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38화 (38/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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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붉은 거미

검은색 거미들과는 색이 분명 달랐다. 선명한 붉은색 거미는 다른 거미들과 덩치는 비슷했지만 색에서 구별할 수 있었다.

‘하나, 둘 셋… 세 마린가?’

생각보다 그런 거미들이 꽤 많았다. 검은 색 거미들 사이로 군데군데 붉은색 거미들이 보였다.

보스는 아니었다. 아무리 수가 많다고 해도, 동 하나에 이렇게 많은 괴물들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거미들과 똑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확인해 보면 알겠지.’

까가가가각-.

붉은 거미들은 검은 거미들 사이에서 마찬가지로 승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생김새로 또 다른 게 있다면 눈이 여섯 개가 아니라 여덟 개라는 점이었다.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냐?”

몰려든 거미들을 보며 윤재가 징그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거의 작은 운동장 하나가 꽉 찰 만큼 거미들이 몰려들어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더 모으는 건 힘들 것 같았다.

“다시 시작하죠.”

승한은 조금 더 모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시간을 더 끌어서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 윤재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었고, 무리하게 거미들을 모았다가 무리하게 한꺼번에 여우비를 쏟아내는 것보다는 이 정도 수를 여러 차례에 걸쳐서 모으는 게 훨씬 나았다.

더군다나 수가 많아지면서 무리에서 이탈하는 거미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승한은 어서 빨리 붉은 거미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었다.

‘일반 괴물도 아니고, 보스도 아닌 새로운 타입의 괴물.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

비산1동 지역에는 붉은 거미가 없었다. 마리수가 많지 않으니 비산2동에 특히 붉은 거미가 몰려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마주친 것 붉은 거미에 대해서 어서 알아보고 다른 헌터들에게 보고를 할 필요가 있었다.

검은 색 거미들과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보스인지 아닌지에 대해서까지. 만약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면 경고를 해 주면 되고, 생각보다 약하다면 겁먹지 않도록 정보를 주면 된다.

“형, 여우비는 30초 뒤에 떨어뜨려 주세요.”

“어차피 사용하려면 10초는 걸리긴 하는데… 왜?”

“저 붉은 거미들과 먼저 싸워 봐야죠. 여우비에 죽을 가능성도 큰데, 먼저 타격을 입고 시작하면 얼마나 강한지 제대로 알 수가 없잖아요.”

윤재는 승한의 말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싸우기만 하는 게 아니고 다른 헌터들과도 전음구를 통해 연락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겠네. 알았어.”

“주희씨.”

“네!”

주희가 다시금 승한에게 ‘대지의 가호’와 ‘단죄의 빛’을 걸어주었다. 승한은 자신의 몸을 감싸는 두 가지 힘을 느끼며 아래로 몸을 날렸다.

‘우선은 붉은 거미부터.’

승한은 세 마리의 붉은 거미들 중, 바로 아래에 있던 한 마리의 붉은 거미에게로 떨어졌다. 처음 계획한대로 붉은 거미가 얼마나 강한지부터 확인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승한의 생각은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붉은 거미의 수는 적지만, 검은 거미는 많았다. 붉은 거미를 향해 떨어지던 승한의 몸을 검은 거미들이 낚아채듯 달려들었다.

까가가가각-.

“너희는 좀 꺼져!”

사아악-!

승한의 검이 거미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붉은 거미를 상대하기 전에 검은 거미들부터 정리해야 할 판이었다.

[강인함]과 [민첩함]의 레벨이 하나씩 더 올랐기 때문일까? 이전보다 거미들을 베어내는데 큰 어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강화]를 사용하지 않으면 조금 걸리는 느낌이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베어낼 만했다.

검에 실리는 힘이 더 강해지고, 휘두르는 검이 훨씬 더 빨라졌다. 능력의 레벨은 하나씩 올랐을 뿐이지만 그 능력 하나의 차이는 꽤나 컸다.

사악, 쫘아아악-.

[175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175타임 포인트를…….]

몇 번씩 울리는 메시지. 승한은 타임 포인트 획득 메시지를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획득한 타임 포인트야 나중에 확인하면 될 일.

까드드드득-.

‘붉은 거미……!’

