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타임-39화 (39/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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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붉은 거미

까드득-.

붉은 거미는 불길 속에서 승한을 바라봤다. 승한은 검은 거미들과는 달리 녀석들의 눈이 소름 끼치게 느껴졌다.

‘보통 괴물은 아니다, 이건가?’

승한은 녀석들을 상대하려면 평소처럼 힘을 아껴선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수호신]의 방어력을 뚫고 녀석들의 독이 들어올 수도 있었고, 어차피 윤재의 여우비는 녀석에게 통하지 않았다.

승한은 [광휘]와 [강화]를 더욱 끌어올렸다. 이미 방금 전 공격으로 붉은 거미의 껍질이 꽤나 단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 힘을 사용한다고 해도, 붉은 거미의 수가 그리 많지 않으니 괜찮을 것이다.

붉은 거미가 일곱, 검은 거미가 서른 정도 남았다.

거미들은 여우비를 떨어뜨린 게 승한이라고 생각이라도 한 듯 더욱 성을 냈다. 빠르게 다리를 움직인 거미들이 승한을 깔아뭉갤 듯 덮쳐왔다.

촤악-!

그 때, 승한의 [강화]의 빛이 극도로 끌어올려졌다. 마치 검이 길어진 듯했는데, 검을 크게 위로 휘두르자 승한을 덮쳐오던 검은 거미들이 순식간에 베어졌다.

타닥-.

검은 거미 세 마리를 단숨에 베어버린 승한은 뒤쪽에서 달려오던 붉은 거미를 향해 몸을 날렸다. 반응이 빠른 건지 아니면 당황한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두 마리의 붉은 거미는 승한을 향해 거미줄을 쏘아냈다.

촤라락-.

휘이이이이이-.

승한의 검에서 [광휘]의 빛이 뿜어졌다. 단순히 거미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사용했던 은은한 빛과는 달리,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한 빛이었다.

순간적으로 거미들의 몸이 굳어졌다. 승한의 몸과 검에 맺힌 [광휘]의 빛을 보는 순간, 거미들은 압도적인 존재감에 눌려 어떠한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승한의 [광휘]는 괴물들에게 상극이 되는 힘이었다.

치이익-.

승한의 검에 맺힌 [광휘]에 닿은 거미줄이 녹아내렸다. 단순히 베어 버린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얇고 질겼던 독성을 가진 거미줄이 세상에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쉬이이익-.

사악-!

승한의 검이 붉은 거미 하나를 순식간에 반으로 베었다. 머리를 벤 것이 아닌, 앞으로 달려 나가던 힘 그대로 몸을 반으로 베어버렸다.

[700타임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쩌억=, 쿵-.

붉은 거미의 몸이 반으로 갈라지더니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승한은 지체하지 않고 곧장 움직여 다른 붉은 거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어느새 [광휘]의 힘에서 벗어나 움직이기 시작한 붉은 거미는 승한에게 더욱 분노를 표출하며 달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과 움직임이 똑같지는 않았다.

나사가 풀린 것처럼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움직임.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던 다리는 조금씩 꼬이기도 했다.

[광휘]의 영향이었다. [광휘]의 힘은 쓰임새가 많아서 괴물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공포를 주기도 하고, 상극의 힘으로 괴물을 섬멸하기도 했다. 그것은 승한이 어떻게 힘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활용 범위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콰드드득-.

사악-!

다시금 거미줄을 녹이고, 검으로 붉은 거미 두 마리를 베었다. 한 번 힘을 사용하기 시작하자 승한의 움직임은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빨라지고, 거침이 없어졌다.

[강화]는 단순히 검으로 베는데 살상력을 높이는 힘이 아니었다. 그 힘은 승한의 근력과 움직임까지 모두 영향을 미쳤다. 더군다나 [광휘]역시 승한의 움직임을 더욱 가볍게 만들어주고, 반대로 괴물들의 움직임은 느리게 만들면서 전투에 이점을 부여했다.

즉, 모든 능력을 이끌어낸 승한은 거미들에게 있어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이건… 도울 필요도 없겠는데?”

“그러게요…….”

주작 위에서 승한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윤재가 능력의 사용을 멈추었다. 여우비를 사용하기까지 필요한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 안에 승한이 남은 거미들을 모두 정리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음에도 승한의 움직임은 윤재나 주희가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다. [민첩함] 능력의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발이 딸라지고, [강화]의 힘을 발에 집중시키면서 더더욱 빨라졌다.

