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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또 다른 능력자
그렇게 승한의 시간은, 그리고 모든 이들의 시간이 다시 초침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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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아아-.
빗물이 어지럽게 내렸다. 땅에 떨어져 부서지며 들리는 빗소리가 귓가에 기분 좋게 들렸다.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 자동차 움직이는 엔진소리, 홍수처럼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배달을 다니는 오토바이 소리.
기분이 좋았다. 멈춰 있는 시간보다는 역시 움직이는 시간 속의 세상이 훨씬 보기 좋았다. 승한은 창밖으로 보이는 장면을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역시.”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한은 멀리 떨어져 있던 동네가 아닌, 본래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에는 멈추기 전에 있던 곳으로 돌아오는 게 확실했다.
“으아아아아악-!”
남자의 비명소리. 승한은 깜짝 놀라 창밖을 바라봤다.
‘분명 이 근처의 괴물들은 다 정리 했는데?’
혹시 남아 있는 괴물이 있었던 걸까?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길을 걷던 사람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리자드맨의 시체를 보고 놀란 것이다.
아무리 리자드맨들을 죽였다고 해도 이 세상에 변화가 없는 건 아니었다. 지난번만 하더라도 승한이 쓰러뜨린 스컬레톤들의 시체가 골목쪽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리자드맨들도 마찬가지. 승한이 쓰러뜨린 집 근처의 리자드맨들은 거리 한복판에 버젓이 남아있었다. 목이 베어지거나, 허리가 베어져 내장을 쏟아낸 채로. 그런 장면을 보았다면 비명을 지르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이 근처는 괜찮을 거야.’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괴물들은 충분히 많다. 사람들은 괴물들에게 습격을 받을 것이고, 세상이 뒤집히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이번엔… 아마 소란이 더 크겠지.’
리자드맨들은 스컬레톤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괴물이었다. 스컬레톤이야 겁 없는 성인 남성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는데, 리자드맨은 아니었다. 아마 리자드맨을 상대하려면 효도르라도 데리고 와야 할 것이다. 그나마도 리자드맨이 창이라는 무기를 들고 있는 이상 상대가 불가능했다.
그런 리자드맨들이 거리에 떼로 나타났다. 아마 사망자가 수도 없이 나올 것이다. 군대가 얼마나 빠르게 대처를 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일단은…….’
승한은 검을 잠시 놓아둔 채 거실로 나갔다. 승한의 어머니와 승아는 거실에 나와있었는데, 밖에서 들린 비명 소리에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승한아, 대체 무슨 일이야? 설마 진짜 또 괴물이라도 나온 거야?”
“창밖에 안 봤어?”
“어, 어? 으응…….”
“괴물들의 시체가 곳곳에 떨어져 있어. 누가 죽였는지는 모르지만… 이번엔 저번에 나온 녀석들과 다른 놈들이야. 뼈다귀만 있던 놈들과는 달리, 도마뱀처럼 생긴 괴물이야.”
“다, 다른 놈들이라고?”
“응. 시체가 있으면 살아있는 놈들도 있을 거야. 내가 말 했지? 밖에 나가지 말라고.”
승한의 꾸지람에 승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으로는 괴물이 다시 나타났는데 승한은 어떻게 이렇게 침착할 수 있나 싶었다.
“어머니도 어디 나가지 마세요. 괴물이 나타났으니, 지난번처럼 군인들이 나설 거예요.”
“아, 알았다.”
승아와 어머니는 승한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어차피 두 사람 모두 괴물이 다시 나타났다는데 밖에 나갈 만큼 겁이 없는 성격은 아니었다.
“너도 어디 안 나갈 거지?”
무언가 낌새를 느낀 걸까?
방 안으로 들어가려던 승한에게 어머니가 물었다. 아무래도 승한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아는 모양이었다.
승한은 누구에게 거짓말을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게 아버지 없이 홀로 자신을 키워주신 어머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지금, 승한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네, 그럼요.”
승한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누가 들어 올까봐 방문을 잠갔다. 시끄러운 누나인 승아가 들어오는 게 싫어서 종종 문을 잠그기도 했으니 이상하게 여기진 않을 것이다.
