을 달랬다.

“놔둬라. 탈영병이나 우리 왕국 주민이라면 모를까, 이 지역 주민들과 분쟁을 일으키지는 말도록.”

“하지만 전하!”

“병사들도 철저히 단속해라. 주민들이 먼저 폭력을 쓰지 않는 한 모른 척하도록.”

“…알겠습니다.”

사울의 단호한 표정에 기사들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사울 일행은 주민들의 곱지 않은 눈길을 받으면서도, 별다른 충돌은 없이 대신전에 도착했다.

* * *

오랜만에 다시 찾은 대신전은 꽤 분위기가 날카로웠다.

전보다 북적이는 건 물론, 대신전 안팎을 호위하는 병력도 두 배로 늘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이번 회담에는 사울은 물론, 가멜다 왕국 인사도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으니까.

“어서 오십시오, 전하.”

“반가워요.”

사울은 마중 나온 신관 그리고 성기사들과 함께 대신전에 입장했다.

“대신관도 많이 바쁘신 모양이군요.”

사울의 질문에 신관이 조심스레 대답했다.

“네, 전하. 요즘 이래저래 일이 많으신지라…….”

현 대신관인 에스타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전임 대신관인 콜리타는 여러 문제와 위기를 잘 극복해 왔다.

현 대신관으로서, 큰 부담을 느낄 것이리라.

“회담 전에 대신관님을 한번 만나고 싶었는데.”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알겠어요.”

“네, 전하. 그리고 전하를 뵙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인가요?”

“아미스 신관, 그리고 데이빗 견습 신관입니다.”

“둘 다 지금 대신전에 있나요?”

“지금은 자리를 비웠습니다. 어떨 땐 대신전 안의 일을 보고, 어떨 땐 주민들을 돕고 있지요. 쉽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있다면 꼭 전하를 뵙고 싶답니다.”

데이빗과는 꽤 친하게 지냈고, 아미스의 명성도 익히 들었다.

그런 두 사람이 모두 대신전에 있고 또 사울을 만나고 싶어 한다면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첫 번째 회담이 끝난 다음에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간이 되는 대로 한번 자리를 마련해 보지요.”

“네, 전하.”

사울은 자신이 쓰던 방으로 향했다.

분명 사울이 떠난 후 다른 용도로 썼을 방은 예전 사울이 쓰던 그대로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사울은 옷을 갈아입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곤 일행을 불러 이틀 후로 예정된 회담을 의논했다.

“이번 회담의 주제는 이번 전쟁에서 왕국에서 탈출한 탈영병과 난민들 문제. 그리고 전쟁으로 중립 지대 주민들이 입고 있는 피해에 대한 것이에요.”

사울의 말에 아르멜이 보충 설명을 했다.

“폐하께서는 이번 회담에서 최소한 대신전, 카멜 산, 나아가 중립 지대 전체가 지금처럼 중립을 유지할 것을 바라고 계십니다. 물론 가능한 중립 지대가 우리 왕국 쪽으로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게 흘러가도록 해야 합니다.”

국왕이 직접 관심을 가질 만큼 중요한 회담.

말하자면 사울은 국왕의 대리인이나 다름없고, 권한과 책임 역시 막중했다.

그만큼 성과를 올릴 필요도 있었다.

다시 사울이 말했다.

“중립 지대는 여전히 중립을 유지하려 할 거예요. 그러니 현상 유지만을 원한다면 크게 어려울 건 없어요. 가멜다 왕국도 어설프게 중립 지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하면 오히려 역효과나 날 것임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어차피 대신전이나 카멜 산이 대놓고 우리 왕국 편을 들도록 하긴 어려울 것이에요. 하지만 그들이 중립을 지키게 하면서, 동시에 우리 왕국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할 방법을 찾고 싶어요.”

사울의 말은 그야말로 정론이었다.

문제는 그 방법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사울도, 다른 사람들도 한참이나 생각을 했지만 좋은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 모두들 이 자리에 참석하기 전부터 고민한 부분이다.

