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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88화 (188/232)

188화

변장한 사울 일행은 아미스를 찾아갔다.

하지만 아미스를 만나기 앞서 먼저 도착한 가멜다 왕국 병사들과 마주쳤다.

“역시 저놈들도 왔군.”

“대신전만 아니었다면 당장 베어 버렸을 것을.”

사울 일행을 보고 지껄여 대는 가멜다 왕국 병사들은 말 그대로 일반 병사, 잘 해야 장교 정도로 보였다.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면 모두들 놀랄 것이었다.

하지만 사울 일행은 모른 척 그들과 떨어진 곳에 섰다.

가멜다 왕국 병사들도 문제를 일으킬 마음은 없는 듯 자기들끼리 떠들 뿐 대놓고 시비를 걸어오진 않았다.

잠시 후 아미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미스는 가멜다 왕국 병사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했다.

“부디 예의를 지켜 주십시오.”

“알겠소.”

가멜다 왕국 병사들도 들은 말이 있는지, 무례한 짓을 하진 않았다.

이어 아미스는 사울 일행에게도 다가왔다.

“부디 예의를 지켜 주십시오.”

“그러지요.”

대답은 아이나가 했다.

사울이나 카스텔의 정체를 들키는 것보다는 아이나 쪽이 나았으니까.

“…….”

아미스는 사울 일행에게 왜 투구를 쓰고 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다만 사울은 투구 속에서 본 아미스의 눈빛이 신경 쓰였다.

의미심장한 듯한 눈빛.

혹시나 정체를 알아챈 것일까.

궁금했지만 이 자리에서 물을 순 없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아미스는 자신을 따르는 성기사 그리고 신관들과 함께 말을 타고 움직였다.

역시 말을 탄 채 조용히 뒤를 따른 사울은 투구 속에서 작게 웃었다.

‘저 녀석. 말도 탈 수 있게 되었군.’

사울이 아는 여동생은 말을 탈 줄 알기는커녕, 거의 모든 동물을 무서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익숙한 솜씨로 말을 다루고, 탈 줄 알았다.

다시 한번 여동생이 성장한 모습에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생의 여동생 문제만 생각할 때는 아니다.

사울은 마을 건설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주변 풍경을 세세히 살폈다.

역시 중립 지대 곳곳에 전쟁의 영향이 강하게 묻어났다.

심지어 난민으로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탈영병의 모습도 보였다.

“저것들은 탈영병이잖아?”

“가만히 있어. 조용히 다녀오라는 명령 기억 안 나?”

가멜다 왕국 병사들도 탈영병의 모습에 동요했다.

하지만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진 탓에 별다른 충돌은 없었고, 곧 목적지인 마을 건설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미스는 건설 현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다시 한번 양국 병사들 쪽으로 다가왔다.

“여러분들은 두 나라를 대표하여 오신 분들입니다. 그동안 본 것들에, 그리고 앞으로 볼 것이 불쾌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예의를 지켜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알겠소.”

아이나가 먼저 대답하자, 가멜다 왕국 측에서도 별 수 없이 수긍했다.

다시 한번 다짐을 받은 아미스는 사울 쪽을 슬쩍 바라본 뒤 곧장 건설 현장으로 향했다

“전하를 알아본 게 아닐까요.”

카스텔이 조용히 물었고, 사울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아무튼 우린 할 일을 하도록 해요.”

“네, 전하.”

사울도 지금은 딴 생각을 버리고, 공적인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바로 마을 건설 현장을 살피며 중립 지대의 분위기를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일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신관님.”

“건설은 잘되고 있나요?”

“덕분에 잘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현재 이곳을 포함해 총 네 곳에 마을이 건설되고 있어요. 세 마을이 함께 완성되고, 또 운영되면서 가능한 많은 분들을 살게 할 계획이에요.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하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면 즉각 보고해 주세요.”

“물론입니다, 신관님.”

건설 책임자와 이야기를 마친 아미스는 건설 현장을 살피기 시작했다.

사울 일행도, 가멜다 왕국 병사들도 그런 아미스의 뒤를 따랐다.

건설 현장은 생각보다 평화롭고, 활기가 넘쳤다.

중립 지대의 주민들과 신전의 구성원들이 함께 마을을 짓는 가운데, 모두들 표정이 밝았다.

