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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213화 (213/232)

213화

우선 사울은 다르센 왕국 쪽의 상황을 점검했다.

가멜다 왕국과 전쟁이 다시 시작된 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아직 왕국의 통제력이 무너지거나 줄어드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영토 어딘가에는 불순한 자들이 스며들 빈틈이 있을 것이다.

반란을 일으킬 정도라면 못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홉킨스 가문의 영지 외에도 어딘가에서 적들이 둥지를 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우선 사울은 왕국 전체의 상황을 살폈다.

현재 다르센 왕국은 총력전 체제에 돌입하였고, 홉킨스 가문의 반란으로 통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유력한 왕위 계승권자인 1왕자 실베스터, 2왕자 카리스도 나라 안을 살피는 임무에 투입될 정도였다.

‘실베스터 형님과 카리스 형님과도 교류를 하는 게 좋겠군.’

실베스터나 카리스나 형이라지만, 사실상 남과 다름없는 사이다.

하지만 그래도 형제고 서로 적대하는 관계는 아니다.

필요하다면 협조를 받을 만할 것이다.

결정한 사울은 실베스터와 카리스에게 곧바로 협조를 요청했다.

그리곤 왕국 전체의 상황을 꼼꼼히 살폈지만, 당장 수상한 건 발견할 수 없었다.

왕국 안에서 찾기 어렵다면 역시 다른 지역일까.

사울은 중립 지대와 가멜다 왕국 쪽의 정보로 눈길을 돌렸다.

현재 중립 지대도 이래저래 복잡한 상황이었다.

카멜 산은 대외적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고, 대신전은 계속 밀려드는 난민들을 수용하는 데 전념했다.

그 와중에 사울이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아미스’의 이름도 자주 오르내렸다.

현재 아미스는 카멜 산의 협조하에, 중립 지대 곳곳에 난민들을 수용하는 시설을 짓고 확장하며 관리하는 일 등을 총괄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미스도 시찰 대상이었다.

어쩌면 카멜 산의 첩자일 수도 있다는 의심까지 받았다.

사울이 보기엔 터무니없는 소리였지만.

‘그 아이는 아닐 거야. 몇 번 만났지만, 다른 의도는 조금도 읽을 수 없었어. 하지만…….’

지금 아미스는 불안정한 중립 지대에서 큰 규모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들이 파고들기에는 딱 좋은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난민들 중 피닉스에 동조하는 자들마저 있다는 정보도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다시 한번 중립 지대로 달려가 아미스를 만나 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자신이 직접 움직이려면 그만큼 뚜렷한 증거가 있어야 했다.

사울은 가멜다 왕국 쪽을 검토했다.

가멜다 왕국의 상황도 녹록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러 가지 정보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사울의 눈에 가장 먼저 띄는 정보가 있었다.

‘정체불명의 대규모 폭동’

전시 체제에서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울이 보기엔 이상했다.

다르센 왕국처럼 가멜다 왕국 역시 국가 통제력이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니다.

전쟁이 발발한 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니다.

전쟁이 몇 년 동안 이어져서 사람들이 병들고 굶어 죽는다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은데 주민들이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다는 건 이상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한 다르센 왕국에서 가멜다 왕국 주민들을 선동하는 계략을 쓴 적도 없는데.

‘심상치 않군. 이 또한 카멜 산의 술책이라면…….’

이런저런 정보를 검토하고 분석하는 사이 며칠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사울이 찾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형님. 잠시 다녀와야겠습니다.”

사울이 가져온 정보를 본 조나단이 눈살을 찌푸렸다.

“폭동? 이 시국에?”

“네. 그것도 대규모의 폭동이라고 합니다.”

제르넬 요새에서 멀지 않은 왕국령에서 대규모의 폭동이 일어났다는 정보였다.

“정신 나간 놈들이군. 곳곳에서 가멜다 왕국 놈들과 부딪치고 카멜 산에서도 뭔 짓을 꾸미는지 모를 판에 폭동이라니.”

“형님 말씀대로입니다. 제정신이라면 폭동을 일으키기 어렵겠지요. 그것도 몇백 명이나 참여하는 대규모의 폭동은 더더욱.”

