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222화 (222/232)

222화

카멜 산을 상대하기 위한 연합군이 결성되었다.

사울 등이 이끄는 다르센 왕국군, 대신전이 주도하는 교단군.

그리고 크리스티안이 이끄는 가멜다 왕국군이 함께였다.

다르센 왕국군과 교단군이 함께 움직인 적은 있지만, 가멜다 왕국군까지 함께 연합군을 형성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말 그대로 두 나라가 건국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300년 전쟁 시기에는 말할 것도 없고, 그전에도 두 나라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뭉쳐 ‘연합군’ 노릇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 것 치고 연합군 결성은 순조로웠다.

물론 아무 잡음 없이 순탄하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결성 과정에서 적지 않은 다툼과 잡음, 그리고 협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합군 결성은 예상보다 빠르게 이루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당사자들 모두 서로를 공격하거나, 하다못해 어설프게 현 상황을 이용할 만큼 한가롭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카멜 산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무고한 지역 주민을 버서커로 바꾸어 습격해 오는 잔혹한 공격이 이어졌고, 수도가 함락된 가멜다 왕국은 물론 다르센 왕국도 상황이 좋지 못했다.

중립 지대도 마찬가지였다.

중립 지대에 주둔하고 있던 두 왕국의 군대와 교단군이 버서커의 습격을 받는 일이 잦았다.

심지어 대신전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일반 마을마저 습격을 받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성과는 있었다.

“…이것이 최종 보고입니다.”

아르멜의 보고서를 받아 든 사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버서커가 이렇게 만들어진다는 것이지.”

“네, 전하. 각지에서 올라온 정보들을 취합하여 내려진 결론입니다. 틀림없을 겁니다.”

버서커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했다.

목표가 된 사람들을 공격해 제압하고, 이후 정체불명의 마법으로 자아를 잃게 하여 싸움에 미친 괴물로 만드는 것이었다.

카멜 산에서 강력한 군대가 아닌, 일반 주민들을 노리는 이유도 분명했다.

강력한 군대를 공격해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건 어렵기에 저항하지 못하는 약한 주민들을 노리는 게 분명했다.

“정말 추잡한 짓거리로군. 저항하지 못하는 자들을 마법으로 미친 야수로 만든다니.”

“말씀대로입니다.”

“다른 쪽에서도 이 정보를 알고 있겠지?”

“정보 수집을 함께 했고, 정보 공유도 했으니 가멜다 왕국도 대신전도 알아챘을 겁니다.”

“그렇겠지. 문제는 대책을 세우기 어렵다는 것이고.”

율렌 섬의 모든 마을을 철저히 감시하면 버서커 생산을 막거나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도 쉽지 않은 일이며, 전시인 지금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지금 택할 수 있는 최선책은 이 모든 문제를 일으킨 카멜 산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카멜 산을 무너뜨리면 최소한 버서커 사태 등은 막을 수 있을 테니까.

“아바마마와 누님의 지원은 어떻게 되었지?”

“지금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모두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가멜다 왕국과 대신전에서도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지?”

“네, 전하. 하지만 주력군은 다르센 군이 맡아야 할 겁니다.”

수도가 함락된 가멜다 왕국도, 본래 세력이 크지 않았던 대신전도 정상적으로 전력을 동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카멜 산 토벌을 주도하는 건 다르센 왕국의 감당해야 했다.

물론 그만큼의 대가 또한 받아 낼 생각이었다.

“아바마마께서 가멜다 왕에게 제안을 한 것은 어떻게 되었나?”

“가멜다 왕도 고민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사울의 아버지인 마렌 국왕은 가멜다 왕국도 함께 제압할 생각이었다.

가멜다 왕국을 완전히 집어삼키는 건 어렵지만, 사실상 속국으로 만들 생각인 듯했다.

“가멜다 왕이 폐하의 제안을 받아들일까요?”

“글쎄. 아바마마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건, 삼백 년 전쟁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니까. 그것도 꽤나 굴욕적인 형태로.”

다르센 왕국과 가멜다 왕국은 입장도, 국력도 대등했다.