대신전 어딘가에서 머무르고 있을 가멜다 왕국의 사절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다.

사울은 전공을 세우고 온 길이지만, 현재 전황은 양국이 비슷했다.

제르넬 요새처럼 다르센 왕국이 이긴 전장도 있지만, 진 곳도 있다.

이대로는 끝없는 소모전이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누구도 원치 않지만 쉽게 그만둘 수도 없는 지긋지긋한 소모전 말이다.

오래전부터 다르센 왕국도, 가멜다 왕국도 전세를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열쇠는 중립 지대에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현재 중립 지대의 마음을 좀 더 얻은 건 다르센 왕국 쪽이라 할 수 있다.

사울 등의 활약에 힘입어 대신전 및 카멜 산과 어느 정도 관계를 개선하는 데 성공했으니까.

하지만 아직 카멜 산이나 대신전을 아군으로 삼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지나치게 서두르다간 역효과가 나올 수 있다.

“다른 쪽의 상황을 살피면서 움직이는 게 좋겠어요. 대신전이나 카멜 산은 우리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행동할 수는 없으니까.”

“네, 전하.”

* * *

이틀 후.

예정대로 회담이 열렸고, 다르센 왕국, 가멜다 왕국, 대신전, 카멜 산의 요인들이 모두 참석했다.

다르센 왕국의 대표자는 사울.

가멜다 왕국의 대표자는 아바 애슬론 백작이었다.

애슬론 백작은 가멜다 왕국에서 꽤 유명한 정치인이었고, 존재감도 사울과 비교해서 크게 떨어지지 않는 자였다.

그리고 대신전에서는 대신관 에스타가, 카멜 산에서는 가르나엘이라는 엘프가 대표로 참석했다.

“…….”

모든 참석자들이 회담장 원탁에 둘러앉았다.

원탁에 앉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리고 대표자를 호위하기 위해 선 자들 사이에서도 긴장감이 흘렀다.

긴장감 가득한 침묵을 먼저 깨트린 건 대신관 에스타였다.

“모두들 이렇게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의 바르면서도 위엄 있는 목소리로 운을 뗀 에스타는 사울과 애슬론 백작을 돌아보며 말했다.

“특히 두 분께서 참석해 주신 것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비록 전쟁 중이지만, 대신전과 카멜 산을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싶습니다.”

사울이 먼저 말하자, 애슬론 백작도 지지 않고 말했다.

“우리 왕국도 언제든지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의 의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르센 왕국과 가멜다 왕국, 이 두 나라의 전쟁이 중립 지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난민들과 탈영병이 넘어오는가 하면, 며칠 전에는 국경 근처에서 전투가 벌어져 지역 주민들이 불안에 떨기도 했습니다.”

“…….”

“저희 대신전에서는 하루빨리 두 나라가 전쟁을 그만두고 평화를 위해 손을 잡으시는 것을 권하는 바입니다.”

평화를 말하는 에스타도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임을 알 것이다.

사울도, 애슬론 백작도 이대로 전쟁을 멈출 생각은 없다.

설령 둘 모두에게 전쟁을 멈출 생각이 있다 해도 그건 두 사람의 의사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울과 애슬론 백작 모두 고개를 저었다.

에스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역시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보는 것으로 하지요. 먼저 난민과 탈영병 문제입니다. 두 분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십니까?”

이번에는 애슬론 백작이 먼저 말했다.

“우리 왕국의 탈영병과 난민이 중립 지대로 넘어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에 사과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왕국에서는 탈영병과 난민의 발생 및 탈출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쟁 중이라 막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가능한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듣고 있던 사울도 동의했다.

“우리 왕국의 입장도 같습니다. 탈영병이나 난민은 왕국법을 분명 어긴 자들. 그들의 발생 및 탈출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양국의 무난한 의견 표시에 에스타는 잠시 생각하다 무언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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