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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94화 (194/232)

194화

“…….”

사울은 일부러 카스텔의 시선을 무시했다.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사울은 계속 무시했다.

지금은 자신이든 카스텔이든 개인감정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전하.”

한참 의논을 계속하던 중, 경비병이 들어와 보고했다.

“왕녀 전하께서 서찰을 보내셨습니다.”

“누님께서? 알았다.”

사울은 루시아가 보낸 편지를 열어 보았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사울이 부탁한 대로 가멜다 왕국 귀족과 킬리안의 연결 고리는 왕국 정보부가 나서 철저히 조사할 것이다.

그동안 사울은 중립 지대에서 킬리안, 피닉스, 어둠의 세력, 가멜다 왕국까지 모두 조사하면서 연결 고리를 찾아라.

특히 편지의 한 대목이 눈에 띄었다.

‘완벽하고 빈틈없이 꾸밀 수 있다면, 증거를 만들어도 좋다.’

그런 루시아의 명령에 사울은 쓰게 웃었다.

역시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

진실보다는 승패가 더 중요하다.

뒤늦게 진실이 드러나더라도 승패가 완전히 가려진 뒤에는 의미가 없으니까.

“전하,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야.”

말과 함께 사울은 그 자리에서 마법으로 편지를 태워 버렸다.

이런 이야기는 가능한 증거도 남기지 않는 게 좋다.

“…….”

다른 사람도 아닌 누님이 보낸 편지를 그 자리에서 태워 버리는 건 사울이 자주 하는 행동이 아니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사울이 받은 편지 내용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챘다.

“왕녀 전하께서 중요한 명령을 내리셨습니까?”

“그래요, 지금은 함부로 밝히기 어려운 이야기지만요.”

루시아의 협조 덕분에 앞으로 할 일의 방향은 정해졌다.

당분간 가멜다 왕국 쪽은 루시아와 왕국 정보부에 맡겨도 될 것이다.

가능하면 적에게 불리한 진실을 찾아내고, 진실을 찾지 못하면 만들어서라도 무언가를 보여 주어야 한다.

“가멜다 왕국 쪽은 누님이 도와준다고 했어요. 그러니 모두들 하던 일을 계속해 줘요. 가멜다 왕국, 피닉스, 어둠의 세력, 킬리안… 그들에 얽힌 어떤 정보라도 좋으니 최대한 모으도록 해요.”

“네, 전하.”

“그리고 한 가지 더 고려할 일이 있어. 아바마마의 도움이 필요한 일인데…….”

* * *

본래 첩보 활동은 쉽지도, 안전하지도 않다.

하물며 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왕국 영토도 아닌 중립 지대에서의 첩보 활동은 더더욱 위험했다.

그나마 대신전 안은 안전한 편이다.

하지만 대신전을 벗어나면 누구든 위험해질 수 있었다.

설령 왕자라도 말이다.

“자객이다!”

“전하를 지켜라!”

중립 지대의 다르센 왕국 외교 공관으로 향하던 사울을 누군가 공격해 왔다.

대신전과 다른 방향으로 첩보 활동에 매진하던 외교관들과 접촉하려던 길이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된 일이었다.

가멜다 왕국, 피닉스, 어둠의 세력, 킬리안 등을 모두 건드리고 있는 사울이 아닌가.

그런 가운데 안전한 대신전에서 나온 사울이 먹잇감이 되는 건 당연했다.

물론 사울은 만만한 먹잇감이 아니었다.

“생포하지 않아도 좋다! 자객들의 제압을 우선하라!”

“네, 전하!”

정보도 중요하지만, 안전이 더 중요하다.

사울의 명령에 휘하 병력들은 자객 생포가 아닌 제압에 전념했다.

“놈들을 전하께 접근시키지 마라!”

사울 휘하의 병력도 정예였지만, 자객들도 만만치 않았다.

이에 사울도 지원에 나섰다.

물론 적극 전장에 뛰어들지는 않았다.

자객들이 노리는 게 자신인데, 함부로 앞서나가는 건 위험하다는 걸 모를 사울이 아니었다.

사울은 보호를 받으면서 마법으로 자객들을 공격했다.

자객들도 사울이 그렇게 행동할 줄 예상한 듯, 사울을 보호하는 병력을 뚫으려 했다.

뚫느냐, 막느냐의 전투.

이긴 건 사울 쪽이었다.

자객들은 끝까지 격렬히 저항했지만 결국 대부분 사망했다.

