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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타임-15화 (1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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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반복

쏴아아아아-.

비는 징그럽게 내렸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내릴 거라고 한다.

요즘 일기예보가 믿을 건 못 되지만 승한은 비가 금방 그칠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 비가 괴물들을 불러 올 것 같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좋지 않은 일은 항상 비가 오는 날에 일어난다. 저번 주말, 괴물들이 나타났을 때에는 그래도 해가 떠 있었는데, 오늘은 하늘도 우중충하니 더 불안했다.

승한은 최대한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갑옷으로 무장하고 싶었는데, 지금 당장 갑옷을 마련하기는 힘들었다. 갑옷이나 방패는 다음에 타임 포인트를 지불하고 사야 할 것 같았다.

긴 츄리닝 바지에 면 티 한 장. 승한의 복장의 전부였다. 만약 검이라도 쥐고 있지 않았다면 어디 산책이라도 나가도 이상할 게 없었다.

‘시간이…….’

승한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10시 반.

시간이 생각보다 더디게 흘렀다. 느릿느릿, 일분일초가 길게 느껴졌다. 가능하면 이대로 시간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흘렀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다시 고개를 들고 창밖을 바라봤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빗소리가 거세졌다. 그렇게 한참 동안 창밖을 보며 시간을 죽였다.

쏴아아아아아아-.

쏴아-.

어느 순간.

귀를 파고들던 빗소리가 멈췄다. 거짓말처럼 말이다.

당연했다.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가 그친 건 아니었다. 여전히 하늘에는 시커먼 먹구름이, 눈앞에는 빗줄기가 가득했다.

다만, 그 모든 건 멈춰있었다. 멈춰있으니 소리가 들릴 리 없었다.

“역시…….”

큰 기대는 아니어도, 혹시라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승한이 지금까지 꾸었던 꿈들은 모두 이날을 위함한 대비나 마찬가지였다.

그 꿈을 꾸게 된 이유가 뭔지, 누군가의 수작이라면 그가 누구인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승한은 벽에 세워놓았던 검을 잡았다. 그러면서도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 때, 승한의 눈에 특이한 장면이 들어왔다.

분명 아무 것도 없는 거리였다. 시간이 멈춰 빗물이 허공에 떠 있고, 자동차 한 대와 우산을 쓴 사람들 몇 명이 걸어다니고 있는, 어느 주말의 평범한 거리였다.

헌데 그 거리 곳곳에 희미하게 투명한 무언가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승한은 그것이 무언인지 바로 눈치 챌 수 있었다.

‘나왔군.’

투명한 무언가가 점차 색을 찾아갔다. 그것은 금방 제 모습을 드러냈다.

피부는 흑인처럼 까맣다. 덩치는 보통 사람에 비해 좀 더 큰 편이었다. 조금 먼 거리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족히 2미터는 되어보였다.

엉덩이 쪽에는 기다란 꼬리가 1미터 가량 늘어져 바닥에 닿아있었고, 발가락에는 갈퀴가 나 있었다. 전형적인 도마뱀이었는데, 사람처럼 두 발로 서 있었다.

도마뱀 괴물. 리자드맨이었다.

스컬레톤이 단순히 뼈로 이루어진 저급한 괴물이라면, 리자드맨은 차원이 달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살아 움직이는 뼈 괴물이나 리자드맨이나 똑같은 괴물이었지만, 스컬레톤은 건장한 성인 남자라면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는 반면 리자드맨은 근력이나 맷집이나 성인 남자를 훨씬 웃돈다.

승한 역시 그 점을 인지할 수 있었다. 어차피 저번과 똑같이 스컬레톤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번엔 더 강한 녀석이 나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리자드맨은 스컬레톤보다 덩치도 크고, 무엇보다 살이 붙어있는 만큼 몸의 무게나 근력이나 맷집도 훨씬 높을 것이다.

휘익-.

승한은 창문 밖을 향해 몸을 날렸다. 3층이라 꽤 높긴 했지만, 여러 가지 능력으로 강화된 승한은 3층 정도 높이는 가뿐히 뛰어 넘을 수 있었다.

언제 시간이 다시 움직일지 알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괴물들을 쓰러뜨려야 한다. 그래야 가족들이 안전하고, 다른 사람들이 안전할 수 있었다.

쉬이익-.

승한을 발견한 리자드맨은 기다란 혀를 내밀며 손에 들고 있는 창을 내밀었다. 스컬레톤의 뼈 몽둥이와는 달리, 제법 단단해 보이는 무기였다.

하지만 이미 리자드맨이 승한을 발견했을 때는 한 발 늦은 후였다. 승한의 검은 이미 리자드맨의 심장을 향해 파고들고 있었다.

