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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221화 (221/232)

221화

“제가 폐하라면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할 겁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첫 번째는 다르센 왕국에 항복하는 것.”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크리스티안 주변의 기사들이 눈을 부라렸다.

크리스티안이 재빨리 손을 들어 제지하지 않았다면 아마 험한 소리가 나왔을 것이다.

자신의 기사들을 제지한 크리스티안이 말했다.

“그 방법은 따를 수 없겠군요. 두 번째 방법은 무엇인가요?”

“한시라도 빨리 대신전으로 가 망명 정부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망명 정부라…….”

“가멜다 왕국은 이미 버서커의 공격으로 절반 이상이 황폐화되거나 통제가 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크리스티안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에요. 안소니 백작, 그 반역자가 너무나도 끔찍한 일을 저질렀어요.”

사울도 이미 들은 바가 있었다.

아무리 버서커의 존재가 무섭다지만, 가멜다 왕국이 이렇게 무력하게 무너진 건 안소니 백작과 그 파벌이 카멜 산과 내통한 탓이라고.

구체적인 정황은 확실치 않지만, 안소니 백작과 그 세력이 카멜 산과 협조하여 가멜다 왕국을 무너뜨린 것만은 다르센 왕국 정보부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안소니 백작의 목적이나 카멜 산과의 관계에 대해 정확히 아십니까?”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지만, 정확한 건 알 수 없어요.”

“분명한 건 가멜다 왕국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고, 그나마 폐하는 무사히 중립 지대에 왔다는 것이지요. 폐하께서 항복할 마음이 없다면, 안전한 곳에서 구심점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가멜다 왕국을 위한 길이며, 또 우리 다르센 왕국을 돕는 길이기도 하니까요. 그 ‘안전한 곳’으로 대신전보다 적합한 곳은 없을 테고요.”

“으음…….”

사울은 크리스티안 입장에서, 그리고 다르센 왕국에 불이익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의견을 냈다.

그만큼 합리적인 의견이었지만 곧바로 결정을 내리기엔 어려웠다.

“생각을 해 봐야겠어요.”

“네. 다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카멜 산과의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고, 폐하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그만큼 이 전쟁은 더 어려워질 테니까요.”

“조언 고마워요. 그럼 물러가세요.”

사울은 천막에서 물러났다.

천막 밖의 분위기는 이래저래 묘했다.

다르센 왕국군과 가멜다 왕국군이 한 진영에 머무르고, 가멜다 왕까지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폐하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요?”

어느새 다가온 마리안이 사울에게 물었다.

사울은 대답하는 대신 다른 질문을 했다.

“베일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어딜 갔나?”

“동생이라면 주변을 순찰하러 나갔어요. 폐하께 쥐새끼가 다가오게 할 순 없으니.”

“그대들의 왕에 대한 충성은 진심인 모양이군.”

“당연하지요. 폐하께서 우릴 발탁했고, 작위를 주셨어요. 당신이 나와 내 동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에요.”

“다행이군.”

확실히 그런 모양이다.

마리안은 물론, 언제 터질지 모를 존재인 베일마저도 크리스티안 앞에서는 얌전했다.

“그대들의 왕이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조언을 해 주었다.”

“어떤 조언을요?”

“대신전으로 가서 망명 정부를 만드는 게 최선이라고 했지.”

사울의 말에 마리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망명 정부를 만들려면 다르센 왕국의 협조가 필요하겠지요. 결국 폐하께서 당신 아버지에게 무릎 꿇는 것을 원하는군요.”

“그거야 가멜다 왕이 선택할 일이지. 난 조언을 했을 뿐이고, 강요할 생각은 없어. 지금은 카멜 산과 세네카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니까.”

“…….”

마리안은 더 말하지 않았다.

패기 넘치는 가르시아 남매라도, 지금은 함부로 행동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울 역시 가르시아 남매나 크리스티안을 자극할 생각은 없었다.

카멜 산 문제를 해결한 뒤에는 다시 적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라가 망하고 자신이 죽을지 모를 판에 서로 싸울 이유는 없다.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 중 한 명이 ‘안소니 백작’ 이라면 더더욱.

사울은 가멜다 왕이 머무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따로 처소를 마련했다.

