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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헌터(Hunter)
형이라는 호칭이 썩 편하진 않은지 윤재는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나이 상으로도 분명 차이가 있고, 승한이 먼저 형이라며 운을 떼자 윤재도 계속해서 말을 높이기가 어색했다.
“그래. 알았어.”
“전 좀 불편해도 되죠?”
“……마음대로 하세요.”
눈치 없이 초를 치는 주희를 향해 한숨을 푹 쉬며 승한이 끊어진 말을 이었다.
“아무튼 제 강인함 레벨은 5입니다. 윤재형과 주희씨는요?”
“난 3…….”
“전 2요.”
머릿속으로 타임 포인트를 계산하던 주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5레벨이면 엄청 높은 줄 알았는데, 처음 얻은 능력이 확실히 레벨을 올리기가 쉽네요. 4레벨에서 5레벨로 올리는데 필요한 포인트가 400포인트뿐이라니.”
“다음 레벨에 필요한 포인트가 800이라는 게 문제죠.”
“다른 능력들은요?”
깊숙한 곳까지 물어온 질문에 승한은 갈등했다. 대답을 해야 할까 하다가 이 부분은 미뤄두기로 했다.
“정보 공개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서로에 대해 알아두는 게 좋긴 하지만,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밝힐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서로의 특성만 알아두면 됐죠.”
“쩝… 그래요?”
“네. 어차피 나중에 함께 일을 하게 되면 싫어도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아직까지 윤재와 주희가 강동훈 소령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현실에 괴물들이 나타난다면 싫든 좋든 그들은 괴물들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전적으로 군대에 의지해서 몸을 보호한다는 건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시간이 멈춰 있을 때, 괴물들을 만난다면 어차피 싸울 수밖에 없다. 그 때 자신의 몸을 지킬 힘이 없다면 죽는 것이다.
승한은 윤재, 주희와 번호를 교환했다. 선뜻 번호를 넘기는 윤재와는 달리, 주희는 한 번 튕겼는데 ‘싫음 말고요’라는 승한의 말에 결국 연락처를 교환했다.
승한의 어머니는 두 사람에게 식사를 권했다. 뻔히 봐도 저녁을 걸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밤도 깊었고, 집에서도 걱정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에 더 이상 식사를 권할 수 없었다. 결국 윤재와 주희가 집을 나섰다.
“승한아, 이야기 좀 하자.”
강동훈 소령과 윤재, 주희가 나가자 승한의 어머니와 승아가 눈을 부라렸다. 승한은 올 게 왔다는 생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근래 들어서 한숨을 쉴 일이 많아진 느낌이었다.
승아가 승한의 앞에 냉큼 앉았다. 승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승아가 인상을 찡그렸다.
“왜 말 안했어?”
“뭐를?”
“너에 대해서. 우리도 이야기 다 들었어. 가족들도 알아야 되는 이야기라고. 그리고 네가 우리에게 지난 일주일 동안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던 것도 알게 됐고.”
“이야기 했으면 믿었을까?”
“가족인데. 왜 못 믿어?”
변명을 해 보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승아는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당장 지난 번에만 하더라도 승한이 목숨을 걸고 괴물들과 싸웠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 그녀를 화를 자극했다.
아무리 특별한 능력을 얻고 강해졌다고 해도 승아에게 승한은 어디까지나 동생일 뿐이었다. 그것도 사이가 나쁜 남매도 아니고, 승아와 승한은 어릴 때부터 주위에서 특이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서로를 끔찍이 아꼈다.
“그거 하지 마. 위험해.”
“엄마도 같은 생각이다, 승한아.”
이런 반응일 줄 알았다. 하긴, 괴물들과 싸우는 일인데 어느 가족이 환영할까? 특히 승아는 얼굴을 붉게 물들며 화를 내기 직전이었다.
“어쩔 수 없어요.”
“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이야기 들었지? 믿기지는 않겠지만… 시간이 멈추면 나와 다른 소수의 사람들, 그리고 괴물들만 움직일 수 있게 돼. 그리고 그 때, 괴물들이 노리는 건 다른 사람들이 아닌 바로 나와 능력자들이야.”
승한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그리고 근래에 일어나고 있는 괴상한 현상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다. 짧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요점은 간단했다.
시간이 멈춘 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이 괴물들과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괴물들을 쓰러뜨러야 다른 사람들은 물론, 가족인 승아와 어머니가 안전해 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누나, 그리고 어머니. 이건 어쩔 수 없어요.”
“다른 방법은 없는 거니?”
“네. 다음에 다시 괴물들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은요.”