까앙-!

리자드맨의 창이 비틀어지며 승한의 검을 살짝 옆으로 쳐냈다. 승한이 놀랄 만큼 제법 민첩한 몸놀림이었다.

창으로 쳐낸 검에서 느껴지는 충격이 제법 거셌다. 승한은 검에 2레벨의 [강화]와 함께 이번에 새로 얻은 능력인 [광휘]를 둘렀다.

쩡-!

승한의 검이 리자드맨의 창을 강하게 쳐냈다. [강화]와 [광휘]는 승한의 힘을 한층 더 강하게 끌어올려 줄 뿐만 아니라, 검 자체의 위력도 올려주었다.

창을 위로 쳐낸 승한의 검이 그대로 리자드맨의 왼쪽 가슴으로 향했다.

푸욱-.

사악-!

가슴에 파고든 검이 위로 올라가며 리자드맨의 머리를 베었다. 도마뱀의 머리가 베어지며 그 안쪽의 피가 위로 튀었다.

[50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제법 많은 포인트.

아무래도 스컬레톤보다 훨씬 강한 괴물인 만큼, 더 많은 타인 포인트를 주는 모양이었다. 이전처럼 10포인트씩 야금야금 준다면 능력 하나를 올리기도 어려울 텐데, 이 정도면 충분히 의욕이 생겼다.

두근, 두근-.

승한의 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리자드맨을 베어 넘긴 순간, 승한의 몸에도 새빨간 피가 튄 것이다.

스컬레톤과 싸웠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검에 느껴지는 감촉도 훨씬 더 생생했고, 붉은색 피도 마치 사람 같았다. 이미 꿈속에서 피를 가진 괴물과 싸워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익숙해 져야지.’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임 당하는 쪽은 자신이었으니까. 앞으로도 쭉 이런 괴물들이 나타난다면 더더욱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최대한 많은 타임 포인트가 필요해.’

승한은 타임 포인트의 필요성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승한에게 있어서 능력은 가짓수도 물론이지만 레벨도 무시할 수 없었다. 당장 [강인함]이나 [민첩함]의 레벨만 하더라도 1, 2레벨 차이가 이전과는 비교도 하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타임 포인트의 쓰임은 단순히 스킬 레벨의 상승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밖에 장비나 물약 등, 타임 포인트를 통해 살 수 있는 물품은 무수히 많았다.

즉, 타임 포인트는 일종의 힘이자 돈이나 마찬가지. 더군다나 꿈속에서 타임 포인트를 지불하고 구입한 물품은 현실에까지 가지고 나올 수 있다.

한 마리의 리자드맨을 처리한 승한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거리에는 리자드맨이 꽤 많이 남아있었다.

기습처럼 공격한 한 마리의 리자드맨과는 달리, 다른 리자드맨들은 승한을 먼저 발견하고 달려들고 있었다.

키야아악-!

‘빠르다.’

덩치에 비해 리자드맨들은 놀랄 정도로 빨랐다. 발을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성큼성큼 다가와 어지간한 육상선수보다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더군다나 체중에 비해 꽤나 민첩했다. 중간에 있는 자동차를 밟고 높이 도약한 리자드맨은 승한을 향해 기다란 창을 크게 휘둘러왔다.

‘빠르긴 해도…….’

쨍-!

리자드맨의 창이 바닥을 내리쳤다. 맑은 금속음을 지나쳐 승한이 리자드맨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피한 리자드맨의 옆구리가 길게 베어졌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승한은 리자드맨의 상대가 썩 어렵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광휘] 때문인가?’

리자드맨의 능력에 비해 생각보다 상대가 훨씬 쉬웠다. 아무리 승한이 능력을 통해 근력이 강해지고 몸이 가벼워졌다고 해도, 리자드맨 또한 승한에 못지않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강화]를 통해 힘이나 무기의 힘을 한층 올렸다고 해도 이상할 만큼 쉬웠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단 하나, 이번에 새로 얻은 능력인 [광휘] 하나뿐이었다.

‘괴물의 능력 감소. 이게 주 능력이었나?’

승한은 [광휘]를 아주 조금씩 사용하고 있었다. 다시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괴물들을 전부 쓰러뜨리기 전까지 최대한 힘을 아껴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조금이라도 괴물인 리자드맨들은 승한을 상대하면서 미약하게 몸을 움츠러들고 있었다. 공격이 무뎌지고, 반응이 한 박자씩 느렸다. 반면 승한은 리자드맨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한 눈에 보였다.

꿈속에서의 싸움을 통해 승한이 검을 들고 싸우는 법에 능숙해진 이유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광휘]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이것도… 레벨을 올리면 도움 꽤나 되겠어.’

