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36화 (36/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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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수호신(守護神)

콰과과과과과-!

거대한 불의 구체가 얇게 나누어져 비처럼 떨어졌다. 하나하나가 살을 태우고 녹여버릴, 용암처럼 뜨거운 불길이었다.

윤재가 가지고 있던 네 번째 능력인 여우비였다. 이전 리자드맨과 싸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능력의 힘이 강해져 있었는데, 적어도 두 단계 이상 능력의 레벨이 오른 모양이었다.

“승한아, 조심해라!”

윤재의 목소리가 승한에게로 쏟아졌다. 승한은 가슴에 그려진 방패 문양에 씩 웃었다.

든든했다. 그 어떤 공격에도, 설령 용암 속에 있더라도 안전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윤재의 능력도 대단하긴 하지만 알 수 있었다.

2레벨의 수호신은 윤재의 능력으로는 뚫을 수 없다. 처음 사용해 보는 능력이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콰아아아아-!

키에에에엑-!

여우비가 내리자, 거미들이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이라 해도 뜨거운 열기 속에서는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윤재가 날리는 불꽃은 단순한 불이 아닌, 신성한 힘을 가진 불꽃이었다.

즉, 거미들에게는 상극(相剋)이라고 할 수 있는 힘인 것이다. 거미들의 껍질이 타들어가고, 녹아내렸다. 순식간에 몸이 바짝 말라갔다.

그리고 그 불길의 한 가운데에는 승한이 있었다.

콰콰콰콰-.

승한의 몸을 방패를 닮은 빛이 감싸 안았다. [광휘]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성질의 힘으로, 승한의 몸이 포근해졌다.

‘뜨겁지 않아.’

승한을 둘러싸고 있던 거미들은 몸이 타고, 녹아내리고 있었다. 윤재의 여우비는 순식간에 한 군데 뭉쳐있던 거미들 20마리를 한꺼번에 공격할 정도로 범위가 넓었고, 범위에 비해 살상력도 높았다.

하지만 대인에 대한 살상력을 높인 것도 아니고, 다수와 범위를 공격하는 능력으로 승한의 [수호신]을 어쩌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승한은 [수호신]을 사용하면 여우비 속에서도 안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안 죽은 놈들이 있나 보네.”

[수호신]의 빛이 점점 희미해졌다. 승한은 이 빛이 꺼지는 순간, 자신에게 직접적인 타격이 들어올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충격이 아예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충격이라 할 정도도 아니었지만 여우비가 떨어진 순간부터 자그마한 열기는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기장판 위에 있는 따듯함 정도였지, 불의 뜨거운 열기라고 할 순 없었다.

‘어마어마하군.’

[강화]나 [광휘]도 사기적인 능력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물론 점점 더 어려운 스테이지나 나오면서부터 더욱 좋은 능력을 획득하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승한이 타임 포인트를 아껴두었다가 [수호신]에 투자한 건 그런 까닭이었다.

하지만 이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처음 [수호신]의 ‘절대적인’ 방어 능력이라는 말에는 그냥 ‘그 정도로 뛰어난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절대적인’이라는 말은 단순히 인용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절대적.

[수호신]의 빛이 승한을 감싸고 있는 중에 승한은 어떤 힘으로부터도 충격을 받지 않는다. 물론 이 힘이 사라진 순간부터는 승한은 갑작스러운 위험에 노출이 되겠지만, 그거야 승한이 이 힘에 익숙해지며 차차 적응해 나갈 일이었다.

‘문제는… 이 힘도 함부로 남용하면 안 된다는 거겠지.’

[수호신]의 방어는 절대적이다. 그런 만큼 이 힘이 있는 이상 승한이 피해를 받을 일은 없었다.

그게 바로 문제였다.

안락함과 절대적인 안전은 사람을 나태하고, 둔하게 만든다. 만약 [수호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도 승한이 피하지 않는다면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

[수호신]은 여벌의 목숨이 여러 개 생길 뿐, 불사신으로 만들어 주는 능력은 아니었다.

사아아악-!

승한은 여우비 속에서 몸을 꿈틀거리는 거미들 사이를 파고들며 녀석들의 목을 베었다. 이미 말라 비틀어지고 재가되고 녹아든 거미들도 있었지만, 제대로 피해를 받지 않았는지 살아있는 녀석들도 있었던 것이다.