승한은 침대 밑에 놓아둔 검을 꺼냈다.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았지만 완전히 원점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몸은 그대로야.’
상처를 입지는 않아서 자세한 건 알 수 없었다. 과연 시간이 멈췄을 때 상처를 입으면, 다시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한 후까지 상처가 남아 있을까?
적어도 승한에게는 [강화]와 [광휘]로 인한 피로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곧, 상처까지 그대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컸다.
승한은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음은 당장에라도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기다렸다. 조금이라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휴식을 휘하던 중, 승한은 생각했다.
‘어서 빨리 타임 포인트를 사용하고 싶은데…….’
반드시 꿈속이어야만 타임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을까? 만약 지금 당장 타임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다면 승한은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리자드맨은 물론, 거대 도마뱀이라 하더라도 혼자서 상대할 수 있었다.
[스테이지1 - 강인함]
* 분류 : 고유 지속
* 레벨 : 3
* 요구 타임 포인트 : 200p
[스테이지2 - 민첩함]
* 분류 : 고유 지속
* 레벨 : 2
* 요구 타임 포인트 : 200p
[스테이지 3 - 강화]
* 분류 : 엑티브
* 레벨 : 2
* 요구 타임 포인트 : 400p
[스테이지 4 - 광휘]
* 분류 : 엑티브
* 레벨 : 1
* 요구 타임 포인트 : 400p
[보유 타임 포인트 : 3710p]
‘역시!’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른 정보들. 그리고 보유한 타임 포인트. 승한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타임 포인트를 이용해 능력의 레벨을 올릴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건… 생각 이상인데?”
승한은 깜짝 놀랐다.
능력의 레벨을 올리는 것까지는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가능하다면 리자드맨들과 싸우기 전에 능력의 레벨을 올려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타임 포인트를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 타임 포인트를 사용해 얻을 수 있는 물품들까지 떠오른 것이다.
‘이런 것까지 바로 현실에 불러들일 수 있는 건가?’
궁금증이 동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시험해 볼 수도 없었다. 아직까지 보유한 타임 포인트는 넉넉했지만 1포인트라도 함부로 낭비할 순 없었다.
“일단 능력부터…….”
[2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강인함’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4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강인함’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승한은 가장 절실하다고 느낀 첫 번째 능력, [강인함]에 타임 포인트를 투자했다. 다음 레벨에 200, 그 다음에 400포인트를 투자해 총 2개의 레벨을 올렸다.
온 몸에 힘이 넘쳐나고, 피로했던 몸이 말끔하게 나았다. 자세한 건 직접 움직이고 싸워 봐야 알겠지만 결코 작은 변화는 아니었다. 이것으로 첫 번째 능력인 [강인함]의 레벨은 5레벨이 되었다.
‘다음 레벨에 필요한 타임 포인트가 800. 조금 더 고민 해야겠어.’
600타임 포인트를 사용하고 3110포인트가 남았다. 넉넉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강인함]의 레벨을 두 개만 더 올려도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승한은 다른 능력으로 눈을 돌렸다. 그 중 첫 번째는 역시 새로 얻은 능력인 [광휘]였다.
‘이건 포인트의 투자 가치가 있어.’
자신의 능력을 올려주면서, 반대로 괴물들의 능력은 떨어뜨린다. 충분히 매력적인 능력이었다.
윤재만 하더라도 이 능력에 대한 설명을 듣고 놀라지 않았던가? 어중간한 공격 능력보다도 훨씬 효율적인 능력이었다. 승한이 사람과 싸울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4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광휘’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800타임 포인트를 소모하였습니다.]
[‘능력 - 광휘’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승한은 큰 맘 먹고 [광휘]의 레벨을 두 개나 올렸다. 하나만 해도 충분할지도 모르지만, 3레벨의 [광휘]에 기대를 걸기로 했다.
그 뒤로 승한은 [민첩함]의 레벨을 2개, [강화]의 레벨을 2개 올렸다. 그러자 남은 포인트가 110으로, 거의 딱 맞아떨어졌다.