심지어 난민이나 탈영병 문제와는 관련이 없을 이종족들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호기심이 든 사울은 망치질을 하던 오크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종족인 당신이 두 왕국의 인간들을 위해 집을 짓는 겁니까?”

사울의 질문에 오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왕국이고 뭐고 무슨 상관이오? 이렇게라도 아미스 신관께 진 빚을 갚을 수 있다면야.”

사울은 몇몇의 이종족에게 더 물어보았다.

대답은 모두들 비슷했다.

아미스 개인에게 신세를 진 자도 있고, 대신전에게 신세를 진 자도 있다.

그런 이종족들이 달려와 아미스와 대신전의 뜻에 따라 마을 건설에 협조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을 건설에 참여하고 있는 인간들도 여럿 있었다.

본래 중립 지대에 살던 자들은 물론, 난민이나 탈영병으로 보이는 자들도 있었다.

인간들, 특히 난민이나 탈영병으로 보이는 자들은 사울 일행을 보고 크게 경계했다.

다르센 왕국 사람들인 줄 알고 있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경계하기만 할 뿐, 그 이상의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마을 건설의 주체인 대신전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신뢰를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지는 분명했다.

“아미스 신관님!”

“모든 게 신관님 덕입니다!”

“우리들의 힘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마을 건설에 참여하는 인간도, 이종족도 아미스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냈다.

신전에 속한 자는 물론, 일반 주민들까지도 말이다.

아미스는 자신을 향한 신뢰에 겸손히 답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모든 게 순조롭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맡겨 주십시오!”

아미스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는 달리, 사울 일행을 바라보는 분위기는 썩 밝지 않았다.

“망할 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손가락질에 욕을 하는 주민도 있었다.

물론 사울 일행뿐만이 아니라 가멜다 왕국의 병사들도 똑같이 푸대접을 받았다.

아미스와 함께 왔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이렇게 현장을 돌아다니지도 못했으리라.

‘여동생의 영향력이 정말 대단하군.’

새삼 사울은 절감했다.

아미스가 마음만 먹으면 전쟁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녀가 가진 중립 지대에서의 영향력을 이용하면, 두 나라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전쟁의 저울추를 한쪽으로 기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은 어렵겠지만.’

아리엘, 아니, 아미스의 지금 행동은 더없이 진실되어 보였다.

사울과는 달리 가멜다 왕국에 품었을 만한 원한은 모두 잊은 것 같았다.

혹은 원한을 잊지는 않았어도 신앙의 힘으로 억누르고 있는 것이리라.

어느 쪽이든 지금 아미스에게 전쟁에 협조하라는 이야기 따윌 할 수는 없었다.

사울은 다시 한창 건설되는 마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보이는 건 처음부터 중립 지대에 살고 있던 주민들, 그리고 대신전에 속한 자들 뿐.

난민이나 탈영병으로 보이는 자들은 적었다.

‘아직은 많은 난민이나 탈영병이 이런 곳에서 머무르며 활동하지는 못하는가.’

대신전은 난민과 탈영병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난민과 탈영병이 그 말을 완전히 믿고 따르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고 난민과 탈영병이 중립 지대에 정착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기존에 중립 지대에 머무르고 있던 주민들과 대신전이 모두 아미스를, 또 그녀의 계획을 신뢰하고 있다.

주민들의 환대 속에 난민과 탈영병들이 존재를 드러내고 뭉친다면, 중립 지대에 정착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아리엘, 너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는 거냐?’

당장이라도 아리엘, 아니, 아미스에게 묻고 싶었다.

사울이 보기에 지금 아미스의 행동은 지극히 위험 부담이 큰 도박이었다.

돈이 아닌 이상과 신앙을 담보로 한 도박 말이다.

성공하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아미스 개인의 경력에 손상이 가거나 지위가 위태로운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아미스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무너지고 문자 그대로 진짜로 매장될 수도 있다.

이상이나 신앙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 정도는 사울도 잘 알았다.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여동생이 그러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지금은 여동생을 말릴 방법이 없다는 게 더욱 답답했다.

‘정말 어쩔 수 없군.’

지금은 여동생을 지켜 주는 오빠 노릇 같은 건 할 수 없다.