승한은 자신을 주위에서 경계하며 모여든 리자드맨들을 보며 씩 웃었다.

하나, 둘, 셋, 넷.

당장 승한을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리자드맨들이 벌써 넷이었다. 그 중 하나는 방금 전 승한에게 허리를 크게 베여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어 보였다.

처음 스컬레톤들과 마주했을 때는 무섭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승한이 스컬레톤들과 싸웠던 이유는 살기 위해서, 그리고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승한이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애초에 무섭다는 생각도 크게 들지 않았다. 무서워 할 이유가 없었다.

승한이 저들보다 더 강했으니까.

포식자는 승한이었다. 저들은 자신들이 승한을 사냥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것은 승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승한의 눈에 리자드맨들은 걸어다니는 타임 포인트나 마찬가지였다.

‘넷을 동시에 상대하려면…….’

승한의 눈이 리자드맨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어디로 움직이고, 어떻게 움직여야 리자드맨들을 상대할 수 있을지 저절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파앗-.

먼저 움직인 쪽은 승한이었다. 리자드맨들은 생각보다 영리했다. 승한이 단순한 먹잇감 치고는 제법 강하다는 걸 알고 경계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녀석들이 머리를 굴리기 전에 승한이 먼저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쉬이이익-.

승한은 가장 앞에 있는 두 마리의 리자드맨을 향해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그 중 한 마리는 방금 전 승한에게 옆구리를 베였던 리자드맨이었는데, 상처 때문인지 반응이 조금 느렸다.

푸욱-.

키에에엑-!

승한의 검이 리자드맨의 가슴에 박혔다. 반응이 늦었던 리자드맨이었다.

가까이 있던 다른 한 마리의 리자드맨이 승한을 향해 창을 찔러왔다. 승한은 지면을 박차며 몸을 위로 띄워 창을 피하고 그대로 리자드맨의 머리를 걷어찼다.

퍼억-!

[50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그 순간, 승한의 검에 찔린 리자드맨의 숨통이 끊어졌는지 타임 포인트 획득 메시지가 승한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곧장 검을 뽑아낸 승한은 자신의 발길질에 얻어맞아 바닥에 쓰러진 리자드맨을 향해 달려들었다.

촤악-!

검이 뽑힌 자리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심장이 찔려 죽은 리자드맨의 시체가 싸늘하게 식으며 뒤로 넘어졌다.

승한이 막 다른 리자드맨과 충돌하는 순간, 다른 리자드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들도 자신들의 머릿수가 줄어들수록 승한과의 싸움이 힘들어 진다는 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남은 건 셋.’

승한의 머릿속에 꿈속에서 겪었던 스컬레톤과의 싸움이 떠올랐다.

무장한 스컬레톤은 리자드맨보다는 약하지만 지난 번 나타났던 스컬레톤보다는 강한 편이었다. 더군다나 리자드맨처럼 맨 몸이 아니고 무장을 했다는 점에서 까다로운 점이 있었다.

승한은 그런 스컬레톤 여덟 마리를 한꺼번에 상대했다. 더군다나 기사 스컬레톤은 단단한 투구는 물론이고 단단한 플레이트 메일까지 걸치고 말까지 타고있었다.

다수를 상대로 한 싸움에서나, 강한 한 명을 상대로나 승한은 리자드맨들에게 꿀릴 이유가 없었다.

쨍-!

퍼억-.

창을 옆으로 쳐낸 승한의 다리가 리자드맨의 다리를 걷어찼다. 허벅지 안쪽을 강하게 걷어차자, 리자드맨의 몸이 허물어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사람과 같이 두 발로 서 있는 괴물인 만큼, 신체 구조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승한은 재빠르게 검을 휘둘러 리자드맨의 목을 베어냈다.

뎅겅-.

리자드맨의 머리는 생각보다 쉽게 베어졌다. 2레벨의 [강화]와 1레벨의 [광휘] 덕분이었다.

타임 포인트를 획득했다는 메시지를 확인한 승한은 곧장 몸을 놀려 좌우에서 달려드는 리자드맨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녀석들은 영악하게도 승한을 정면에서 상대하지 않고, 신경을 분산시키고자 방향을 나누어 덤비고 있었다.

“돌머리는 아니네.”

역시 뇌가 없는 스컬레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빠른 사고를 거친 판단인지, 아니면 동물적인 본능에 의한 판단인지는 몰라도 승한에게는 까다롭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수의 스컬레톤과의 싸움에서 승한은 이런 경우를 많이 겪어보았다. 좌우가 아니라 사방에서 공격받기까지 했다.

‘이럴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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