“생포한 건 두 명입니다.”

“아군 사상자를 수습하고, 자객들의 시체는 수색한 뒤 불태워라.”

“네, 전하.”

포로로 잡은 자객들은 외교 공관에 도착하여 심문하기로 했다.

일단 자객들의 시체를 조사해 보았다.

죽은 자객의 숫자는 약 스무 명.

머릿수도 상당했고, 실력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복면을 벗겨 보니 종족도 다양했다.

인간, 엘프, 오크 등 인간에 이종족이 고루 섞여 있었다.

“자객들의 소지품 중 특별한 게 있었나?”

“무기와 독약, 약간의 식량 등이 나왔습니다.”

“놈들의 소속을 확인할 수 있을 만한 물건은?”

“없었습니다.”

사울이 직접 살펴봐도 자객들의 물건만으로는 소속을 확인할 수 없었다.

자신들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을 만한 물건은 사전에 철저히 제거하고 움직인 게 분명했다.

혹시나 싶어 생포된 자객들까지 철저히 조사해 보았지만, 역시 소지품으로는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군. 일단 공관으로 가자.”

“네, 전하.”

다행히 습격은 한 번으로 끝났다.

외교관들이 황망한 표정으로 사울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무탈하시다니 다행입니다.”

“고마워요.”

사울은 공관 주변을 살펴보았다.

외교 공관은 여전히 공관이라 부르기엔 작고 초라했지만, 경계는 튼튼했다.

전보다 더 많은 병력이, 개미 새끼 하나 들여보내지 않을 기세로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다.

“경계를 잘하고 있군요.”

“네, 전하께서 떠나신지 얼마 후 폐하께서 병력을 더 보내 주셨습니다.”

“이 정도면 대규모의 병력이 쳐들어오지 않는 한, 충분히 막아 낼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전하께서 머무시는 동안 문제가 없도록 경계를 더욱 철저히 하겠습니다.”

사울은 고개를 끄덕이며 카스텔과 아르멜에게 명령했다.

“생포한 자객들의 심문은 맡길게요.”

“알겠습니다.”

자객 심문 쪽을 맡긴 사울은 공관에 들어가기 무섭게 외교관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말이 외교관이지, 실제로는 중립 지대에서 활동하는 첩보원에 가까운 사람들.

중립 지대에 대한 정보는 아르멜이나 사울보다도 정통한 자들이다.

사울은 자객들의 물건을 외교관들에게 보여 주었다.

“날 공격한 자들에게서 나온 물건들이에요. 혹시 눈에 익은 게 있나요?”

외교관들은 자객들의 물건을 꼼꼼히 살폈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다.

“죄송합니다. 이것만으로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무기도, 다른 장비도 흔한 물건들입니다.”

“중립 지대에서 생산된 것 같은 물건도 있고, 아닌 물건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흔한 물건이라…….”

누가 보냈든, 상당한 고단수의 소행이 분명하다.

웬만큼 꼼꼼히 챙겨도 수십의 병력을 운영하다 보면 무기나 장비에서 어떤 고유의 특징 같은 게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객들에게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역시 일이 실패한 경우까지 철저히 대비한 게 분명했다.

“두 명의 자객을 사로잡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요.”

“그들에게서 정보를 얻어 내시지요. 그들을 손봐 줄 장소도, 인력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사울도 외교 공관으로 쓰는 건물 중 한 곳의 지하실에 고문실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장식용으로 마련한 게 아니라 종종 쓰이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사울에게는 무작정 고문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방법이 있었다.

“괜찮아요. 아르멜이 심문하고 선생님이 손을 보면 어지간하면 입을 열 테니까.”

“그, 그렇군요.”

“문제는 내게 자객을 보낸 게 누구든, 대단히 철저한 자라는 것이에요. 이렇게 철저한 자라면 자객이 생포당할 가능성도 생각을 했겠지요. 어떻게든 정보를 얻어 내야 할 텐데.”

그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전하, 아르멜입니다.”

“들어와.”

이르멜은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들어와 보고했다.

“죄송합니다. 심문을 하기도 전에 자객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뭐라고? 어쩌다가?”

“일종의 독을 먹은 것 같습니다.”

“독이라고?”

붙잡힌 자객은 좋은 꼴을 볼 수 없다.