그렇기에 삼백 년 동안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가멜다 왕 크리스티안이 마렌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건, 곧 항복 선언이다.

듣기로 마렌은 크리스티안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우선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크리스티안의 지위는 보전해 줄 것을 약조했다.

또한 이후 가멜다 왕국의 수도 탈환 및 재건에도 협조할 것도 약조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우선 다르센 왕국이 삼백 년 전쟁에서 이겼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

또 적지 않은 영토 할양이 조건이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가멜다 왕국은 한동안 다르센 왕국의 속국 처지가 될 게 분명했다.

“자신과 왕실, 나아가 국가의 자부심을 지키며 멸망의 위험을 감수하느냐, 혹은 모든 자부심을 포기하고 멸망 가능성을 낮추느냐… 쉽지 않은 선택일 수밖에 없지.”

“그렇습니다. 양쪽 모두를 고려하며 작전을 짜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내기를 한다면, 가멜다 왕이 자존심을 꺾는 쪽에 걸겠다만.”

크리스티안은 나이에 비해 사려 깊고, 자신과 국가의 안위를 중시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물론 자부심도 중요하겠지만 자신과 국가의 안위보다 중시할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 * *

“그대의 부친이 내게 제안을 했다는 건 알고 있지요?”

연합군 및 기타 사항을 의논하겠다며 사울을 부른 크리스티안의 첫마디였다.

사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폐하.”

크리스티안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겠어요. 그대 부친의 제안은 우리 왕국에 막대한 굴욕을 안겨 주고, 또한 출혈을 강요하는 것이었어요.”

“알고 있습니다. 그럼 제 생각을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허락하지요.”

“지금 폐하의 나라는 멸망 직전이고, 폐하와 폐하를 따르는 충신들의 역량만으로 대세를 뒤집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

사울의 신랄한 말에 크리스티안 주변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특히 가르시아 남매, 그중에서도 동생인 베일의 눈이 번득였다.

하지만 사울은 자신보다 강한 베일의 살벌한 눈빛에도 굴하지 않았다.

“사람이든 나라든 죽거나 멸망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다시 기회를 얻기는 어렵지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말입니다.”

기적은 극히 드물게 일어나기에 기적이라 불린다.

사울 본인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더러 그대 부친에게 항복하라는 말인가요?”

“아바마마께서 폐하께 보낸 친서를 직접 읽어보진 않았습니다만, ‘항복’을 요구하시진 않은 것으로 압니다만?”

“항복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지요. 하지만 내가 그대 부친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난 사실상 다르센 왕국에 항복을 한 못난 국왕으로 역사에 영원히 남게 될 거예요.”

“알고 있습니다. 물론 감내하기 어려울 만큼의 굴욕이겠지요. 하지만 폐하의 목숨과 국가의 안위가 더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사울의 질문에 크리스티안은 곧장 대답하는 대신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생각하다 천천히 말했다.

“이들은 안소니 백작 같은 반역자와는 달리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와 함께하고 있지요. 그야말로 내겐 더없는 충신들이에요.”

“그렇습니다. 폐하. 아바마마께서는 안소니 백작 같은 반역자는 결코 용납하지 않으실 겁니다. 한 번 배신한 자는 또 배신하는 법이니 말입니다.”

“그대의 부친도 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반역자 토벌도 적극 돕겠다고.”

“그렇다면 아바마마의 제안을 받아들이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국왕으로서, 최대한 빨리 결론을 내야 할 문제.

결국 크리스티안은 결론을 내렸다.

“난 굴욕을 감수하겠어요.”

“폐하!”

크리스티안의 신하들은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눈물을 흘리거나, 통곡하는 자들도 있었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은 가르시아 남매도 안타까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크리스티안의 선언은 삼백 년 전쟁이 가멜다 왕국의 패전으로 끝났음을 의미했으니까.

‘이렇게 삼백 년 전쟁이 끝나는가.’

사울의 기분도 복잡했다.