승한의 대답은 담백했다. 마치 이게 별 일이 아니라는 듯이.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떻게 이리 아무렇지 않게 대답할 수 있나 싶었는데,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애써 그러는 것임을 자각했다.
사실 아직까지도 떨리긴 마찬가지였다. 괴물들과 싸우는 일에 고용이 된다는데, 어찌 무섭지 않을까? 일상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일들에 승한의 가슴은 거세게 요동쳤다.
하지만 이런 기색을 승아와 어머니에게 보인다면 오히려 그녀들은 더 걱정할 것이다. 때문에 승한은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전 괜찮아요.”
**
며칠 동안 승한의 집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승한은 승아에게 다시 한 번 휴가를 쓸 것을 강요했고, 휴가가 없는 승아는 승한의 화를 못 이겨 결국 아프다는 핑계로 회사를 결근했다.
아직 회사에 제대로 자리도 잡지 못한 신입 사원이 아프다는 핑계로 결근을 한다니, 예전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래도 급하게 생리휴가를 낸 터라 잘리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위에서 찍힐 수도 있었다.
그래도 아마 회사도 이해는 해 줄 것이다. 이런 판국에 어디 속 편히 출근하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아마 지금쯤 회사는 텅 비어 있을 것이다.
거리에 있는 리자드맨들은 군인들이 나서서 정리했다. 승한은 강동훈 소령에게 허락을 맡고, 검을 들고 리자드맨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군인들이 빠르게 정리를 한 덕분인지 리자드맨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덜그럭-.
이른 아침, 승한은 어머니가 만든 아침을 먹고는 학교에 갈 준비를 마쳤다. 며칠 동안 무단결석을 해버렸지만 그래도 학교는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학교가 멀쩡히 돌아가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먹는 둥 마는 둥 아침을 해결하자 승한의 어머니는 바로 설거지를 해결했다. 승한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오늘은 출근을 하지 않았다.
-현재 괴물들의 진압은 거의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다행히 정부의 신속한 대응으로 총화기로 무장한 군인들이 괴물들을 제압하고 있지만, 시민들의 피해는 결코 적지 않은 상황입니다. 지난 번 괴물들의 출현에 이어…….
TV속 뉴스에는 온통 괴물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건만, 두 번째인 만큼 더더욱 괴물의 등장이 가지는 의미는 가볍게 볼 수 없었다.
승한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는 현관에서 뉴스를 시청했다. 뉴스를 곧잘 챙겨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괴물에 관한 뉴스는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두 번에 이은 괴물의 출현에 각국 정부에서는 괴물들의 출현에 대한 대비를 갖출 예정입니다.
한 번에 이어 두 번째 나타난 괴물들. 세 번, 네 번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특히나 능력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정부라면 아마 다음 번 괴물들의 출현을 일주일 뒤로 보고 있을 테고 말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괴물의 출현은 오전 11시 부근, 매 주 일요일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정부는 다음 일요일까지 지정된 장소에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총화기로 무장한 군인들로 하여금 시민들을 보호할 예정입니다.
“결국 이렇게 됐군.”
진작에 이렇게 됐어야 한다. 만약 조금만 더 빨리 대응을 했다면 이번 괴물들의 출현에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훨씬 줄어들었을 테니까.
-다음 뉴스입니다. 괴물들 중 특이 변종의 영상을 확보했습니다. 지난 번 뼈 괴물들의 출현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소수의 대형 괴물들이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이번 괴물은…….
TV화면 속에는 거대 도마뱀과 싸우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총화기에 맞고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 거대 도마뱀은 덩치만큼이나 생명력도 질겼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빠르기도 해서 순식간에 군인들이 깔려 죽거나 먹혀 죽었다. 총기가 통해서 다행이었지, 만약 총기가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면 피해가 훨씬 더 컸을 것이다.
‘나중엔… 그런 녀석들이 나올지도 모르지.’
당장 스컬레톤과 리자드맨만 하더라도 차이가 상당했다. 리자드맨 한 마리가 스컬레톤 대여섯 마리를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다음 번 괴물부터는 총기가 통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정부가 대응을 빠르게 한다고 해도 피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진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는 건지…….”
승한의 어머니가 푸념을 늘어놓았다. 승한은 그 중얼거림에 대답해 주지 못했다. 그저 묵묵히 문을 열고, 언제나처럼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
학교는 한산했다. 아니, 한산하다는 말로 충분하지 않았다. 조용하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학기 중반이라 등교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정상이었다. 이 시간이면 무빙워크를 타고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곤 했다.