적국인 두 나라의 기묘한 동거가 이어졌지만, 큰 분쟁은 없었다.

다르센 왕국 쪽은 사울이, 가멜다 왕국 쪽은 크리스티안이 철저히 단속한 덕분이었다.

그런 가운데 마침내 크리스티안은 자신의 행보를 결정했다.

“폐하께서 대신전으로 가겠다고 하십니다.”

사울은 자신을 찾아온 가멜다 왕국 사신에게 물었다.

“그렇군. 내 도움은?”

“사양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가르시아 남매가 크리스티안과 함께 움직일 테고, 도중 자객이나 습격을 받아도 왕이 목숨을 잃는 사태는 없을 것이다.

“알았다. 나도 대신전으로 가겠다고 전해라.”

“전하께서도 함께 가시겠다는 말입니까?”

“그래. 그저 함께 움직이고 싶을 뿐, 다른 뜻은 없다. 함께 움직이는 게 서로에게 좀 더 안전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대신전과 카멜 산은 중립 지대의 두 구심점이다.

중립 지대에서 카멜 산을 상대하려면 결국 대신전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에 사울도 크리스티안과 함께 대신전으로 움직였다.

“가멜다 왕국군과 접촉하지 마라!”

“다르센 왕국군과의 접촉을 금한다!”

두 적국의 군대가 함께 움직이면서 병사를 통솔하는 장교와 기사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두 나라 사이에 충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게 사울과 크리스티안의 명령이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삼백 년이나 존망을 걸고 싸워온 적국 사이이니 말이다.

그 때문에 양국의 장교와 기사들은 병사들이 서로 섞이지 않도록 철저히 분리시켰고, 그 덕분에 무사히 대신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대신전의 분위기는 유례없이 심각했다.

사울과 크리스티안이라는 거물들이 찾아온 것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버서커가 중립 지대에도 나타났다고요?”

“네, 전하.”

아미스의 보고에 사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올 것이 온 모양이군요.”

“말씀대로입니다.”

“카멜 산 쪽에서 따로 접촉을 취해 온 건 없나요?”

“며칠 전 대대적으로 격문이 뿌려졌습니다. 자신들을 따르지 않으면 대신전은 몰살당할 것이며, 그에 속한 마을 또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지금껏 카멜 산은 중립 지대에서는 비교적 온건하게 행동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본색을 드러낸 모양이었다.

“대신전의 방비는 어떤가요?”

“대신전도, 또 대신전에 속한 지역을 방비하고 또 관리하기에는 전력이 크게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대신전 방어는 대신전이 맡고, 그 외의 방비 및 관리는 우리와 가멜다 왕국 쪽이 도움을 주는 것으로 하는 게 어떨까요?”

“도와주시겠습니까?”

“어차피 중립 지대에서도 큰 전투가 벌어질 테니까요.”

사울의 말뜻을 알아들은 아미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차피 중립 지대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건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적에게 넘어가지 않은 ‘안전지대’를 많이 확보할 필요가 있다.

대신전 및 그에 속한 지역이 그 ‘안전지대’ 역할을 수행하게 될 테고.

“…….”

사울은 어두운 표정의 아미스에게, 나아가 여동생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희생을 원치 않는 신관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전쟁 중이에요. 이 전쟁에서 우리가 패한다면 율렌 섬 전체에 지옥이 펼쳐질 것임을 잊지 마세요.”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아미스의 표정에서 망설임이 사라졌다.

사울은 그런 아미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조금만 참아다오. 이번 일만 끝나면 더 이상 네가 상처받지 않도록 노력할 테니까.’

사울은 자리에서 일어나 임시로 ‘망명 정부’를 수립한 크리스티안을 만나러 갔다.

크리스티안 역시 사울의 뜻에 동의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겠군요.”

“그렇습니다. 폐하. 중립 지대 대부분이 카멜 산의 앞마당이나 다름없습니다. 카멜 산의 앞마당이 아닌, 대신전의 앞마당이 넓을수록 전황이 유리해지겠지요.”

“나는 마리안 가르시아 자작을 지금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왕국군 모두를 총괄하는 사령관으로 임명했어요. 그러니 당신도 자작과 의논하세요.”

“알겠습니다.”

