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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타임-2화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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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멈춰버린 시간에서

짹-.

승한이 아침에 눈을 뜨고 처음 들은 소리는 평화로운 새소리였다. 머리맡 창으로는 기분 좋은 햇살이 들어오고, 밖으로 보이는 나뭇가지 위로는 참새들이 앉아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더 없이 기분 좋고 개운한 아침일 것이다. 날씨고 좋고, 언제나처럼 일상적인 하루를 시작하면 되는 아침이었다.

하지만 승한은 평소처럼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할 수 없었다. 저절로 눈이 떠진 승한은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또… 이 꿈인가?”

이불을 반쯤 걷고 상체를 일으킨 승한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는 어젯밤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저번엔 사막이더니, 이번엔 숲이야?”

이름 모를 거대한 나무로 가득한 숲.

꿈속에서 승한은 그곳을 헤맸다. 몇 번이나 짐승을 닮은 괴물들에게 죽을 뻔했다. 생존과 싸움, 미션. 그 과정은 마치 꿈이 아닌 것처럼 너무나도 생생히 승한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꿈이지?’

벌써 이와 비슷한 꿈이 세 번째였다.

첫 번째 꿈은 단순했다. 꿈속에서 승한은 투기장과 같은 장소에서 잘 훈련된 투기견 두 마리와 사투를 벌였다. 그 정도에서 그쳤다면 그냥 투기견과 싸우는 개꿈을 꿨다고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 꿈이 끝났을 때, 승한은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꿈속에서 투기견과 싸웠던 기억은 보통 생생한 게 아니었다. 아무리 꿈이 생생하다고 해도 정도라는 게 있었다. 투기견의 이빨에 다리가 물렸던 고통과 투기견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던 그 감촉이 모두 현실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너무나 생각했다.

물론 단지 그 뿐이라면 이렇게까지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냥 너무 생생한 꿈을 꿨구나,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문제는 두 번째 꿈부터였다.

투기견과 싸웠던 스테이지 1이라는 꿈을 꾸고 정확히 일주일이 흐른 날, 승한은 그와 비슷한 꿈을 꾸었다.

스테이지 2.

‘두 번째는… 사막이었지.’

투기견과 싸우는 꿈에 이어, 승한은 사막에서 수많은 하이에나들로부터 쫒기는 꿈을 꾸었다. 본능적으로 10시간 동안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승한은 꿈속에서 하이에나들로부터 미친 듯이 도망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도망 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빨리 뛴다고 해도 하이에나들보다는 느릴 텐데 말이다.

다행히 승한은 운 좋게 오아시스를 찾을 수 있었고, 오아시스 근처에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가 하이에나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그렇게 거기서 10시간을 버텼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을 때.

승한은 꿈속에서 두 번째 ‘능력’을 얻었다.

“이게 대체 무슨 개꿈인지…….”

꿈은 일주일 간격으로 꾸고 있었다. 매주 주말, 일요일마다 말이다.

일정한 주기로 이어지는 꿈.

그런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본 바가 없지는 않았다. 인터넷 게시글을 통해서든, 친구를 통해서든 몇 번 그런 경우가 있다고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하지만 그 꿈이 워낙 생생한데다 계속해서 같은 주기로 꾸고 있다 보니 이제는 꿈이 맞는지까지 헷갈릴 정도였다.

띠리리리리리-!

그 때, 침대 옆에 놓아두었던 승한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복잡하던 승한의 머릿속에 한 가지 급한 일이 떠올랐다.

“이크, 늦겠다.”

**

황금 같은 주말이지만, 승한은 그 황금 같은 시간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스물다섯 살, 이제 막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승한의 가정은 비싼 학자금을 부담할 만한 형편이 되지 못했다. 평일, 주말까지 모두 아르바이트를 뛰어야 겨우 학자금을 마련할 정도였다.

“사장님, 저 왔습니다!”

“인마, 늦었어!”

시내 외곽에 있는 작은 돼지고기 집. 아직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없었지만, 식당은 손님 맞을 준비로 바빴다. 승한은 바쁘게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가게의 사장은 깐깐한 얼굴의 중년 남성이었다. 까만 옷으로 갈아입고, 앞치마를 두른 승한은 한참 고기를 썰고 있는 사장에게 다가갔다.