때문에 자객의 입을 막기 위해서는 물론, 자객 스스로 덜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기 위해 독을 쓰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사울도, 아르멜과 카스텔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때문에 카스텔은 항상 이런 일을 겪으면 포로가 독주머니 따윌 소지하고 있지 않는지 미리 조사를 해 왔다.

그런데 독을 먹었다니.

“선생님이나 네가 실수를 했나?”

“그게… 아무래도 전하를 습격하기 전부터 미리 독을 먹은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독을 먹고 전하를 습격한 뒤, 일이 실패하면 그대로 목숨을 잃도록 조치한 모양입니다. 일이 성공하면 그때 해독제라도 먹을 생각이 아니었을까요.”

산전수전 다 겪은 사울도 혀를 내둘렀다.

몸 어딘가에 독주머니를 숨기고 있다가 자결하는 건 여러 번 보았다.

그런데 미리 독을 먹고, 임무에 실패하면 그대로 숨이 끊어지도록 하는 건 처음 보았다.

“그럼 그 독이 뭔지도 알 수 없겠군.”

“네, 몸을 철저히 수색해 보았지만 독주머니 같은 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미 몸 속에 들어간 독을 조사할 방법도 없으니…….”

“교활한 놈들.”

사울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일이니 부하를 탓할 수도 없다.

사울은 외교관들에게 물었다.

“시체들을 한번 보고 오세요.”

“네, 전하.”

중립 지대 사정에 밝은 외교관들이니 시체를 보면 무언가 알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기대마저도 여지없이 빗나갔다.

“죄송합니다, 전하.”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나요?”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하는 수 없군요.”

사울은 자객 일은 더 거론치 않기로 했다.

현재 중립 지대는 위험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방심할 수 없다는 교훈을 기억하며 화제를 돌렸다.

“지금 나는 중립 지대에 있는 모든 적들, 나아가 적이 될지 모를 잠재 세력까지 조사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요.”

“네, 왕녀 전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꼼꼼한 루시아가 미리 외교 공관 쪽에도 연락을 넣은 모양이었다.

“그럼 설명은 필요 없겠군요. 그대들도 알다시피 나는 대신전에 머무르며 정보를 모으고 있어요. 하지만 대신전 안에서 머무르다 보니 한계도 뚜렷해요. 일단 대신전 밖에서 활동하는 그대들이 보는 지금 대신전의 상황이 궁금해요.”

외교관 중 한 명이 대답했다.

“네, 지금 저희가 바라보는 대신전의 상황은…….”

외교관이 한 이야기는 사울도 모두 아는 것들이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사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들도 아미스 신관을 주목하고 있군요.”

“네, 그 신관이 전면에 나서며 모든 게 꼬였으니 말입니다.”

“그럼 그대들은 아미스 신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외교관들은 저마다 혀를 내두르거나 고개를 내저었다.

“지독한 자입니다.”

“지독하다?”

“그 신관의 망상을 깨고자 속속들이 조사하고 캐 보았지만, 약점이 될 만한 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사실 사울은 아미스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가멜다 왕국 출신이라는 것.

사울이 그 약점을 이용할 마음이 없을 뿐, 마음만 먹으면 그 약점을 활용하여 아미스의 처지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면 그녀가 하는 일 또한 효과적으로 방해할 수 있을 테고 말이다.

사울 스스로 그럴 마음이 추호도 없었기에 내버려 두고 있을 뿐이다.

“약점을 찾지 못했다면 설득을 해야겠지만 역시 쉽지 않지요.”

“네, 가멜다 왕국도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그래요. 지금 대신전에서 머무르고 있는 애슬론 백작은 가멜다 왕국에서 꽤 알아주는 외교통이라 들었어요. 하지만 그 역시 아미스에게는 손도 못 쓰는 것 같더군요.”

“제 생각에는 아미스를 노리는 게 아니라, 다른 자들을 노리는 게 어떨까 합니다.”

“다른 자들의 약점을 캐내 우리 편으로 만들고, 그를 바탕으로 대신전이 우리 편을 들게 만든다?”

“네, 전하.”

사울도 비슷한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생각에서 그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어려울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아미스 신관, 그리고 에스타 대신관. 둘 다 만만한 자들이 아니에요. 지금 대신전의 기조를 바꾸려면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뜻을 바꿔야 가능할 거예요. 하지만 둘 다 이용할 만한 약점 같은 것도 없고, 자신들의 뜻을 쉽사리 바꿀 자들도 아니에요. 그대들의 계획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실행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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