승한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경쾌했다. 한 번 움직여 거미를 베어내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른 거미를 향해 몸을 돌렸다. 수많은 거미들 사이로 몸을 헤집고 들어가 어떠한 피해도 없이 녀석들의 목과 몸을 베었다. 그것도 단칼에 말이다.

순식간에 검은 거미들이 정리되고, 붉은 거미들의 목이 떨어졌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이십여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쓰러진 거미들의 체액이 바닥에 흘렀다. 윤재는 주작을 아래로 내려 승한에게로 다가갔다. 모든 거미들을 베어 넘긴 승한은 주작 위로 올라타며 전음구를 꺼냈다.

“서둘러 연락해야겠습니다.”

“붉은 거미에 대해서?”

“네. 다른 건 몰라도 거미줄을 뱉어내는 건 주의해야 되요. 제대로 된 방어 능력이 없이 맞섰다가는 그대로 죽을 수도 있어요.”

한시가 급한 승한은 서둘러 연락을 넣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바로 안석환이었다.

“김승한입니다. 안석환씨, 전투 중이 아니라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무슨 일입니까?

대답이 들려오자, 승한은 곧장 붉은 거미에 대해 설명했다. 검은 거미들을 잡아먹고 생기는 변종으로, 타임 포인트는 많이 주지만 그만큼 강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단단한 내구도를 가진 껍질과 입에서 뿜어내는 거미줄이 가진 독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주의를 줬다. 다른 헌터들에게도 연락을 취해야 하기에 짧게 이야기 하긴 했지만 경고로는 충분했다.

-알겠습니다. 아직 그런 거미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저도 다른 헌터들에게 연락을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승한은 그 뒤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른 헌터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러면서도 주작은 다음 동으로 넘어갔는데, 연락을 취하는 와중에서도 승한은 거미들을 끌어 모으는 걸 잊지 않았다.

윤재와 주희 역시 승한처럼 다른 헌터들에게까지 연락을 취한 덕분에 안양 지역 내에 있는 모든 헌터들에게 연락을 취하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모든 연락을 끝낸 후, 승한은 다시금 땅 아래를 바라봤다.

“붉은 거미가 더 많아졌군요.”

승한은 아래로 보이는 거미들 중, 붉은 거미들의 수가 많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방금 전 비산2동에서 보았던 거미들 중 붉은 거미가 3마리 정도였다면 지금 보이는 붉은 거미는 족히 열 마리는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수가 많아지는 건가?’

다른 검은 거미를 잡아먹고 붉은색으로 변하는 거미였다. 처음이라면 몰라도 한 번 붉은 거미가 생겨난 이상, 다른 거미들도 그 습성을 따라하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어쩌면 시간이 더 지나면 붉은 거미들이 점점 더 많아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 거미보다 월등히 강한 붉은 거미들은 살아남고, 약한 검은 거미들은 잡아먹힌다. 괴물들의 생태계 역시 크게 특별한 게 아니었다.

“승한아. 미안한데 여기선 네가 힘을 좀 써줘야겠다.”

“네?”

“여우비를 너무 남발했더니 아무래도 힘이 떨어져서 말이야. 이번엔 좀 쉬어야겠어.”

윤재의 얼굴에는 어느새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여우비를 쉼 없이 쏟아내면서 꽤나 지친 듯했다.

윤재는 체력과 기력을 소모하는 승한과는 달리 능력을 사용하면서 체력과 정신력을 소모했다. 지금 이렇게 주작을 불러내는 능력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윤재의 체력과 정신력은 지속적으로 소모되고 있었다.

거기다가 4스테이지의 능력인 여우비를 쉼 없이 쏟아냈으니 지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더군다나 주작의 몸에 타고 있는 불 역시도 윤재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알았어요, 형. 좀 쉬고 계세요. 이번엔 제가 할게요.”

“미안하다.”

윤재는 원래 무리를 해서라도 여우비를 쏟아낼 생각이었다. 승한 혼자서 저 많은 거미들을 상대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탓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 싸움을 보고 윤재는 생각했다.

‘승한이 저 녀석은… 진짜 괴물이야.’

여우비라는 사기적인 능력으로 거미들을 태우고 있지만 윤재는 자신의 한계를 여실히 알고 있었다. 여우비처럼 큰 능력을 사용하는 데에는 제약이 따른다는 것이다.