[175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175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20마리의 거미들을 모두 처리하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승한이 [광휘]로 시선을 끌어 모으고, 여우비를 쏟고, 죽지 않은 남은 거미들을 승한이 처리했다. 손발이 제법 척척 맞았다.

‘내가 쓰러뜨린 게 10마리… 딱 절반인가?’

여우비의 위력이 생각보다 강했다. 광역으로 피해를 주는 능력인 만큼 괴물 한 마리 한 마리에게 주는 피해는 다소 부족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거미들을 모두 쓰러뜨리자, 그 뒤로 더 몰려드는 거미는 없었다. 이미 근방의 거미들은 모두 몰려든 모양이었다. 워낙 조용한 곳에서 시끄럽게 싸우다 보니 중간에 소리를 듣고 몰려든 거미들까지 몇 마리 있었다.

하지만 역시 무엇보다 승한의 [광휘]가 역할이 컸다. 괴물들에게 상극이 되는 힘은 오히려 괴물들을 끌어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아파트 단지 안쪽에 있는 괴물만이 아닌, 그 밖에 있는 다른 괴물들까지 한꺼번에 몰려왔다.

“이 속도면 정리가 그렇게 어렵진 않겠습니다.”

승한은 검과 방패를 집어넣지 않은 채 윤재와 주희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는 한편, 주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주희씨는 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지 못했는데, 괜찮아요?”

“저도 얻을 만큼 얻었어요.”

“네? 어떻게…….”

“승한씨와 윤재씨에게 걸어준 능력 덕분인지 괴물이 하나 죽을 때마다 75타임 포인트를 획득하더라고요. 이번 싸움으로만 1500타임 포인트를 얻었어요.”

주희의 목소리가 꽤나 들떴다. 그녀는 지금까지 괴물들과 싸우면서 이렇게 많은 타임 포인트를 한번에 얻은 적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점차 괴물들이 강해지면서 획득하는 타임 포인트가 많아지는 것도 있었지만 한꺼번에 많은 괴물들을 모아서 잡은 것도 도움이 됐다. 1500타임 포인트라면 지난 번 리자드맨들의 보스를 잡고 얻은 포인트와 비슷했다.

‘부족한 75포인트가 주희씨에게 간 거였군.’

어쩐지 애매하다 했다. 원래라면 250타임 포인트가 주희에게 75포인트가 넘어가며 175포인트가 된 것이다.

수치상으로 보면 30퍼센트 정도. 즉, 승한과 윤재 거미들을 쓰러뜨려 얻은 1750타임 포인트와 비슷한 1500타임 포인트를 획득한 것이었다.

‘타임 포인트의 분배율은 나쁘지 않아.’

어느 한 쪽에게 과도하게 포인트가 몰리기보다는 이렇게 균등하게 분배되는 쪽이 훨씬 나았다. 정 뭐하면 타임 포인트를 타인에게 양도하는 방법도 없지는 않았다.

“이제 슬슬 이동해야겠군요. 서둘러 움직이죠.”

시간이 촉박했다. [광휘]를 이용해 괴물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덕분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곤 해도 언제 다시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할지 모른다.

“걸어서 움직이게?”

그 때, 윤재가 승한의 발을 멈춰 세웠다. 막 움직이려던 승한이 물었다.

“그럼요?”

발로 뛰어서 움직인다. 무식해 보일지 모르나 마냥 무식한 방법은 아니었다. 당장 승한만 하더라도 이런 속도라면 동 하나를 도는데 십 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윤재와 주희가 승한의 속도를 따라올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승한이 두 사람을 업고 간다면 가능할 것이다. 지금의 승한에게 사람 두 명쯤 업고 움직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가능할지는 모르겠는데… 이걸 타고 움직여 보자.”

윤재가 손으로 허공을 훑었다. 그러자 아무 것도 없던 허공에 불꽃이 피어오르며 뭉치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한 번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은 순식간에 덩치를 불려나갔다. 거센 불길을 토해내던 불길은 점차 형체를 갖춰가면서 거대한 새의 모양으로 변해갔다.

화아아악-.

거대한 불길은 [수호신]을 사용하지 않은 승한에게까지 뜨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거리가 꽤 가까운 탓도 있었지만, 이만한 열기라면 보통 사람은 견디기 힘들 것이었다.

‘주희씨는…….’

다행히 주희는 괜찮았다. ‘대지의 가호’를 급히 몸에 둘렀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승한이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윤재가 만들어낸 거대한 불의 새가 완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까아아악-!