검은 거미들을 처리하다 보니 붉은 거미가 승한에게로  도달했다. 색과 눈의 개수를 빼면 다를 바가 없었는데, 승한은 붉은 거미의 머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이었다.

촤아악-!

“어, 어?”

붉은 거미의 입에서 거미줄이 뿜어져 나오더니 승한의 몸을 덮쳤다. 생각해 보면 거미가 거미줄을 분비하는 게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뿜어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치이이이-.

사방이 거미들로 둘러싸여 있는 터라 승한은 거미줄을 피하지 못했다. 몇 마리의 거미들과 함께 거미줄에 묶인 승한은 거미줄이 자신의 몸을 옭아맴과 동시에 거미줄에 들어있는 따가운 독성분을 함께 느꼈다.

‘따가워?’

승한은 피부에서 느껴지는 따끔거림에 눈살을 찌푸렸다. 윤재의 여우비에도 따듯하다는 느낌 정도밖에 들지 않았던 승한이, 붉은 거미가 쏘아낸 거미줄에 따끔거림을 느낀 것이다.

다행히 [수호신]덕분에 큰 피해는 없었다. 따끔거림도 심하지 않았다. 전투에 지장을 줄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면 방금 전까지 윤재가 쏘아내던 여우비의 불보다 더 지독한 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절대적인 방어를 한다고 해도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독의 힘이 결코 약하지 않았던 것이다.

‘[수호신]의 레벨을 올리길 잘 했어.’

어쩌면 [수호신]의 레벨이 2레벨인 상태에서 녀석을 만났다면 더욱 골치가 아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따끔거림 정도가 아니라, 직접적인 피해가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사악-.

승한은 검을 휘둘러 거미줄을 풀어냈다. 하지만 단번에 베어지지는 않고 질긴 거미줄은 검에 조금 묻어났다.

승한은 눈살을 찌푸리며 검에 [광휘]의 빛을 둘렀다. [광휘]의 빛이 닿자 붉은 거미의 거미줄은 힘을 엃고 그대로 녹아내렸다. 본능적으로 승한은 거미줄을 베는 데에는 [강화]의 예리함보다는 [광휘]의 빛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거미줄을 베어낸 승한은 그대로 붉은 거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붉은 거미는 검정 거미들보다 훨씬 민첩하긴 했지만 승한의 검을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콰직-!

승한의 검이 붉은 거미의 머리에 박혔다.

‘박혔다?’

꾸드드득-.

촤악-!

조금 더 힘을 주자 붉은 거미의 머리가 완전히 베어졌다. 하지만 분명 한 번 휘두른 검으로 매끄럽게 베어내지 못한 건 제법 충격적이었다.

‘단단하다.’

마지막 순간에 붉은 거미를 벨 때, 승한은 거의 반 강제적으로 힘을 주었다. 벤다기 보다는 박혀 있는 검을 그대로 찍어 눌러 머리를 부순다는 느낌이었다.

붉은 거미는 껍질은 물론, 몸 전체가 단단했다. 더군다나 생명력도 질긴지 머리가 잘리고도 제법 날뛰었는데, 승한의 몸 위를 두드리는 다리 힘도 제법 상당했다.

쿵-.

몸부림치던 붉은 거미가 결국 쓰러졌다. 머리를 베었는데도 몇 초씩이나 더 움직이는 걸 보면 어지간히 생명력이 질긴 모양이었다.

[700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700?’

애매한 수치의 타임 포인트였다. 30퍼센트 가량의 타임 포인트가 주희한테 가는 걸 생각해 보면, 원래 붉은 거미가 주는 타임 포인트가 1000타임 포인트라는 뜻이었다.

제법 많지만, 보스라고 생각하기엔 터무니없이 적은 수치. 보통 괴물도, 보스도 아닌 새로운 괴물의 출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골치 아픈데, 새로운 녀석이라니…….’

솔직히 말해 그리 까다롭지는 않았다. 몸이 단단하고, 독으로 만들어진 거미줄을 뿜어내긴 하지만 승한에게는 걸릴 게 없었다.