“이 또한 카멜 산의 소행이라 생각하는거냐?”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할 가치도 충분할 것 같고요.”

“알았다. 병력은 500명 정도 붙여 주면 되겠나?”

500명이면 제르넬 요새를 지켜야 할 조나단 입장에서는 꽤 많이 도와주는 셈이다.

이 폭동이 ‘광전사’의 짓이라면 가능한 많은 병력을 데려가야겠지만, 무제한적으로 이쪽에만 병력을 투입할 수는 없다.

“네. 감사합니다, 형님.”

“이쪽도 병사가 넉넉한 게 아니라 말이다. 싸우기 힘들면 그냥 후퇴를 하는 게 좋겠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홉킨스 가문의 아이는 함께 가는 거냐?”

조나단의 질문에 사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 다행이구나.”

조나단의 말에 사울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아이나는 골칫거리이고, 사울이 데려가 주니 다행이라는 뜻 아니겠는가.

조나단의 처지를 생각하면 섭섭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게 서글프기까지 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하거라.”

* * *

“전하! 적의 공격입니다!”

“모두들 응대하라!”

폭동이 일어난 지역 근처에서 차근차근 조사를 하겠다는 사울의 계획은 빗나갔다.

이미 현장은 난장판이었다.

인근 지역에서 주둔하고 있던 병력이 먼저 도착했다 적의 공격에 휘말렸고, 사울은 그런 아군을 도와야 했다.

“아군과 힘을 합쳐 적들을 상대하라!”

적의 머릿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사울이 데려온 병력과 기존 주둔 병력이 합쳐 천 명 정도였는데, 적들은 그 절반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적들의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몽둥이나 돌, 심지어 맨손으로 미친 듯이 달려드는 것을 본 사울은 적들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역시 광전사였나.’

광전사의 숫자가 아군의 절반 가까이 된다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다.

실력자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군 병력의 전멸까지 우려되었다.

“생포가 어려우면 모두 베어라!”

명령을 내린 사울은 직접 전투에 뛰어들었다.

지난번에도 그러했듯, 이번에도 광전사들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맨손으로 갑옷이나 투구를 우그러뜨리고, 속의 살과 뼈를 부수는 괴력에 빠른 몸놀림까지 겸비했다.

광전사들의 외모나 옷차림은 평범했다.

아무래도 대부분, 어쩌면 모두 왕국 주민들인 것 같았다.

왕국군이 왕국 주민을 베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지 않으면 아군이 전멸할 상황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사울도 단호하게 적들을 공격했다.

그의 부하들도 적극 전투에 참가했다.

특히 아이나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아이나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몸을 아끼지도 않으며 광전사들을 베어 나갔다.

표정 없는 얼굴로 적들을 베어 넘기는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사울은 그 광경을 마음에 걸려 하면서도, 손을 쉬지 않았다.

눈앞의 광전사들을 공격하거나, 혹은 아군을 지원하는 데 전념했다.

막강한 실력을 가진 사울 일행이 적극적으로 싸운 덕분에 전투는 아군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전투의 승리를 기뻐하는 사람은 없었다.

“빌어먹을. 이게 무슨 일이야.”

“그냥 마을 사람들 같은데?”

“이렇게 미쳐 날뛰다니, 이상한 약이라도 먹었나?”

사울의 생각도 수군거리는 병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분명 광전사는 정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약에 취하거나 마법에 세뇌된 자들이 미쳐 날뛰는 경우가 있는데, 광전사들의 행태가 딱 그러했다.

즉,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고, 이처럼 날뛰는 이유 또한 분명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는 반란이 일어났고, 이젠 광전사가 난동을 부리고 있어. 이대로라면 전쟁을 지속하기 어려울 거야. 가멜다 왕국의 소행일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마 가멜다 왕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야.’

분명 가멜다 왕국에서도 정체불명의 대규모 폭동이 벌어졌다는 정보가 있었다.

자세한 실체는 알 수 없지만, 폭동 자체는 실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았다.