헌데 등교 시간임에도 보이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 그나마도 학과로 가지 않고 조용한 학교 모습에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은 승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마하니 이 정도로 사람이 없을 줄은 몰랐기에 승한은 내심 당황했다.
그래도 내친 발걸음이었다. 학교에 꽤 정을 붙이고 있던 승한은 학교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일단 다른 친구들이나 조교님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다.
문이 닫혀있지는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학과는 문이 열려있었다. 언덕으로 되어있는 학교의 가장 높은 건물, 가장 높은 층. 승한은 가볍게 언덕을 올라 학교에 도착했다.
‘예전엔 이 언덕 오르기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산쪽에 위치한 대학의 가장 높은 언덕의 건물인 만큼, 학교의 입구에서 학과까지 가는 데에만 십오 분은 넘게 걸렸다. 오죽하면 승한의 학과에서는 학과에 올라오면 기온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승한은 언덕을 그 어느 때보다도 가뿐하게 오를 수 있었다. 한 걸음을 움직일 때마다 마음보다 먼저 몸이 앞으로 가 있었던 것이다. [민첩함]능력의 레벨이 두 단계나 올랐기 때문이었다.
교실은 텅 비어있었다. 강의시간이 가까웠음에도 학생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이런 와중에 학교는 무슨.’
어느 부모가 요즘 같은 세상에 자식을 학교에 보낼까? 아무리 비싼 등록금을 내고 보낸 대학이라지만, 잘못 밖에 다니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제정신이라면 공부하라고 학교에 보내진 않을 것이다.
승한이야 괴물들이 무서울 게 없고, 집에서 할 게 없으니 한 번 와 볼 수 있었다. 혹시 승한처럼 학교에 왔던 사람이 있다고 해도 텅 빈 강의실을 보고 다시 되돌아갔을 것이다.
“어, 승한이?”
승한은 자신 외에 학과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획 돌렸다. 그러고 보니 학과 문이 열려 있다면 학과 문을 연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도의 형?”
“임마, 학교에서는 조교님이라고 부르라니까. 뭐… 지금은 들을 사람도 없지만.”
통통한 얼굴에 짧은 곱슬머리를 한 남자는 바로 승한과 개인적으로 친하기도 한 조교였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결석을 했지만, 김도의 조교는 그래도 직장인이라고 출근한 모양이었다.
“학생들도 없는데 출근은 왜 했어요?”
“내가 문 안 열면? 누가 여기 와서 문도 안 열렸는데 학생들은 그냥 돌아가라고?”
“어차피 나오는 학생들도 없잖아요?”
“있잖아? 너.”
콕 집어서 말하자 달리 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위험한 와중에 학생들을 위해서 출근이라니.
하긴, 어차피 괴물들이 나타나는 날은 일요일이었다. 나타난 괴물들은 이미 정리가 된 상태고, 일요일까지 더 이상 위험할 일은 없었다. 물론 그것을 알고서라도 이렇게 선뜻 밖에 나온다는 건 꽤나 용감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출근 안 하면 교수님들께 무슨 욕을 들을지 몰라서.”
“나오신 교수님도 없지 않아요?”
“없지. 그래서 나도 괜히 출근했다고 생각했다고 생각하는 중이야.”
“다른 애들은 누구 안 왔어요?”
“학준이 녀석이 한 번 왔다 갔는데, 아무도 없다고 그냥 돌아가더라고. 너 올 줄 알았으면 안 돌아갔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지. 그 녀석도 참 대단해. 괴물들이 안 무섭냐고 하니까 자기는 다리가 빨라서 괜찮다니. 겁 없는 놈.”
김도의는 말하다 말고 한숨을 푹 쉬었다.
“하여간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지… 나도 이만 문 닫고 퇴근해야겠다. 너도 학교 어슬렁거리지 말고 돌아가.”
“그래야죠.”
학준이 무사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겁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와중에까지 밖에를 돌아다닐 만큼 간이 큰 줄은 몰랐다.
‘그 녀석도 하여간 별종이야.’
김도의 조교는 승한을 학과 밖으로 내보내고는 문을 잠갔다. 학교에 오고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돌아갈 때가 된 것이다.
“나도 이만 집에 가 봐야겠다. 너도 어디 싸돌아다니지 말고 집에나 가.”
“네. 형도 몸조심하세요.”
띠리리리리-.
그 때, 승한의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울렸다. 근래 들어 안부 전화가 많이 걸려와서 그러려니 하고 스마트폰의 화면을 확인했는데, 의외의 이름이 떠올랐다.
강동훈 소령. 승한이 명함을 받아 저장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아무래도 집에는 나중에 가야 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