체력과 정신력의 급격한 소모.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바로 방금 전 여우비를 사용할 때, 윤재는 심지어 어지러움까지 느꼈다. 큰 능력의 사용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게 당연했지만, 예상보다 그 반작용이 훨씬 더 빨랐다.

하지만 승한은 그런 제약이 없기라도 하듯 마음껏 능력을 사용했다. 그것은 다른 헌터들과는 달리 탄탄한 레벨의 [강인함]능력과 승한이 힘을 적절히 배분하며 싸운 덕분이었다.

아니, 그 모든 것을 제쳐두고라도 승한은 그 자체만으로도 뛰어난 헌터였다. 방전이 빠른 윤재와는 달리, 승한은 쉼 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휘익-.

주작이 근처에 있는 건물 옥상에 내려앉았다. 승한과 윤재, 주희가 내려앉았고 윤재가 주작의 털을 쓰다듬었다.

“수고했다.”

키아오-!

주작의 몸이 흩어지며 한 줌 불로 사라졌다. 윤재는 지친 얼굴로 옥상 난간에 몸을 기댔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보통 지친 게 아닌 듯했다.

‘속도가 꽤 많이 줄겠군.’

비산1동과 2동을 돌고, 안양1동에 있는 거미들을 모두 끌어 모으는 데까지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윤재와 승한의 공이 컸다.

윤재가 주작을 타고 빠르게 이동하면서 승한이 [광휘]의 힘을 이용해 거미들을 끌어 모았다. 아무리 승한의 [광휘]가 넓은 지역에 있는 거미들을 끌어 모을 능력이 있다고 해도 주작의 기동력이 없었다면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거미들을 모으진 못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윤재의 ‘여우비’는 범위 계열의 살상 능력으로 거미들에게 유독 큰 타격을 입혔다. 아무리 괴물이라고 해도 곤충을 베이스로 해서 그런지 불에 약했던 것이다.

‘그래도 이만큼 시간을 단축한 것만 해도 충분한 성과지.’

이번 한 번을 푹 쉬면 다음번에는 다시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승한은 쉴 필요가 없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주희씨는 형의 회복을 좀 도와 주세요.”

“알겠어요.”

주희의 손에 새하얀 빛이 맺히더니 윤재의 몸을 감쌌다. 그녀는 회복 능력을 가진 헌터로, 타인의 상처나 내상뿐만이 아닌, 체력과 정신력, 기력과 같은 힘의 회복까지도 도와줄 수 있었다.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미들이 승한과 윤재, 주희가 올라와 있는 건물 위로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 중에는 붉은 거미도 있었는데, 녀석들이 발로 건물의 벽을 타고 올 때마다 건물 벽에 시커먼 자국이 생겼다.

‘역시 저놈들 몸은 독 덩어리였어.’

몸에 묻어 있는 독이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니라 잘 몰랐는데, 흰색 건물의 표면이 썩어가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승한은 그대로 거미들을 향해 떨어졌다. 5층 건물 위에서 떨어진다는 건 아무리 승한이라 해도 무리였다. 하지만 벽을 타고 오는 거미를 향해 검을 찌르고, 한 차례 완충 작용을 했다.

키에에엑-!

검에 등을 찔린 거미가 비명을 질렀다. 뒤로 발라당 넘어진 거미가 승한과 함께 땅 아래로 떨어졌다.

후우우웅-.

승한은 [광휘]의 빛을 밝혔다. 혹여라도 물 위에 있는 윤재와 주희에게 거미들이 신경을 쓰지 않기 위함이었다.

반딧불처럼 몸을 밝힌 승한에게 거미들이 몰려들었다. 승한은 자신의 주위로 몰려든 수많은 거미들을 둘러보며 씩 웃었다.

“거 참 많이도 왔네.”

이번 싸움은 윤재의 도움이 없다. 여우비가 없이, 이 많은 거미들을 승한 혼자서 상대해야 하는 것이었다.

무섭다는 생각?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내심 반갑기까지 했다. 이들을 다 잡고 얻을 타임 포인트를 생각하면 말이다.

화아아악-!

승한의 몸에 [광휘]의 빛과 함께 방패 문양의 [수호신]이 떠올랐다. 모든 능력을 개방한 승한은 거미들을 상대로 검과 방패를 들었다.

그리고 광란이 벌어졌다.

============================ 작품 후기 ============================

윤재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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