두 나라 모두에 이런 일이 벌어졌고, 나아가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면…….

‘전쟁이 문제가 아니라 나라가 유지되지 못할지도 몰라.’

나라가 유지되지 못한다.

나라가 무너진다.

율렌 섬에 존재하는 두 왕국 모두가.

그것이 카멜 산의 목적이라면…….

지나치게 앞서나간 이야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울은 가능성이 낮지 않다고 보았다.

아니, 지금으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인 것 같았다.

사울은 몇 번 만나 본 대족장 세네카의 모습을 떠올렸다.

한쪽 팔이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긴 했지만, 그래도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그렇게 아름다운 존재를 만나 본 적은 없다.

또 카멜 산과 그곳에 머무는 동족에 대한 애정만은 진심으로 느껴졌다.

그 아름답고 동족을 진심으로 위하는 듯 보였던 자가 사실은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이었던 것일까.

아직 모든 게 확실해진 건 아니다.

하지만 사울은 그동안 보고 듣고 알아낸 것을 종합해 볼 때, 이 가설이 그 어느 것보다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카멜 산은 율렌 섬의 두 나라 모두를 멸망시킬 계획이며, 그 우두머리인 세네카가 직접 주도하고 있다고.

사울은 전투 후 쉬는 틈에 자신의 의견을 일행들에게 밝혔다.

모두들 놀랐지만, 그동안 사울과 같은 것은 보고 들은 탓인지 빨리 납득했다.

“결국 이 모든 일은 카멜 산의 소행이고, 카멜 산의 목적은 두 왕국의 멸망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정신 나간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그렇게 보는 게 가장 합리적이야.”

아르멜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지금은 다른 쪽으로 생각하기가 어렵군요.”

“문제는 왜 카멜 산이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것이야.”

사울의 의문에 카스텔이 대답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할지 모릅니다.”

“짐작 가는 부분이 있나요?”

“이종족은 오랫동안 인간의 노예로 살아왔습니다. 불과 200년 전까지 말입니다.”

“200년 전의 원한을 이제 와서 풀려 한다고요?”

“인간보다 수명이 긴 이종족이 많습니다. 우리에게 200년은 일생보다도 긴 시간이지만, 저들에게는 삶의 일부에 불과한 시간일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전생의 원한을 현생에서도 잊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 자들이, 200년 이상 묵은 원한을 잊지 못하는 건 놀랄 일이 아닌 셈이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있었다.

“세네카는 복수 같은 것에 관심이 없어 보였는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세네카는 다른 복수에 미친 자들의 꼭두각시인 것일까요?”

“그자가 꼭두각시 노릇을 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만.”

사울 생각도 같았다.

세네카를 유순한 자라 부를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만만한 자는 결코 아니었다.

율렌 섬의 누가, 아니, 이 세상의 누가 그를 꼭두각시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국왕이라도 불가능할 것이다.

사울은 일행 중 누구보다 카멜 산과 대족장을 많이 만나 보았을 사오니엘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 생각은 어떤가?”

“카스텔 님의 말이 맞소. 대족장님은 결코 꼭두각시 노릇 같은 것을 하실 분이 아니오.”

“대족장님이라.”

사오니엘은 세네카에 대한 충성은 버렸을지언정, 존경은 버리지 않았다.

그를 부를 땐 꼬박꼬박 ‘대족장님’이라고 경어를 붙였다.

대부분의 카멜 산 주민이 세네카에게는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네카는 아마도 충성심을 이용해 율렌 섬 전체를 뒤집을지 모를 도박을 하고 있다.

남은 수수께끼는 많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를 용납하기는 어려웠다.

“…….”

지금까지 아이나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요?”

사울의 질문에 아이나는 천천히, 그리고 단호히 대답했다.

“정말 대족장이 이 모든 일을 꾸몄다면, 그는 죽어야 할 겁니다.”

“…그렇겠지요.”

틀린 말은 아니다.

아이나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 게, 그것도 복수를 이유로 저런 말이 나오는 건 다소 마음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사울은 아이나를 말릴 수 없었다.

자신도 복수를 위해 살아왔고, 또 여기까지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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