“조금만 봐 주세요. 겨우 5분 늦은 거 가지고.”

승한의 사장은 고기를 썰다 말고 눈을 부릅떴다. 사장 한 명과 알바생 둘, 이렇게 셋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인데 승한을 포함한 알바생이 둘 다 늦으니 이른 아침부터 혼자 나와서 일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인마, 네 시급에 5분이면 500원 어치야! 어디서 돈을 날로 먹으려 들어?”

“에이, 쪼잔하게 500원 가지고 그러기에요? 은성이처럼 자주 하는 것도 아닌데, 한 번만 좀 봐 주세요.”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는 거지.”

승한은 멋쩍게 웃었다. 말은 까칠하게 해도 일 년 넘게 같이 일을 하다 보니 알 수 있었다. 승한이 일을 하는 가게의 사장은 말투와는 달리 잔정이 꽤 많고, 승한을 꽤 많이 챙겨주는 편이었다. 승한의 사정을 아는 사장은 가끔이지만 용돈으로 쓰라며 월급에 보너스까지 넣어주곤 했다.

“됐고, 얼른 판이나 닦아 놔. 어제 설거지 다 못하고 가서 기름이 누렇게 꼈드라.”

“네, 네!”

앞치마를 두른 승한은 주방에 들어가 한쪽에 가득 쌓여있는 판을 닦기 시작했다. 돼지기름이 끼어있는 판은 몇 번씩이나 물로 씻어내고, 마른 종이로 닦아야 겨우 벗겨져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가게 안으로 헐레벌떡 남자가 뛰어 들어왔다. 머리를 연한 노란색으로 염색한 남자는 주방 한쪽에 메고 온 크로스백을 던져두고 숨을 골랐다.

“사장님, 승한이형! 죄송해요, 많이 늦었죠?”

“이 새끼들이 쌍으로 지각하고 있어? 은성이 너 인마, 또 늦으면 시급에서 깐다고 했지?”

“사장님! 제발 그것만은!”

“제발은 무슨 얼어 죽을! 한 시간어치 돈 깔 거니까, 그렇게 알아!”

“으아악!”

은성은 노란 머리를 부여잡으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비명도 잠시, 곧 시무룩한 얼굴로 앞치마를 두르며 승한의 옆으로 다가왔다.

“왜 또 늦었냐?”

“여자친구 잠깐 만난다고…….”

“자알 한다. 여자친구 생기고 돈도 부족하다며? 자꾸 이런 식으로 한 시간씩 시급 깎여서 되겠냐?”

“그러게요. 물류창고라도 하루 뛰어야 할까 봐요.”

“아서라. 그거 하루 하면 이것도 못할걸?”

“그렇게 힘들어요?”

“응. 나도 몇 번 해봤는데, 엄청.”

승한과 은성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판을 닦기 시작했다. 아직 오전 시간대라 손님이 오려면 멀었지만, 11시가 넘어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수록 하나 둘 손님이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평소처럼 판을 닦고, 재료를 준비하고, 바닥을 쓸었다. 식기와 휴지를 채워놓고, 술과 음료수를 채워놓았다.

1년 넘게 해온 일이라 그런지 이젠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몸은 움직이면서도 승한의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했다.

‘일주일 뒤에는 또 무슨 꿈을 꾸게 될까.’

일주일 간격으로 꾸는 꿈.

세 번째 꿈을 꿨을 때부터 승한의 머릿속은 온통 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강의 내용도 잘 들어오지 않았고, 오직 다음 번 꿈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자꾸 맴돌았다.

“은성아, 대걸레 좀 가져와라!”

바닥을 다 쓸어놓은 승한은 은성에게 대걸레를 부탁했다. 마지막으로 바닥을 한 번 닦아 놓기만 하면 손님 맞을 준비는 끝이었다.

은성이 올 때까지 승한은 잠시 서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시간을 때우던 승한이 다시 한 번 말했다.

“은성아! 대걸레 좀!”

대답이 없었다.

농땡이라도 피우는가 싶어 승한은 눈살을 찌푸리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승한은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는 은성에게 다가갔다.

“야, 김치 채워 넣으라고 한 게 언젠데 아직까지…….”