전생의 조국이자, 다시 태어난 후 원수들의 나라가 이런 결말을 맞은 것을 기뻐해야 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분명한 건 크리스티안의 결단이 안소니 백작의 멸망을 뜻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가멜다 왕국의 안위보다 중요한 건 진짜 원수인 안소니 백작의 죽음이다.

또 카멜 산을 막지 못하면, 삼백 년 전쟁의 끝은 다르센 왕국의 승리가 아니라 두 왕국의 공멸이 될 것이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생각을 정리한 사울은 크리스티안에게 정중히 말했다.

“폐하의 결단에 경의를 표합니다.”

“고마워요.”

그때 지금껏 말이 없던 마리안이 끼어들었다.

“이제 연합군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까요?”

모두들 동의했다.

어차피 대신전은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고 관리하기도 바빠 그 이상의 역할을 맡기긴 어렵다.

카멜 산을 공격하는 건 다르센 왕국군이 주도하고, 가멜다 왕국군이 보조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현재 카멜 산에서 준비한 병력은 약 1만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왕국에서 이번 전쟁에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약 2만입니다.”

크리스티안도 이미 생각해 둔 게 있는 듯, 곧바로 말했다.

“우리 왕국은 약 5천 정도의 병력을 준비할 수 있겠어요.”

“그렇습니까.”

병력이 적다고 타박할 수는 없었다.

수도가 붕괴하고 망명 정부로 연명하는 상황에서 5천이나마 동원하는 것도 사실 대단했다.

“그럼 약 2만 5천의 병력을 카멜 산에 투입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 왕국에서도 상황이 허락한다면 병력을 더 보내 줄 수도 있겠지만… 쉽진 않을 겁니다. 버서커의 공격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사울의 설명을 듣던 베일이 의견을 냈다.

“카멜 산 병력이 1만이라지만, 저쪽에서 버서커를 동원한다면 오히려 우리 쪽의 전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지 않소?”

사울도 동의했다.

“맞는 말이다. 물론 버서커를 무한정으로 운용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그렇게 하고도 남았을 테니까. 하지만 동원 가능한 전력만 따져도 무시할 수 없지. 아마 우리가 카멜 산에 도착하면 우리보다 많은 전력을 가진 적과 마주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2만 5천의 병력이 움직이는 것을 숨길 수는 없다.

이쪽에서 카멜 산 병력의 움직임을 파악했듯, 저쪽에서도 이쪽의 움직임을 파악했을 것이다.

중립 지대는 카멜 산의 안마당이니, 정보력도 저쪽이 한 수 위일 테고.

그렇다면 저쪽에서도 버서커를 이용하든 다른 수를 쓰든 할 것이다.

이래저래 어려운 싸움이 될 것 같았다.

그렇기에 다르센 왕국, 가멜다 왕국, 그리고 대신전까지 힘을 합쳐야 했다.

내분이라도 일어나면 패배는 자명하며, 패할 시 그 여파는 감당할 수 없을 테고 말이다.

의논은 계속되었다.

사울과 크리스티안은 물론, 뒤늦게 합류한 대신전 측의 사람들까지 모여 함께 의논했다.

“그럼 사흘 후 출병하겠습니다. 모두들 만반의 준비를 다 하도록.”

“네, 전하.”

크리스티안은 직접 전장에 나설 능력이 없었기에 사울이 연합군의 대장으로 뽑혔다.

이렇게 사울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결성되었고, 출병을 앞두게 되었다.

* * *

‘아마 이번 전투가 모든 것을 결정하겠지.’

출병을 앞둔 사울은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했다.

아마 이번 전투가 자신의 운명, 나아가 율렌 섬의 운명까지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위험한 싸움이 될 것이다.

전투의 승패와는 별개로 삶과 죽음이 엇갈릴 수 있다.

자신과 함께하는 자들도, 나아가 자신의 목숨도 어찌 될지 모른다.

물론 사울은 죽을 마음 따윈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다.

이번 전투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규모가 크며, 위험한 전투가 될 테니까.

고민 끝에 사울은 결정했다.

조금은 마음의 응어리를 풀고 가자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