마리안이 사령관이 되었다는 건 사실상 마리안, 그리고 베일이 가멜다 왕 다음가는 위치에 올랐다는 뜻이었다.

나라를 다시 부흥시키지 못하면 큰 의미는 없겠지만 말이다.

사울은 마리안을 만나러 갔다.

마리안은 동생인 베일, 그리고 세드 등을 거느리고 군사 회의에 한창이었다.

“남작.”

“전하.”

여전히 사울과 가르시아 남매가 마주칠 때마다 긴장이 흘렀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어느 쪽이든 ‘적대감’을 내비치진 않았다.

말 그대로 적과의 동침이 필요한 상황이니까.

사울은 조금 전 크리스티안과 이야기한 내용을 들려주었다.

마리안도 동의했다.

“우리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다행이군. 우리 쪽에서는 내일 중으로 출병할 생각이다.”

“우리는 시간이 더 필요해요. 폐하가 이곳에 계신다는 걸 알고 우리 쪽 군대가 중립 지대로 오고 있어요.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필요해요.”

“알았다. 우리 왕국에서도 준비가 되는 대로 지원군을 계속 보낼 것이다. 그렇게 이 지역을 지키고, 관리하고, 또 전력이 모이는 대로 전투를 시작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전하.”

합의를 마친 사울은 곧바로 움직였다.

중립 지대에서 주둔하고 있는 왕국군을 나눠 대신전에 속한 지역들의 방비 및 관리에 나섰다.

사울 본인은 정예병을 이끌고 버서커가 나타났다는 지역으로 향했다.

버서커가 나타난 곳은 대신전에 속한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지역이었고, 사울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모든 전투가 끝난 뒤였다.

공격을 받은 곳은 대신전의 병력이 주둔한 지역이었다.

약 천 명이 주둔하고 있던 병력에 버서커가 덮쳐 절반 이상이 죽거나 다쳤다.

이는 대신전이 운용할 수 있는 병력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였다.

피해 상황을 점검한 사울은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이 지역의 모든 관리는 다르센 왕국군이 맡겠다.”

주둔지를 책임지던 성기사는 사울의 말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왕국군이 관리를 맡는다는 건 또 있을지 모를 버서커의 공격 등을 대신 막아 주겠다는 뜻이다.

동시에 해당 지역을 왕국군이 ‘알아서’ 쓰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게 사울은 중립 지대 곳곳에 왕국군의 거점을 세워 나갔다.

그러는 사이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전하, 본국에서 지원군이 도착했답니다.”

“가멜다 왕국 군대도 속속 집결하고 있답니다.”

반면에 반갑지 못한 소식도 전달되었다.

“전하. 코룬 마을이 카멜 산의 편으로 돌아섰답니다.”

“이즈 마을은 공격을 받고 큰 피해를 입었답니다.”

카멜 산은 한편으로는 채찍을, 또 한편으로는 당근을 통해 대신전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마을을 하나둘 장악해 나갔다.

이에 사울은 사정이 허락되는 대로 아직 무사한 지역을 방비하고 또 관리하며 추가 피해를 막았다.

중립 지대 전역에 긴장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마침내 카멜 산에서 전면전에 나섰다.

“전하. 카멜 산에서 집결한 대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답니다!”

“병력 숫자는?”

“약 1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1만 명.

영토는 넓지만, 체계가 느슨한 중립 지대에서는 놀라운 대군이다.

하지만 현재 중립 지대에 파견된 다르센 왕국군만 해도 다 합쳐 1만 명에 가까웠다.

또 가멜다 왕국군까지 합치면 거의 2만 명은 되었다.

대신전의 병력이야 대신전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쳐 다른 곳까지 투입하긴 어렵다.

그렇다 해도 1만의 병력만으로 양국 모두를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당장 드러난 전력만 따지면 유리한 건 이쪽이다.

문제는 버서커였다.

“그 1만의 병력 중 버서커는 얼마나 되나?”

“아직 버서커의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그토록 큰 피해를 입혔음에도, 버서커는 여전히 수수께끼투성이다.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얼마나 만들어질지는 예측이 어려웠다.

확실한 건 이미 중립 지대에서도 버서커가 등장한 만큼, 곧 중립 지대에서 펼쳐질 전투에서도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었다.

“일단 대신전으로 돌아간다.”

“네,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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