“남은 포인트로는…….”
승한은 두 가지에서 고민했다.
방패, 그리고 물약.
둘 다 여벌의 생명으로 생각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방어구가 없는 승한에게는 방패의 존재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갑옷이야 오히려 움직이는데 걸리적거릴 수도 있다지만, 방패는 비교적 그런 게 덜했다.
더군다나 방패는 여차하면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방패의 모서리는 제법 단단해서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꽤나 큰 충격을 줄 수 있었다. 방어와 약간의 공격, 두 가지 능력을 포기하기는 아쉬웠다.
‘물약은… 다음에.’
승한은 결국 남아있는 타임 포인트 중 100포인트는 지불하고 방패를 구입했다.
남은 타임 포인트는 이제 고작 10포인트. 남김 없이 정말 깨끗하게도 사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라지긴 많이 달라졌군.’
기본적인 능력인 [강인함]이나 [민첩함]의 레벨이 5레벨, 4레벨까지 올랐다. 이 두 가지 능력의 상승만 하더라도 큰 변화였다.
헌데, [강화]와 [광휘]마저도 각각 2레벨씩, 4레벨, 3레벨이 되었다. 아직 이 두 가지 능력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큰 변화가 느껴진다면 두 가지 능력도 함께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자드맨은 이제 쉽겠는데?”
모든 준비는 마쳤다는 생각에 승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는 침대에 앉아서 한 삼십 분 정도 쉬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됐어.”
그리곤 이전처럼 창문을 열고 가뿐히 몸을 날렸다.
**
승한의 집 근처에는 이미 리자드맨들이 남아있지 않았다. 남아있다고 해도 이미 다 죽은 시체일 뿐, 살아있는 녀석은 없었다.
‘학준이 녀석은 무사하려나?’
근처에 있는 괴물들은 대부분 정리했고, 거대 도마뱀도 쓰러뜨렸다. 그대로 밖에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을 봤으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승한은 더 이상 학준에 대한 관심을 거두고 다른 장소로 향했다. 학준이 살고 있는 안양시 평촌과는 정 반대 방향인 석수동으로 향했다. 그곳은 윤재와 승한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곳이니, 아마 꽤 많은 리자드맨들이 있을 것이다.
“꺄아아아아악-!”
“으아악-!”
비명소리가 들렸다. 이 근방에서 리자드맨들이 꽤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리자드맨들에게 쫒기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쫒기다가 붙잡힌 사람들은 리자드맨들의 창에 배가 뚫려 피를 흘렸다.
콰득, 콰드득-.
쩝, 쩌쩝-.
“아, 아아아아아악-!”
리자드맨이 입을 크게 벌리더니 붙잡은 사람의 머리를 씹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이빨은 순식간에 사람의 머리를 파고들고, 피부를 찢고 뼈를 물어뜯었다.
고통에 울부짖던 사람은 곧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죽은 것 같지는 않았다. 너무나도 큰 공포와 충격에 기절한 것이다.
물론, 이대로 두면 어차피 죽겠지만.
“……끔찍하군.”
자신 역시도 만약 리자드맨에게 당했다면 저런 꼴을 당했을 것이다. 리자드맨이 사람을 공격할 것이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설마 식인(食人)을 할 줄은 몰랐다.
더 이상 두고 보지 못한 승한은 리자드맨을 향해 몸을 날렸다. 리자드맨은 승한의 존재를 눈치 채고는 물어뜯던 사람의 머리를 내팽개치고 고개를 들었지만, 이미 승한의 검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뎅겅-.
순식간에 리자드맨의 머리가 떨어졌다. 도망치던 사람들 몇몇의 시선이 승한에게로 모아졌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쫒던 리자드맨들은 승한을 경계하며 주춤거렸다.
승한의 몸에서는 냄새가 났다.
리자드맨들의 피 냄새. 그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맡기 힘들 만큼 희미했지만, 후각이 뛰어난 리자드맨들에게는 코를 찌르는 냄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