단단한 정도야 승한이 충분히 베어낼 수 있었다. 조금 베는데 깔끔하지 못하다고 해도 부수듯이 머리를 으깨면 그만이었고, 수가 많아지면 [강화]나 [광휘]의 힘을 좀 더 사용하면 충분히 벨 자신이 있었다.

독으로 만들어낸 거미줄? 승한에게는 [수호신]이 있었다. 맞는다고 해도 조금 따끔거릴 뿐, 그 따끔거림도 사실 별 것 없다.

[광휘]의 힘을 이용하면 거미줄을 녹여버릴 수도 있었다. 즉, 붉은 거미의 방어력과 살상력 모두 승한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승한이 강한 탓도 있었지만 붉은 거미가 쏘아내는 거미줄이 승한의 능력인 [광휘]와 상극인 탓도 있었다.

‘다른 헌터들은?’

승한이 걱정하는 부분은 다른 헌터들이었다.

과연 그들이 붉은 거미를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붉은 거미는 검은 거미들과는 달리 상대하기가 훨씬 까다로웠다.

‘다른 헌터들도 더 강해지긴 했겠지만…….’

지금쯤이면 다른 헌터들도 검은 거미들을 잡고 얻은 타임 포인트로 능력의 레벨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승한과 윤재, 주희처럼 빠르게 잡지는 못했을 테니 그래봤자 하나 두 개 정도의 레벨을 올린 게 고작일 터.

게다가 이미 그 전부터 능력의 레벨이 낮았던 이들이 레벨 한두 개 정도를 올린다고 해서 붉은 거미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더군다나 보스라도 나온다면 더더욱 최악이었다.

그 순간, 승한의 눈에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다.

“저, 저게 뭐야?”

분명 검은 거미였다. 가까이서 승한을 노리고 있던 거미는 털이 나 있는 다리를 제자리에서 움직이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헌데, 점차 그 색이 빠르게 변해버렸다. 무색(無色)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검은색이 점차 밝아지더니 핏빛의 붉은 색으로 변해갔다.

‘붉은 거미?’

그렇게 몇 마리의 검은 거미들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그러더니 옆에 있던 거미 몇 마리가 픽 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몸에는 힘이 빠지며 통통했던 몸이 말라 비틀어졌다. 그렇게 쓰러진 거미가 붉은색으로 변한 거미보다 많았다.

“……그런 거였나?”

붉은 거미의 정체. 그것은 검은 거미가 다른 거미를 잡아먹고 생긴 변종이었다.

녀석은 보스 같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일반 괴물과도 분명히 구별되었다. 녀석 한 마리가 일단 검은 거미 대여섯 마리보다도 훨씬 따다로울 테니 말이다.

그렇게 검은 거미들이 죽고, 새로 변한 붉은 거미가 다섯 마리였다. 처음 세 마리밖에 없던 붉은 거미가 이제는 한 마리가 죽고 다섯 마리가 추가되어 일곱 마리가 되었다.

화아아아악-!

쐐애애액-!

그 때, 승한이 윤재에게 요구한 시간이 지났다. 능력의 레벨이 한 단계 높아졌는지 여우비는 방금 전보다 훨씬 범위도 넓고, 불길도 더 뜨거웠다.

승한은 서둘러 [수호신]의 힘을 더욱 끌어올렸다. 승한을 비롯해 주위에 있는 수많은 거들 위로 여우비가 떨어졌다.

콰콰과과과-.

여우비가 거미들을 휩쓸었다. 절반에 미치지 않게 죽었던 거미들이 이제는 절반이 넘게 목숨을 잃었다. 다행히 몇몇 거미들은 운 좋게 여우비에 휩쓸리지 않아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승한은 그 불길 속에서도 멀쩡했다. [수호신]의 힘은 하늘에서 떨어진 여우비를 완벽하게 막아주었다. 여우비의 레벨이 올랐다고는 해도 그것은 승한의 [수호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불길 속에서 승한은 똑똑히 보았다.

‘아무렇지도 않아?’

붉은 거미가 여우비 속에서도 멀쩡하다는 것을 말이다.

============================ 작품 후기 ============================

하루 두 편 연재 약속드렸습니다.

다른 한 편은 점심쯤 올라갈 예정입니다.

매일매일 연참, 역시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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