그 순간, 승한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가만 보니 은성의 상태가 이상했다. 김치를 꺼내던 손은 물론이고, 행동 자체가 멈춰있었다. 큼직하게 고기를 썰어놓던 사장의 분주한 손길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이 지금 뭐 해요?”

어리둥절한 승한이 입을 열었다. 가까이 있던 사장에게 다가가 어깨를 흔들었다.

반응이 없었다.

“사장님?”

이상한 느낌에 승한은 어깨를 더 세게 흔들었다. 몸이 크게 흔들렸는데, 여전히 반응은 없었다.

몰래카메라라도 하는 건가? 은성이면 몰라도, 손님 맞을 준비로 바쁜데 깐깐한 사장 성격에 이런 장난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승한은 김치를 꺼내던 은성에게 다가갔다. 사장에게 몹쓸 짓을 하지는 못하겠고, 몰래카메라인지 아닌지는 은성을 통해 알아볼 생각이었다.

“인마, 장난 그만 쳐!”

퍼억-.

장난을 친 게 괘씸하기도 해서 승한은 조금 과하게 은성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러자 잠시 휘청거리던 은성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지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쿵-.

“허억!”

예상외의 반응에 승한이 깜짝 놀랐다. 당연히 정강이를 부여잡으며 방방 뛸 줄 알았는데, 힘없이 옆으로 넘어지니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몰래카메라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때, 승한의 눈에 믿기지 않는 광경이 들어왔다.

“저, 저건 또 뭐야?”

수돗물이 흐르다 멈춰있다.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그대로 딱 멈춰있었다.

손을 뻗어 흐르다 멈춘 물을 만져보았다. 차가운 물의 느낌이 그대로 손을 타고 전해졌다. 손을 뗀 순간, 승한의 손이 닿은 자리를 제외하고 물이 끊어져 있었다.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승한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제외한 다른 세상이 정지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람도, 물건도, 흐르는 물까지도. 시간 자체가 멈춰버렸다.

“말도 안 돼…….”

두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았다. 너무나도 낯선 현상에 승한의 마음속에 본능적인 공포가 생겨났다. 모든 게 멈췄다고 생각하니 막상 눈앞에 있는 은성과 사장, 둘의 존재가 사람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자, 장난 그만 치고 일어나!”

그 뒤로도 승한은 은성과 사장의 몸을 계속 흔들었다. 깊게 잠이 든 사람을 깨우기라도 하듯, 누군가라도 정신을 차리고 자신과 같이 움직여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역시나 반응은 없었다. 흐르던 물도, 창밖으로 보이는 날아다니던 새도, 사람도, 승한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자그마한 소리도 들리지 않고 모든 것들이 멈춰버려 세상이 죽은 듯이 느껴졌다.

“꿈인가?”

승한은 현실을 부정했다. 얼마 전부터 꾸었던 이상한 꿈처럼, 이 모든 것들이 꿈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기다리면 세상이 다시 원래대로 움직일 것이라 믿고 승한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저릴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다. 기다리다 지친 승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막 가게 밖으로 나가려던 때였다.

딸랑-.

가게의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손님이 들어오면 일거리가 늘어 탐탁지 않던 이전과는 달리, 승한의 얼굴은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밝아졌다.

“어서 오십…….”

그 어느 때보다도 밝은 얼굴로 인사하던 승한의 얼굴이 굳어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손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승한은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따다다닥-.

끼기긱-.

텅 빈 동공. 살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몸뚱이와 기다란 뼈로 만든 몽둥이.

눈을 씻고 봐도 새하얀 해골이었다. 그런데 무덤에 누워 있어야 할 녀석이 멀쩡하게 두 발로 서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뼈 괴물. 스컬레톤이었다.

“괴물……?”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승한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스컬레톤’이라는 이름보다는 ‘괴물’이라는 단어 하나뿐이었다.

시간이 멈춘 가운데, 오직 승한과 스컬레톤만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낯선 현상에 떨고 있던 승한에게 스컬레톤의 등장은 공포라는 불길에 기름은 들이부었다.

따다다다닥-.

하얀 치아가 위아래로 빠르게 부딪혔다. 스컬레톤의 텅 빈 동공이 승한을 마주봤다. 눈은 없었지만 승한은 녀석이 자신을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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