펄럭-.

날개만 하더라도 족히 2미터는 되고, 몸통도 그 크기에 못지않았다. 상당히 거대한 몸집에 불이 뭉쳐서 만들어진 몸은 불이 아닌, 붉은색 몸의 진짜 새를 보는 것만 같았다.

“이게 뭡니까?”

“주작(朱雀)… 이라고 하더라고.”

“주, 주작이요?”

황당한 이름에 승한이 말을 더듬었다. 불타는 새를 보고 ‘주작’이라는 이름을 떠올리긴 했지만 정작 능력을 사용한 윤재의 입에서 그 단어가 나오자 놀람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나도 잘 몰라. 그냥 능력의 이름이 그래. 이번에 새로 얻은 능력인데… 아직 진짜 주작은 아니고, 이제 막 태어난 단계야.”

“태어나요?”

“주작은 하나가 아니야. 강한 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탄생할 수 있어. 화산이 폭발하든, 세계적으로 이슈가 될 만큼 큰 불이 나든, 그런 곳에서 바로 주작이 태어나. 그리고 자기 스스로를 태우다가 더 이상 타오를 수 없을 때 죽음에 이르지.”

뜬금없는 설명이었다. 윤재는 자신도 왜 이런 설명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 능력을 얻게 되고 알게 된 사실이야. 그리고 내 능력은 그런 큰 불길에서 태어나는 주작을 내 능력으로 탄생시키고, 나에게 종속시키는 것이고. 원래라면 주작은 이보다 훨씬 더 큰 존재지만… 지금 내 능력으로는 이게 한계네.”

“이것만 해도 대단하죠.”

주작은 그야말로 신화 속 이야기에서나 전해지던 존재였다. 사방신(四方神) 청룡, 백호, 현무, 주작 중 하나였으며 황룡(黃龍)을 지키는 신적인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도 놀라울뿐더러, 거대한 불속에서 스스로를 탄생시킨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게다가 윤재는 그런 주작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낸다니 신기하면서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소환 능력이라… 새로운 타입의 능력이네요.”

“뭐, 지금 당장은 탈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탈것이요?”

승한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윤재가 불러낸 주작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걸 타고 다니자고요?”

“그래. 이래 보여도 빠르긴 엄청 빠를 거야. 동 하나가 아니라 우리가 맡은 구역을 다 도는 데 삼십 분도 안 걸릴 걸? 물론 우리가 괴물들을 처리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지만.”

“뜨겁지 않아요?”

“대부분의 열기는 내가 통제할 수 있어. 다른 불이라면 몰라도, 주작의 불은 살아 있는 불이거든. 주작이 적으로 판단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아. 물론 보통 사람들에게는 조금 뜨겁긴 하겠지만… 주희씨의 ‘대지의 가호’면 열기는 충분히 차단하고도 남을 거야.”

뜨겁지 않은 불이라면 타고 이동하기 가능할 것이다. 직접 발로 뛰기보다는 탈 것을 타고 움직이는 편이 훨씬 빠를 게 당연했다.

윤재가 불러낸 주작은 세 명이 타고도 한참 남을 만큼 컸다.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높이 나는 것만 아니라면 설령 떨어지더라도 대지의 가호가 지켜줄 것이다.

승한과 윤재, 주희는 주작의 위에 올라탔다. 윤재가 주작의 목 위로 올라갔고, 그 뒤로 승한이, 가장 뒤쪽으로 주희가 앉았다. 윤재의 말대로 불에 타고 있는 주작이었지만 뜨겁다는 느낌은 없었다.

“이, 이거 떨어지지는 않겠죠?”

주희가 살짝 겁을 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비행기도 아니고, 아무리 크다고 해도 새를 타고 움직인다는 게 미덥지 못한 모양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떨어져도 주희씨는 스스로 몸 하나 지킬 정도는 되지 않나요?”

“네, 네?”

“대지의 가호도 있고, [강인함]의 레벨도 3레벨은 되셨죠? 그럼 문제 없겠네요.”

“아니, 잠깐… 잠깐만요! 꺄악!”

윤재가 주작의 목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주작은 기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한 번 떠오른 주작은 아파트 단지 위쪽으로 올라갔다.

땅이 점점 멀어졌다. 백 미터 가까이 날아 오른 덕분에 땅 아래가 훤히 보였다. 사람은 없고, 도시 곳곳에 있는 거미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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