애초에 아미스 쪽에서 그런 것은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도울 수도 없는 상황에서 가만히 지켜보자니 마음이 편치 않다.

종종 찾아오는 두통이 두 배로 강해진 느낌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아이나의 질문에 사울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깨닫고 보니 아이나와 카스텔이 함께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 다 투구로 얼굴을 가렸지만, 걱정스런 눈빛을 하고 있다는 건 어렵잖게 알아보았다.

“…괜찮아요.”

“…네.”

아이나도, 카스텔도 사울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두 사람이라면 사울이 이러는 이유가 아미스에게 있다는 걸 짐작했으리라.

사울은 지금은 더 이상 아미스를 보지 않기로 했다.

임무를 수행 중인 왕자의 눈으로, 또 전쟁에 뛰어든 군인의 눈으로 냉철히 살피기로 했다.

그렇게 한참 마을을 살핀 사울은 카스텔과 아이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마을 건설은 순조로운 모양이에요. 아마 한 달 안에 백 명 이상이 살 수 있는 마을이 완성되겠지요.”

카스텔과 아이나도 동의했다.

“그렇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마을이 건설 중이라 들었어요.”

“그래요, 총 네 곳에서 마을이 건설 중이라 하고 그곳들의 규모가 이 수준이라면 아마 4백 명은 거주할 수 있을 거예요. 사실 중립 지대는 인구가 부족하지, 땅은 넘쳐나는 곳이니까요. 황무지가 아니고, 또 기존에 살던 주민들과 부딪치지 않고 새로운 거주지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거주지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건 다른 문제겠지만.”

카스텔이 조용히 물었다.

“무너뜨릴 수 있겠습니까?”

마을 건설을 방해하고, 나아가 무너뜨린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지금 건설 중인 네 곳의 마을을 모두 무너뜨릴 수 있다면 아미스의 계획도 효과적으로 방해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 계획은 아미스 혼자서 진행하는 게 아니다.

대신전은 물론, 중립 지대의 적잖은 주민들에게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진행하는 일이다.

설령 사울에게 그럴 마음이 있다 해도, 행동에 옮기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섣불리 행동하기는 어렵겠지요. 실패할 가능성도 높고, 실패하면 여파를 수습하기도 어려울 테니까.”

아이나가 다른 질문을 했다.

“가멜다 왕국에서는 어떻게 나올까요?”

사울은 가멜다 왕국 일행 쪽을 흘긋 바라보곤 말했다.

“아미스나 대신전의 계획을 방해하는 건 위험하니까 아마 가멜다 왕국 쪽에서도 비슷하게 생각할 거예요.”

“그렇군요.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예측이 어려우니 말입니다.”

“그러니 상황을 두고 보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어쩌면 가장 큰 변수는 카멜 산일 수도 있어요.”

아미스의 계획에 적잖은 이종족들도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카멜 산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카멜 산을 움직이는 대족장 세네카의 생각은 어떨까.

세네카가 무슨 생각을 할지, 또 어떻게 행동할 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과연 아미스의, 나아가 대신전의 뜻에 동조할까.

혹은 반대하거나 훼방을 놓을까.

카멜 산에서 이 계획을 반대한다면 일이 좀 더 쉬워질 수도 있다.

카멜 산이 반대하면 아미스의 계획은 어그러질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상황을 수습하기도 쉬워질 수 있다.

‘카멜 산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준다면…….’

* * *

얼마 후, 시찰이 끝났다.

시찰을 마친 아미스는 사울 일행과 가멜다 왕국 사람들을 불러 모아 물었다.

“어떠셨습니까?”

갑작스런 질문에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사울도 마찬가지였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함부로 입을 열 수는 없었다.

아미스가 투구 속 자신의 정체를 알아보았는지도 분명치 않기에 더더욱 입을 열기 어려웠다.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하자 아미스가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여러분들은 이해하시기 어려울 겁니다. 아니, 여러분들로선 제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요. 어떤 분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돕는 자들은 전쟁을 피한 비겁자들이라고.”

말과 함께 아미스는 사울에게 슬쩍 눈짓을 했다.

‘역시 그런가.’

사울은 확실히 깨달았다.

아미스가 투구를 쓴 자신의 정체를 알아보았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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